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200화 (200/235)

〈 200화 〉 한다면 하는 남자, 헤라클레스 (1)

* * *

"폐하. 공주님들 모두 알케이데스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테스피오스 왕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래, 이거지!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제압한 용사의 씨를 받아와야지! 암, 그렇고 말고!"

왕은 딸이 50명이다.

여러 명의 부인으로부터 딸을 보았다.

물론 아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엄청 많이 아이를 낳았을 뿐.

"재상. 우리 테스피아이에 있어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인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우리 왕국은 너무나도 작소. 영토도 물론이거니와, 사람도 적지."

그래서 미친듯이 낳았다.

결코 섹스가 좋아서, 여러 여자랑 섹스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결코 아니다.

테스피오스 왕은 이 나라가 멸망하지 않게 솔선수범하여 아이를 낳았고, 각 공주들은 평범한 여인네처럼 자라며 왕국 곳곳에 퍼져서 일을 하기도 했다.

물론 빈민들에 비하면 나름 환경적으로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지만, 다른 왕국에 비하면 '공주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알케이데스라는 영웅의 씨를 얻는다면, 그 씨가 우리 왕가에 섞인다면 분명 우리 왕국도 강대해지겠지! 재상, 축배를 듭시다!"

아아앙!!

멀리서 여인의 교성이 터져나온다.

그냥 교성도 아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죽어나갈 것 같은 그런 교성이었다.

"크허허, 역시 영웅이야.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잡은 건, 내 앞에서 그런 짓을 했던 건 결코 허언이 아니었어."

"정말로 괜찮은 거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 왕국을 일으켜줄, 우리 왕국의 위기를 끝내준 영웅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해줘서야 어딜 왕국이라고 칭하겠는가?"

왕국의 위기로부터 구원해준 영웅에게 딸을 내어주는 건 '상식'이다.

"올림포스 산에 계시는 제우스 신께서도 그러하셨네. 인간 영웅, 테베의 시조왕 카드모스에게도 그분께서는 자신과 헤라 여신으로부터 만들어낸 반여신을 선물로 주셨어."

대부분, 모든 왕국은 올림포스를 흉내내는 것으로 왕가의 권위를 드러내고는 한다.

테베가 제우스 신의 피를 이어받은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제우스 신이 카드모스에게 자신의 핏줄인 여신을 반려로 준 것처럼 다른 왕국들 또한 제우스 신을 따라한다.

그것은 결코 제우스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제우스 신에 대한 존경의 의미인 셈.

"우수한 남자의 씨를 받아 그 아이들이 왕국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기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왕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보네."

"폐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왕으로서."

테스피오스 왕은 쓰게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애지중지 기른 딸들이 한 남자에게 저렇게 처녀를 바치고 있는데, 어느 아버지가 씁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이전에, 이왕이면 지상 최강의 사나이에게 처녀를 바치는 것도 여인으로서 나름 의미있는 바라고 생각하네."

"지상 최강의 사나이...."

"그래. 나는 말일세."

테스피오스 왕의 목소리는 진지해졌다.

"차라리 50명 전부 임신을 했으면 좋겠군. 모두가 임신해서 같은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면, 저 알케이데스가 당연히 우리 왕국을 위해 일해주지 않겠나?"

"그럼 저 자에게 왕국을...?"

"일단은 그렇겠지. 하지만 그의 자식은 곧 나의 손자. 만약 나의 장남이 알케이데스를 상대로 싸워 이긴다면 왕위를 가질 수 있을 걸세.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테스피오스 왕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을 내려놓았다.

"이것의 주인은 알케이데스가 되겠지. 애초에."

아아아앙!!

조, 좋아요...! 아, 아니 저 죽어욧...!

"...하룻밤에 50명 공주의, 그것도 처녀를 전부 범하고 살아남는다면."

그리고.

새벽이 되었다.

* * *

"후."

밤의 장막이 드리운 어둠이 거두어지고, 천천히 새벽의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때.

쮸으읍.

나는 아직도 단단하게 발기한 자지를 빨고 있는 두 명의 여자, 니키페와 리시디페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밖을 바라봤다.

"둘에게, 미리 사과하지."

"하우음...?"

"나는 세계로 떠냐아 하오."

"......!"

그렇게 내 자지를 빨기 싫어하다가 내 자지를 빨게 된 두 여자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세계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많소. 키타이론 산의 사자 뿐만 아니라, 저기 히드라나 고르곤 같은 괴물들도 가득하지. 사람들이 사냥하지 못하는 괴물들. 나는 그것들을 사냥해야 하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자, 잠시만요!"

둘은 내 다리를 붙잡았으나, 할 줄 아는 게 다리를 벌리는 것 말고는 없는 여자 둘이서 나를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이렇게 가시면 안 되죠!"

