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가족을 위해 바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족의 가족을 위해서도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젠장, 그리스 최고의 사냥꾼인 내가 여기에서 똥이나 치우고 있어야 하다니."
"너무 불평하지말고."
옆에는 아직도 키가 1cm도 자라지 않는 '남자', 테세우스가 나와 함께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다.
땅을 판다기보다는 물길을 낸다는 쪽이 더 어울리겠지만, 이제 그 물길도 머지않았다.
"네가 이걸 생각해낸 덕분에 저 찌든 걸 일일이 청소하지 않아도 되게 생겼잖아. 그렇지?"
"당연하지. 저걸 어떻게 일일이 청소해. 아무리 이웃나라 동맹국이라고 해도, 저걸 청소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젠장, 어디가서 따질 수도 없고."
우리가 물길을 트고 있는 수로의 끝에는 거대한 축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외양간이지만, 설비가 수상할 정도로 깨끗하다는 걸 제외하면 그 내부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더럽다.
"헬리오스 신의 축복을 받은 소를 길러봐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소들이 똥통에서 구르면서 똥을 먹고 자라는데. 으으, 똥같은 이야기하니까 더럽게 짜증나기만 하네."
마음같아서는 헬리오스를 잡아다가 저 외양간에 대가리를 처박게 하고 싶지만, 그건 내가 인간으로서 수명이 다하고 저기 올림포스로 올라갔을 때의 이야기다.
심지어 저 외양간에 수백 년 동안 청소가 이루어지지 않은 숙변은 나와 테세우스, 그리고 테베의 병사들이 한 번에 해결할테니 헬리오스를 저기다가 처박을 수도 없다.
"젠장. 야, 테세우스. 게이 왕이 저거 청소 끝내면 저 소의 절반을 주겠다고 한 거, 확실하지?"
"물론. 계약서까지 썼다고. 계약서를 썼는데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멸망 가는 거지."
테세우스는 자신의 품에 있는 파피루스를 슬쩍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붉은 리본이 단단히 묶여있는 파피루스에는 그가 카드모스 대제전에 의뢰한 내용이, 그리고 그 의뢰를 맡은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얻을 보상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현대에서 나름 계약서 좀 봤던 내가,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나만큼이나 똑똑하다고 인정하는 테세우스가 교차로 검증했다.
계약서에 문제는 없으니, 나머지는 해결만 하면 끝.
"게이 왕, 분명 우리가 이렇게 하루 만에 끝내버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다. 분명 몇 년 동안 여기서 똥이나 퍼나르면서 개고생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다가 슬쩍 여자 보낸 다음, 애 생기게 만들고. 뻔하지."
"뭐, 다른 왕국들도 다 똑같지만. 그런데 너는 왜 아우게이아스 왕을 멋대로 게이왕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름에 게이가 들어가니까. 자, 그러면, 부순다!"
나는 특제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물길 근처에서 삽을 들고 있던 병사들이 급히 좌우로 거리를 벌리고, 테세우스 또한 마지막으로 수로를 쭉 확인하며 최종 점검을 마쳤다.
"부숴버려."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섹스해야지!"
"하여튼."
콰ㅡㅡㅡㅡㅡ앙!!
망치로 둑을 허물자, 강물이 순식간에 우리가 파놓은 수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졸졸 흐르던 물이 서서히 둑이 무너져내린 순간, 콸콸 쏟아지며 강의 물줄기가 바뀌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급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야, 시원하게 내려가네."
쏴아아아ㅡㅡㅡㅡ!!
"혹시나 테세우스놈 오줌 싸는 것처럼 시원찮나 싶었는데, 다행히 내가 싸는 것처럼 시원하게 내려가는구만!"
"뭘 싼다는 거야. 오줌? 아니면 좆물?"
"당연히 둘 다지."
"미친 놈."
테세우스는 나를 향해 경멸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다.
그만큼 강한 물줄기가 순식간에 외양간을 덮쳤고, 외양간의 바닥을 쓸어버렸으니까.
"저 외양간, 헬리오스 신의 가호를 받은 거 맞지?"
"당연하지. 그게 아니라면 수백 년 동안 쌓인 오염물질 때문에 진작에 썩어 문드러졌을 걸."
강물을 끌어다가 외양간을 쓸어버렸음에도, 외양간은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밤이 아니라 낮에 이걸 해서 다행이지. 헬리오스 신의 가호가 닿고 있으니."
태양광으로 외양간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아무리 강줄기가 강하다고 해도 강이 태양신이 가호를 내린 축사를 망가뜨릴 수 있을 리는 만무.
대신, 분변은 충분히 씻어낼 수 있다.
"내려가기 싫다."
쏴아아아ㅡㅡㅡㅡㅡㅡ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당연히 오물을 씻어낸 물은 저 멀리 축사 아래로 흘러가는 법이며, 그 끝은 우리가 미리 파놓은 새로운 구덩이가 되리라.
"나중에 저기 호수가 생기면, 우분호라고 불러야겠어."
"소똥이 호수 바닥에 가득한 호수라니. 이야, 끔찍하기 짝이 없는 걸."
"그러니까. 뭐, 적당히 시간 좀 때우다가 물길이나 막자고. 축사 상태 보고."
