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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엑스 마키나-214화 (214/235)

히드라를 제압한 이후.

수컷은 임시로 만든 진흙봉분 위에 바위까지 덮어 지하에 묻어버렸고, 암컷은 페르세포네의 인도에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안전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페르세포네다.

히드라가 암컷 히드라의 모습, 그러니까 원래 형태인 뱀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페르세포네가 히드라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히드라가 낳는 새끼들을 노리겠지.

사촌이다? 근친이다? 그런 건 녀석에게 관계없다.

데메테르의 시선을 피해 지하에서 마음껏 괴물들을 따먹는 게 취미인 녀석이고, 오히려 녀석이 그렇게 나와주는 게 나로서는 마음이 놓인다.

히드라의 자식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보다 더 예쁜 남편이 생겨버렸지만, 페르세포네는 믿을 수 있다.

"끄아아!"

한 번 기지개를 켜며, 주변에 널브러진 히드라의 잔해를 정리한다.

히드라의 독은 이제 이 잘린 머리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가 여기에 와서 히드라의 독을 루팅하여 그걸 전쟁병기로 쓸 수도 있는 노릇.

히드라의 독을 신이 두려워한다고 신을 향해 쏘는 자가 있다면, 그건 크나큰 문제가 될 터.

그러므로 아깝더라도, 이 히드라의 시체를 테베로 들고간다는 건 어불성설.

화륵.

나는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피워, 히드라의 잔해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잘 타오르지 않았지만, 놈의 피가 빠져나간 곳에 집중적으로 불씨를 놓자 바로 불이 살갗을 태우며 화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화르륵.

나는 좀 더 많은 양의 불을 지폈다.

그간 내가 잘라낸 히드라의 머리는 상당히 많은 편이었고, 하나하나 뭉쳐놓으면 그게 히드라의 몸체보다 더 많을 지경이었다.

"후우. 이것도 일이네, 정말."

네메아의 사자 때는 그냥 불필요한 내장과 살점만 처리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히드라라는 존재가 독이 있는 이상, 이걸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했다가는 단체로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될 것이다.

"잘 타라. 살점 속에 있는 지방을 연료로 태우며, 아주 활활 타오르란 말이지."

화르르.

혹시나 히드라의 고기가 맛이라도 있을까 싶어 사자의 칼날로 한 점 썰었지만, 고약한 냄새만 날 뿐 도저히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크으, 이게 독 냄새인가."

히드라와 섹스를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그 때는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체액이었고, 그게 나를 중독시키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불꽃에 타들어가는 연기 속, 마치 부패한 가스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독연이 함께 흘러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히드라의 독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실험을 해보고 싶은데.'

어디 실험 대상이 없을까.

이왕이면 기간테스면 좋고, 그냥 나를 죽이러 온 들짐승이어도 좋고, 썩은냄새기는 해도 너무나 굶주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히드라 고기를 뜯으러 온 괴물이어도 좋다.

히드라의 독이 얼마나 생물에게 치명적인지,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

"...오."

마침,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늪의 끝자락, 넓은 뻘에서 거품 같은 게 일어나며 뭔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히드라가 죽은 걸 눈치챘나. 늪의 지배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다른 놈이 이 일대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게 당연하기는 하지."

철컹.

"그래. 강한 자가 죽었다고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게 누구...게네."

카샷.

늪 속에서 짚게발이 튀어나온다.

양 옆으로 뻗은 날카로운 집게발은 히드라의 머리마저도 썰어버릴 것처럼 날카로웠고, 늪의 진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드러난 눈이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쭈. 건방진 놈인데."

히드라를 죽인 나를 두고도 지금 나를 향해 집게발을 겨누는 게, 누가 사냥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침 잘됐군. 포유류는 아니더라도, 어디 한 번 확인해볼까!"

나는 히드라의 고기를 찔러둔 검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

키시싯!

내가 직접 달려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늪의 게는 나를 향해 진흙으로 만든 것 같은 거품을 뿜어냈다.

독인가?

아니다. 그냥 시야 교란을 위한 거품이다.

진짜는 저기, 나를 향해 휘두르려는 집게.

"흐음!"

나는 집게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놈의 집게를 붙잡고 위로 크게 뛰었다.

쿵!

게의 등딱지 위를 밟자마자, 놈의 다리가 양옆으로 퍼진다.

나보다 몸집이 더 크다고 해도, 내가 전력으로 찍어누르는 걸 버틸 수는 없다.

"너, 히드라보다 약하잖아."

우두둑!

나는 뒤에서 집게발을 꺾었다.

나를 향해 휘둘렀던 집게발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몸통에서 뜯어졌고, 나는 두 손으로 비틀어뽑은 집게발을 저 멀리 불타는 히드라 근처에 내던졌다.

"제우스 신도 궁금해할 거다. 히드라의 독이 얼마나 강한지."

나는 사자가죽 안에 달아둔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냈다.

구슬은 보석처럼 단단했지만, 이 안에는 히드라의 독이 들어있다.

그리고 사용법은, 너무나도 간단.

할짝.

