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지구의 허파'다.
남미에 있는 대규모 밀림, 정글을 나는 아마존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의미가 하나 더 떠오른다.
아마조네스.
여자 전사들.
아마존의 전사들.
아니, 그러면 그리스는 저기 남미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던 건가?
혹시 판게아가 판이 벌어져서 아메리카와 유럽이 떨어지기 이전, 가이아 보지가 벌어지듯 두 땅이 떨어지면서 대서양이 생기기 전에 그리스에서 아마존으로 사람이 들어간 건가?
그런 건 아니더라.
그냥 발음이 비슷했던 것 뿐이고, 아마조네스가 지키는 땅은 아마존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그러니까 동쪽에 있는 스키타이 지역에 아마존이라는 숲지대가 넓게 펼쳐져있는데, 거기에 사는 여자들이 여자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살아간다?"
"그래."
오랜만에 만난 테세우스는 내게 아마존에 관해 강의해줬다.
우리 신혼집에 테세우스를 초대했고, 테세우스는 로브 같은 걸 깊게 눌러쓴 제법 큰 키의 누군가를 데리고 우리집에 방문했다.
"아-마조스. 복잡한 거 싫어하는 거 아니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한쪽 가슴을 잘라낸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어로 그렇단다.
아-마조스.
한 쪽 가슴이 없는, 오른쪽 유방을 잘라낸.
그런 단어로 지칭하는 자들이 바로 아마조네스고,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이 아마존이었다.
위치는 그리스의 동쪽.
원 역사를 생각해보면, 대충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있더라.
제법 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못 갈 거리는 아니다.
그리고 안 갈 이유도, 명분도 없다.
알아버린 이상.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전부 죽여버린다. 확실한가?"
나는 알고 있다.
테세우스가 가져온 정보가 사실이라는 걸.
내 배경지식이 그렇다.
제우스 시절에도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 때는 신이었기에, 함부로 인간세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 지금, 인간인 헤라클레스는 다르다.
제우스가 인간세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호모게이 문제 뿐.
여자들끼리 모여서 여자들만의 왕국을 세운 채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것 까지는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들이 남성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다른 왕국들을 점령하고 남자를 지배하려고 들었다면, 그건 남자신인 제우스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이고 티탄 여신들이 족쳤겠지.
아마조네스의 행동들은 딱히 신으로서 어떻게 개입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강했다.
하지만 나는 개입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의 문화에 간섭하는 것은 세계의 규율과 원리에도 어긋나지 않고, 무엇보다도 테세우스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명분이 선다.
"너는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지?"
그러나 아무리 테세우스의 말이라도 쉽게 믿을 수는없는 노릇.
"네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내 아내를 두고 멀리 원정을 나갈 수는 없어."
"알아. 그래서 데려왔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인사해. 괜찮아. 내가 등을 맡길 수 있는, 뒤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친우다."
예전 같았으면 나름 표현도 거칠었을텐데, 테세우스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건지 표현이 점잖아졌다.
"...믿어도 되는 거죠?"
"그래. 소문은 어떨지 모르지만, 소문이라는 게 와전되기 일쑤잖아. 이 녀석, 겉모습은 거칠어보여도 누구보다도 강인한 전사다."
"당신이 말하는 거니까...믿겠어요."
아닌가?
그냥 옆에 있는 여자한테 남자답게 보이려고 하는 건가?
그렇다면.
"제가 먼저 소개를 하도록 하죠. 반갑습니다. 저는 헤라클레스. 그리스 최고의, 최강의 괴물 사냥꾼이며, 테베의 왕녀 메가라의 남편이며, 크레온 섭정의 부마이며, 미케네의 왕-에우리스테우스의 조카입니다."
테세우스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나도 점잖게 행동하는 수밖에.
참고로 미케네는 왕이 바뀌었다.
내가 메가라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조부는 왕위에서 물러났고, 그 뒤를 나의 삼촌뻘인 존재가 이어받아 미케네를 다스리고 있다.
"그리스 최고...."
"네메아의 사자, 히드라,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스팀팔로스의 청동새, 디오게네스 왕의 식인말. 그 외에도 나열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지요."
"아, 히드라는 들어봤어요. 굉장한...전사시군요."
여인의 눈이 반짝인다.
잠시 테세우스의 눈에서 불안감이 스쳤고, 나는 이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바로 눈치챘다.
"테세우스. 이분은?"
"아, 음. ...아마조네스 왕국의 네 여왕 중 한 명, 안티오페 여왕이다. 그리고...."
