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이가 아니다.
자기들끼리 동성애를 하든 말든, 그게 내 생활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대 인류는 내게 피해를 줬다.
자기들끼리 물고 빨든 말든 내버려 뒀지만, 그들은 나를 상상하며 내 위상을 강간하기 시작했다.
재웃쓰 인형을 강간한다거나, 뭐 그런.
그래서 멸망시켰다.
그 이후 인류는 함부로 동성끼리의 사랑을 하지 않았고, 설령 하는 이가 있다고 해도 거의 금기에 가깝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하더라.
적어도 내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와 올림포스 신을 엮지 않는 정도로.
그런데.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버릴 뻔했다.
"젠장, 이 자식!"
나는 테세우스를 향해, 바닥에 내려놓았던 방망이를 들었다.
"나를 속였구나!"
"뭐?"
"여자가 아니었어!"
"뭐라고!!!"
나는 눈앞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테세우스는 테세우스대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가, 감히 나를 여자라고 생각해?!"
"그 얼굴에 그 몸을 하고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서, 설마 나를 따먹을 생각을 한 거냐?! 이 호모 녀석!"
"뭐라고?! 개소리 집어치워! 애초에 네가 그딴 얼굴에 그런 몸을 하고 있는 게 잘못이지! 여자보다도 더 여자 같은 얼굴과 몸인데!"
"그 말, 취소해라...!"
테세우스가 살기등등한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감히 나를 여자보다 더 여자 같다고 말하다니...!"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내가 느낀 대로, 진실만을 말할 뿐이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단언하지! 인간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올림포스의 신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너를 보자마자 바로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자식!!"
테세우스가 자기 짐낭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놈이 괜히 이상한 행동을 하기 전에 방망이를 들고 앞으로 달렸다.
"이 더러운 호모 자식! 발기한 내 자지 어쩔 거냐고!"
"지가 지 멋대로 발기해놓고! 내가 더 불쾌해! 감히 나를 상대로 발기를 해?!"
"네가 남자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발기도 하지 않았고, 너와 함께 갈 생각도 없었어!"
나는 방망이를 어깨 너머로 넘긴 뒤, 앞으로 크게 휘둘렀다.
새애액!
방망이가 빙글빙글 돌며 테세우스를 향해 쇄도했다.
놈의 뒤통수를 향해 던진 방망이는 금방 테세우스의 뒤통수에 닿았-
"흥!"
테세우스는 앞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앞으로 구르듯 미끄러지며 방망이를 피했다.
동시에 녀석은 바닥에 손을 짚으며 몸을 돌렸고, 짐낭 옆에 놓여있던 활을 들어서 내게 겨눴다.
"남자에게 발기한 이 더러운 자식! 위대한 제우스 신을 대신하여 너를 죽이겠다!"
"닥쳐라, 남자를 모욕하는 더러운 놈!"
패ㅡ앵!
"느려!"
내 어깨 위로 화살이 스친다.
내 심장을 맞추려고 한 공격에 나는 몸을 비틀어 화살을 피했고, 테세우스는 바로 화살을 다시 꺼내 내게 겨눴다.
"치잇, 덩치 큰 호모 주제에 날래긴 날래구나!"
"시끄럽다! 150도 안 되는 게 남자냐!"
"닥쳐! 자지는 크니까 상관없어!"
파ㅡ앙!
테세우스가 내 발 근처로 화살을 쐈다.
나는 앞으로 뻗으려던 발을 옆으로 비틀었고, 그 바람에 달려들려다가 그만 주춤거리고 말았다.
"죽어라!"
테세우스가 짐낭에서 검을 꺼내 내게 휘둘렀다.
나는 검을 피하며 옆으로 몸을 비틀었고, 테세우스의 허리를 향해 그대로 놈을 걷어찼다.
"흥!"
테세우스는 그 와중에 또 몸을 비틀어 내 공격을 피했다.
역시 150도 되지 않는 녀석답게, 작은 체구와 속도를 이용해 공격을 피하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
"꼬추 떼라! 암캐련아!"
"!!"
김치맛 K-욕설 한 마디로 테세우스를 흔든 뒤, 옆으로 휘둘렀던 다리를 그대로 위로 치켜올려 아래로 내려찍는다.
퍼ㅡ억!
내 발뒤꿈치가 정확히 테세우스의 어깨 뒤를 찍었다.
테세우스는 그대로 아래로 굴렀고, 나는 다리를 회수하며 뒤로 한 발자국 뛰었다.
서걱!
허벅지 아래가 화끈거린다.
아래에서 붉은 핏방울이 튀었고, 나는 칼날이 스친 곳을 향해 급히 손을 집어넣었다.
"이 미친놈...! 감히 내 자지를 자르려고 해?!"
"좆 떼라며, 개새끼야! 남의 자지 떼라고 했으면 너도 자지 잘릴 각오는 해야지!"
"오냐! 내가 오늘, 네 쌍방울까지 터뜨려주마!"
"나는 그러면 네 자지가 잘린 곳에다가 칼을 쑤셔서 보짓구녕을 만들어주지!"
"미친 호모 새끼!"
"덩치 큰 게이 주제에!"
결정했다.
테세우스가 누구 자식이고 누구의 후원을 받든.
