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아네이라의 죽음으로부터 약 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갑자기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그냥 들어서는 믿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 나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만 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삼 개월 동안 섹스리스였고, 데이아네이라는 나와의 섹스를 바라며 자기 배에 칼을 겨눴다고.
거기까지는 오케이.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그간 데이아네이라가 해놓은 패악질이 있다보니 다들 그녀라면 충분히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고 믿어줬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발작하듯이 죽었다는 것.
마치 독에 중독된 것처럼, 정말 끔찍한 고통을 토해내는 것처럼 죽어갔다는 것.
그게 흡사 전설 속 히드라의 독에 중독된 것처럼 죽은 나머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질 않았다.
히드라의 독을 숨기고 있었구나.
지금까지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용을 하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히드라의 독을 가지고는 있구나.
히드라의 독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끊이질 않았고,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헤라클레스를 경외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히드라의 독을 두려워했으니까.
그 히드라의 독 때문에, 나는 진지하게 한 가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승, 떠날까."
콰득.
나는 오늘도 내 집을 습격한 도둑의 머리에 몽둥이를 휘두르며, 진지하게 이승탈출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메가라?"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셔도...."
메가라는 반쯤 해탈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선택은 당신이 내리는 것.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죠. 단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메가라는 그와 함께 할 뿐."
"그 말만으로도 고맙네."
나는 머리가 깨진 도둑을 밖으로 던졌다.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막 도착한 병사들은 내가 죽인 시체를 보고 '또냐'라는 눈으로 도둑을 끌고나갔고, 나는 그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그저 히드라의 독을 어떻게든 얻어서 누구 하나 죽여보려는, 혹은 비싸게 팔려는, 아니면 자기 왕국의 국력으로 써먹으려는 쓰레기같은 놈들의 잘못이지.
그리고 그런 놈들을 내가 죽일 때마다, 테베 주민들의 시선은 점점더 썩어문드러졌다.
아무리 테베라고 해도,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볼 수는 없는 법.
설령 헤라클레스가 죽이는 이들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라고는 해도, 하루에 한두 명씩 사람이 죽는다면 조금이나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데이아네이라가 죽은 이후, 테베에 좆간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고 있어."
히드라의 독을 노리는 이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테베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테세우스가 족쳤던 그 수많은 악인들보다 더 많은 수의 악인들이 히드라의 독을 가지기 위해, 이용하기 위해 테베로 몰려들고 있다.
"에휴. 일단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지. 일단, 섹스나-"
땡땡땡땡!!!
창밖에서 거친 소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습과도 같은 소음은 철과 철을 부딪치는 경종소리보다도 더 날카롭고 시끄러웠다.
"헤라클레스! 거래를 하러 왔다! 히드라의 독을 팔아라!!"
"하아, 저 자식들이 진짜...."
메가라의 보지에 자지를 막 끼우려고 하던 순간마다 이렇게 방해를 받는다.
"이보세요! 헤라클레스 님께는 그런 게 없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이 야밤에 무슨 고성방가입니까!"
"없다면 없다는 증거를 보여라ㅡㅡ! 우리는 히드라의 독을 사기 전까지, 여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고성을 지르는 이들에게 다가가 제지를 하려고 해도, 히드라의 독을 구매하겠다고 목에 확성기를 단 것처럼 소리치는 놈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대의 놈들은 법과 사회질서를 따르는 것보다 자기 쪼대로 살아가는 좆간들이 너무 많았다.
"강제로 연행해!"
"어딜!"
병사들이 공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병사들에게 상해를 입히려고 한다.
"하아, 진짜.... 잠깐 나갔다 오마."
섹스를 하려고 바지를 내렸던 것도 다시 추스르고, 나는 밖으로 나가 자칭 '구매자'들을 마주했다.
"야ㅡㅡㅡ! 잠 좀 자자, 씨발!!"
저들이 외치는 소리보다 더 크게 한 번 내지르자, 자칭 구매자들은 입을 꾹 다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부인이랑 섹스 좀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방해질이야!!"
"그럼, 히드라의 독을 내놓아라!"
"히드라의 독?! 그래, 좋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담벼락 위로 올라가 바지춤을 붙잡았다.
"내가 여기에서 알몸이 되면 믿겠냐!!"
"......."
"히드라의 독은 없다고! 그거 찾고 싶으면, 레르네 늪에 가서 내가 봉인해둔 히드라를 깨워서 그 놈에게 히드라의 독을 내어달라고 하라고! 나를 건드리는 것보다, 그 놈에게서 얻는 게 더 빠르겠다!!"
"하지만...!"
자칭 구매자들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과는, 대화가 가능하잖습니까! 그 놈은 괴물이고, 당신은 인간이니까!"
"......."
인간이니까.
"하, 좆간."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좆같아서 못하겠네, 씌ㅡ발.'
나, 인간 그만둘래.
* * *
쿵, 쿵, 쿵.
망치를 두드린다.