나는 구슬을 입에 넣고 한 번 핥은 뒤, 내가 밟아 으깬 등껍질의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퉤!"

히드라의 독구슬을 핥은 뒤, 그 침을 입에 모아 늪게의 살점을 향해 뱉어낸다.

내가 구슬을 빨 때는 히드라와 키스를 할 때에 느꼈던 그녀의 신선한 타액맛이었지만, 수컷과 싸우면서 입안에 튀었던 놈의 더러운 피맛과 비슷했지만, 이 독액은 분명 원전처럼-

키이이익!!

게가 순식간에 몸을 뒤집는다.

어찌나 격렬한 움직임인지, 게가 앞뒤로 마구 움직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나를 떨쳐내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을 치는 움직임이었다.

"어, 으음...."

나는 적당히 놈에게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늪의 게는 늪을 향해 뛰어 몸을 뒤집으며 바등바등거렸다.

마치 독액이 묻은 살점 부분을 진흙으로 닦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고, 그 처절한 모습에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이거 쓰면 안 되겠는 걸."

정말, 끔찍한 고통을 느끼다가 죽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결코, 결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그런 물건.

정말로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만 써야겠다.

설령.

그 존재가 신이라서, 평생동안 저런 고통을 느끼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 * *

레르네 늪을 떠나 약 한 달.

나는 히드라를 불태워 히드라의 흔저을 제거한 뒤, 카드모스 대제전에 돌아왔다.

"아, 아니. 그건 또 뭐요...? 물뱀의 머리인가...?"

"히드라의 머리."

"히이익!!"

테베성의 입구에서 또 나를 본 병사는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아무래도 '히드라'라는 이름부터 상당히 압박으로 다가오는 만큼, 병사들은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 그런 걸 함부로 가져오면!!"

"안심하시오. 독은 없소. 만약 여기에 독이 남아있다면, 여기 오는 길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히드라의 독에 중독되었겠지. 이건 그냥 증거로 가져온 물건이오."

다 불에 타서 딱 형태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지, 진짜 히드라인 겁니까...?"

"믿든 안 믿든, 그건 카드모스 대제전에서 조사해서 확인할 일이지. 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할 뿐이오. 나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우스 님게 맹세코."

"허, 허어...."

점점 제우스 신에 대한 맹세가 앰창급으로 자주 쓰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신에 대한 맹세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없다.

"그럼, 나는 이만."

향해야 할 곳은 왕성.

"아앗, 헤라클레스! 이번에는 또 뭘 잡아온...."

"히드라."

"으아아악!! 헤라클레스가 테베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독 없소."

나는 경비를 지나, 테베의 섭정이자 현 국왕, 크레온 왕이 기다리고 있을 왕성으로 향했다.

"그, 그게 정녕 히드라란 말인가?!"

"그렇소."

왕성의 옥좌에 앉아있던, 하지만 내가 히드라라고 밝히자마자 바로 옥좌 뒤로 숨어버린 왕도 내가 잡아온 존재가 히드라라고 믿지 않았다.

"정말, 히드라인가요?"

"그대는...."

"메가라. 제 이름을 잊은 건가요?"

"너무 오래되어서."

한 번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몇 달씩 휙휙 지나가버리니 까먹을 수밖에.

그것도 내가 섹스한 여자도 아니고 그냥 국왕의 공주일 뿐인 여자라면.

'근데 왜 쟤는 내가 히드라를 잡았는데도 되게 안 좋아하는 것 같지.'

그냥 괴물을 왕성에 데리고 왔다는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뭐, 딱히 상관은 없다.

"지, 진짜 히드라 맞는가? 막 죽었는데도 독을 뿜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영 믿지 못하는 군. 이럴 줄 알았으면 히드라의 몸통을 그대로 가져올 걸 그랬어."

"히, 히익...!"

중요한 건 내가 히드라를 잡았다는 것 뿐이니.

"카드모스 대제전에서 조사하면 알게 되겠지만, 나는 히드라를 봉인했소. 아홉 개의 머리를 자르고, 레르네 늪 지하에 처박아뒀지."

"히드라는 머리가 무한히 부활하는 존재일텐데요?"

"부활하면 부활하는대로 바로 모가지를 잘라냈지. 한 1405번 넘게 잘랐나. 그러고 나니 더 이상 부활하지 않더군."

실제로 1405번 잘라냈는지는 잘 모른다.

실제로는 100번도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저들이 그걸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저 레르네 늪에 만들어둔 무덤 뿐.

그리고 그 지하에 히드라가 머리가 모두 잘린 채 살아있다는 것 뿐.

"증거가 필요하다면 보여줄 수는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무, 무엇인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으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내게 증거를 요구하시오. 그 대신, 나는 이걸로 나의 진실성을 증명할 것이니."

나는 엄지를 내 입술에, 새끼 손가락을 내 이마에 올렸다.

"스틱스 강에 맹세코, 나는 히드라의 머리를 모두 자른 다음 레르네 늪에 처박아두고 왔소. 나 혼자 히드라를 잡았지."

그렇게.

나는 히드라 사냥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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