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85화 (185/235)

〈 185화 〉 거인사냥꾼 오리온 (3)

* * *

크라켄을 물리치고 크라켄을 보상으로 얻게 되었지만.

나는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크라켄을 그냥 받을 생각도 없고, 메크라켄로페를 이용해 나를 이곳에 가두려는 키오스 국왕의 개수작도 당해줄 수 없다.

그리고.

'어디서 닭장 냄새도 나고.'

착각이 아니다.

분명 땅에서 나는 흙냄새와 비료냄새가 섞인 듯한 꾸릿꾸릿한 무언가가 지금 키오스 섬에 있다.

제우스가 아닌, 아제우스를 향한 악의가 지금 나를 향하고 있다.

당연히 이대로 있으면 좆된다.

'그냥 떠나야 하나?'

소리소문없이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냥 떠난다고 좆될 건 없어.'

그렇다면 결심이 굳은 지금 바로 이 섬을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

'좆되기 전에 떠나는 게 정답이지, 좆되고 나서 빨리 도망칠 걸 후회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경첩 소리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밖으로 짐을 챙기고 조심스럽게­

"아니, 이 새벽에 어딜 나가려고 하는 것이오?"

"...국왕폐하."

새벽부터 걸렸다.

나가자마자, 키오스 국왕이 나를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아내들이랑 섹스하려고 새벽에 헤라를 재우고 나가다가 걸렸을 때도 이보다 소름이 돋지 않았다.

"하하, 새벽 사냥이라도 나가는 것이오?"

뭔가.

지금 뭔가 있다.

"뒷짐을 지고 계신 이유는 무엇이오?"

"그거야 내가 국왕이기 때문이지."

"국왕은 뒷짐을 지는 것이 기본인가?"

"대부분은."

뭔가 뒤에 숨기고 있다.

암살을 하려고 하는 거라면 어불성설인게, 자기도 내가 크라켄을 사냥하는 걸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를 밤에 몰래 죽이겠다고?

하긴.

국사무쌍의 무인도 술에 취해 자다가 눈 뜬 채로 살해당했는데, 그게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하여튼 인간들의 상상력은 대단하다니까.'

정말로 나를, 일단은 신의 아들인 존재를, 오리온 아제우스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칼을 드는 건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두는 게 좋을 것이오.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니."

"걸렸으니 어쩔 수 없지."

오이노피온은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유리병...?"

"앗, 저기 알몸의 가이아 여신이!"

"...뭣?!"

뒤돌아봤다.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신들이라면 전혀 상관없었지만, 알몸이든 뭐든 가이아 여신이 있다는 건 일단 반드시 대처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설령 이게 내 시선을 잠시 흩어지게 하려는, 초딩들 만화에서도 통하지 않을 오이노피온의 술수라고 하더라도­

'헐.'

이왜진.

저 멀리.

절벽의 위에서, 알몸에 얇은 베일 하나를 두르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은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아기로 처음 봤던 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딸을 모욕한 죄! 히드라의 독이 묻은 단검으로 너를 찔러주마!"

"뭣ㅡ"

그건.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히드라의 독은 안 된다.

그게 왜 여기에 있는가는, 저 '가이아'라는 존재로 입증된다.

그렇다면­

"어디서 내 심장을­"

찰팍.

나는 두 팔을 X자로 교차하며 정면을 막았다.

하지만 그게 무색하게, 오이노피온은 내 얼굴에 무언가를 뿌렸다.

"크, 으으윽...?!"

로션같은 것 같기도 하고.

향수같은 것 같기도 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모르게 기묘한 무언가가 내 눈을 적셨다.

"크으윽...?!"

"흐하하! 히드라의 독이라고 하니 기겁을 하다니! 그런 건 여기에 없다! 이제 네놈을­"

"수고했다."

콰ㅡ앙!

아래에서 솟아난 돌기둥이 오이노피온을 후려쳤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와중에, 저 멀리 있던 금발의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쓰고 있구나, 제우스."

"가, 가이아...!"

"포세이돈을 통해 만들어낸 분신이라니. 그래도 자지는 제우스 그 자체이니, 써먹어도 나쁘지 않겠지. 후후."

"으으...!"

안 된다.

지금 시간은 새벽.

본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지만, 그보다 가이아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

"그게 뭔지 아니? 네가 눈을 뜨는 순간, 가장 처음 보는 이에게 사랑에 빠지는 거란다. 네 분신이 당했어도, 네 본체에게도 영향이 가겠지."

"이, 이...!"

"불쌍한 키오스의 왕, 오이노피온. 딸을 위한, 그리고 왕국의 안녕을 위해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지."

