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한 자.
그리고 거기에 '히드라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시 헤라의 영광!
이전에 네메아의 사자를 잡아왔던 때보다는 덜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성과를 축하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씁쓸한 부분이 많았다.
왜?
내가 히드라를 사냥한 걸 아무도 믿지 않아서?
아니.
-그, 혹시 히드라의 독이라는 것은...?
다들 히드라의 독을 찾더라.
내가 히드라를 사냥한 방법을 물었고, 내가 대충 '머리를 잘라 단면에 불을 지펴 지져놓은 다음 재생을 늦췄다'라고 말하고 난 다음, 그들은 하나같이 은근한 목소리로 히드라의 독을 얻었는지 물었다.
-히드라의 독? 그걸 챙길 정신이 있었으면 애초에 잡지도 못했을 것이오.
-아, 그런가.... 그건 아쉽군.
-히드라의 독은 왜 찾는 것이오? 누구 죽이려고?
-아, 아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내가 뭐 사람 독살하려고 독을 찾는 그런 파렴치한 자 같은가! 나는 그냥 그 독이라는 게 얼마나 강한지 확인하려고....
"썩을 놈들."
하나같이 죄다 좆간이었다.
어떻게 좆간이 아닌 놈들이 한 명도 없었다.
테베의 섭정 크레온마저도 히드라의 독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히드라의 독만 있으면'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었다.
왜 히드라의 독을 찾는가?
그건 당연히 히드라의 독이 신조차 위협하는 사상 최악의 독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히드라의 독을 인간을 향해 사용하면서 슬슬 자신의 힘을 과시하다가, 언젠가 훗날에는 신을 향해서도 히드라의 독을 사용하려고 하겠지.
신성모독을 위해, 히드라의 독을 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뻔하지.'
그래서 나는 히드라의 독을 얻지 못한척 했다.
하지만 제우스 생활이 오래 되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헤라클레스 왕세손으로서 왕성에서 지냈기 때문인 걸까.
나는 욕심 가득한 인간이 욕망앞에 선을 너무나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말았다.
콰ㅡㅡㅡ앙!
주먹을 옆으로 휘두른다.
벽에 구멍이 뚫리며, 손을 뻗자마자 '헉'하면서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딜 남의 옷을."
"크아악...!!"
뚫린 벽 너머로 뻗은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자, 붙잡힌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지른다.
"심지어 내 방을 함부로 뒤져?"
"크아악!"
나는 놈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샤워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놈을 발로 짓밟았다.
"남이 씻는 동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정말."
"크, 으으윽...!"
"너도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겠지. 나를 죽이러 왔을 리는 없을테고, 내가 히드라의 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습격한 것일 터."
뻔하다.
독심술이 없어도, 내 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려는 놈이 다 그렇다.
여태까지 안 그런 놈이 없었다.
"내 자지를 몰래 따먹으려고 들어오는 여자는 역강간으로 봐줄 수 있어도, 사내새끼가 들어오는 건 못 참지."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자, 잘못했어! 다시는, 다시는 노리지 않을게!!"
도둑은 절규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래. 억울하겠지.
차라리 히드라의 독이라도 찾았다면 그걸 가지고 날라 역으로 협박할 수 있었을텐데, 독도 찾지 못하고 내게 잡혀버렸으니.
"그래. 다시는 노리지 못하게 해야지. 너 말고도 다른 놈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본보기를 보여야지."
헤라클레스의 물건을 노리는 자, 이렇게 딜 것이다.
쾅!
"크아아악!!"
나는 방 안에 있던 밧줄을 이용해 놈의 발목을 묶었다.
그리고 창 밖에 있는 나무를 향해, 놈을 집어던졌다.
"끄아아악!"
나무와 부딪칠까봐 비명을 지른다.
이제 그보다도 더한 고통이 있을텐데, 놈은 그것도 모른채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 그만둬! 이대로 떨어지면, 흐억, 머리부터...!"
"아, 놓으라고?"
"아, 아니!!"
우지끈.
도르래처럼 지탱하고 있던 나뭇가지가 순간 아래로 쑥 내려왔다.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지에 도둑은 금방 색이 되었다.
"괜찮다.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 몇 번이고 걸어뒀거든. 아, 이제 슬슬 한계려나?"
"그, 그만둬! 내 차례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럼 운이 없는 거지."
"미,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테니까...!"
얼굴에 피가 몰린 듯 시뻘게진다.
혹시 죽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곧 소란을 듣고 온 병사들이 급히 달려와 내게 손짓했다.
"헤라클레스 공!!"
"아, 왔나. 그럼 사후처리를 부탁하지."
나는 그대로 밧줄을 놓았다.
도둑은 아래로 떨어졌고, 병사들은 도둑을 거꾸로 잡았다.
"후, 사, 살았...."
퍼ㅡㅡ억!
병사들이 도둑을 매타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창에서 계속 바라보고 있자, 병사들은 더 거칠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도둑을 폭행했다.
미개한가?
모르겠다.
현대인의 감성에서 보면 미개하기 짝이 없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스다.
심지어 신화의 시대.
신이 직접 이름에 영광을 내려준 자의 물건을 훔치려고 했으니, 저렇게 얻어터지는 건 오히려 자비다.
적어도 살아는 있으니까.
살아서 회개할 기회는 있으니까.
