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86화 (186/235)

〈 186화 〉 거인사냥꾼 오리온 (4)

* * *

키오스 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괜찮나요?"

어딘지도 모를 섬에 나는 간신히 도착했고, 에오스의 도움을 받아 일단 침대에 누웠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이아 여신께서 습격을 하셨으니...."

"에오스. 네게도 내가 누군지 느껴지나?"

"...제우스님."

에오스는 나를 알고 있다.

"포세이돈님의 신격이 조금 섞여있어서 아들인가 싶었지만,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죠. 제우스님께서 만들어낸 또다른 플레이야스인가요?"

"비슷하다. 이름은 아제우스라고 하지. 잠시...."

나는 오리온으로 흐르는 의식을 차단했다.

"고맙다. 에오스."

"제우스님!"

나, '제우스'는 에오스의 섬에 안착했다.

섬 주변에 아스트라페를 이용해 광역으로 결계를 둘러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뒤, 에오스를 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다. 네가 돕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이 몸을 가이아에게 넘겨줄 뻔 했어."

오리온 아제우스는 쥐죽은 듯이 자고 있다.

내 의식이 끊긴 지금, 오리온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상태.

이런 몸이라고 한들 가이아에게 넘어가면 무슨 일에 쓰일 지 모른다.

아제우스라고는 해도 '아제우스'인 만큼, 가이아가 이걸로 기간테스를 만들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애초에 기간테스 운운하기 이전에, 가이아가 나를 상대로 뭔가를 꾸미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왜 눈은 이렇게 된 거죠?"

"나 스스로 찔렀다. 가이아가 함정을 파서 내 눈에 이상한 약을 뿌렸어."

"이상한 약이요?"

"그래. 금방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묘약이라나 뭐라나."

큐피트의 화살이 생각나는 약이다.

내가 아무리 이쪽 신화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맞으면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큐피트의 화살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게 존재한다는 걸 아는 만큼, 그걸 눈에 뿌려진 걸 어떻게 조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그대로 눈을 떴다면.

만약 가이아가 눈앞에 있었다면.

최악이다.

"에오스. 뭔가 바라는 거라도 있나? 나를 구해준 대가로, 뭐라도 좀 해주지."

"으음...."

에오스는 오리온과 나의 눈치를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호, 혹시 두 개를 동시에...아얏!"

"어딜."

나는 에오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나랑 오리온을 이용해서 동시에 앞뒤로 박겠다고? 그건 안 되지."

FMF는 되더라도 MFM은 안 된다.

그건 내 수비범위 바깥의 일이니까.

만약 그걸 하기라도 했다가 소문이라도 난다면, 다른 그리스 티탄들이 나를 꼬셔서 한 번 해보자고 온갖 개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다른 걸 말해라."

설령 분신 아제우스라고 해도, MFM은 안 된다.

"으음.... 할 건 솔직히 다 해봤는데."

"그럼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도 되고."

"으음.... 아! 이건 어때요?"

속닥속닥.

에오스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고, 나는 에오스의 말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너...진심이냐?"

"네. 진심이죠."

"그러다가 너한테 위해를 끼치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제가 쉽게 당할 신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안 걸리잖아요."

안 걸린다.

이건 무슨 의미냐 하면.

"바람 피우는 거 안 들키려면, 그게 제일 좋지 않겠어요?"

"...하아."

에오스는 아스트라이오스의 아내다.

다른 티탄 남신의 반려이며, 여러 자식들을 낳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나의 아내나 여인이 아닌, 이미 다른 남신과 결혼을 한 여신들은 나와 공식적으로는 섹스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간혹 플레이야스를 통해 섹스를 하거나, 혹은 여신들이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어디서든 제우스나 언제든지 제우스와 같은 딜도를 사용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설마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은.

"괜찮아요. 남편이랑 안 한지 엄ㅡㅡㅡ청 오래됐거든요. 사실 오리온을 구한 것도, 진짜 큰 맘 먹고 괜찮은 남자 찾아서 한 번 해보려고 구한 거였어요."

"제우스인지 알고 구한 게 아닌가?"

"제우스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태어난 숨겨진 아들인 줄 알았죠. 옳다구나 싶어서 잡았더니 사실은 제우스님이어서 아쉬운 거지."

"나라서 아쉽다고?"

"네. 제우스님이랑은 이렇게 비밀로 해야 하지만, 오리온이랑 하면 그냥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일단은 '인간'이니까."

"......."

신이 인간과 하는 건 이제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는 걸까.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을 상대로 바람을 핀다니.

"내가 아니었더라도, 오리온이 인간이었더라도 아스트라이오스가 알면 난감해지는 거 아닌가?"

"음.... 글쎄요? 인간 따위랑 섹스를 한다고 해서 아스트라이오스가 딱히 뭐라고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냥 인간이랑 섹스 한 번 한 건데요, 뭘."

"......."

그리스 티탄 신들의 관념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나야 에오스랑 섹스를 하니까 좋지만.

