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204화 (204/235)

이곳 그리스는 현대 지구와 달리, 온갖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적당히 날씨가 좋고 사계절의 기온이 뚜렷해서 그런지, 아니면 잡아먹기 위한 인간들이 널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짐승들에게는 먹이가 매년 증식하는 일종의 '맛집'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인간들이 왕국을 만들고 서로 뭉치기 시작하며, 좀 더 체계적인 군대가 만들어진 이후로 예전-인간이 불도 쓰지 못하던 시절 만큼 인간을 자유롭게 사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기 사하라 사막이나 이집트의 모래사장에 비하면, 초원이 펼쳐져있고 숲이 우거지고 산도 많고 강물도 넓게 펼쳐진 이곳이야말로 야생동물들에게 지상낙원과도 같은 곳이리라.

언젠가 인간들이 좀 더 높은 울타리를 만들고, 그걸 성벽으로 바꾸고, 공장이 생기고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이곳 그리스는 짐승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짐승들은-기간테스 괴수들은 짐승들의 틈바구니로 파고들어 인간들을 습격했다.

가축을 잡아먹는 걸로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런 피해를 당한 이들을 야금야금 노리다가 인간을 잡아먹거나 죽이고.

그런 행위를 반복한 결과, 대부분의 기간테스는 저기 카드모스 대제전에서 A급 이상으로 분류되고 있더라.

그들이 기간테스인지, 가이아가 티폰의 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티폰의 자식개체인지 아닌지는 사람들이 자세히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그들이 기간테스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간테스들이 키타산과 달리, 명백히 '인명피해'를 일으킨 괴물들이라는 것.

제우스의 반신이자 언젠가 기간토마키아를 끝낼 인간 영웅 헤라클레스로서, 나는 첫 기간테스를 처리하기 위해 기꺼이 네메아로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젠장, 갈기달린 사자라니."

무너진 신전의 입구.

과거에 어느 신을 섬겼는지 알수도 없을 만큼 폐허가 된 신전의 입구에 갈기달린 거대한 사자가 신전 한 가운데 엎드려있다.

마치 자기자신이 신전의 주인이라도 되는양 하품까지 하며 자고 있었고, 나는 그 당당한 모습에 절로 열이 뻗쳤다.

"젠장, 키타산보다 더 쫄깃한 보지가 달린 암사자라고 생각했는데. 썩을. 발기한 내 자지 어쩔 거냐고."

수컷이라서.

사자는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 방법이 너무나도 간단하다.

달려있으면 수컷, 없으면 암컷.

갈기 이야기다.

당연히 자지와 보지도 마찬가지지만, 호랑이의 고간을 확인해야 하는 음경과 달리 갈기는 그냥 얼핏봐도 확인 가능한 부위니까.

"불쾌한 놈."

섹스를 기대하고 온 나에게 이런 불쾌한 기분이 들게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일격에 죽인다."

나는 최대한 숨을 죽인 뒤, 활을 들어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을 놈에게 겨눴다.

화살은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며, 딱히 화살에 전격을 담아 번개처럼 쏘는 건 불가능.

하지만 네메아의 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벽력과도 같은 속도로 화살을 쏘는 건 가능.

일격필살의 심정으로.

특등사수의 심정으로.

'쉽게쉽게 가자.'

단 한 발의 화살로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린다.

파ㅡㅡㅡ앙!

시위를 놓았다.

화살이 빛처럼 날아가 사자를 향해 쇄도했다.

제발 발기한 내 자지의 분노가 사자를 일격에 죽여버리기를.

퍼ㅡ억!

간절히 기도했지만, 역시 인생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크르르.

사자는 잠꼬대를 하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딱 봐도 낮잠을 자는 동안 '어떤 새끼가 감히 나를'이라는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날카로운 강철로 된 화살촉은 사자의 미간을 정확히 노렸으나, 미간의 가죽조차 꿰뚫지 못했다.

새애액!!

한 번 더, 사격.

이번에는 미간에서 조금 옆으로, 아무리 가죽이 두꺼운 놈이라고 해도 연약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노리고 쐈다.

콰득!

놈이 고개를 크게 돌리더니, 내가 쏜 화살을 단숨에 깨물어부섰다.

자신의 눈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너무나도 쉽게 낚아채는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허."

두 번의 공격은 실패.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역시 직접 뚝배기를 깨놔야겠어."

접근전.

캬오오!!

사자는 두 번째 화살을 쏜 순간부터 눈치챈 나를 향해 정확히 달려들었다.

단숨에 위로 몸을 던졌고, 앞 발을 내 쪽으로 쭉 뻗으며 나를 몸으로 깔아뭉게려고 달려들었다.

"어딜!"

나는 오히려 놈을 향해 바닥을 굴렀다.

놈의 손톱은 내 어깨 위를 스쳤고, 나는 구르는 동시에 위로 활대를 크게 휘둘렀다.

파각!

활이 우지끈 부러졌다.

