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르레 늪의 히드라!
내가 아무리 그리스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건 아니더라도, 히드라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나의 배경지식도 그렇고, 히드라라는 존재를 올림포스에 있을 때 들었던 정보도 그랬다.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악의 괴물.
상대가 죽을 때까지 독뎀을 넣고, 그 독은 치유도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아직 히드라의 맹독에 당한 신은 아무도 없지만, 신이 만약 히드라의 맹독에 당한다면 그냥 스틱스강의 맹세를 어기고 영면에 잠들어 죽음을 택하는 게 더 낫겠지.
인간들에게만 통하고 신에게는 통하지 않는 극독이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그 어떤 신도 히드라를 함부로 죽이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냥 죽기만 하는 놈이라면 누군가가 원거리 공격으로 히드라를 죽여버리면 된다.
하지만 히드라에게는 불로불사 비슷한 이능력이 있으니, 머리가 아홉 개가 있어 모든 머리를 잘라내야 비로소 죽는다는 조건부 불사 능력이다.
다른 머리를 전부 자르면 죽는 걸까?
그건 모른다.
그냥 다들 추측만 할 뿐이며, 누군가는 하나의 머리는 아예 죽지 않기 때문에 히드라를 죽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죽일 수 없다면 저기 지옥 구석에 처박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옥에서도 죽은 자들에게 맹독을 뿌려댄다면 지옥도 개판이 되겠지.
지옥이 아닌 땅 깊은 곳에 봉인해버리면 가이아가 나타나서 구해주려나.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지는 괴물이다.
'그걸 나보고 처리하라고?'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머리가 아파져 오는 괴물이다.
아무리 네메아의 사자를 죽였다고는 해도, 곧장 이런 엄청난 괴물을 사냥하라고 하는 건 나보고 가서 죽으라는 것과 같다.
하지만.
'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
내게 죽음은 그저 한순간의 고통일 뿐.
'미안하지만 이쪽은 코인이 여러 개라서.'
제1의 헤라클레스가 죽었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헤라클레스를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설령 내 영혼이 찢겨 사라진다고 해도, 제우스는 방법을 찾아낸 다음 내 영혼을 복구하든 아니면 자기 영혼을 다시 떼어내어 헤라클레스 Mk·2를 만들든 알아서 할 테지.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인간으로 죽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만족한다.
원하던 목표를 이룬 것이 분명 좋기야 하지만, 모든 인간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이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 홀로 놈을 상대할 것이다.
"너 미쳤어?"
"테세우스. 오랜만에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아주 험하기 짝이 없군."
연회를 마치고 나 혼자 테베의 섭정에게 불려가 사냥 의뢰받은 이후, 테세우스는 나를 찾아와 히드라 사냥이 미친 짓이라고 극구 만류했다.
"너는 순조롭게 악인을 잡고 있던 것 같더군. 페리프테스에 시니스, 거기에 게이드야스 였던가? 흐흐. 훌륭한 성과야."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린 너만 하겠어. 나야 인간을 상대한 거지만, 너는 괴물을 상대한 거잖아."
"글쎄. 나로서는 인간을 상대하는 게 더 까다로워서."
악인을 상대하다 보면 전부 다 때려죽이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기에, 살인 충동을 억누르고 분노를 참아야 할 때가 있다면 더 화가 날 것이다.
과거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어 인간들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인간을 향한 혐오가 다시 차오르겠지.
좆간 네버 체인지.
아무리 테세우스 같은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인간들이 일부 있다고 한들, 인간 다섯 명이 있으면 그중 한 명은 좆간일 뿐이더라.
시간이 오래 흘러, 헤라클레스로서 살아온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테세우스. 너는 네 길을 가라. 나는 내 길을 가겠다. 너는 좀 더 업적을 세워 네 아버지께 너 자신을 증명하라."
"히드라를 잡는 거라면...."
"그건 네 길이 아니다. 나의 길이지."
괴수 사냥은 내 몫이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기 싫다는 게 아니다. 아집도 아니다. 단지, 내가 나 혼자서 일단 어떻게 해보고 난 뒤에 말하겠다는 거다."
"하기 전에 먼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 거잖아. 상황을 보고."
"그 상황을 보기 위해 히드라에게 가는 거다. 가서 바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간을 보다가 빠질 거다."
나도 히드라의 독이 튀어 독뎀으로 죽는 건 사양이니까.
"한 잔 하지. 오늘의 이 잔이 이별주가 될지, 아니면 다음 승리를 미리 축하하는 축배가 될지는 나중에 두고 보면 알게 될 거다. 흐흐."
"...야. 잔소리라고 생각하지는 말고, 그냥 들어."
테세우스는 나와 잔을 부딪쳤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히드라는...."
긴 밤.