이대로 죽는다면 명계로 간 다음, 바로 지옥으로 떨어질테니까.
"...후."
히드라의 독.
히드라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계속 독을 찾고 있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 전부 어떤 건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으니까.
네메아의 사자도, 히드라도, 그리고 수많은 괴물들을 때려잡은 최강의 영웅이 어떻게 죽었는가?
공교롭게도, 히드라의 독 때문에 죽었다.
물론 나는 지금 히드라의 독에 내성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즉.
저들이 히드라의 독을 찾는 건, 나라는 존재를 죽일 수단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히드라를 죽인 헤라클레스를 죽인 누구누구.
그 명예를 위해.
그것이 명예로운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 * *
"너도 고생이 많다.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는 히드라의 독을 훔치려고 드는 놈들 때문에."
"안 그래도 지금 그 놈들 때문에 확 히드라 무덤가서 독이라도 꺼내올까 생각 중이다."
시간이 겹쳤다.
오랜만에 나는 테세우스를 만났고, 내 방에서 테세우스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너, 그 동안 되게 실적 많이 냈던데? 그 작은 몸으로. 굉장하군."
"무식하게 그 큰 덩치로 괴수 둘이나 잡은 분만할까."
"아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나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칭찬을 해도 지랄."
"나도 칭찬한 건데?"
오랜만에 만나도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칼은 술 때문에 살짝 붉어진 얼굴보다 더 핑크빛이었고, 점점 더 여자처럼 되어가고 있다.
"혹시 악당들 중에 너 따먹으려고 하던 놈 있었냐?"
"아, 미친. 그런 이야기는 왜 해?"
"어쭈. 있었나봐? 더럽게 정색하는 거 보니까."
"있었으니까, 씨발, 정색하는 거지. 왜, 너도 나 따먹으려고?"
"미친 개소리를 하고 있네. 내가 너를 왜 따먹냐. 자지달린 놈이."
"어떤 놈은 내 자지 잘라낸 다음 뒤에다가 박으면 된다고 지랄을 해서."
"......."
"상상하지 마, 미친 새끼야."
"그딴 더러운 상상을 왜 해."
들켰다.
그래도 역시 그건 아니다.
여자를 상대로 애널 섹스를 할 수는 있어도, 그런 건 티탄을 상대로나 가능한 법.
남자의 자지를 자르고 애널에 박는다는 건 저기 판도라의 상자로 멸망시킨 호모올리브 구인류 놈들이나 할 짓이다.
"그런데 진짜로 그런 놈이 있었어?"
"어."
"어떻게 했는데?"
"오히려 놈의 자지를 잘라버린 다음, 놈을 발정난 개새끼들 옆에다가 집어던졌지."
"개새끼들...?"
"어. 진짜 개. 크으, 네가 그 꼴을 봐야 하는데."
"미친놈이. 왜 나를 상상하게 만들고 지랄이야."
나는 술잔을 집어던지려고 했고, 테세우스는 킥킥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야."
"왜."
"만약에 내가 진짜로 히드라의 독이 있으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좋은 무기가 있네. 부럽긴 한데, 그거 나한테 쓸 거냐?"
"아니. 네가 나한테 자지 박으려고 들거나 엉덩이 좌우로 벌리면 그 때는 써주마."
"그럼 평생 나한테는 쓸 일이 없고, 우리 가족이나 우리 왕국 사람들한테 쓰지만 않으면 뭐. 아, 아니다. 갑자기 미쳐가지고 도시에 히드라의 독을 뿌리거나 그런 것만 아니라면."
탁.
"무고한 사람에게 히드라의 독을 뿌려서 죽이는 대량학살자가 된다거나 그런 거 아니면 뭐 어때?"
테세우스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
"그건 네가 얻은 전리품이고, 네가 그걸 어떻게 하든말든 그건 네 자유지. 난 관심없다. 내가 관심있는 건...악당이면서 괴물 뿐이야."
"괴물?"
"어."
"괴물은 내 전문인데."
"괴물이기도 한데 인간이기도 한 경우라서."
"뭔데?"
"미노타우르스."
"아."
관심이 사라졌다.
흥미가 사라졌다.
암컷이라면 나도 흥미가 생기겠지만, 미노타우르스는 내 귀에도 확실히 들어온 만큼 분명한 수컷이다.
"그래. 미노타우르스 너 해라. 괜히 미노타우르스한테 갔다가 역으로 잡힌 다음 따먹히지 말고."
"내가 할 소리. 막 이상한 괴물한테 잡혀서 암컷처럼 굴려지지나 말라고."
"내가 암컷처럼 다루는 한이 있어도, 그럴 일은 없다. 흐흐흐."
나는 테세우스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래서 너는 뭘 잡으러 갈 건데?"
"글쎄. 아직 고민 중인데, 대제전에 올라온 공고문은 죄다 고만고만해서."
히드라를 잡고 나니, 뭔가 죄다 약해보이더라.
"근데 빨리 하나 정하기는 해야 해."
"왜?"
"개같은 놈들이 나를 자꾸 이용하려고 하더라고. 주로 왕가에서."
"...크레타 왕가에서?"
"어. 히드라 사냥군을 이용하려고 하더라."
뭐라더라.
"아르테미스 여신의 황금 사슴을 산 채로 잡아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냥, 한 마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왕의 면전에 대고 말했다.
"좆이나 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