놈은 뒷발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 뒷발을 향해 활의 끝을 잡고 휘둘렀다.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상아로 만들어진 활이 순식간에 꺾이며 망가졌다.

크르르.

내 무기를 부순 것이 기쁜지, 놈은 사납게 입을 벌리며 나를 위협했다.

놈의 눈에는 가소로운 사냥감을 향한 비웃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하아악."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도발을 시전했다.

자고로 고양이과의 생물이라면 상대에게 하악질을 하는 것이 선전포고의 기본.

햐아아아악.

네메아의 사자 또한 종의 기원은 부정할 수 없는 건지, 나를 향해 하악질을 하며 바닥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두 팔을 아래로 뻗으며 몸을 낮췄다.

마치 내가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앞으로 뛰어오르려 하자, 네메아의 사자는 흠칫 놀라며 하악질을 멈췄다.

"쒸바아아아아아아!!"

기합과 함께, 나는 앞으로 뛰었다.

네메아의 사자는 이게 미쳤나 하는 얼굴로 나를 향해 입을 벌렸고, 날카로운 이빨로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했다.

그러나.

당연히 나는 인간이다.

짐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지혜를 바탕으로 숱한 짐승을 상대로 이겨왔다.

"어딜!"

나는 두 손을 위아래로 벌렸다.

그리고 놈의 턱을, 콧잔등과 하관을 동시에 붙잡았다.

꽈아아악!!

엄청난 치악력.

잡자마자 손이 덜덜 떨렸고, 머리가 이빨 안으로 들어갈 뻔 했다.

"크오오오오...!!"

나는 헤라 젖빨던 힘까지 다해 놈의 턱을 위아래로 붙잡았다.

감히 나를 입에 집어넣고 씹어삼키지 못하도록, 아가리를 닫지 못하게 힘으로 붙잡았다.

"흐흐흐...!"

설마 내가 자기 입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놈은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히죽 웃더니, 아래로 손을 뻗었다.

내 발목을 할퀴어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약은 짓을 벌이려는 셈.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술.

하지만 살도 주지 않고 뼈까지 취하려고 한다면?

"어딜!"

나는 놈이 할퀴려던 발을 높이 든 뒤, 빠르게 바닥을 찍었다.

쿠ㅡㅡ웅!

전력을 다한 발구름은 정확히 놈의 앞발등을 짓밟았고, 나는 그대로 발을 비비며 놈의 입을 강제로 닫게 만들었다.

"야, 내가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보여...?"

꾸우우우욱.

사자는 어떻게든 입을 닫으려고 했지만, 놈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나, 헤라클레스다!!"

근력에 있어서는 가히 슈퍼 히어로, 녹색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우오오오!!"

콰득!

내가 강제로 놈의 아가리를 닫게 만들자, 놈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턱이 빠지지 않게 위아래로 계속 누르며, 놈이 대가리를 바닥에 처박게 계속 누르고 또 누른다.

"이 힘을 숨기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아느냐!"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제압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힘을 확인했었다.

제우스와 헤라로부터 직접 이어받은 힘.

영혼은 제우스의 반신이며, 헤라의 젖을 먹고 자라 그 영광을 몸에 담은 자.

데미-갓.

티탄신은 아니지만, 티탄신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된 자.

"어딜 감히 인간에게 하악질을 해대고 지랄이야!"

나는 그 힘을 이용해, 사자의 대가리를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쿵!

사자의 턱이 신전바닥에 처박히고, 나는 바로 놈의 콧잔등을 향해 한 번 더 발을 밟았다.

키아아아앙!!

코뼈를 부러뜨린다.

동시에 놈의 위로 뛰어올라, 놈이 그 날카로운 발톱을 내게 겨누지 못하는 곳에 그대로 몸을 던졌다.

퍼ㅡㅡㅡㅡ억!

"이게 바로 천근추다!"

놈의 척추를 향해 그대로 두 다리를 아래로 내리며 찍어버렸다.

사자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고, 나는 바로 몸을 돌려 놈의 위에 올라탔다.

키이이익!!

"내가 이걸로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제압했지. 흐흐흐."

그 때는 따먹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멱을 따버리기 위함이다.

"화살에도 가죽이 뚫리지 않아? 그럼, 어디 한 번 내 힘에는 가죽이 버티는지 해보자고!"

짐승의 가죽이 더 질길까.

아니면 헤라클레스의 힘이 더 강할까.

꽈아아악!!

나는 놈의 위에 올라탄 채, 그대로 놈의 등을 붙잡고 살가죽을 쥐어뜯었다.

캬아아아악!!

사자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신전을 벗어나 자기 집으로 추정되는 동굴 안으로 향했다.

아마도 안에 뭔가 나를 떨쳐낼 것이 있는 건지, 혹은 동굴 벽에 나를 처박아 떨어뜨리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헤라클레스를.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 법.

"어이, 사자."

나는 손으로 당긴 가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빨은, 너만 있는 게 아니라고."

으득.

부우우우욱ㅡㅡㅡㅡ!!!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