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거인사냥꾼 오리온 (1)
* * *
아제우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 정수가 필요하다.
신의 정수를 받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임신.
임신을 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임신이란 평범한 임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산란을 하는 거지."
내 말을 경청하는 포세이돈, 아니 넵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가 오라버니랑 섹스를 하면 된다는 거죠?"
"일단은?"
"질싸를 받으면 된다는 거고?"
"그렇지."
"그게 아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안에서 신력으로 하나의 가능성을 가진 '알'로 만들어낸다?"
"그래. 잘 이해했네."
아이를 낳는 게 아니다.
신의 흔적을 낳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그냥 상상임신 같은 거야. 아이를 낳을 거면 그냥 바로 자식을 낳으면 되잖아. 그렇지?"
"그렇긴 하죠."
실제로.
나는 넵튠과의 사이에서 정말 많은 자식을 낳았다.
넵튠이 워낙 자식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넵튠이 관리해야 하는 지역들이 워낙 넓어서바다니까자식들을 보내서 대신 관리를 하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넵튠 본인도 나와 아이를 낳는 걸 좋아하는, 임신교배근친섹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넵튠과 나 사이에는 엄청 많은 자식들이 있다.
헤라랑 자식 낳기 경쟁이 붙어서, 아마도 헤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아이를 낳은 여신이 아닐 지.
"이번에는 아제우스를 낳아다오."
"살다살다가 오라버니의 알도 낳아보네요."
"해줄 거지?"
"안 해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낳은 자식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에요? 아니면 그냥 알?"
"신의 인자를 가진 플레이야스, 정도로 생각해주면 되겠어."
별 다른 까탈스러운 이야기는 아니고.
"기존의 플레이야스가 점토와 석고를 빚어서 만들어낸 인형이라면, 아제우스는 좀 더 생명에 가까운 거지."
"신의 몸과 힘으로 만들어낸 유사인간, 딱 그런 거네요."
"그렇지."
그냥 딱 그런 정도다.
"해줄 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쏴아아.
넵튠은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낸 뒤, 나를 휘감으며 작게 속삭였다.
"제 배로 낳은 자식이니까, 제가 엄마가 되는 거죠?"
"그렇지?"
"그러면…."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나를 바다 속으로 끌어당기며.
"엄마라고 해볼래?"
나를 향해 도발하는 눈빛으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넵튠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마망."
"......."
끄아악!!
해일이다!!!
뭐.
때때로.
신의 움직임이 인간들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긴 하더라.
* * *
키이익!!
어느 섬, 해안가에 몸집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으아악!"
"기간테스다!!"
이제는 대부분의 인간들도 일반 괴수와 기간테스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괴수라고 해도 10m에 이를 정도면 그건 평범한 괴수가 아니니까.
키이익!
괴수는 여덟 개의 다리를 주변으로 펄럭이며 해안가의 사람들을 습격했다.
빨판이 달린 다리로 사람들을 붙잡은 뒤, 그걸 자신의 몸통 아래로 가져갔다.
으적, 으적, 으적.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듣고 싶지 않은, 마치 인간이 고기를 먹을 때 뼈만 남기고 살만 쪽 빨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하필이면 저 10m에 이르는 괴물에서 들리는 것이 충격과 공포일 뿐.
"사, 살려줘!!"
비명이 울려퍼진다.
모두가 저 끔찍한 괴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제, 제발 누가!!"
병사들이 도착하려면 한참 시간이 남았고, 거인 사냥꾼들은 이 섬에 없다.
설령 국왕이 보낸 병사들이 도착한다고 해도, 그냥 평범한 괴수도 아니고 기간테스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전혀.
인간들은 군대를 믿지 않았다.
어디 다른 왕국에는 인간의 힘으로 온갖 괴수들을 쓰러뜨린 '영웅'이 있다고 하던데, 이 키오스 섬에는 그런 영웅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섬, 키오스 섬의 운명은 이제 하나 뿐.
키오스, 기간테스에 의해 멸망하다.
단지, 그 뿐이다.
"병사들은?! 왜 안 오는 건데?!"
"왕궁을 지키고 있다더라! 이 개자식들!"
"뭐?! 진짜야?"
"몰라!"
쿵, 쿵, 쿵!
기간테스가 땅을 모래사장을 다리로 쿵쾅거리며 섬 전체를 뒤흔든다.
자신의 안에 집어넣었던 다리를 밖으로 빼내더니, 곧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내던진다.
털썩.
"으, 으아악!!"
차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사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던 것은 단지 몇 분 사이에 하얀 백골이 되었을 뿐이며, 남아있는 발목 아래 부분은 무언가 독인지 산인지 모를 것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잡히면.
전신이 녹아내린다.
뼈만 남기고 전부 오도독 씹어먹히고, 남은 것도 깔끔하게 녹아내려서 뼈만 남는다.
죽는다.
그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에는, 기간테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빠르다.
만약.
정말로 만약.
이 위기를 끝내줄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존재는, 진정으로 '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저벅, 저벅.
도망치는 사람들의 너머.