"역시 제우스님은 그건가요? 그...다른 남자 자지가 드나든 보지는 싫다는...?"

"그랬으면 내가 나의 어머니 레아를 건드리지도 않았지."

이미 나는 내 신화의 시작을 남의 여자를 빼앗는 걸로 시작했다.

그것도 심지어 아버지 크로노스의 아내였던 레아.

지금까지는 남의 아내를 빼앗은 적이 없지만, 에오스의 제안을 따르면 그건 또 제법 괜찮다.

"제우스의 자지로 섹스를 하는 건 불륜이지만, 인간 오리온의 자지로 섹스를 하는 건 불륜이 아니라고요."

죽어라, 유피테르.

현대인의 감성으로 에오스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자지가 느끼는 대로 판단하면 된다.

이럴 때를 위해서 만들어진 아제우스다.

이건 불륜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부하 티탄 신의 아내를 빼앗는 것도 아니다.

오리온은 아제우스고, 제우스가 아니니까!

"그런데 에오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뭐죠?"

"오리온은 지금 눈이 보이지 않아."

"괜찮아요."

에오스는 내 자지를 손으로 쓸며 밖을 가리켰다.

"어차피 자지가 보지에만 박히면 바로 자세 잡아주실 거 아닌가요?"

"......."

* * *

"흐아암."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오늘도 느긋하게 바람을 타고 바다를 순항하는 중이었다.

왜 '었'다라고 하냐면, 그는 지금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을 봐서 타고 달리던 구름을 멈췄기 때문.

"어우야...."

여신이.

인간에게 박히고 있다.

눈에 안대를 두른 채, 곰과 같은 체격을 가진 인간과 바다에서 서로를 애무하며 섹스를 하고 있다.

마치 굶주린 암사마귀가 수컷을 잡아먹듯, 여신은 곰같은 남자를 상대로 위에 올라타 게걸스럽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문제는 그 여신이 자신의 어머니, 에오스라는 것.

제피로스는 조금 충격에 빠졌다.

어머니의 정사 장면을 본 것도 본 거지만, 그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어디가서 말 못하겠군."

여신이 인간과 섹스를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냥 인간을 생체 딜도 삼아 섹스를 하는 게 무슨 크나큰 흠결은 아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 여신이 인간과 섹스를 한다?

이는 남편에게 크나큰 하자가 있다고 시위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남편인 신이 잠자리가 영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혹은 인간의 자지와 밤기술보다 테크닉이 영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아이고, 아버지. 이걸 어찌하면 좋소. 어머니가 아버지 좆이 시원찮다고 지금 해변에서 시위를 하고 계신데."

이야기를 전할까?

아니다. 전하면 안 된다.

저런 건 그냥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앙, 앙, 하앙...! 존나 커...! 남편이 들어오지 않던 곳까지 들어와버렷...!!"

그냥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식으로 신음을 흘리며 섹스를 하고 있다.

티탄신인 남편과 인간의 자지를 비교하며, 쾌락에 젖은 얼굴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하읏...! 미안해요, 아스트라이오스...! 당신의 작은 자지로는 이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렷...!"

차라리 제우스 신과 불륜을 저지르는 거라면 아스트라이오스도 이해를 할 것이다.

아내가 빼앗긴 건 빼앗긴 거지만, 아내를 빼앗은 대상이 주신인 제우스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자연재해를 겪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인간은?

인간과 섹스를 하는 건, 그냥 시위 아닌가?

아스트라이오스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만들려는 에오스의 교묘한 술책이다.

인간의 자지에 패배한 티탄신.

이건 신성 모독일까, 아니면 저 인간이 너무나도 대단한 걸까.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면 신성모독이겠지만, 인간이 신의 피를 잇고 있거나 하면 그건 얘기가 다르지."

인간들 중에서도 그런 존재가 있다.

영웅 카드모스를 비롯하여, 신의 피가 흐르고 있거나 조상 중에 신이 있는, 혹은 신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을 두고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런 영웅인 인간에게 여신이 박히는 거라면, 아주 난 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긴 대단하네."

퍽, 퍽퍽.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곰과도 같은 몸으로 여신의 골반을 잡고 뒤치기를 하는 저 거친 섹스를 보라.

자신 조차도 님프를 상대로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렇게 거칠게 쑤셔박히는 여신을 본 다른 여신들은 어떤 기분일까?

특히 제우스 신과 섹스를 하는 여신들은 당장이라도 제우스 신에게 저렇게 박히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이다.

"...응?"

순간.

제피로스는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에 몸서리를 쳤다.

"누, 누구시오?"

"......."

등 뒤.

수면 위에 떠있는 돌덩어리 위, 청발의 여인이 표정이 굳은 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티탄신 같은데...."

"......흥."

청발의 여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두고봐."

사락.

여신은 사라졌다.

"......혹시 연적관계인 건가?"

제피로스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 미안하게 됐소. 상대는 두 명의 여신과 섹스를 하는 인간 영웅이오. ...자지가 존나 큰."

제피로스는 그저 아버지 티탄에게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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