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80화 (180/235)

〈 180화 〉 아라크네 (3)

* * *

인간이 가장 버티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통을 가미한 고문?

성적 쾌락을 이용한 고문?

수면을 방해하는 고문?

그러한 것도 분명 효과적이겠지만, 이 또한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문이 있다.

'지루함'.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변화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고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간혹 드라마 같은 곳이나 영화에서 말하는 '타임 루프'현상을 보라.

어떤 인간이든 타임 루프가 몇 백, 몇 천 번반복되면 그 시간의 반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기 마련이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타임 루프를 깨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타임루프 속에 갇혀버리면 인간은 미치고 지치기 마련.

지금이 그렇다.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 식사와 배설조차 제한 당한 채.

"하악, 하악...."

1년 동안 체위의 변화도 없이 똑같은 자세로 박히고 있기만 하면, 그 어떤 인간도 좌절하기 마련이다.

아라크네가 그렇다.

나는 플레이야스로서 아라크네를 일 년 동안 범했다.

한 명의 플레이야스로 한 명의 인간을 일 년 동안 범하는 것은 몹시 비효율적이었으나, 이 건방진 여자에게 신의 무서움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최고의 판단이었다.

"흥, 흐흥."

천막 너머.

눈앞에 보이는 천막은 아라크네의 삶을 담고 있었다.

본래 아라크네가 누렸어야 할 아라크네의 삶을 아라크네가 아닌 또다른 누군가가 누리고 있다.

생각해보라.

나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강간당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는­자신의 육신은 멀쩡히 자신의 삶을 사는 모습을.

아라크네가 빼앗긴 건 단순히 처녀막과 1년의 시간이 아니다.

또다른 아라크네가 자기 멋대로 1년 동안 베를 짜고 생활을 하는 시간과 역사만 빼앗긴 게 아니다.

그녀가 빼앗긴 것 중 인간으로서 가장 심하게 빼앗긴 건 아라크네가 아라크네로서 존재할 수 있는 존엄성.

'자아'를 빼앗겼다.

그래서 아라크네는 좌절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인격이나 영혼이 '복제'를 가정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랬다.

이번에 이 건방진 여자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주기 위해, 나는 영혼을 다루는 여신들까지 불러 아라크네의 영혼을 내 앞에 강제로 구속했다.

아라크네의 구속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SM 플레이용 성인용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라크네의 영혼을 감금하는 구속구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라크네의 영혼을 강간하고 있다.

그리고 아라크네는 그걸 알아차렸다.

'똑똑한 여자였지.'

자신이 신적인 존재에 의해 따먹히고 있다는 것.

유피테르와 함께 방문한 미네르바가 자신을 벌하기 위한 여신이라는 것.

천막 너머의 자신은 자신의 탈을 쓴 또다른 존재라는 것.

자신이 강간당하는 것은 신들을 향해 제우스의 창녀 운운해서 벌을 받고 있다는 것.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자가 지금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그저 따먹히고 있기만 할 뿐이니, 사실상 이 여자의 정신은 무너졌다고 봐도 보는 게 무방하다.

라고 일단은, 판단하고 있다.

'또 모르지.'

워낙 독종이라서 무언가 변화가 생기는 순간, 바로 신들을 향해 저주를 내뱉을 지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재.

이곳은 올림포스.

"저 건방진 인간 여자를 어떻게 하면 신들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고 죽일 수 있을까."

"원래 생각했던 대로 하시죠?"

나는 아테나와 자리를 마련하여 아라크네를 어떻게 처리할 지 논의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신의 위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인간 자체가 글러먹은 거예요. 자기가 신보다 못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저 여자의 자존심을 박살내야 한다고. 그냥 '이제 네 죄를 알겠느냐'하는 건 우리가 지는 거야."

아라크네를 일 년 동안 플레이야스로 따먹으면서 느낀 게 있다.

"아라크네는 독종이다. 뒤에서 자지를 어떻게 박든 말든, 아직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SF 영화 속 주인공이 그렇듯, 아라크네는 지금 변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자지가 박히는 건 그냥 호흡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뿐.

"아테나. 너 혹시 아라크네한테 어그로 끌린 건 아니지?"

"흥...."

아테나는 내 물음에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테나는 아라크네가 내게 박히던 도중 '자신이 아테나보다 베 짜는 실력이 뛰어나다'며 악을 쓴 것에 제대로 빡친 듯했다.

"제가 혹시 붙어 보지도 않은 방적 실력에 밀려서 지금 아라크네한테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혹은.

"저 년이 지금 자기가 여신보다 더 보지가 맛있다고 하잖아요! 심지어 제우스 님에 대한 모독도 함께 하면서!"

"그건 그렇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년의 시간 동안.

아라크네는 정말 이 말 저 말을 다하며 모욕을 일삼았다.