"테세우스 님의 아내입니다."
"오."
후드를 벗으며, 안티오페는 먼저 내게 인사했다.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는 전형적인 여전사의 상이었고, 보디가드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아마조네스의 여왕이 스스로 테세우스의 아내를 자처한다?
"축하드립니다. 형수님이라고 부르면 될런지."
"혀, 형수님...."
"말씀만 하십시오, 형수님. 이 헤라클레스, 친우의 곤경이라면 얼마든지 발벗고 나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테세우스라면."
정작 테세우스는 '이 놈이 왜 이렇게까지 나를?'이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지만, 곧 눈빛을 거두고 씩 웃었다.
"좋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건, 나와 함께 아마존으로 가는 거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여왕들을 제압하는 거다."
"제압?"
"나는 안티오페를 왕비로 맞이하려고 하는데, 아마존에서는 나를 왕비 납치범으로 생각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테세우스는 간단하게 상황을 요약했다.
"...그러니까 아마존을 붕괴시키자?"
이 무슨 급발진.
"바로 옆에 아마존의 여왕이 있는데, 아마존을 멸망시키자는 건 뭐야?"
"아마존은 멸망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안티오페는 단호한 얼굴로 스스로의 목을 손날로 그었다.
"저는 아마존 밖에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지를 달고 태어난다는 것만으로 죽이거나 하는 왕국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과격하시군."
"과격하더라도, 누군가는,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조네스는 숲을 빠져나와 주변 나라를 침공한 뒤, 남자들에게서 씨만 빼앗은 뒤 죽일 겁니다."
"즉, 남자들을 따먹고 임신만 한다음 남자를 전부 죽일 것이다?"
"예. 아마존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그런 사상을 가진 전사들입니다."
"어우야."
위험하다.
그래도 그들을 전부 죽이는 건 조금 마음에 걸리는-
"아마존의 전사들은 스스로를 아갈리아의 딸들이라고도 부릅니다."
"아."
갑자기 뭔가, 마음 한 구석에 걸리던 체증 같은 게 싹 사라졌다.
"테세우스. 안티오페 여왕. 좋습니다. 협조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해두겠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둘에게 엄포를 놓았다.
"헤라클레스가 나선다는 것은, 모든 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아마존이 멸망하게 될텐데, 그래도 괜찮다는 것인가?"
"...예."
"그것이 설령 아마존의 입장에서보면, 그대가 평생 고국을 배신한 존재라고 저주를 받는다고 해도?"
"예. 저는 각오가 되었습니다. 아마조네스가 아닌, 테세우스의 아내로서."
안티오페는, 사랑에 눈이 멀었나보다.
"좋아. 마침 잘 됐군. 이쪽도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메가라?"
나는 부엌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가라를 불렀다.
"나, 잠깐 다녀와야 할 곳이 생겼소."
"금방 다녀오셔요. 다녀오시는 사이, 저도 최대한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준비.
그것은 아마도, 헤라클레스와 메가라 부부의 '개연성'일 터.
잠시 떨어져야 하는 건 아쉽지만, 나도 메가라도 서로 시간이 필요했다.
딱히 갱년기라서 그런 건 아니고.
"좋아. 그럼, 아마존으로 가지."
목적지가 정해졌다.
* * *
쏴아아.
테베를 나와 배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둘에게서 아마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조네스의 역사, 풍습, 문화.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처럼, 아마조네스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아기라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우월주의.
여자만의 왕국을 만들어 살아가고, 여자가 모든 것을 하는 나라.
그런데 아이를 낳는 건 남자가 필요한 거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안티오페는 너무나도 간단한 답을 내어놓았다.
"길을 잃고 숲으로 들어온 남자를 잡아다가, 사지를 자르고 기승위로 따먹은 다음 죽으면 불로 태운다고?"
"예."
"그것 참."
남자를 사냥해서, 씨를 갈취하면 끝.
아마조네스에게는 섹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남녀가 즐기는 행위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번식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여자를 위한 번식 뿐.
"심각하군. 왕국 전체가 비처녀의 나라라는 건가?"
"예."
"음...."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티오페는 처음이었다."
테세우스가 바로 안티오페를 두둔하고 나섰다.
"내가 직접 확인했어."
"오...."
"안티오페는 아마조네스이기 이전에, 아테네의 여왕이 될 사람이다."
"오케이. 하아, 그런데 비처녀밖에 없다니...."
"그."
안티오페는 정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떠난 뒤로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있지만?"
"제 언니, 히폴리테는...처녀일지도 몰라요."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