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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엑스 마키나-233화 (233/235)

미친년인가.

아이에 관하여 급하게 이야기를 나눌 게 있다고 해서 별궁에 왔더니, 식칼 하나를 거꾸로 들고 자신의 배를 겨누는 데이아네이라가 있었다.

"뭐하는 짓이지?"

"보이는 그대로예요. 협박하는 거예요."

"...인질이 좀 세군."

헛웃음이 나온다.

테베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첩을 들여 임신시킨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 여자를 종종 안아주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임신시키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여자인 줄 알았으면 걸렀어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뱃속에 자라고 있는 아이를 가지고 칼 들고 협박하는 그런 여자라면, 이런 여자인 걸 알았다면 아예 죽여버렸을 것이다.

"진정해라. 일단 칼은 내려놔.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저는 지극히 이성적이에요. 제 배를 향해 칼을 겨누고, 찌를 작정까지 한 상태예요."

"그게 이성적인 건가?"

"그럼요. 이게 이성적인 거죠. 인간적인 거고."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몸에는 술냄새가 가득하고, 방 안에는 무슨 마약이라도 한 건지 이상한 약기운이 가득하다.

방 내부에 있는 집기들은 전부 어질러져있고, 꽃병은 깨지고 의자는 바닥에 널브러져있다.

오직 하나, 제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있다면 침대 뿐.

"진심인가? 나와 섹스하는 것 때문에 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섹스는 증명이에요. 제가 당신에게 원하는 건...."

히죽.

"사랑이에요."

"......."

사랑.

그 한 마디의 단어에 나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등골이 짜릿하게 울리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략결혼으로 온 여자가 사랑을 원한다고? 너는 칼리돈의 왕녀로서, 테베와 칼리돈의 동맹을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닌가?"'

"그랬죠. 그런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내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 결혼 상대가 당신이었기 때문이니까."

안 된다.

이 여자는 지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다.

누가 약이라도 먹인 건지, 아니면 진짜로 미쳐버린 건지는 몰라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이 헤라클레스야. 그리스 최고 미남에, 가장 강한 사냥꾼에,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존재. 그런 남자가...메가라 같은 폐녀만 바라보는 게 말이나 돼?"

"말을 조심해라."

"뭐가 말조심이죠? 내가 틀린 말을 했나요? 임신도 못하는, 헤라클레스의 아이조차 낳지 못하는, 테베에 재앙을 불러일으킬 여자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내가 좋아한다."

"그게, 잘못된 거야."

데이아네이라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왕녀고 나발이고, 애도 낳지 못하는 게 무슨 여자야.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냥 좆집이지."

"메가라를 좆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다. 내가 그녀를 좆집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네가 함부로 그녀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어."

"그래요? 하,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나이를 먹으면 그 여자가 더 빨리 늙을테니까."

그건 아니다.

메가라는 플레이야스고, 죽기 전까지 젊음을 유지할 사람이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할머니가 되는 건 데이아네이라 쪽이겠지.

하지만 이 여자는 그걸 모른다.

"후후, 헤라클레스. 당신은 나와 결혼한 순간부터, 메가라가 아니라 나와 계속 같이 살았어야 했어."

"......."

"메가라 같은 폐급이 아니라, 나라는, 칼리돈 최고 미녀인 나와 섹스를 해야 했어."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알겠다. 네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한탄이 절로 나온다.

"네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뭐라고...?"

"너의 사랑은 육욕에 의한 사랑, 그조차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이 여자는 내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사랑의 신인 에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감정이다.

"네가 사랑이라고 속이고 있는 감정은...."

오히려 다른 신이 고개를 끄덕이겠지.

"열등감. 질투라고도 할 수 있지."

"뭐...?"

"나에게 사랑받는 메가라를 질투한 거다. 아니, 질투 이전에 더 화가 났겠지. 내가 저 여자보다 뭐가 부족해서, 내가 저 여자보다 훨씬 나은데, 내가 저 여자보다 더 예쁘고 더 젊고, 저 여자는 못하는 걸 할 수 있는데."

그저 자신이 메가라에게 밀렸다는 것 때문에 열패감을 느끼는 거다.

"메가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흠결이라고? 그건 큰 흠결이 아니다. 메가라는 메가라 자체로 존엄한 존재니까."

"아이도 낳지 못하는 여자를...! 테베에 재앙을 불러올, 뱃속에는 아무것도 없을 뿐인 여자인 것을...!"

"뱃속에는, 나의 정액이 있지. 내가 사랑으로 안에 싸준 정액이."

아기는 없어도, 아기씨는 가득하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나를 가슴에 품어줄 수 있는 여자. 내가 원할 대 언제든지 내게 다리를 벌려줄 수 있는 여자. 메가라는 그것만으로도 내게 가치있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다."

"나도, 나도 할 수 있어요!"

"아니, 너는 안 돼. 애초에 너는 한 가지, 아주 큰 문제가 하나 있다."

