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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끝까지 밟아 졸라 세게 박아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
눈송이 하나하나가 그들을 좀먹는 악마의 이빨이었다. 갑작스레 닥쳐든 눈보라 폭풍에 쥬피 썬더 클랜과 운무 징기스칸 클랜, 양측 모두 기함하며 흩어졌다.
"이건…… 대마도(大魔道)로 분류되는 궁극학살기 블리자드 오브 스톰!"
고급 마도의 등장에 식견 있는 마법사들은 온 마나를 끌어모아 자신이 아는 생존기를 죄다 펼쳤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손길이 스쳐간 자들은 살점을 쥐어 뜯기고 얼어붙으며 고통 속에 발버둥쳤다.
"누구냐, 너희들이냐?"
클랜원이 펼친 보호막 안에서 길수가 쥬피 썬더 클랜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전면전을 원한다, 이거지?"
"무슨 소리야, 너희가 한 짓이잖아, 쓰레기들아!"
쥬피 썬더 클랜도 어이가 없었다.
각 클랜의 대표로서 한참을 싸우고 있던 쥬피 썬더의 김채수와 운무 징기스칸의 박예린은 갑작스러운 마법의 폭풍에 크게 데미지를 입고 공터에 쓰러져 있었다. 새하얀 눈보라 속에 둘의 핏물이 번져들었다. 둘을 갈가리 찢은 눈보라는 이내 핏빛으로 물들어 또다른 희생자를 찾아 허공을 떠돌았다.
"대체 뭐야!"
갑작스런 혼전에 두 클랜은 각자의 중심에 집결해서 힘을 모아 쉴드를 펼쳤다. 상당한 수의 사상자가 있었으나 힘을 모아 펼친 보호막과 결계에 전멸은 면할 수 있었다.
눈보라가 희미해졌다.
그들의 살점을 찾아 떠돌던 악마의 눈송이가 사그라지자 흐리던 시야가 걷히고, 이내 공터의 처참한 참상이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물어뜯기고 분해된 것처럼 사지의 내부를 드러낸 채 처참하게 쓰러진 클랜원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한 명의 미소녀를 발견한다.
빗자루를 탄 마녀였다. 빗자루는 철물점에서 구할 수 있는 초록빛 대빗자루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녀가 오연하게 서 있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다리가 티없이 하얗게 빛난다. 가녀린 몸뚱이 위에 떠올라 있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띈 얼굴에는 기다란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힘을 해방하자 봉인되어 있던 그녀의 엘프 귀가 드러난 것이다.
여신과도 같은 모습에 양 클랜원들은 모두 입을 벌렸다.
올가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 오랜만이라 마나 딸린다."
힘을 쓴지 오래 돼서 쉽게 헥헥거렸다. 투명화 마법도 마나고갈로 풀린 것이다.
"쟤네 정신차리기 전에 후퇴해야겠다."
올가의 빗자루가 빙글, 돌았다.
그때 무엇인가가 그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쇄애애애애애액
올가가 빗자루를 컨트롤해서 그것을 피해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마력의 창을 조준하고 있었다.
운무 징기스칸의 길수였다.
"창, 계속 준비해."
"예."
곁의 마법사가 마나를 그러모아 힘의 덩어리인 창을 만들어 그에게 건내주면, 그것을 길수가 투창했다.
"저게 뭔진 모르겠지만 피해가 너무 커. 죽여버리자."
길수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의 클랜원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운무 징기스칸의 철칙, 받은 건 반드시 복수한다."
다시금 창을 받아들어서는, 길게 뒤로 당겼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눈앞의 목표물, 빗자루를 탄 미소녀를 향해 강하게 내던졌다. 허공을 찢으며 마력창이 올가를 향해 날아들었다.
"얼씨구."
올가가 빙글, 빗자루로 한 바퀴 유영하며 여유 있게 피했다.
수현의 저택에서야 최약체로 괴롭힘 당하고 굴려지는 올가였으나, 본래부터가 악의 소굴인 러시아 일대를 평정했던 혹한의 마녀이자, 또한 저택의 괴물들과 어울리며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가는 강대한 마도사인 것이다.
"맘에 안드네. 저 녀석."
올가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석을 하나 꺼냈다.
마력을 보관해둔 마력석이다. 그곳의 마력을 빌려 다시 한 번 마법을 일으켰다.
"에잇."
보석이 깨어지며 순도 높은 마력이 방출되고, 그것은 올가의 의지에 호응하며 또 하나의 이적을 일으켰다.
쩌정, 하고 공기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시전한 또 하나의 대마도는 이리 불린다.
빙하기(氷河期)!
올가가 지정한 일대 구역의 온도가 내려갔다.
아주 내려갔다.
