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203화 (203/235)

인류의 영웅 카드모스.

과거, 제우스 신이 티폰이라는 막강한 괴물을 상대할 때, 빼앗긴 힘줄을 카드모스가 되찾아준 것을 계기로 카드모스는 인류 영웅의 대표가 되었다.

테베의 왕이 되고, 그가 살아있을 때는 제우스 신이 직접 테베에 드나들기도 하며 테베를 신경 썼다.

테베에는 영광이 내려왔고, 테베는 다른 왕국들이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지금은 죽었다.

카드모스가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그는 인간이었고, 결국 육신의 노화와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카드모스는 인간으로 죽으나, 그의 위업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내가 그리하겠다.

인간은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신에 의해 영웅으로 인정받아 신의 총애를 받는 자들은 죽지 않았다.

-나, 제우스. 카드모스와 그의 반려를 위한 안식의 공간을 마련하였으니. 이곳의 이름을 엘리시온이라고 칭하며, 자격을 갖춘 자들은 지옥으로 가지 않고 평온과 안식의 땅으로 초대받으리라.

죽음을 초월하고 영생을 살아가더라.

물론 인간 세상은 아니고, 저기 제우스가 만들어낸 영적인 공간 속에서.

-영원불멸의 삶을 엘리시온에서 살게 될 것이니. 축복하라. 죽음은 인간 세상과 단절이 되었을 뿐, 그대들은 엘리시움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어디랴!

인간은 언제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죽고 난 뒤에 명계의 여왕 하데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심판받아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 명계로 가는 게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간다고?

-나도 가고 싶다!!

모두가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고민해본 결과, 카드모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카드모스가 그랬던 것처럼 영웅적인 행보를 보이는 걸 통해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낙원은 가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들께서 직접 낙원으로 초대하고자 하며, 위대한 제우스 신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부부만큼은 해야 낙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까.

누군가가 신들에게 낙원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 물었고, 대부분의 신들은 공통적인 반응을 내어놓았다.

-음, 뭐, 서로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는 거?

-그걸로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아이야. 너는 네 특기를 살려 다른 이를 돕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악행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라고 한다면, 선행은 곧 낙원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겠지. 반드시 도착한다고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끝에 낙원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낙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선업(善業)을 이루어야 한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단순히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낙원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이를 위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하며, 신에게 인정받기 이전에 다른 인간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행동을 먼저 하는 게 마땅하다고 신들은 그 길을 제시했다.

-묻겠습니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을 물리치는 것 또한 선행인가요?

-그 또한 선업이니라.

-묻겠습니다. 인간에게 상해를 입히는 악인을 물리치는 것 또한 선행인가요?

-그 또한 선업이니라.

-그렇다면, 신들께서도 그 이름을 귀동냥으로 듣고 기억할 정도로 명성을 쌓는다면 낙원으로 초대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반드시는 아니지만, 이름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제우스 신께서 좋게 볼 가능성은 있지.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카드모스 대제전.

테베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축제는 카드모스를 기리는 동시에, 수많은 영웅과 전사들이 낙원으로 가기 위한 영웅적 행보의 시작과도 같았다.

그리고.

"아아, 파티 모집합니다! 악당 아그라조트를 물리치기 위한 파티를 찾습니다!"

"뛰어난 사수를 찾습니다! 내가 활 좀 잘 쏜다 하는 분!"

"길잡이를 찾습니다! 미로를 공략하러 들어간 다음, 괴인을 물리치러 갈 겁니다!!"

나는 테베에 와서 이 카드모스 대제전의 실체를 깨달았다.

'이거, 그냥 모험가 길드 아니냐?'

말만 카드모스 대제전이지, 실상을 파악하고 난 뒤에 살펴보니 그냥 판타지 속 모험가 길드에서 온갖 의뢰를 게시판에 달아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파티 사냥? 가능.

대신 그 괴물을 쓰러뜨린 자들의 명단에 함께 사냥한 모든 이들의 이름이 올라갈 뿐.

"뭐야. 저거 잡는 데 열 명이나 달려든 거야? 쯧쯧, 혼자서 잡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혼자 사냥하다가 역으로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래도 그렇지. 카드모스께서는 홀로 제우스 신께 도움을 드렸다고."

"그거야 카드모스 님이고. 우리는 카드모스를 꿈꾸는 자들이지, 카드모스 님은 아니지 않나."

"쳇...."

하나하나 사냥하기 힘든 존재들이 가득해 보였고, 심지어 그중에는 키타이론 산의 사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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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 키타이론 산의 사자. <취소>.

