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226화 (226/235)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하여 인간인가?

여자의 모습을 했다고 하여 여자인가?

아니다.

이들은 괴물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으로 변한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처죽이는데, 다른 건 신경 쓸 이유 따위는 없다.

"지, 지금 무슨 짓인가!!"

"닥치고."

나는 옆에서 소리를 지른 디오게네스 왕의 얼굴을 붙잡고 저 멀리 날려버렸다.

그나마 인간이니까 죽지는 않을 정도로 멀리 날려버렸을 뿐.

곧 닥칠 상황을 생각하면, 날려준 걸 감사해야겠지.

"키샤아앗!!"

식인 암말들이 내게 달려든다.

인간을 잡아먹었다고 하는 놈들 답게, 가지런한 건치가 아닌 뱀파이어같은 사나운 송곳니를 세우며 달려든다.

콰득!!

꺄아아악!!

왕성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린다.

내 몸에 달라붙은 식인 암말들은 내 전신을 깨문 채 변신하기 시작했고, 곧 머리색과 같은 털색으로 변한 말들이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흥."

전혀 아프지 않다.

피부가 쓸리는 것도 없고, 가죽이 뚫리지도 않는다.

죽고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네메아의 사자 가죽은 그 어떤 갑옷보다도 단단하게 내 몸을 보호해주고 있다.

상대의 공격은 내게 닿지 않고, 나의 공격은 상대에게 닿으니.

빠ㅡㅡㅡ악!

한 번 더, 내 몸을 물어뜯고 있는 식인암말의 대가리를 후려친다.

몸을 비틀어 다리 한쪽을 크게 들어 걷어차고, 내 팔을 물고 있는 그대로 팔을 휘둘러 바닥에 처박고, 자유롭게 풀린 손을 이용해 식인암말의 인중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푸히이잉!!

암말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생전 고통이라는 건 제대로 겪어본 적도 없는 건지, 놈들은 한 번의 충격에도 크게 괴로워했다.

"쯧."

트리키아의 병사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내게 뭔가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인간을 잡아먹는 짐승들을 옆에 데리고 다니면 그걸 계속 지켜보면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으리라.

키샤아아앗!!

처음 인간인 채로 죽빵을 얻어맞았던 식인암말이 인간인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어딜."

나는 쩍 벌린 아가리를 그대로 손으로 붙잡았고, 녀석은 나를 향해 팔을 뻗으며 사자 가죽 안쪽을 긁어내려고 했다.

"어리석은."

손톱을 휘둘러 가죽이 아닌, 인간의 가죽을 공격하려는 건 분명 유효타다.

하지만 그 대상이 헤라클레스인 이상, 그 공격도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없는 법.

파ㅡ앗!

너무 집에서 섹스만 하고 지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죽음의 공포에 질린 짐승이 궁지에 몰리면 깨물 수 있다는 걸 까먹은 걸까.

"음...."

식인암말은 이빨을 앞으로 뻗어, 내 손바닥에 자기 송곳니를 쑤셔박았다.

원래라면 송곳니를 박아넣을 수 없는 구강구조였으나, 아까 전에 내가 놈의 얼굴에 정면으로 주먹을 꽂아넣은 바람에 이빨이 뒤틀린 걸 이용해 내 손바닥에 송곳니를 찔러넣었다.

"...후."

손이 갑자기 화끈거리고, 녀석은 그대로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계속 내 손바닥을 향해 송곳니를 밀어넣었다.

꽈아악!

나는 피를 흘리며, 놈의 얼굴을 그대로 손으로 붙잡았다.

송곳니는 더 내 살에 파고들지 못했고, 놈의 눈동자는 분노에서 서서히 당황과 공포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축하한다. 내게 상처를 입힌 거."

이게 얼마만의 상처인지 모를 정도로, 피를 본 게 너무나 오랜만이라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 그 정도는 해야 죽여마땅한 괴물이지."

이 식인암말은 기간테스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말이고, 짐승이고, 왕의 명령에 따라 밥 대신 인간을 사료로 삼았을 뿐이다.

만악의 근원은 디오게네스 왕.

하지만 디오게네스 왕이 만든 괴물이라고 해도, 그 괴물이 계속 사람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다면 죽여야 한다.

그러니-

"!!"

죽이려고 한 순간, 갑자기 암말이 뒤로 크게 물러났다.

손아귀에 힘을 빼고 뒤로 당겨, 놈이 돌진하는 순간 다시 정면으로 주먹을 꽂아넣으려고 했으나, 놈은 이상반응을 보였다.

"키아아악!!"

두 손으로 목을 붙잡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얼굴을 얻어맞고 하관이 붙잡혔을 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르기 시작했다.

벅벅벅벅.

손으로 목을 붙잡고 마구 할퀴고, 마치 목에 있는 무언가를 강제로 꺼내기 위해 쥐어뜯듯 스스로를 상처입히기 시작했다.

