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84화 (184/235)

〈 184화 〉 거인사냥꾼 오리온 (2)

* * *

오리온 아제우스.

거인학살자.

거인사냥꾼.

커다란 활을 가지고, 곰과도 같은 체구를 가지고, 기간테스를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

넵튠의 정기를 통해 만들어낸 오리온 아제우스는 진실로 신의 아들이다.

실제로 포세이돈이 임신하여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제우스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나온 아제우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오리온 아제우스가 신의 아들이라고 한들, 티탄신인가?

아니다.

오리온 아제우스는 인간이다.

아제우스이기 때문에 인간이다.

만약 티탄신이 되려면, 헤라처럼 배가 불러서 직접 아이를 출산해야 했을 것이다.

명목상 아들이지, 그냥 힘의 정수가 융합된 생명체.

그렇기에 일반 티탄신들에게서 느껴지는 신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대외적으로는 두 티탄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존재이나.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기 때문에, 그리고 티탄신의 신격이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인간'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키오스 국왕은 나를 대함에 있어 하대하는 걸 딱히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이는 국왕들 본인들도 '신의 자손'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키오스의 국왕에게는 티탄신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이해는 한다.

키오스 국왕의 대응은 그냥 그리스 국왕의 평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평균보다 낮은, 아니 전체 평균을 깎아내리는 최악의 대처가 하나 있다.

"어떻게 크라켄보다 못생긴 여자가 있을 수 있지."

딸.

메로페라는 이름의 여인은 그 모습이 중간에 뭔가 한 단어가 빠진게 아닐까 싶은 그런 존재였다.

그 딸을 내 아내로 주려는 건 선을 넘었다.

내가 만약 티탄신으로서 이곳에 왔다면, 키오스 왕국은 멸망했을 것이다.

티탄신과 기간테스의 합작 하에, 섬 전체가 바다에 잠겼을 것이다.

'참 대단한 얼굴이었어.'

그리스에 있는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서 망정이지.

미래.

현대 지구에 태어났다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성공을 한다고 해도 '개성있는 얼굴의 여배우'가 가장 성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래도 한국은 의느님의 성형수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여기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걸.'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저기 강남에 가서 성형수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성형수술 전문 의사들도 '야, 이건 역대급 도전이다'라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얼굴이었다.

'대단한 여자야.'

티탄신들이 전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전능하지 못한 것을 가르쳐주다니.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못생김은 티탄신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메로페 Mk.2로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면, 메로페는 평생 그 얼굴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거고.

그 옆에 나를 두고 함께 살려는 건, 싫다.

"좀 너무하네."

은혜를 이렇게 원수로 갚아도 되는 일인가?

내가 없었으면, 내가 크라켄을 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왕국은 멸망했다.

기간테스들이 원래 죄다 강력한 괴물들이고, 인간들의 힘으로는 대처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특히 이곳과 같이 왕국의 수호신이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난감하다.

'수호신이 있었으면 내가 바로 내려와서 소집했을 거야.'

대가리 박으라고.

어떻게 왕국의 공주 얼굴이 이 모양일 수 있냐고.

혹시 네가 어렸을 때 공주 얼굴을 가지고 막 비틀어놓은 거 아니냐고.

왜 나한테 '우리 딸이랑 결혼하지 않을래?'와 같은 상황을 겪게 하냐고.

수호신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었으면 바로 제우스 강림으로 수호신을 추궁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올림포스 12신, 내 아내들이나 내 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나를 더 이 왕국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건가?'

아테네 도시는 아테나가 수호하고 있듯, 각 왕국들은 저마다 수호신을 영접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이 제발 와주기를 바라며.

제우스 신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을 모시며, 신이 강림하여 이 나라의 수호신을 자처하기를 바라고 있다.

키오스 섬은 여태까지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크라켄에게 습격을 당했다.

기간테스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수호신이 없는 곳부터 노리니까.

그러다보니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아들인 나를 이곳에 안착시키려고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호신으로 모시게 하려는 얄팍한 속셈일 것이다.

인간의 관점으로보면 '그래도 아들이 왕이 되었고 손자손녀가 대대로 왕가를 이어나갈 건데'라고 볼 테니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나도 함부로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기간테스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간테스가 이렇게 날뛰니까 사람들이 신을 찾는 거지, 기간테스가 없었으면 그냥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지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게 인간들을 중간에 끼워놓고 펼치는 공생관계인가?'

