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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엑스 마키나-205화 (205/235)

인간이 짐승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단연 '지성'이다.

나는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지혜를 발휘했고, 가장 지성적인 방법으로 놈을 쓰러뜨리고자 했다.

정보를 모았다.

놈의 가죽은 워낙 질기고 두터워, 창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장 먼저 화살을 쐈다.

안 죽더라.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확실하게, 가장 안전하게 네메아의 사자를 죽일 수 있는 방법.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장 확실하게 사용하는 방법.

그것은.

압도적인 힘으로, 놈을 찢어 죽인다.

부와아악!!

이로 살가죽을 통째로 깨물며, 주변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긴다.

질긴 살가죽은 쉽게 조직이 허물어지지 않았지만, 나 또한 무언가를 깨무는 힘은 사자에 못지 않다.

우드드득.

가죽이 뜯긴다.

표피가 살짝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을 욱여넣어, 가죽 사이로 강제로 구멍을 만들어 벌린다.

세포 조직 하나하나가 뜯겨나오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캬아아악!!

동시에 사자의 고통스러운 비명 또한 들린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 속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나는 놈이 나를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발버둥쳐도 하반신의 힘으로 놈을 꽉 붙잡았다.

"어딜!"

나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놈의 등을 휘감았다.

복부 아래로 발을 뻗어 하반신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고, 동시에 뜯어진 가죽의 주변을 움켜쥐며 좌우로 비틀었다.

부와아악!

사자가 버티면 버티려고 할 수록, 땅을 뒹굴며 나를 떼어내려고 할수록 녀석의 가죽은 계속 뜯어졌다.

이제는 손바닥 너비보다 더 넓은 부위가 살점에 뜯겨나왔고, 나는 너덜너덜해진 살점을 다시 움켜쥐고 마저 뜯었다.

그 왜, 마치 떡볶이 포장을 했을 때 잘 안 뜯기는 비닐을 뜯는 것 같은 그런 기분.

하지만 잘 뜯기지 않는 거지, 사람이 힘을 주면 못 뜯을 것도 없다.

사자 또한 마찬가지다.

키아아악!!

네메아의 사자는 몸을 아예 뒤집어, 자기 무게를 이용해 나를 압사시키려고 했다.

자동차와도 같은 덩치를 가지고 그 육중한 몸을 눌러 나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고개를 비튼 다음 놈의 갈기 아래 쪽 가죽을 깨물었다.

"!!!"

다시 사자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등 뒤에 깔린 나를 등으로 문지르며, 땅과 함께 갈아버리려고 하는 듯 몸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놈은 팔다리를 격렬히 움직이며 자신을 꽉 붙잡고 있는 내 사지를 할퀴려고 했고, 꼬리로 계속 내 허벅지를 때렸다.

찰싹, 찰싹!

한 번 때릴 때마다 채찍으로 얻어맞는 것처럼 아프다.

찰팍거리는 곳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점차 얼얼해지는 것으로 보아, 조금만 더 맞으면 피멍이 생기는 걸로도 모자라 피가 터질 것 같았다.

이해한다.

등판에 이제는 내 머리보다 더 큰 구멍이 생겼다면, 그 구멍 안으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피부가죽이 뜯겼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어라, 기간테스!"

이해는 한다고 해서, 내가 이 괴물을 봐줄 이유는 없다.

퍼ㅡ억.

나는 살점이 뜯겨나간 근육을 향해 옆에서 주먹으로 크게 후려쳤다.

근육 사이로 터져나온 피가 내 주먹을 적시든 말든, 나는 계속 가죽을 뜯어낸 부위에 주먹을 때렸다.

크르르르...!

사자는 다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뒤집었다.

이제는 아예 나와 함께 땅을 구를 생각인지, 가죽이 뜯어졌는데도 놈은 생각보다 더 잘 버티며 나를 죽이려고 계속 각을 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칠 것 같아? 응?"

퍽, 퍼억, 퍽.

나는 계속 놈의 상처를 향해 주먹을 퍼부었다.

한손으로 한방향으로 계속 주먹을 휘두르다보니 나도 팔에 무리가 갔지만, 내가 계속 주먹을 휘두를수록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놈도 마찬가지.

풀썩.

사자는 옆으로 미끄러졌다.

동시에 놈을 때리던 내 팔 또한 사자에 깔렸다.

"크으윽...!"

이번에는 자기 몸을 이용해 내 팔을 땅에 문질러 없애려는 수작이었다.

사자로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나를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했지만, 놈은 여전히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동물의 수컷이라고 해서, 여자가 아니라고 해서.

이렇게 계속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 힘이 빠질 거라는 점.

"우오오!!"

나는 기합과 함께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놈은 내가 주먹을 찌른 방향으로 크게 휘청거렸고, 벽으로 미끄러지다가 크게 주저앉았다.