듣기만 해도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순진한 인간을 조종했구나...! 가이아!"

"그래. 조종했다. 문제라도 있니? 인간은 티탄 신에게 부려지는 것이 영광인 것을."

여전히.

티탄신의 평균 인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오이노피온의 운명이었던 거지. 그리고 네가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체, 오리온 또한 이것이 운명이다."

그렇기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여전히 가이아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하...! 가이아!"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설령 오리온이 납치당해서 강간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이아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과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눈을 뜨면 가장 처음 보는 자를 사랑하게 된다고...? 그렇다면!"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푸ㅡ욱.

"무, 무슨 짓을...?!"

"끄아아악...!!"

아프다.

존나 아프다.

아제우스라서 통각의 감도를 낮춰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낮춘 감도로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고통이 전신을 가득 채운다.

"누, 눈을 찌르다니...!"

"나는 눈이 멀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을 스스로 찔렀다.

플레이야스도 아니고 아제우스라서 한 번 잃은 신체기관이 복구되지도 않지만, 적어도 가이아에게 첫눈에 반하거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내가 너한테 반한다고?!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네가 바라는 그런 일,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이 지독한 녀석...!"

"만약 네가 나한테 진심으로 박히고 싶다면, 이렇게 외쳐라!"

나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할 말은 다 했나?"

가이아는 나를 비웃었다.

나 또한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제우스가 날아와서 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이미 제우스의 앞에 다른 기간테스를 보냈지."

"큭...."

"1초라도 늦으면 내 승리다. 내가 이렇게 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또한 내가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야."

실제로.

본체는 지금 티폰을 연상케하는 또다른 기간테스에게 길이 막혔다.

떨쳐내고 여기로 날아올 수도 없는 것이, 그 괴수는 무척이나 강했다.

그 틈.

기간테스에게 본체가 사로잡힌 틈.

사실상 오리온은 끝이다.

'젠장.'

오리온 아제우스.

일부러 포세이돈에게 부탁할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들어냈는데, 결국 뭔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가이아에게 따먹히게 되었다.

이럴 바에는.

스스로 자결을­

"...응?"

가이아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찝찝한 기운은­"

새애액!

무언가가 날아와 가이아와 나 사이를 갈랐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속도로 지나간 무언가는 '빛'이었다.

여명.

아침을 알리는 빛.

어둠이 거두어지고, 새벽의 여명이 반짝이는 시간.

사락.

무언가가 나를 붙잡았다.

그것은 내 멱살을 움켜쥘 정도로 다급했고, 나는 순식간에 하늘로 들렸다.

킁킁.

냄새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이 특유의 향기는.

"...에오스?"

"일단 도망을!!"

뭉클.

나는 에오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에오스가 이끄는 새벽의 전차는 하늘을 달렸고,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콰과과광!!!

뒤에서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걸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퍽 유.

보이지는 않아도, 저 여자는 나를 볼 수 있으니.

나는 가이아를 향해 중지를 날리며, 에오스에게 안겨 새벽과 함께 도망쳤다.

* * *

"아아, 안타깝도다."

가이아는 입맛을 다시며 한탄했다.

"설마 하필 지나가던 여신이 있을 줄이야."

새벽의 여신, 에오스.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나온 자식 중 히페리온과 테이아가 낳은 딸로서, 헬리오스와 셀레네와 함께 올림포스에 굴복한 신.

위상으로 따지면, 제우스와 사촌 뻘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땅을 뒤엎어 만들어낸 결계를 눈치채고 방해를 한 것일 터.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플레이야스와는 또다른 것.

제우스는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냈고, 제우스는 그걸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살고자 했다.

"후후, 후후후."

운명은 개척하는 것.

제우스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우스와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운명이고, 제우스는 여전히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떨까.

그리스 신들에게 정해진 운명은 '잊혀지는 것'.

"거대한 전쟁이 오리라."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추악한 전쟁이 펼쳐진다.

고작 인간들의 다툼 때문에 신들의 사이가 나빠지고, 신들이 직접 싸우지 못하니 인간들을 이용해 대리전을 펼친다.

그리고 거대한 말 한 마리가 성을 범하고 전쟁이 끝나는 순간.

신들의 시대는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오리라.

그것은 운명의 여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었다.

아주 오래 전.

아직 아테나가 태어나기도 전, 제우스의 2세들이 태어나기 전에 확인한 일이지만.

"정말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한다면."

가이아는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어쩌면...."

찔컥.

"아, 아아...! 제우스...!!"

어딘가.

땅이 갈라지고, 물길이 높이 치솟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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