토벌난이도 : B+

요청 의뢰자 : 테스피아이 왕국 국왕 테스피오스.

피해 상황 : 테스피아이 왕국의 가축 40여 마리가 사자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됨.

현재 상황 : 테스피아이 왕국의 국왕 테스피오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토벌함.

테스피아이 왕국의 요청에 본 토벌 의뢰는 취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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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사후 처리는 확실하게 한 모양이다.

"이보시오.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노리는 건가? 저건 이미 토벌되었소. 저걸 잡으러 가봐야 괜히 먼 길 헛걸음만 할 뿐이지."

"위험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명성은 적으니, 저런 임무를 누가 따르겠는가? 그냥 안 하고 말지."

내가 키타산에 관한 벽보에 집중하고 있자, 다른 이들이 다가와서 내게 스리슬쩍 정보를 알려줬다.

"자네, 대신 우리와 함께 다른 걸 잡으러 가지 않겠나? 바다괴물이라거나."

"생각해보겠소."

"크흠, 생각만 하지 말고...."

"당장은 내키지 않는군."

게시판에 붙은 벽보에 만약 취소됨이라는 문구가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그대로 저 벽보를 챙겨서 테스피오스 왕을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어이, 헤라클레스."

옆에서 테세우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등록 끝났다. 이거 받아라."

"나무로 된 명찰?"

"카드모스 대제전에 참가한다는 표식이다. 나중에 실적에 따라 나무에서 동으로, 동에서 은으로, 은에서 금으로 바꿔준다는군."

"다이아는 없나?"

"......?"

"농담이다. 내 고향에서 나는 보석을 이야기한 거다."

"보석을 이런 수준으로 깎으려면, 이름까지 박아넣으려면 헤파이스토스 신이 아니면 어려울걸."

인파를 밀쳐내고 내 옆으로 다가온 그가 건넨 나무패에는 당당히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음각되어있었다.

실적은 없음.

길쭉하게 이어진 나무패의 뒤에 뭔가 활약상을 적어놓은 게 없으니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제 여기에 하나둘 내가 사냥한 사냥감을 적어놓으면 되겠지.

'업적작이네.'

딱 좋은 공간이다.

헤라클레스의 위용을 널리 알리기에 딱 좋은 명패다.

"등록은 일단 기본으로 2인 1조로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보증을 하는 셈이지. 뭐, 서로 각자 하나씩 맡아서 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받았다. 대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내 이름 뒤에 다른 이의 이름이 오는 걸 원하지 않아."

"나도 동감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나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싸울 것이다.

"상관없다. 너는 누구로 잡을지 정했나?"

"그래. 이 녀석으로 정했다."

테세우스는 이미 자신의 사냥감을 정했고,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하나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

"페리프테스?"

"그래. 아테네 인근에 숨어 사는 놈인데,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약탈하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더군."

"아하. 악당을 잡아 족치겠다?"

"물론."

추정 난이도는 B-급.

인간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어떻게 키타이론 산의 사자와 비견될 정도로 강한가 싶기도 하지만, 눈앞에 있는 테세우스도 키타산 정도는 제압할 수 있으니 딱히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그러더군.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뭐, 그거야 그렇겠지. 실적도 없는 놈이 갑자기 B급을 죽이러 가겠다고 하면, 인간인 이상 한 번 정도는 말리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만용이다.

객기부리지 마라.

목숨을 시궁창에 던질 셈이냐.

물론 개중에는 자신도 상대할 수 없는 악인이나 괴물을 사냥하겠다고 하는 자를 두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인 이상,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패시브와도 같은 거니까.

"그래서 너는 정했어? 뭘 잡으러 갈지?"

"괴수."

테세우스는 악인을 사냥하지만, 나는 괴수를 사냥한다.

괴수 학살자.

수컷이면 죽이고, 암컷이면 따먹는다.

알케이데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헤라클레스로 이름을 알릴 차례.

"내가 잡고자 하는 건, 시작은 역시 이놈이지."

나는 게시판의 가장 위쪽, 붉은색으로 칠해진 벽보를 가리켰다.

"...어이."

"왜."

"그건, A급이다."

"알아."

B+급,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잡았는데 당연히 A급에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네메아의 사자."

키타이론산의 사자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A급 네메아의 사자는 얼마나 맛있을까.

크아아아앙!

"이 씨발! 달려있잖아!!"

갈기가.

수컷인 줄 알았다면, 다른 거 따먹으러 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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