인간들은 신들을 믿고 따른다.

그냥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에 믿고 따른다.

좆간이니까.

당장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을 믿고 따르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신이 무관심하거나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신은 인간들에게서 잊혀지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그런 것처럼.'

예언자 프로메테우스.

일단은 대외적으로 올림포스의 불꽃을 훔쳐 인간들에게 불을 나눠준 존재.

그래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을 당하고 있는 존재.

­내가 인간들을 위해서 불을 훔쳐다줬는데, 지금은 아무도 나를 찬양하지 않아!

­찬양하기는 커녕 이름도 모르던데.

­으아아악!

당연한 일이다.

역사가 너무 오래 되기도 했고, 불을 훔쳐줬을 때에 살고 있던 인간들은 전부 죽었다.

지금의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만큼 인간들은 '현재'에 집중하고 살아가지, 과거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행위지만, 그로부터 이미 셀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른만큼 인간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좆간이니까.

아직.

역사로부터 무언가 배울 단계의 문명과 문화, 그리고 의식수준을 가질 정도는 아니다.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는 자들.

능력의 한계는 일단 그렇다 치고, 신에게 신탁을 받아 그것을 운명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아직도 태반이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키오스 섬을 덮친 기간테스의 공포로부터 왕국을 구한 오리온의 등장은.

­신의 사자 오리온!

운명이라고.

신의 계시라고.

하지만.

"크라켄은 크라켄이지."

* * *

그 시각, 키오스 왕성.

"그 건방진 새끼!"

오이노피온은 들고 있던 술잔을 집어던지며 씩씩거렸다.

"감히 우리 딸을 까?!"

누구보다도 예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다.

비록 다른 이들에 비해 특출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주라는 것 자체가 이미 특출난 것 아닌가!

"자기가 무슨 진짜로 신인 줄 알아!"

오이노피온 또한 신의 후계다.

비록 몇 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오이노피온 또한 몸에 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

따지고 따지고 또 따지고 보면, 제우스 신의 피가.

"젠장, 젠장...."

저 멀리.

구슬픈 울음 소리가 들린다.

실연의 고통에 방문을 잠그고,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울고 있다.

오리온에게 대차게 까인 바람에, 딸은 지금 통곡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첫 눈에 반했다.

남자다움에 반했다.

­아빠! 저, 저 남자가 아니면 앞으로 평생 혼자 살 거예요.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딸의 간곡한 부탁에 조심스럽게 딸과의 만남을 제안했다.

­크라켄.

­으, 으흑, 흐아앙!!

그리고 까였다.

처음에는 크라켄이 뭔지 몰랐지만, 자신이 사냥한 괴수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을 듣고 메로페는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애초에.

남자들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시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심으로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여자를 바라볼 때의 시선은, 남자라면 누구나 아는 법이다.

"젠장! 오리온 놈에게 정의구현을...!"

"고민하고 있군요."

갑자기.

땅에서 무언가 기둥같은 게 솟아났다.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대리석으로 된 기둥 속에서 금발의 여인이 나타났다.

"당신은…?"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여인들을 모살펴주는 애정의 신이에요. 이름은…대충 '하르머니아'라고 하죠."

"애정의 신…하르머니아?"

"예. 하르머니아. 근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금발의 여인은 야릇한 미소로 병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이걸 오리온이라는 자에게 먹이세요. 그러면 오리온이라는 자가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고 난 뒤, 처음 눈을 떴을 때 본 여자에게 사랑에 빠질 거예요."

"그 때 제 딸이 앞에 있으면…!"

"평생, 당신의 딸만 생각하면서 사랑하게 되겠죠."

오이노피온은 하르머니아로부터 병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이것은…이 약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전설 속 황금사과를 빻아서 만들었다고 해서 금사빠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이렇게 부른답니다."

하르머니아는 한쪽 눈을 찡긋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임프린팅."

"임프린팅…!"

"생에 처음으로 여인을 보며 짓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만들어낸 물건이랍니다."

히죽.

하르머니아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반드시 성공하세요. 후후후."

"어, 씨발. 뭐지. 어디서 닭장 냄새 나는데."

착각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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