"맞아요. 하룻밤 사이에 자매들의 마음에 불을 지펴놓고서는...!"

"하룻밤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시오."

나는 두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를 훑었다.

'좀 많이 저지르기는 했나.'

밤 새.

연회가 시작된 시간을 생각하면 거의 10시간 넘게 섹스하고 또 섹스했다.

한 번 자지를 박아넣을 때마다 여자들이 절정하고 가버렸고, 나는 절정에서 깨어난 여자가 있을 때마다 가서 자지를 쑤셔박고 질싸했다.

최소한 50번.

인간이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이 육신은 그리스 최고 종마신인 제우스의 직계 아들이다.

50명을 상대로 질싸해서 절정으로 보내버리고, 두 여자가 이렇게 내게 질척거리게 만드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

"나는 가야하오."

나는 둘의 허리를 잡고 일으켜세운 뒤, 둘을 침대 끄트머리에 반듯하게 눕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날, 그 때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아...."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소. 결혼을 해도 좋소. 그대들의 처음이 나라는 걸 기억하지 않아도 좋소. 원망해도 좋고. 단."

나는 니키페의 보지 속으로 한 번 더 자지를 밀어넣으며, 리시디페의 보지에 손가락을 밀어넣어 그녀의 보지를 동시에 공략했다.

"그대들이 앞으로 누구와 섹스를 하든, 나와 한 섹스가 최고로 좋았다는 건 잊지 마시오. 그대들은 나와 섹스한 걸로, 모든 인류가 누리지 못할 최고의 쾌감을 한 번 맛보았을테니."

"그럼...더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앞으로 저희는, 알케이데스님의 자지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텐데...!"

"훗."

"아, 아앙...!"

되게 질척거리는 두 여자를 향해 나는 그저 자지를 쑤셔박는 걸로 답을 대신했고, 두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꽉 붙잡았다.

"이, 이렇게 된 이상...반드시 아이를 낳을 거예요...! 오늘, 당신이 뿌린 씨가...!"

"임신하라고 질싸한 거요. 그것이 내가 떠나기 전, 그대들을 위해 내가 주는 최소한의 배려요. 이제 그대들을 지켜줄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자식들일테니."

니키페의 안에 정액을 한가득 부어넣은 뒤, 나는 그녀의 복부에 키스했다.

"내 아이들이 그대들을 지켜줄 것이오."

"저, 저도...!"

"물론."

뷰르릇.

리시디페에게도 사정하고 난 뒤.

나는 바로 외투를 챙긴 다음, 정액을 대충 닦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신발을 신고 담벼락을 넘은 뒤, 그대로 왕궁을 벗어났다.

책임?

질싸해놓고 튀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건 결코 질싸튀가 아니다.

'거래지.'

나는 50명의 처녀를 따먹고, 테스피오스 왕은 훗날 왕국을 지켜줄 전사들을 가지게 된 셈이니.

'그것도 제우스의 핏줄인데.'

내가 밝히지 않았으니 제우스의 손자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테스피아이 왕국은 정말 계를 탄 셈이다.

공주들은 내 자지를 맛보고.

왕은 원하는 대로 강력한 후사를 얻었고.

서로가 윈윈이다.

"크으. 이거지. 이게 그리스지."

유교?

K­유피테르?

좆이나 까라고 하지.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테스피오스 왕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

어차피 테스피아이에 있어봐야 나는 이용만 당할 뿐이고, 나는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괴수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많은 여자도 만난다면....

"당신."

"오. 나를 기다렸나?"

"...뒤쫓아온 거다."

소녀스러운 사냥꾼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물어볼 게 있다."

"뭐지?"

"당신, 정말로 강한 사냥꾼인가?"

"물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며 사냥꾼이지."

"그럼.... 나를 도와야겠는 걸."

소녀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테베에서 무투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곳에 나와 함께 2인 1조로 출전했으면 해."

"무투대회?"

"그래. 각지에서 걸출한 영웅들이 나온다고 하더군. 너라면 나와 함께 나가도 될 것 같다."

"네가 누군데?"

"나는."

소녀가 후드를 벗었다.

뒤로 찬란한 햇빛이 반짝였고, 소녀의 머리칼이 점차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라고 한다."

* * *

약 2년 뒤.

나는 다른 곳에 있던 괴물을 죽이러가는 길, 테스피아이 왕국으로부터 온 사람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50명의 공주를 임신시킨 남자를 아시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서로 생리주기가 다를텐데."

"아, 그러니까! 이게 뭐 그 남자에게 특별한 기운이 있었는지, 여자의 안에 싸자마자 다들 순서의 차이는 있어도 아기가 생겼다더군!"

