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라와 결혼을 한 이후, 약 반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여러 괴물들이 테베를 습격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직접 나서서 괴물을 처리했다.
사방팔방에 메가라와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소문이 났고, 그게 어느덧 반 년.
우리 부부는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어쩔 건데."
"......."
메가라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가만히 있었다.
펠라봉사를 위해, 자지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게 아니라, 우리는 진지한 이야기를 위해 침대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다가 메가라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뭐, 꿇는 게 당연하다.
나와 달리, 메가라에게 하자가 있는 부분이니까.
"아니, 왜 자궁은 안 달고 왔어?"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요."
메가라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혀를 내밀었다.
"그런 거 하지 마라. 그런다고 젊어보이거나 그런 거 없어."
"무엇...."
한 소리를 하자마자 바로 표정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저런 표정을 짓고 싶은 건 메가라가 아니라 나다.
"야, 너 진짜 어떻게 할 거야.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자식도 낳지 못한다고 하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그...."
그렇다.
현재, 우리에게 봉착한 문제는 '불임'이다.
"그리스에서 여자가 임신 못하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너잖아. 그런데 왜 보지랑 뒷보지는 달았으면서, 왜 애를 낳을 수 있는 자궁은 안 만들어 온 건데?"
"결혼은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러니까."
메가라의 몸에는 자궁이 없다.
자궁이라는 장기처럼 생긴 정액보관소가 있을지는 몰라도,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한 장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신의 유희를 위해 만들어진 소체, 플레이야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구형.
테베가 만들어지기도 이전에 내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만든 옛 플레이야스 중 하나를 얻어다가 개조한 건지, 메가라에게는 자궁이 없었다.
뭐, 그건 당연한 일이다.
자궁이 있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플레이야스는 한정되어있고, 그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고, 전부 헤라가 관리하고 있으며, 당장 제우스가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플레이야스 하나 얻은 것도 용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 지금 이 상황은 메가라에게 몹시 난처한 상황이다.
"야. 나는 일단 내 정자를 증명했다?"
키타이론 산의 암사자, 키타산을 잡고 난 뒤.
나는 테스피아이 왕국의 왕 테스피오스의 제안에 따라, 50명의 공주를 상대로 모두 정자를 주입해줬다.
그리고 엄청난 수의 공주들이 한 방에 임신했다.
그곳의 공주들은 모두 배가 부른 채 태교에 힘을 쓰고 있으며, 임신하지 못한 공주들은 테베에 와서 내 씨를 받아가겠다며 벼르고 있다고 하더라.
물론 테베에 왔더라도 내가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함부로 품을 수는 없지만, 메가라가 이런 상황이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가 크레온 왕에게 이상한 신탁을 내리는 바람에, 아주 상황이 좆됐어. 그냥. 그렇지?"
"누, 누가 그런 이상한 신탁을 내렸을까요. 하하...."
"누구겠어. 위대하신 우리의 대지모신, 메-가이아-라님께서 내리신 거 아니냐."
"아으으."
나는 메가라의 가슴에 대고 손을 가볍게 스냅하며 젖치기로 그녀를 괴롭혔다.
"임신하지 않으면 테베가 멸망해? 야, 임신해. 어서. 테베 멸망을 막자고."
"히잉...."
"히잉은 무슨 히잉이야. 요즘 플레이야스에다가 인간처럼 젊게 산다고, 젊은 애들 무리하게 따라하려는 것만큼 추한 게 또 없어."
"......."
"임신도 못하는 여자가 말이지."
메가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스 문화에는 없지만, 여기에서 더 고개를 숙였다가는 도게자라도 할 것 같은 자세였다.
"에휴. 일단 방법은 생각해보자. 우리가 매일매일 섹스를 하고 있으니, 그냥 당분간은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녀. 아니면 헤라 여신께 제발 임신하게 해달라고 빌어보든가."
"아니, 그래도 헤라 여신에게...."
"너는 지금 메가라거든? 플레이야스지만, 인간이거든?"
"으으으...."
"하아. 됐다. 하여튼, 다시 헤라클레스와 메가라 부부로 돌아가자면."
나는 메가라의 양볼을 잡고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우리, 한 번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방법을 찾아봅시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상한 방법도 하지 마시오. 부부라는 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고 통보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이니."
"아...."
"아시겠소?"
"...네, 여보."
메가라는 진지한 자세로 내게 다시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녀를 품고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내가 이겼소."
"...네?"
"만약 운명이 정해져있던 거라면, 그대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자궁을 달고 왔겠지."
"......아."
메가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래도, 인간의 운명이 정해진 건가? 응?"
"......저, 저랑 당신의 경우라 특별한 것 뿐인데요."
"하여튼, 말은."
나는 메가라의 머리를 잡고 크게 헝클였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당혹감은 이미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게, 설득된 거다.
헤라클레스와 메가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해진 운명대로 따른다면, 메가라는 자궁이 있는 상태에서 지금쯤 내 아이를 배에 품었을테니.