자신이 이렇게 박히는 동안 자기 보지를 제우스가 먹지 못해서 제우스가 아쉬울 거라느니.

미네르바가 어떤 여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신의 보지가 아라크네의 보지보다 못해서 질투로 강간범을 보낸 거라느니.

고작 이렇게 자지에 박힐 뿐인데 매일같이 제우스랑 자지 못해서 안달이 난 올림포스의 창녀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난다느니.

이해는 한다.

극한 상황으로 만든 건 나고, 그냥 극한 상황도 아니고 신적인 존재에 의해 무언가가 힘이 작용되는 것 같은 상황이면 당연히 신을 저주하고 모욕하게 되어있다.

"나는 영혼을 구속하고 난 뒤에 저 여자가 저지른 불경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저 여자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인성 만큼은 확실하게 조져야 해."

신에 대한 모욕도 모욕이지만.

"인간이 감히 신과 맞먹으려고 드는 자세. 그 자세를 고치지 않는 한, 이 여자는 영원히 따먹힐 거다. 자기 자신의 육신이 늙어 죽을 때까지."

아라크네는 자신을 마치 신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여자였다.

"신들이 직접 원단을 구매하러 오라느니. 자기 물건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기 전에, 이 세계를 이렇게 평화롭게 유지하는데 신들이 얼마나 기여를 하고 공헌하는지부터 깨달아야지. 쯧."

능력있는 인간이기 이전에, 인성이 글러처먹은 여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신들이 마냥 노는 것처럼 보여도, 다 할 일을 다 하고 사는 게 신이다.

"좋아요. 그러면 이렇게 하죠. 그냥 풀어주도록 하죠."

"그냥 풀어준다고?"

"예. 영혼을 풀어주면 자기 원래 몸으로 돌아가겠죠. 아직 원래 몸이 섹스를 한 적도 아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태잖아요?"

아테나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여러 개의 다리처럼 움직였다.

"굳이 신이 나타나서 '이제는 반성했겠지'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기 알아서 반성을 했다면 앞으로 조심할테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자존심을 박살내면 되겠죠."

"일단 지켜보자?"

"예. 대신,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죠."

아테나는 나를 가리켰다.

"너를 따먹은 자가 나 제우스다?"

"아뇨, 아뇨."

아테나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볼을 붙잡았다.

"일단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하라고 하기 전에, 먼저 여자로서 가장 비참하게 만들어주고 싶네요."

"......."

"여신을 걸레이자 창녀로 취급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알겠다."

아테나의 제안은 합당했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풀어주도록 하지."

* * *

철컥.

어느 날.

갑자기, 구속구의 족쇄가 풀렸다.

뱃속 가득한 정액의 뜨거움에 몽롱해져있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온 아라크네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철컥, 철컥.

구속구가 풀리기 시작했다.

날짜를 계산한 건 아니지만, 천막 너머가 낮과 밤이 뒤바뀌는 횟수가 약 365번째 정도 되는 것 같은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털썩.

구속구가 사라지자마자 아라크네는 앞으로 몸을 처박았다.

너무 오랜 기간 엎드린 자세로 살아오는 바람에 몸을 일으키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아라크네는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땅을 짚었다.

"하, 하하...!"

아라크네는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던 자지가 기어이 뒤로 빠졌다.

강하게 안으로 때려박기 위해서 빼내는 게 아니라, 엉덩이에 좆을 비비며 좆물을 닦아내기 위한 게 아니라.

진짜로 섹스가 끝이 났다는 듯, 여유롭게 자지를 빼내며 남자는 뒤로 물러났다.

이제 뭔가 말이라도 하겠지.

자신을 지금까지 근 1년 동안 범했다면, 분명 뭐라도 말이라도 할 것이다.

뭐라고 말할까.

지금까지의 고통은 네가 신들을 모욕한 벌이다?

앞으로는 신에게 봉사하고 받드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예이, 예이.

좆같지만 따라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얌전히 신을 따를 것이다.

좆대로 사는 제우스와 창녀 여신들을.

'반드시 알릴 거야.'

자지에 박히는 동안 아라크네는 한 가지 새로운 재봉법이 생각났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천이지만, 천의 결을 반대로 쓸면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 형태.

카페트 같은 곳의 아래에 그림을 수놓은 다음, 신전의 바닥에 깔린다면?

예를 들어, 신전의 입구로 들어가는 카페트의 아래에 여신이 알몸인 채로 두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 깔려있다면?

그것만큼 강한 신성모독이 또 어디에 있을까.

누구도 모를 것이다.

아라크네를 제외하고.

"...후. 후후."

아라크네는 떨리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라크네는 방금 전까지 아래에서 몽글거리던 뜨거운 정액의 감각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꾸익."

"얼굴 존나 빻았­"

털썩.

아라크네는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마치 흉물스러운 공포와 마주한 것처럼, 심장이 멈춰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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