"흐음. 재미있는 말씀이구려. 남자의 이름은 무엇이오?"

"알케이데스! 엄청난 사냥꾼! 혹시 아는가?"

"나는 헤라클레스인데. 그 자는 어떻게 되었소?"

"애만 낳아주고 떠났다고 하던데."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엄청난 씹쓰레기였다.

"50명의 왕자와 50명의 공주가 나왔다더군."

"오...."

"야. 너 뭐 할 말 없어?"

"굉장한 남자로군."

나는 헤라클레스니까.

테세우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나도 뭔가 뒤에 '우스'가 들어가는 이름이면 되게 주인공급의 존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는 제우스로부터 기인한다.

제우스가 제-'우스'인 것처럼, 여러 영웅들은 제우스와 비슷한 이름을 지어 영웅의 비범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았다.

페르세우스라거나.

아킬레우스라거나.

오이디프우스라거나.

뭐, 한 명은 조금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그럼 'ㅜ스'라는 걸로.

그런 의미에서 테세우스라는 존재는 분명 상당한 실력자에, 거기에 엄청난 미모를 가진 걸로 봐서는 TS된 영웅이 분명했다.

이건 각이다.

나보고 따먹으라는 신의 계시다.

물론 강간은 하지 않는다.

키타산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 기간테스였으니까 강간했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강간해서는 안 된다.

알고 보니 테세우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티탄 신이 있을 수도 있고, 테세우스를 강간했다가 괜히 제우스가 그 신에게 사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강간이 아닌, 남자 대 여자로서 테세우스에게 은근한 섹스 어필을 하면 된다.

"테세우스."

"응."

숲의 공터.

모닥불 하나 피워놓은 곳에서, 나는 덤불로 엮은 이부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춥지 않나? 이리로 들어오도록 해."

"뭐?"

"혼자서 자는 것보다 둘이 함께 자는 게 더 체온 보전에 도움이 될 테지. 들어와라. 나는 괜찮다."

"아, 아니!"

테세우스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흔들었다.

"나, 나는 괜찮아! 굳이 그렇게 같이 있는 건 조금...."

"조금 뭐?"

"조금 그렇다고 할까...."

"뭘 그런 걸 신경 쓰나. 이제 테베로 가면 함께 동료로 싸워야 할 텐데. 너와 나는 한 팀이다. 거리를 좁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 그렇지만...."

"괜히 나중에 감기에 걸린다거나 하는 일 없이, 얌전히 들어오도록."

내가 엄포를 놓자, 테세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쭈뼛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럼, 실례."

테세우스는 정말 조심스럽게 내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몸에서 벚꽃과도 같은 향기가 괜히 흘러나오는 듯했고, 나는 테세우스와 한 덤불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테세우스. 너는 왜 여행하는 거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인정?"

"응. 나도 어엿한 사...냥꾼이라는 걸 증명받고 싶어서."

방금.

뭔가 말을 머뭇거린 것 같았는데.

뭐,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아버지는 나를 전사로 생각해주시지 않아. 그저 아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나는 실적이 필요해. 키타이론 산의 사자든 뭐든, 저기 내 고향 땅까지 명성을 알릴 수 있는 실적이."

"과연. 전사이자 사냥꾼으로서 명성을 쌓고 싶다?"

"명성은 과정일 뿐이야. 궁극적으로는 아버지께 인정받아서 왕국을 이어받는다."

"오."

왕자였구나. 역시.

나도 왕족이지만, 무슨 무슨 우스들은 하나같이 왕족으로서 훗날 왕이 되는 자들이다.

자기만의 왕국을 건국하든, 아니면 왕위를 찬탈하든.

그 누구더라.

운명에 의해 버려지고 결국 운명의 여신이 정해주는 대로 결말이 나온 존재가 있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면서 근친상간의 대명사가 된 영웅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소문이 들려온다면, 나는 조금 씁쓸할지도.

"하나 물어보지. 테세우스. 너는 운명을 믿나?"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서. 항상 궁금했던 거거든."

철학적인 문제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이곳이 그리스 아닌가.

철학의 시작점, 소크라테스의 출신지.

...소크라테스를 찾아서 죽이게 된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운명이 정해주는 대로 살다가 가는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가카스는 말한다.

운명은 당연한 우주의 섭리이며, 신의 피조물이자 지배물인 인간은 운명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신에게 신탁을 받아 정해진 운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이라고.

"알케이데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운명 따위 믿지 않아. 정해진 길이 하나 있다면, 한 가지 가능성만으로 무수히 많은 곁가지가 뻗어나가는 게 시간의 흐름이지."

고마워요, MCU.