나는 이 녀석을 반드시 심영, 아니 성별조차 없는 존재로 만들겠다고.
* * *
얼마나 싸웠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 자려고 누웠을 때부터 싸웠던 것 같은데, 어느새 밤은 지나가고 새벽달이 가라앉아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입에서 단내가 풀풀 흘러나온다.
갈증은 입 안에서 터진 피로 삼키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망가진 방망이를 내던진다.
파칵!
방망이는 바닥을 긁으며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체력과 집중력이 다 해서 그런지, 방망이는 바닥에 쓰러진 목표를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다.
"하, 씨바."
쿵!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엎어진 상태로 팔로 상체를 디딜 힘도 없어, 나는 몸을 뒤집어 대자로 누워버렸다.
"하아, 하아."
한계까지, 아니 한계 그 이상으로 나는 싸우고 또 싸웠다.
중간중간 진짜로 죽을 뻔한,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면서도 목숨 자체도 날아갈 뻔했다.
그래도 이겼다.
먼저 쓰러진 건 테세우스고, 놈은 지금 나보다 먼저 쓰러진 채 의식을 잠시 잃은 상태다.
"하."
조금 더 다가가서 알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버린다면 으깨버릴 수도 있는데,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다.
"젠장...."
티폰을 상대로 싸울 때보다도 더 탈력감이 진하다.
아무래도 무구한 체력을 가진 티탄신과 달리, 티탄신의 힘을 이어받았어도 인간의 몸인 만큼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으, 으으...."
"졌으면, 꼬추 떼라...."
내가 이겼다.
일 대 일, 수 시간에 걸쳐 전력을 다해 싸운 대결에서 나는 저놈보다 늦게 쓰러졌고, 사실상 내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인 싸움이다.
"내가, 허억, 너 같이, 허억, 뇌가 좆에 달린 놈한테...!"
"좆도 없는 게 까불고 있어, 크허어."
투두둑.
하늘에서 비가 떨어진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빗물은 너무나도 달았고, 달아오른 내 몸을 차갑게 식혀줬다.
"...야."
별 이유는 없지만, 궁금한 게 생겼다.
"네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그 말, 혹시 네 겉모습 때문이냐?"
"그래."
테세우스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하지만 피를 토하듯 갈라지는 목소리고 답했다.
"어려서부터, 하악, 나의 어머니는...나를 딸로 키우셨다."
"왜?"
"머리가, 조금 불편하셨다. 아버지는...그런 어머니를 내버려 두셨고."
복잡한 가정사다.
저기 왜, 만화에 보면 보추 캐릭터랍시고 불우한 가정환경을 예로 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테세우스가 딱 그런 꼴인 듯했다.
"나는 왕자다. 하지만 아버지는...나를 왕자로 생각하지 않으셨어. 공주도 아닌, 그저 한 명의 왕족일 뿐이라고 생각하셨지."
"그래서 명성을 얻고자 했다?"
"그래. 허억.... 적어도 위대한 전사와 사냥꾼이 된다면, 크흐, 겉모습 정도는 충분히 덮을 수 있을 테니까...."
이해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다윗을 그저 미소년 양치기 정도로만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난 뒤, 사람들은 다윗을 실전압축근육으로 무장한 강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실적과 결과가 중요한 법.
테세우스가 만약 네메아의 사자, 히드라와 같은 괴수를 쓰러뜨렸다면, 나조차도 그를 향해 경외를 표할 것이다.
외형이 어떻든.
"하, 젠장...."
살면서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싸웠던 적이 있었을까.
정말 상대를 이렇게까지 죽이고 싶을 만큼 싸웠던 적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막상 이렇게 싸우고 나서 보니, 비가 내려서 그런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지.
다 귀찮아졌다.
테세우스를 동정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지금은 분노보다는 만사 귀찮다는,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는, 여자나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
"내가 진짜...."
"어머, 저것 좀 봐. 언니, 여기야."
"...!"
숲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나를 습격하고자 하는 자라면 바로 대응할 수 있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어머. 어머. 이거 무슨 일이니. 남자 둘이 서로 엄청나게 치고받고 했나 본데?"
"정말? 이쪽은...남자 맞네. 후후, 몸은 작은데, 자지는 이렇게 튼실하고."
"와, 미친."
테세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테세우스는 한껏 발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더 큰 쪽이 좋지 않니?"
"자, 잠깐. 당신들 뭐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뭘 하긴."
목소리는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저 목소리의 주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잘 알고 있다.
"님프...!"
"어머, 눈치챘네?"
푸스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안개가 흩어지듯, 두 명의 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누님계 님프였고, 다른 한 명은 테세우스와 비슷한 체격의 님프였다.
"되게 강한 전사 둘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쓰러져있다니.... 후후, 이거,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는 걸?"
"언니, 누구 따먹을 거야?"
"나? 으음.... 너는?"
"나는 저 큰 거."
"그래? 그럼 나는 저 남자 먹을게."
작은 님프가 내게로 오고, 커다란 님프는 테세우스를 향한다.
"아, 안 돼...! 나는 처녀와 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
"나 처녀 맞는데?"
"......."
찔컥.
테세우스와 싸운 뒤.
나는, 우리는 지나가던 처녀 님프 자매에게 따먹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