"하여튼, 생각을 좀 해봅시다. 당분간은 함께 고민하면서."
마냥 섹스만 하기에는, 나는 이 나라-미케네의 부마니까.
"내일은 나 혼자 손님들을 맞이할테니, 안심하시오."
* * *
그리스의 동쪽, 트라키아에서 손님이 오기로 했다.
그 손님들이 생각보다 더 거친 자들이라, 나는 크레온 왕의 사위로서 왕의 옆에서 그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트라키아의 왕, 디오메데스 왕이 전하를 뵙기를 청합니다."
"들라하라."
어딘가 조선 왕실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왕성의 모습은 그리스의 신전같은 느낌이니 애써 위화감을 억누르며.
"끌끌끌끌."
붉은 융단을 경박하게 밟으며, 팔자걸음으로 들어온 남자-디오게네스 왕은 걸음걸이만큼이나 인상이 경박한 남자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테베의 왕. 본인은 디오메데스요."
"그래서, 이곳까지 온 이유는?"
"왕성에 들어오자마자 이리 까칠하게 굴다니. 흥,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라고 뻗대는 건가?"
"그대는 싸우러 온 건가? 그렇다면 선전포고를 하라."
굳어가는 크레온 왕의 엄포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무, 무슨...."
미리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었기에, 디오게네스 왕은 마치 의자에 앉아있던 사자가죽 장신구가 갑자기 사람처럼 몸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겠지.
한 발, 두 발.
다가가자마자 뒷걸음질을 치며 놀라는 모습을 보니, 위협은 충분한 것 같다.
"조심하라, 디오게네스 왕. 이곳은 테베. 위대한 카드모스 대제의 후예, 크레온 왕께서 다스리는 곳이다."
"다, 당신은...?"
"크레온 왕의 사위이자, 그리스 최강의 괴물사냥꾼. 헤라클레스."
"......?"
모르는 것 같다.
테베에서는 헤라클레스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아무래도 테베에서 먼 곳에서 온 자들이다보니 내 이름을 모르나보다.
'하긴, 요즘 멀리 안 나가긴 했지.'
명성을 추구하기보다 섹스를 추구했으니, 내 이름도 테베 안에서 머무르는 게 정상.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히드라 사냥꾼."
"...히드라! 과연, 당신이 그...."
"그렇소. 그러니, 조심하시오."
"끙...."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악랄한 녀석의 이름을 언급하면 되는 바.
"그래서 찾아온 용건이 무엇인가, 디오게네스 왕."
디오게네스가 한 풀 꺾이자, 내 기세에 편승한 크레온 왕이 디오게네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별 건 없고, 우리 왕국의 죄수가 이곳까지 도망쳤소. 그 죄수들을 잡으러 왔소."
"죄수?"
"그렇소. 얼굴과 목, 등에 죄수와 노예의 문신을 하고 있으니, 분명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들은 우리 왕국의 중역 죄인. 감히 살려둘 수 없는 자들이오."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의 암말, 새끼들을 죽였소."
"......."
왕의 재산은 곧 그 나라의 재산.
왕실의 자산에 상해를 입혔으니, 왕국 입장에서는 노예로 만들 명분은 있다.
"카드모스 대제전에서 범죄자 사냥꾼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신상을 약간만 조사하면 되는 바. 그들을 찾는 즉시 내가 처분할 것이며, 혹시 발견하거든 우리 왕국으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바이오."
"그런가. 그런 거라면 뭐...."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런데 디오게네스 왕. 그대의 뒤에 서있는 그 네 명의 여자들은...."
"아, 이쪽은."
디오게네스 왕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뒤에 선 네 명의 여인을 가리켰다.
"말이오."
"...말?"
"그렇소. 이렇게 인간처럼 변할 수 있지만, 넷 다 암말이지."
"오."
군침이 돈다.
혹시 암컷 기간테스라면, 혹시 가능하다면 한 번 정도는 따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려 네 명이나 있으니, 한 명당 세 번 정도는 안에 싸지르면서 암컷 기간테스 특유의 쫄깃함을 느껴보고는 싶다.
"참, 대단한 변신술을 익혔지. 흐흐."
"혹시, 그 암말, 기-"
"사람을 먹다보니,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고."
"......?"
지금.
뭐라고?
"사람을 먹어?"
"그렇소. 이들은 나의 말로, 죄수들이 죽으면 야무지게 먹어치우는 녀석들이지."
"......."
"기껏 내가 이 녀석들의 교배에 성공했는데, 그 사냥꾼이라는 자들이...쯧쯧. ...뭐야?"
"아니, 별 건 아니고."
나는 나를 향해 흠칫 놀라며 물러나는, 말의 귀가 머리 위로 달린 암컷들을 향해 다가갔다.
"딜레마를 해결하기에, 딱 좋은 예시가 나타났군."
나는 그대로-
"괴물은, 죽인다."
가장 앞에 있던 암컷의 면상에, 죽빵을 꽂아넣었다.
일격, 필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