빙의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가 가망 없음이라서 그런지, 근육박사와 소서러 슈프림 사이의 뭔가 어려운 용어 가득한 대화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은 사소한 한 가지 사건만으로 비틀리기 마련 아니겠어. 당장 내가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도 그 시작이 될 수 있고, 아니면 과거로 돌아간다면...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살리지 않고 죽이는 것 또한 운명의 변화가 될 수도 있지."

"재미있는 관점이네."

테세우스가 웃는다.

아무래도 테세우스는 어려운 이야기, 똑똑한 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제우스 신께서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해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만큼, 우리 인간은 정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 물론, 저기 갑자기 원치 않게 운명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뭐라고?"

"있어. 혹시 '꿈의 마녀'라고 알아?"

"...꿈의 마녀?"

뭔가 그리스답지 않은 내용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데.

"꿈의 마녀는 금발의 여신 같은 존재야. 그녀는 자는 사람에게 다가와 세 가지 미래를 알려준다고 해. 사람들은 그 꿈을 잊고 있다가, 언젠가 그 미래가 닥쳤을 때 '아,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지.'

데자뷰?

아니다. 그건 그냥 현상일 뿐이지, 금발 마녀가 나타나서 뭔가 말해준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혹시 그 마녀에게서 닭장 냄새가 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닭장 냄새...? 딱히 닭과 함께 나타난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아, 아니다. 아무것도."

그렇다면 됐다.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내가 어떻게 조절해줄 방법은 없다.

'그래도 꼴 받긴 해.'

운명을 그대로 스포일러하는 게 아니라 세 가지 정도 경우의 수를 보여주는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악질이다.

운명은 정해진 하나만 대비하면 되지만, 그런 미래 예지는 그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전부 대비해야 하니까.

"알케이데스. 너는 왜 여행을 나선 거야?"

"나?"

"응. 여자 따먹으려고?"

헛.

설마 지금 견제구를 넣는 건가.

자기를 따먹을 생각이냐고 지금 묻는 건가.

"내가 무슨 여자만 보면 발정 나서 자지를 냅다 박아버리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아?"

"......하룻밤 만에 50명의 처녀를 따먹고 온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데."

"어허. 그건 테스피오스 왕과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거라고."

"암묵적 합의?"

"나는 그들에게 여자로서 느낄 극상의 쾌감을 안겨준 대신, 테스피아이는 최소한 십수 명의 영웅을 얻겠지. 내 피를 이은."

아마 지금쯤 갑자기 사라졌다고 허탈해할 수도 있겠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50명 중 아무나 제발 임신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15명 정도만 임신해도 성공했다면서 기뻐하겠지.

원래 야구도 타율이 3할 정도만 되어도 나름 준수한 성적인 편이니까.

"나는 여자를 따먹기 위해 여행하러 다니는 게 아니야. 나의 목표는 모든 괴물을 사냥하는 거다."

"사냥...?"

"내 아버지는 괴물에게 살해당했다."

"아앗...."

테세우스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진다.

아무리 그리스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가족에 관한 윤리는 비슷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난지 불과 1년.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두 분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두 분이 돌아가신 이유는 괴물이 내 고향을 덮쳤기 때문. 아버지는 전사셨고, 괴물을 죽이는 데 성공하셨다."

"엄청난...전사셨네."

"그래. 하지만 돌아가셨지. 괴물은 극독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아버지는 델포이 신전에 가기도 전에 독에 쓰러지셨다."

이 정도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충분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논리로 나는 왕위 계승자의 자리를 내던지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냥꾼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가 가족을 잃지 않도록,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도록, 사람들을 덮치는 괴물들을 쓰러뜨리고자 해."

"그래서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그래. 가축 피해를 일으킨다고 들었지. 만약 녀석이 인간들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따먹는 게 아니라, 목을 따버렸을 것이다."

설령 따먹고 난 뒤에 거짓말했다는 걸 알았어도 죽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인간이고, 인간의 편이며, 인간을 위해 세상을 여행하고 있으니.

"어때?"

"...멋지네. 강하고, 훌륭해. 여자 문제는 조금 신경을 써야 하지만."

"원래 영웅의 곁에는 여자가 여럿 따르는 법이지 않겠어?"

"그런가?"

"그런 거다."

테세우스는 내 말에 살짝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럼...."

"테세우스."

나는 테세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는-"

"아, 잠깐만."

테세우스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호숫가를 향했다.

그리고는-

"...어?"

뿌우우우ㅡㅡㅡㅡㅡㅡ

세상이 배신했다.

테세우스는 가만히 서 있었고, 달빛이 그를 비추자 그의 아래로 호숫가에 앞으로 길쭉한 기둥이 뻗어나갔다.

"아."

미친.

"아, 씨발."

절로 쌍욕이 나왔다.

"후아, 시원하다. 응? 왜 그래?"

"......."

꼬추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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