나와의 만남 이전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너, 비처녀였잖아."

"......."

칼이 서서히 내려간다.

여전히 칼날의 방향은 자신의 배를 향하고 있지만, 칼을 잡은 손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여자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거? 상관없다. 세상에 임신할 수 있는 여자는 많으니까. 하지만 중고인 여자는 이야기가 다르지."

헤라클레스로서, 그리스 최강의 남자로서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

"내가 처녀를 딴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데, 네가 왜 지랄이냐."

"이, 이...!"

"이런 여자인 줄 알았으면, 임신도 시키지 않았지."

"아, 아아...!"

데이아네이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 나에게 그런 섹스를 알려줬으면서...!"

"내 실수군."

그래도 내 아이를 낳을 여자라고, 나와의 경험은 그 어떤 남자와도 비교할 수 없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열심히 좆질을 한 게 잘못이었다.

그냥 찍 싸지르고 끝낼 걸.

"정략결혼으로 테베를 먹어치운다음 칼리돈과 합병할 생각을 하고 있던 여자에게 내 씨를 주는 게 아니었어. 애초에...남의 좆이 먼저 드나든 걸레보지에 좆대가리를 들이미는 게 아니었다."

"하, 하...!"

"메가라가 폐녀라고? 맞다. 이제는 애무없이 넣어도 쑥 자지가 들어가는 허벌보지가 되었지. 그런데...."

나는 발에 힘을 준 뒤.

"내가 처녀를 딴 허벌보지가, 비처녀 걸레보지보다 낫지."

"!!"

앞으로 뛰어, 단숨에 데이아네이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악!"

"그리고 나는 아이를 인질로 삼은 여자 따위, 인간으로 취급 안 해."

우둑!

나는 바로 데이아네이라의 어깨를 주먹으로 찍었다.

탈골되는, 강력한 충격과 함께 데이아네이라는 기침을 하며 스르르 쓰러졌다.

"허억, 허억, 허억...!"

"아이 때문에 거기까지 한 줄 알아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무리 제우스로서 수많은 자식을 낳아서 자식이 늘어나는 것에 무덤덤해졌다고 해도.

아무리 헤라클레스로 이 여자 저 여자 다 임신시키고 다녔다고 해도.

"너를 위해 특별히 군인을 옆에 배치해주마. 팔다리를 모두 구속한 다음, 허튼 수작 부리지 못하게, 무사히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만들어주마."

내 아이를, 유산시킬 수는 없는 법.

산모를 함부로 이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칼 들고 배를 겨누는 미친년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그러니 너는-"

콰득.

순간, 나는 기시감이 들었다.

데이아네이라를 향해 뻗었던 손이 화끈거리며, 동시에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게...!"

퍼ㅡ억.

나는 손에 강한 힘을 주며 데이아네이라를 떨쳐냈다.

그리고 바로 내 손을, 그녀에게 물린 손을 확인했다.

피.

잇자국과 함께, 피가 맺혀있다.

그 피는, 제발 내 피가 아니라 데이아네이라의 피여야-

"아."

"흐, 흐흐, 그 잘난 헤라클...어?"

이에 선혈이 작게 묻어있는 데이아네이라.

내게서 피를 봤다는 오만한 얼굴이 당혹,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악!!"

고통으로 일그러지기는, 불과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악!!"

어깨뼈가 탈골되었을텐데도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한다.

침대를 구르고, 얼굴을 베개에 처박으며 광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씨발...."

좆됐다.

끝났다.

이건 의술의 신이 와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저 여자를 이제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뱃속에 깃든, 작은 생명도 마찬가지.

"아아아아악!!"

계속 비명을 지르던 데이아네이라는.

"아아아아악!!"

끝까지,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몸을 던졌다.

창문 밖.

창을 부수며 밖으로 머리부터 몸을 던지며 사라지자, 곧 수 초 지나지 않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푸ㅡ욱.

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꿰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잇자국이 난 손을 움켜쥐고 앞으로 다가가,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담벼락의 날카로운 장식 위.

가슴팍 한가운데에 담벼락 장식의 창날이 튀어나와있었다.

"......."

꺄아아아악!!!

데이아네이라가 죽었다.

너무나도 무참한 죽음이라, 그녀의 시신을 본 이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보다도.

부들부들부들.

흉부가 꿰뚫린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이 남아있는듯, 사지를 계속 터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괴했다.

그 모습은 과거, 내가 처음 히드라의 독을 시험한 레르네 늪의 흙게가 죽어가던 모습과도 같았다.

"......."

무언가가 보인다.

데이아네이라의 안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가.

데이아네이라의 모습을 한 인영이 빠져나옴과 동시에, 아직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형상의 작은 에테르가 꿈틀거리다가-

톡.

거품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아이를 가지고 협박한 짐승만도 못한 여자, 데이아네이라는 죽었다.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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