크, 크르르....

그런 식인암말의 모습에 다른 식인암말들도 내게 달려들려다가 주저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함께 살아온 동료일텐데 옆에서 부축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해하는 동료를 보며 내게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후."

당황스럽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고, 주변을 훑어보니 다른 이들도 모두 당황스러운-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위대한 사냥꾼 헤라클레스에 대한 경외감이 아닌.

마치 죽음의 신이나 명계의 길잡이를 바라보는 듯한.

아니면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겁에 질린 얼굴들.

마치, 인간이 힘으로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기간테스를 보는 인간들의 시선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그리고 그 원인이 있다면....

'역시 이게 문제로군.'

나는 피가 흐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를 바닥에 떨어진 암말의 옷에서 뜯어진 천으로 묶고, 지혈과 동시에 더이상 핏방울이 함부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리석은. 내 오른손의 봉인을 풀게 만들다니."

상황을 일단 모면하기 위해서는,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연극이 필요하다.

"짐승학살자의 오른손을 건드린 순간, 짐승은 네게 남은 건 오직 죽음 뿐이다."

키아, 크아아...!!

암말은 스스로 몸을 쥐어 뜯으며 피분수를 일으켰다.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손톱에는 살점과 피가 가득했다.

"짐승주제에 이 저주받은 오른손을 건드리다니. 쯧, 스스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을 운명을 택했군."

"저, 저주받은 오른손...?"

"무, 무슨 저주를...."

"흥.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건 저 식인암말들, 그리고 그걸 다루는 디오게네스 왕 뿐."

나는 겁에질린 세 암말과 디오게네스 왕을 왼손으로 가리켰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 놈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전부 죽는다. 다만, 자비를 베풀어주지."

나는 왕성 벽으로 다가가, 벽에 놓여있던 촛대를 왼손으로 들었다.

"자비롭게, 대가리를 깨뜨려주마."

오른손은.

거들 뿐.

빠ㅡㅡㅡ악!

도망치려는 식인암말의 뒤통수를 향해 촛대를 던지는 것으로, 나는 사냥을 시작했다.

* * *

"트라키아와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네요."

"흥."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돌아가는 길에 디오게네스 왕에게 신벌이 내린다면, 트라키아에서도 별다른 문제로 삼지 않을테니까."

"인간의 정치적인 문제를 신의 힘으로 해결하자?"

"뭐, 안 될 게 뭐 있어요."

"그것도 그렇군."

메가라의 간병을 받으며, 나는 내 오른손에 휘감긴 하얀 붕대를 다시금 살폈다.

"이 정도면...당분간은 의심받지는 않겠어."

"네. 그런데, 그 저주라는 소리...."

"짐승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주는 저주라는 건 맞지. 그저 그 이름이 '히드라의 독'이라는 건 다른 의미지만."

그렇다.

이전에 히드라의 독을 가진 이후, 그것은 내 몸에 스며들었다.

내 피 속으로.

그 어떤 이들도 내게서 히드라의 독을 찾지 못했으니, 그 이유는 당연히 히드라의 독은 내 몸 속에 있고 나는 히드라를 죽인 이후로 단 한 번도 피를 흘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처음으로 피를 흘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피를 한 방울 들이킨 식인암말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확인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을 잘못했을지도."

"뭘요?"

"임신말이오."

나는 메가라를 뒤에서 백허그로 끌어안았다.

"그대에게 자궁이 없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내 정자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풋. 만약에 그런 문제였다면, 저는 진작에 독에 중독되었을 걸요? 하루에도 열 번 가까이 정액을 받아내는데."

"정액은 괜찮지. 정자가 문제지."

히드라의 독이 피에 흐르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무정자증에 걸린 게 아닐까 살짝 걱정된다.

"다른 여자를 안아서 그 여자를 임신시킬 수도 없고."

"...한 번, 확인해보시는 건 어때요?"

"응?"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는 걸로, 헤라클레스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죠."

"첩을 들이라?"

"첩은 아니고."

메가라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저기, 다른 곳에 가서 잠깐 날뛰고 오시면 되겠던데."

"어디?"

"당신이 날뛰던 사이에, 테세우스가 찾아왔어요."

"테세우스가?"

"예. 당신보고 같이 갔으면 하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거기에서 확인해보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 정액의 상태를 확인해보자?"

"네. 여기에서 괜히 확인하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괜히 좆을 함부로 놀리면 좆될 수 있으니, 안심하고 좆을 놀릴 수 있는 곳이라면 괜찮을 터.

테세우스라면 지금 내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하고 충분히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걸. 테세우스는 악인을 사냥하러 다니는 녀석인데, 그 녀석이 나를 부른다고? 이 상황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경우가 있나?"

"여자들이 악인인 경우. 그리고...."

메가라는 인간을 향한 약간의 혐오감을 내비쳤다.

"태어나는 아기 중 남자 아이는 전부 죽여버리는 여자들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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