"...야."
막 목걸이에 걸린 로켓을 펼치려고 한 순간, 테세우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 진짜 결혼 왜 한 거냐?"
"응?"
"결혼해서 이런 귀찮은 일 하는 것보다, 그냥 네가 따먹고 싶은 암컷 찾아서 섹스하고 다니는 걸 선호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런 이야기냐."
아직 결혼하지 않은 테세우스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새끼. 결혼 해보면 안다."
아.
빨리 테베로 돌아가서 메가라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존나게 빤 다음, 자지를 쑤셔박으면서 키스하고 싶다.
"딴 여자랑 섹스를 안 하는 게 아니라, 공주님이랑만 섹스하려고 결혼한 거 아니냐?"
"그건 아니지."
메가라랑 섹스는 해도, 앞으로 평생 메가라와 섹스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너는 빵이 있다고 해서 비스킷 안 먹냐?"
"우와, 그거, 공주님 앞에서 한 번 해봐라. 아주 뒤집어질 걸?"
"대놓고 하는데?"
나는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물줄기에 한 번 손을 넣은 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메가라 본인도 알고 있어. 그리고 가끔 다른 여자 초대해서 즐기고는 하지."
그리스 최초.
초대녀 등판.
"넌 정말 유능한 쓰레기야."
"능력있는 남자가 여자 여럿 취하겠다는데 그게 뭐? 너도 어차피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잖냐."
"나는 모험의 과정에서 여러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거고, 너는...에휴, 아니다. 말을 말자."
모처럼 역공을 펼치려고 각을 잡고 있었는데, 테세우스는 손을 흔들며 먼저 물러났다.
"정리 될 때까지 고기나 뜯자고."
"하긴. 남은 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느긋하게 고기나 뜯으면서 시간 보자고."
쏴아아아.
"으아아. 빨리 끝내고 저기 있는 소들 데려간 다음, 소고기 먹고 싶네. 업진살 아주 살살 녹겠어."
축사의 청소가 완료될 때까지, 우리는 느긋하게 고기를 뜯었다.
* * *
"줄 수 없네."
"뭐라고?"
아우게이아스 왕의 앞에 가서 보고를 하자마자, 놈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 것처럼 바로 얼굴을 싹 바꿔버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약서에는 분명 축사의 청소를 완료하는대로, 소의 절반을 주시겠다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계약서, 내가 썼던가? 재상, 내가 썼나?"
"계약서를 작성하기는 했지만, 축사의 소를 준다고는 하신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오오, 그래. 그렇군. 하하, 내가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아.
그렇구나.
이 인간, 치매를 연기하고 있는 거구나.
'건방지게.'
그 동안 축사에서 고통받을 우리에게 술을 먹이고 여자를 보내서 아기씨를 얻으려고 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
아우게이아스 왕의 행동에 놀아날 생각도 없다.
"일단-"
"오오, 그래. 일단 테세우스 양. 그대와 함께-"
"양?"
테세우스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진다.
나는 왜 저 왕이 치매를 연기하나 싶었더니, 내 아기씨를 노리는 게 아니라 테세우스의 아기방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씨발...."
"야, 테세우스. 그거 하는 게 어때?"
"할까? 거지같은데. 신성한 계약을 위반하는 자를 농락했다고 해서, 신께서 뭐라고 하지는 않으실 거 아냐."
"그렇지."
"둘이 무슨 대화를...."
펄럭!
나는 테세우스의 옷을 위로 들었다.
그리스 남자들 옷이 다들 그렇지만, 남자들도 무릎 위까지 오는 치마형태의 옷을 입고 있기에, 내가 앞을 들어올리면 바로 그 아래가 드러나기 마련.
"좆이나 까라."
뿌우우.
아우게이아스 왕의 눈이 아래로 향한다.
테세우스의 다리 사이, 우람하게 아래로 툭 떨어진 그 덩어리는 앙상한 아우게이아스 왕의 팔과 비견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남...자?"
"남자다, 이 개새끼야."
계약을 모른척하고 엿까지 먹이려고 했던 아우게이아스 왕에 분노한 테세우스는 왕을 향해 중지를 들었다.
"내가 여자인 줄 알고 어떻게 껄떡거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남자다, 이 개자식아!"
왕족 모독이기는 하지만, 계약서가 이쪽에 있는 이상 아무런 문제는 없다.
"계약서를 어떻게 빼앗아서 폐기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암."
왕의 인장과 지장이 찍힌 계약서만 지키면 나중에 테베로 돌아가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카드모스 대제전과의 계약을 어긴 건 아우게이아스 왕이니까.
"...쓰읍."
왕은.
"오히려 좋아."
"뭐...?"
"남자라고 뒷구멍이 없는 게 아니지. 흐흐, 내게 뒤에서 박히면서, 빳빳하게 발기한 걸 줄줄 흘리고 다닐 걸 생각하니-"
이름값을 해버리고 말았다.
"야, 헤라클레스."
"아아. 소를 도축하는 게 아니라, 일단 왕부터 도축해야겠군."
제우스 신의 가호 아래.
그리스게이는 죽인다.
이후.
왕궁 내에서 소요가 일어났고, 아우게이아스 왕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