테세우스로부터 갖추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히드라 공략법을 들으며, 나는 테베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 * *
레르네 늪.
히드라가 지낸다고 하는 늪에 도착했다.
나는 무슨 RPG 속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독의 늪을 생각했는데, 그냥 녹음이 짙은 수풀이 우거진 곳일 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낚인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지레 겁을 먹었던 걸까?
사자의 가죽을 뒤집어쓰고도 괜히 독에 중독될까 봐 걱정되는데, 긴장하는 것 자체는 이상한 게 아닐 터.
"어디 있나."
히드라는 보이지 않는다.
히드라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내가 아는 배경지식에 따르면 몸이 거의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에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놈인데, 그런 괴물이 있다고 하기에는 늪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분명 이쯤에 히드라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디 숨어있다는 것일 터.
그런데 히드라가 헤라클레스가 온다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으니, 만약 나를 경계한다면 내가 두른 네메아의 사자를 눈치 보고 경계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
나는 어깨에 걸쳐두던 네메아의 사자 머리를 살짝 당겼다.
혹시나 사각에서 원거리 독침이라도 날리면 어쩌나 싶었고, 불안감은 계속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기간테스가 서로 피를 나눈 형제자매는 아니라고 해도, 가이아로부터 태어난 자들인 건 맞다.
티폰의 유전자로부터 태어난 괴물들이니, 분명 같은 기간테스의 죽음에-
구구구.
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늪이 통째로 올라오며, 안에서 거대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는 건가."
나는 미리 준비한 대 히드라 전용 무기를 들었다.
언제든지 놈이 독을 날리면 일단 독액을 튕겨낼 수 있게, 나는 손에 움켜쥔 방패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응?"
저벅, 저벅.
안에서 작은 체구의 소녀가 나타났다.
진녹색의 머리칼에 평범한 하얀 피부.
뱀처럼 찢어진 눈동자는 노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그 눈은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여덟 개의 촉수.
"우와아...."
촉수 다발은 전부 제각기 뱀처럼 길쭉하게 뻗어있고, 각각의 머리에 또다른 히드라의 머리가 달려있었다.
아마도 내 전신을 물어뜯으려고 작정한 것일 터.
히드라라고 해야 할지, 뱀녀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저건 분명 히드라다.
'대화의 여지는 없는 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대화하러 나온 건 아니겠지.
"네가 히드라인가?"
그래도 한 번, 대화를 시도해본다.
히드라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팔짱을 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
"뭔가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흐."
히드라는 갑자기 씩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눈빛을 보고 녀석의 생각을 읽었다.
만약.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녀석은 지금 나를-
"우오오!!"
나는 안으로 달렸다.
히드라가 순간 놀라서 꼬리가 바짝 섰지만, 나는 방패도 내던지고 히드라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키샤아아앗!
꼬리에 달린 머리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나를 향해 위협했지만, 머리들도 당황하며 굳어버렸다.
찔컥.
나는 앞으로 달리며 사자 가죽 바지 사이에 만든 구멍으로 자지를 꺼냈고, 냅다 자지를 히드라의 허벅지 안으로 들이밀었다.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다.
어떤 미친놈이 자기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자지를 들이밀고 있으니, 누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찔컥.
"!!!"
나는 히드라의 안에 자지를 쑤셔 박았다.
체구가 작아서 내게 자지가 박히자마자 그녀는 내게 번쩍 들렸고, 나는 한 손으로 히드라의 엉덩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우야."
애무도 하지 않은 보지가 넣자마자 끈적거리고 질척거린다.
아홉 개의 머리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내밀며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예전에 티폰에게 강간당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강간을 하는 건 나다.
'독에 물려서 죽더라도, 일단 따먹고 본다.'
죽으면 죽는 거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일단 박고 본다.
그리고 내 직감이 맞다면....
"웃, 우웅...!"
히드라는 눈을 까뒤집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내 등 뒤로 뻗은 손으로 내 등을 할퀴듯 당기기 시작했다.
꽈아악.
등이 따갑다.
하지만 네메아의 사자 가죽 덕분에, 손톱이 가죽을 자르고 안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다.
"야."
나는 히드라의 엉덩이골 뒤로 벋은 머리의 뿌리 부분을 살살 어루만지며 히드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쌓여 있잖아."
"!!"
"지금부터."
나는 히드라가 나온 늪 아래의 동굴을 향해 스스로 들어가며 자지에 힘을 줬다.
"산란섹스를 시작한다."
그 어떤 남자도.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사냥꾼의 씨다. 그걸 받아서 임신한다면, 정말 강인한 자식들이 나오겠지?"
그 어떤 전사도.
"그리스 최강의 씨를 뿌려주마."
히드라를 사냥하러 왔지, 히드라를 임신시키러 오지는 않았겠지.
구구구구.
늪이, 서서히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