쿵!

나 또한 어깨가 벽에 부딪쳤다.

이번에는 제법 충격이 커서 떨어질 뻔 했지만, 나는 끝까지 놈을 놓지 않고 계속 달라붙었다.

"흐흐, 흐흐흐...!"

슬슬.

놈에게서 공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자신을 꽉 붙잡고 있을지, 두려움에 벌벌 떠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

나는 놈의 가죽을 향해 고개를 묻었다.

"네놈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응? 적어도 나는 이렇게 먹고 마시면서 버틸 수 있는데."

콰득.

나는 놈의 뜯겨진 가죽을 향해 고개를 비틀었다.

으드득.

이로 크게 씹어, 살점을 베어내는 게 아니라 거의 뜯어내듯 깨물었다.

이거, 거의 좀비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네메아의 사자를 가장 확실하게 처리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칼과 창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고이고이 살점을 뜯어내는 것이 답.

내가 타격을 주거나 뜯어낸 것보다 더 빠르게 신체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피가 계속 흘러나와 과다출혈로 죽게 될 것이다.

내가 압사당하기 전에.

내가 공복에 죽기 전에.

내가, 이 헤라클레스가 전력을 다해 사자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다하기 전에.

"네메아의 사자. 너는 내 손에 죽는다."

오늘이면 좋겠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너는 죽는다."

* * *

트레토스 산의 주민, 몰로르코스는 불안감에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네메아 골짜기의 사자는 허구한 날 밤마다 나타나 사람들을 조롱하듯 밤에 포효를 내질렀고, 사람들은 행여나 그 사자가 밤에 집 밖으로 나온 사람을 잡아먹을까봐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네메아의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겠거니, 여느 때와 같이 집 안에 처박힌 채 겁에 질렸다.

다음 날에는 혹시나 네메아의 사자가 다른 곳으로 떠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네메아의 사자가 더 이상 마을에 나타나지 않게 된지 30일이 되는 시점.

"젠장, 내가 왜...!"

몰로르코스는 마을의 대표가 되어, 네메아 골짜기에 몰래 잡임하여 사자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로 마을에서는 가장 발이 빠른 몰로르코스를 내세웠고, 몰로르코스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아테네 여신이시여. 부디 제가 네메아의 사자를 만난다면,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몰로르코스는 평소에 가장 믿고 존경하는 여신에게 기도했다.

네메아의 사자가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몰로르코스가 사람 중에서 제법 날랜 만큼 잘만 지혜를 짜낸다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크흑...! 마을 놈들이 아내를 인질로 잡지만 않았어도...!"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건 마을이 어찌되든 말든 혼자서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거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아내가 마을 주민들에게 붙잡혀버렸다.

악독한 자들이다.

자신들이 불안하다고 사람을 보내는데, 아무도 자원하지 않으니 그나마 가장 젊고 발이 빠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뽑다니.

"젠장, 젠장...! 아테나 여신이시여!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제가 저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 아내를 무사히 구할 수 있는...허억!!"

몰로르코스는 앞에 보이는 것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았다.

쿵, 쿵, 쿵.

네메아의 사자가, 걸어오고 있다.

고개를 삐딱하게 옆으로 놓은 채, 마치 사람이 걸어오는 것처럼 걸어오고 있다.

"아, 아으, 으으아...!"

어쩌면 자신에게 필요한 건 살 길을 궁리하고자 하는 지혜가 아니라, 네메아의 사자가 눈 앞에 있어도 겁을 먹지 않을 용기가 아니었을까.

후회는 들지만,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늦었다.

저 붉은 사자가 다가오는 즉시-

"이보시오."

"......어?"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요?"

"......네메아의 사자가, 말을?"

"뭐? 으하하하!!"

사자가 웃기 시작했다.

아니,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내밀고 있던 사자의 아래, 거구의 붉은 남자가 배를 잡으며 웃었다.

"네메아의 사자?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쿵!

남자가 옆으로 사자를 떨어뜨렸다.

사자는 맥없이 축 늘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무, 무슨...!"

"내가 잡았소. 머리는 내가 쓸 곳이 있어 그대로 보존했고, 몸통은 아주 갈기갈기 찢어버렸지."

"......! 서, 설마...."

"주변에 혹시 강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지금 씻지도 못하고 계속 이 상태라, 일단 물에 몸부터 담그고 싶군."

"네메아의 사자를...진짜 죽인 거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 그런 건 없소."

남자는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 혼자 사자를 죽였지. 나, 헤라클레스가."

남자, 헤라클레스는 바닥에 떨어뜨린 사자의 머리만 다시 어깨에 올렸다.

"위대한 그리스 최강의 전사가."

마치, 장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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