덩치가 정말 곰 같은,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평범한 인간들의 두 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근육질의 남자는 누가봐도 힘이 장사처럼 보였으나.
"도망쳐!!"
남자보다 더 굵고 거대한 다리를 휘두르는 기간테스에 비하면 그저 초라하고 작을 뿐이었다.
아무리 신들도 기간테스에 비해 크기가 작다고는 하지만, 신들은 마음만 먹으면 기간테스처럼 커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도망치게! 젊은이! 이 나라는 이제 가망이 없어!!"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기간테스의 먹잇감이 될 뿐.
"흥."
거구의 남자는 그저 웃기만 하며,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를 꺼냈다.
"활…?"
그것은 활이었다.
남자의 키보다 더 큰 대궁이었다.
"원래는 화살을 쏴죽이려고 했는데."
사락.
남자는 활을 이은 현을 손가락으로 튕겼고, 활의 현은 순식간에 끊어졌다.
"패죽여야겠군."
그러자 탄성과 함께, 활대는 끝 부분이 살짝 휜 봉이 되었다.
"그, 그만두게! 위험하네!"
"거,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시오."
남자는.
"이 오리온 아제우스의 힘을."
두근, 두근.
남자의 가슴 근육이 꿈틀거리며, 남자는 앞으로 활대를 들고 달렸다.
"우오오오ㅡㅡㅡㅡ!"
기합과 함께.
"뚝배기ㅡㅡㅡ!"
콰ㅡㅡㅡㅡㅡ앙!!
활대로, 기간테스의 대가리를 찍어버렸다.
* * *
"환영하네! 나, 키오스 왕국의 왕, 오이노피온이 그대를 환영하네! 그래, 이름이 무엇이라고?"
"오리온이라고 하오."
"하, 하오?"
거만. 오리온은 그래도 된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아, 아니네! 없지! 그렇고 말고."
왜냐? 아제우스니까.
그리스 최고 주신이 깃들어있는 반신이며,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녀도 될 당당함이 내게는 존재한다.
"그, 혹시…."
"혹시, 무엇이오?"
"티, 티탄 신…이신가?"
"글쎄."
"글쎄에…?"
키오스 국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마치 내가 '티탄신도 아닌 주제에 나한테 반말을?'이라는 눈빛이었다.
원래 인간이 이렇다.
권위와 권력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깔보는 자들.
그런데 어쩌랴.
이번 아제우스는 다른 아제우스들과 달리,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을.
"아버지는 제우스 신이고, 어머니는 포세이돈 신이시오. 하늘과 바다가 만난 지평선에서 내가 태어났지."
"아, 아앗…!!"
항렬로 따지면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페르세포네 급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올림포스 12주신, 그것도 하늘과 바다의 신이 낳은 자식이니까.
"그, 그렇군! 어, 크흠!"
존대를 하지 않는 건 국왕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도 있고, 내가 딱히 문제를 삼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겠지.
"어서오시오! 키오스 왕국은 그대를 환영하오!"
"음."
나는 국왕의 인사를 가볍게 목례를 하는 걸로 무시했다.
그도 그럴게.
쿵!
"히이익!"
"이런.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군. 긴장하지 마시오. 사후경직으로 잠시 꿈틀거릴 뿐이니."
나는 내가 쓰러뜨린 기간테스, 거대문어의 잔해를 키오스 국왕에게 던졌다.
국왕은 기겁을 하며 물러났고, 나는 마저 문어의 껍질을 자르고 살점을 잘라냈다.
'라면 마렵다.'
해물라면으로, 얼큰하게 끓인 라면에 문어를 다리 일부는 잘라넣고 몸통은 내장만 잘라서 팔팔 끓이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 숙회로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튀김옷도 입혀 튀겨먹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런 나라를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KFOOD가 도입되는 나라를.
"드셔보시겠소?"
"그, 그걸?!"
"맛있는데."
나는 문어의 살점을 잘라 꼬챙이에 끼운 뒤, 횃불 위에 올렸다.
로티세리로 돌아가는 살점은 노릇노릇 익어갔고, 국왕은 군침을 꿀꺽 삼키며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호, 혹시 어떤 신인가…?"
"특별히 신이라고 자리를 받지는 않았소. 그저 나는 거인을 사냥할 뿐인 사냥꾼이니."
"그, 그런가…? 결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소."
"그, 그러면…."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얼굴에 면사포를 두른 여인이 나타났다.
"우리 키오스를 구한 영웅이여! 내 딸을 소개하겠네!"
"딸?"
"그렇다! 나의 사랑하는 딸, 키오스의 꽃, 메로페!"
사락.
면사포가 벗겨졌다.
나는 그녀를 보며 굽고 있던 문어 꼬챙이를 들었다.
"와."
제우스로 환생한 이후.
나는 처음으로 큰 충격을 느꼈다.
'신기한 얼굴이야.'
키오스 왕국의 메로페.
그녀는.
"크라켄이 여기있네."
참, 복합적으로 못 생긴 여자였다.
처음으로.
나는 그리스에서 추녀를 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