공기가 얼어붙고, 숨결이 갈라졌다. 혈액마저 얼어붙을 지독한 한기였다. 그녀가 시전한 마법, 빙하기는 오로지 하나, 아주 춥게 만들어버린다. 견딜 수 없이 추워서 이 마법에 당하고나면 여름의 무더위를 오히려 그리워하게 되는 아주 차가운 마법이다.
블리자드 오브 스톰에 당해 쓰러져 있던 이들은 빙하기까지 진행되어버리자 결국 생의 끈을 놓고 얼어붙었다.
"이건 또 뭐야!"
"블리자드 오브 스톰에, 빙하기까지……, 저건 엄청난 빙결계 마도사입니다."
덜덜 떨면서 마법사가 길수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화염계 결계를 펼쳐 온도를 보존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하 바닥까지 내려앉은 온도 때문에 그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움직일 수조차 없는 지독한 한기였다
"후, 후후…… 이쯤 되면 기상 측정 이후 한반도 최악의 더위라는 올해의 그 좆같은 무더위가 그리워지는군요."
"인간이란 간사하지…… 그렇게 가을 겨울을 그리워하더니 지금은 다시 여름이 그립군……."
길수는 너무 더워 키보드 칠 힘조차 없던 한낮의 더위를 새삼 그리워하며 마법사의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 좀 막아봐! 애들 죽잖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대마도사입니다…… 운무시에 저런 존재가 있을 줄은……."
"……!"
마법사의 말에 길수가 눈을 들어 올가를 바라보았다.
운무시에 이런 존재가 있을 줄은…… 이라고 말하지만, 운무시에는 그런 존재가 있다.
운무시의 괴물, 운무시 일대를 마킹한 것만으로도 무력의 공백지대가 생겨버린 최악의 짐승이 운무시에 똬리 틀고 있었던 것을 새삼 떠올렸다.
그 존재만으로 모두 벌벌 떨며 운무시에서 손을 놓았으나, 그 괴물이 의외로 그의 영역을 건들지 않으면 딱히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 틈을 활용하려 운무 징기스칸 클랜이 생겨난 것이다. 운무시의 괴물을 제하면, 운무시는 황금이 나오는 기회의 땅이었다. 수많은 중소 클랜들이 평화에 취해 살아가는 곳이다.
갑자기 저런 대마도사가 튀어나왔다면…… 그 괴물과 연관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저렇게 순수한 마력은 그 괴물의 기운과 맞지 않는데……."
정순한 마력, 그야말로 마도만 추구한 순수한 마법사의 기운이었다.
그 괴물과는 다르다. 그 괴물의 기운은…… 잠시 쬔 것만으로 악몽에 시달릴 만큼 음험한 것이다.
"중소 클랜에 있던 숨겨진 기인 아니겠습니까. 정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그렇다. 난 데 없이 운무시의 괴물이 나타난 것처럼, 언제 생전 처음 보는 지독한 강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곳이 정글이다.
"이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버겁군요……."
"힘을 나누어주마."
"크윽……."
그때였다.
[존나 추워, 그러나 난 안 추워, 왜냐면 난 리얼 스웨거, 바닥에 떨어진 돈 안 주워, 그냥 니들 목 잘라 후라이팬에 구워, 난 리얼 엠씨니까 푸쒀, 핸접 나는 손 흔들워, 예압, 체키체킷.]
씹구린 랩이었다.
그러나 그 랩이 진행되면서 한기가 씻은 듯이 가시고, 그들이 그리워하던 한 여름의 무더위가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
강력한 언령의 힘. 운율이 거듭할수록 증대되는 미증유의 영향력.
길수가 뒤돌아보자, 벌거벗은 탄탄한 몸매의 미녀를 옆에 낀 소년 하나가 팔을 휘저으며 랩을 하고 있었다.
[나는 추위를 몰아내는 파수꾼! 내게 까불대면 반죽음! 내가 선사하는 것은 맛좋은! 랩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이야 딱 좋군!]
빙하기가 상쇄되었다.
길수가 입을 벌렸다. 곁에 선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저 녀석이 있었지……."
정글에서도 드물기 짝이 없는 언령의 권능을 타고난 소년.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그가 운율을 거듭할 때마다 강해지는 힘은 길수도 인정할 만큼 잠재력이 큰 것이었다. 그들을 괴롭히던 대마법 빙하기는 이제 완전히 허물어졌다.
"너! 꼬마! 아니, 인후!"
"네, 네?"
"저 마녀 붙잡아! 뭐든 해!"
"저, 저 사람요?"
"그래! 해봐 니 랩!"
"듣고 싶어요?"
"듣고 싶어!"
"Do you want my rap?"
"I want your fucking rap!"
"Everybody wanna feel my soul?"
"We wanna feel your fucking soul!"