나무로 된 높다란 탑과도 같은 제단은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높이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게 아니라면, 아마 이 높이의 제단의 끝으로 오르는 건 누구도 쉽지 않을 터.
그런 제단의 위에, 나는 맨몸으로 올랐다.
이곳의 이름이 뭐더라, 오이타 산이었던가.
안 그래도 되게 높은 산이었는데, 그 정상에 봉화대처럼 제단을 세워 놓으니 아무나 올라올 수 없는 그런 제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거면 되겠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하얀 드레스만 입은 채, 나와 함께 제단의 위에 오른 메가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해야지. 그래야 모두가 마음을 접을 거 아냐. 히드라의 독이라는 건, 히드라가 봉인된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내 짧은 기억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죽음은 히드라의 독과 관련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독이 뭔가 옷에 달라붙었다가 죽을만큼 고통스러워서 결국 육신을 불태워버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지금 그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의 몸을 불태워야 한다.
불과 함께, 이 육신에 흐르는 히드라의 독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 누구도 이 몸에서 피 한 방울이라도 뽑아내지 못하도록, 그 누구도 감히 히드라의 독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휘이이잉.
찬바람이 불어온다.
산의 정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며 제단으로 올라오려는 이들을 막아세운다.
"머, 멈춰ㅡㅡㅡ!"
저 아래, 기어이 산의 정상에 올라온 이들이 기어이 바람을 뚫고 올라오려고 한다.
"죽는 건 좋은데, 히드라의 독은 내놓고가!!"
"끝까지 좆간스럽게 말하는군. 하긴, 저런 좆간이 아니면 여기까지 올라올 리가 없지."
화륵.
나는 망치를 내던지고, 미리 준비해둔 물건에 손을 뻗었다.
헤스티아의 불꽃.
화로의 신, 헤스티아가 직접 지상으로 내려다보내준 불꽃.
올림포스 산 정상의 12주신이 회의를 하는 자리 가운데 피어오르는 푸른불꽃의 불씨를 일부 가져와, 그걸 제단에 가볍게 튕겼다.
화르륵.
불꽃이 순식간에 제단을 휘감기 시작한다.
제단의 겉에 뿌려둔 올리브 기름에 붙은 불은 점차 그 세력을 넓혀나가며, 그 어떤 불꽃보다도 더 크고 화려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에 타죽는 것만큼 아픈 게 또 없다고 하던데."
"정작 이런 제단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그런 사람과 함께 불타죽기로 한 사람이 여기에 있네?"
나는 메가라의 손을 꼭 붙잡았다.
"뭐, 아무튼. 나의 승리다. 메가라."
"...흥."
메가라는 얌전히 내게 안기며, 나를 끌어안으며 등을 손으로 토닥였다.
"그래요. 당신이 이겼어요. 이렇게 될 거라고 알았다면, 진작에 준비했을텐데."
"뭘?"
"자궁을."
메가라는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만약에 아이가 있었다면...."
"절대 안 죽었지."
나는 메가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가 있었다면 결코 자살하지 않았을 거다. 세상을 떠도는 한이 있었더라도, 히드라의 독을 바겐세일해서 전 인류가 히드라의 독에 중독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낳은 아이가 아이를 낳아 손자를 보고, 그 아이가 노화로 죽을 때까지 안 죽었을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 낳은 아이니까.
"다른 아이들은요?"
"그 아이들에게는, 제우스 신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시겠지."
아버지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제우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그리고 어디 제우스 신만 가호를 내려주겠어?"
"...그렇네요. 그럼."
메가라는 내 볼을 어루만지며, 이전과 같은,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만나요. 인간이 아니라, 진짜로서."
"아아, 물론이다. 곧, 만나러 가마."
화르륵.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과 함께, 나는 메가라와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 * *
오랜 시간.
꿈을 꿨다.
그 꿈은, 신이 되면서 버렸던 인간으로서의 꿈.
그 꿈속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을 불태웠다.
인간 헤라클레스의 막이 내리고.
신, 헤라클레스가 새로이 태어나니.
"내가 아버지고, 얘가 네 엄마다."
"이제 진정으로, 헤라의 영광으로 다시 태어났구나. 응, 재미있네."
"뭐...라고...."
...나는 그렇게, 신 제우스의 아들이 되었다.
"헤라. 어때? 아들을 낳은 소감은."
"최고야. 하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헤라클레스.
그야말로, 헤라의 영광.
"오빠가 아들이 되다니, 이 무슨.... 자, 엄마라고 해보렴...!"
"......."
"오빠. 아들이 지금 인상 쓰는데. 어떻게 생각해?"
인상을 쓰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나의 분신이 되어 새로운 자아를 확립한 이 시점에서, 헤라의 젖가슴을 빠는 건 NTR인지 아닌지 고민할 뿐.
그렇게, 나는 신 헤라클레스가 되었다.
기간토마키아를 승리로 이끌.
그리고 기간토마키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