"그렇다면 렛츠 체키라웃! 암고나락유! 롹유! 체키체킷!"
올가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어이를 잃었다.
"뭐하는 거야 쟤네?"
알 수 없는 언령의 힘이 그녀의 빙하기를 막아내어 당황했는데, 갑자기 놈들이 손을 들더니 리듬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손을 들어! 손 흔들어!]
길수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클랜원들도 일단 따라하기 시작했다.
인후는 분명히 느꼈다. 자신의 언령이 더 강해지는 것을.
그렇다. 운율을 더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랩을 듣고 있는 청중들이 모일수록 그의 힘은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등을 떠미는 듯한 언령의 파도가 온몸에서 샘솟았다. 허공에 서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저 아름다운 소녀를 금방이라도 꿰뚫어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았다.
그동안 억지로 쥐어짜내려 한참 고민하던 롸임도 즉석 프리스타일로 쉼 없이 흘러나왔다.
[존나 예쁜 마녀를 만났어! 깜짝 놀라 마이크 놨어! 그런데 어쩌나 난 엠-아이-씨! 없어도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토리우스 뷔-아이-지! 말하자면 존나 또-라이-지! 니가 공중에 떠 있어봐야 내 손바닥-안이-지! 떨어져! 씨발 빨리 떨어져! 빗자루에서 미끄러져 그냥 아래로 떨어져! 넌 재수 털려서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니까 그만 내게서 멀어져! 너는 내 손아귀에 잡힌 참새, 나는 좆밥만 골라 터는 짭새, 한 번 걸리면 죄다 삭발시키는 싸이코 깎새? 그래 난 존나 빡세! 넌 좆된 거야 왜냐면 밤새! 딸만 치던 딸잽이가 한달 금딸 수양하고 너 잡으러 온 꼴이거든 그야말로 짐승의 사냥! 말타고 칼을 세운 달타냥! 넌 추위 안 타냥? 니가 쓴 마법 졸라 추웠어 씨팔 남 생각 안 하냥! 씨팔 나는 롸임 폭격기! 내 앞에서 모든 객기! 부리면 매끼! 죽만 먹게 해줄게, 이 씹새끼! 예아, 쐐키! 체키! 쐐키 체키! 체키라웃!]
인후가 사자처럼 포효하는 강렬한 플로우로 벌스를 마무리짓고 숨을 골랐다.
그의 폭발적인 롸임과 플로우에 운무 징기스칸 클랜원들은 이미 그의 리스너가 되어 풋써핸접한 손을 셰이킹하면서 몸을 흔들었다. 인후는 자신의 온몸 가득 차오르는 전율과 힘의 파도에 몸서리치며 다음 벌스를 준비했다.
올가는 자신을 옭아매는 알 수 없는 힘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꼬마가 지껄인 것처럼 빗자루에게서 자신의 발을 밀어내려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정말 추락할지도 모른다. 마력을 끌어올렸으나 언령의 힘과 비등비등한 백중지세, 까딱하다간 올가가 오히려 추락해서 저들에게 잡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언령이라니, 터무니 없는 힘이잖아!
그러나 인후의 벌스는 그녀를 더 기다려주지 않았다.
[끝난 줄 알았니? 아니야, 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야, 내가 짠 사기놀음, 넌 이 판의 패자야! 내 랩은 뻔해, 반이 내 자랑! 그리고 나머지 반이 네 사냥! 의 기록, 넌 내 먹잇감, 물고 놓지 않을 거니깐, 두고 보지 않아, 끝까지 추격해 니 뒤통수를 찔러! 첨부터 끝까지 소름 돋는 스릴러! 결말은 대반전, 아니, 반전 없는 게 반전, 네 인생이 암전, 아직 내 랩은 불완전, 연소 상태야 네 피로 식혀줘, 씨팔, 기요틴 처형! 이다 개년아 니코틴처럼! 중독되는 폭력의 쾌감, 너는 샌드백이다 나는 널 치는 투팩! 뚜비두비밥두밥! 쉬지 않는 내 뢈어택! 그러니깐 넌 떨어져, 빗자루에서 굴러 떨어져 땅에 떨어져! 다시 말해 네게 남은 일은 추락뿐, 난 그저 어떻게 널 요리할지 반추할 뿐! 좆 같은! 일이 벌어질 거다 씨팔련아! 잘 들어! ma hiphop soul! You are already in my bowl! Im gonna make you lick my fucking two fire egg balls!!!!]
혼과 백이 하나된 인후의 강렬한 랩핑.
대지가 떨만큼 강렬한 플로우였다.
인후는 자신이 이룩한 랩의 경지에 놀랐고, 그리고 청중의 환호를 따라 제곱하는 언령의 힘에 다시 놀랐다. 그리고 그 언령의 힘은 마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엄청난 에너지가 올가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