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차는 어두운 밤길 위를 매끄럽게도 빠져나갔다.
우거진 숲속은 달빛조차 가려져 창밖을 아무리 부릅뜨고 노려봐도 형체를 알아볼 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마부석에 앉은 마부도, 이 마차를 모는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두 번 해 본 일이 아닌 듯 안정적으로 숲길을 내달렸다. 창가에 바짝 붙어 앉은 세라는 처음 출발했을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문을 열고 탈출을 해 보려 낑낑댔지만, 마차의 속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그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는 문을 열어도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린다면 못 해도 목은 부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력 회로만 멀쩡했어도….’
명색이 한 시대를 주름잡던 마법사였는데 마차 하나 탈출하는 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자 절로 시무룩해졌다. 깔끔하게 도주를 포기한 세라가 얌전히 가장 안쪽에 있는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더럽게 뻑뻑하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가 무섭게, 아까부터 이물감이 느껴지던 눈가가 한층 더 불편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웬 이상한 장면들이 보였었지. 뒤늦게 제게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을 떠올린 세라가 침통한 표정으로 눈가를 더듬었다.
짚이는 바는 있었다. 아마도 신이 직접 눈알에 찔러 넣어 준 조각인지 뭔지 때문이겠지.
보는 순간 인간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조각이라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별의 조각….”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본 세라가 자신이 아는 가장 신성한 성물의 이름을 읊조렸다.
주신 이온이 낳은 가장 빛나는 별. 그것의 파편에 인간을 비추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럼 아까 그 덩어리도 조각 때문인가?”
에녹에 대해 생각하던 세라는 마지막에 발견한 검은 덩어리를 떠올렸다. 확실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생김새와 존재감이었다. 에녹과 남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세라가 마차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묻었다. 그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그 귀한 성물 중의 성물이 제 두 눈에 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헛웃음이 지어졌다.
과연, 그녀의 임무가 막중하긴 한 모양이었다. 비록 제대로 된 흑마법을 쓰지 못한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라 로젠바움에게 별의 조각을 덜컥 안겨 주다니 말이다.
그러다 도둑맞으면 어쩌려고.
……뭐, 그 조각이 두 눈에 박혀 든 시점에서 어디 다른 곳으로 빼돌리거나 하지도 못할 테지만.
“…….”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더 심란해진다.
‘네가 가야 할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물건의 정체를 깨닫고 나자 그것을 억지로 넘겨받았을 때의 상황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세라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어둠. 그 속에 숨어 있을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래도 에녹 소서가 뭡니까. 에녹 소서가.”
그 가야 할 곳이 이곳인 줄 알았더라면 한 번쯤 튕겨라도 봤을 거다.
아무리 죄인이어도 그렇지, 당사자에게 언질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끝장낸 남자의 곁으로 날려 보내다니.
“그놈이 알아보면 어쩌려고요….”
원망스러운 어조로 읊조린 세라가 창문에 힘없이 고개를 기댔다. 그리고 상상해 보았다.
만약, 에녹 소서가 자신이 죽였던 흑마법사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
…방금 보았던 목 없는 시체가 떠오르는 건 우연의 일치겠지?
황급히 상상의 나래를 꺾은 세라가 애써 사고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우선, 자신을 콕 집어 이곳으로 올려 보낸 신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세라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니, 적당히 무리에 섞여 들어 정보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겸사겸사 누군가의 운명을 바꿔 주어도 좋고.
그래. 일단은 버텨 보는 거야.
세라가 어렵사리 마음을 먹은 그때였다.
쾅!
“……!”
잘만 달리고 있던 마차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속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고요하던 마차 안에 거센 광풍이 들이닥쳤다.
“아악! 씨,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지른 세라가 매서운 눈으로 문가를 노려봤다.
“어, 선객이 있었네.”
이 정신 나간 소동의 주인은 늘씬한 몸매의 젊은 청년이었다.
달빛이 겨우 새어 들어오는 숲길이라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센 바람결에 나부끼는 금발만은 또렷했다.
그 금발 위로 언뜻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원의 광경이 펼쳐졌다가.
“…….”
사라졌다.
세라는 남자의 등에 연기처럼 매달린 검은 기운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아까처럼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연기처럼 흐릿하게 남자의 목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왜 여자가 타고 있지?”
이상하다 못해 괴랄한 등장을 한 것은 본인이었는데도, 청년은 그저 얌전히 마차에 앉아 있을 뿐인 세라가 수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딜러스 씨. 이 여자 누구예요?”
그러다 고개를 젖혀 마부석을 향해 세라의 정체를 물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사이로 대장 노예! 하고 목청껏 소리치는 마부의 목소리가 울렸다. 필요한 대답만 한 마부가 역으로 물었다. 스노우, 너는 왜 지금 탔어!
친근해 보이는 마부의 물음에 스노우라 불린 청년이 싹싹한 어조로 대답했다.
“고양이 밥을 안 주고 나와서요!”
별 시답잖은 이유였지만, 그것이 마부의 가슴을 울리기엔 충분했는지 호탕한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마부를 따라 웃던 스노우는 그제야 마차 안으로 성큼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빈자리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음에도 굳이 세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안. 많이 놀랐지?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급하게 탄 거거든.”
아는 사람이 신분을 보증해 주어서일까. 처음에 대놓고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던 스노우는 놀라울 정도로 스스럼없이 말을 붙여 왔다.
“말투가 무슨 뒷골목 양아치 같아서 놀랐어. 노예 주제에 왜 이렇게 버릇이 없어?”
이 길드는 목소리만 상냥하고 말은 개차반처럼 하기로 약속한 거야 뭐야.
노예라는 걸 알자마자 말투부터 지적하는 스노우를 향해, 세라가 어색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풀이 죽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냐는 시비에 가까운 감상이 전부였다.
이쪽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스노우는 한동안 말을 걸지는 않았다. 대신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두워서 뭐가 잘 봬지도 않을 텐데.
“뭘, 그렇게 보세요?”
“신기해서.”
참다못한 세라가 그만 쳐다보라는 의미로 한마디 하자, 그것을 대화의 신호탄쯤으로 여긴 스노우가 환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정말 대장의 노예가 맞아? 그러니까, 시그너스 길드의 에녹 소서 대장 말이야.”
“…그게 왜 궁금하시죠?”
“넌 아무리 봐도 대장 취향이 아니거든. 면역자라면 질색하는 사람인데….”
흥미롭게 눈을 빛낸 스노우가 생글생글 웃으며 면밀히 세라를 살폈다. 눈도 좋지. 이렇게나 어두운데 세라의 눈동자 색을 또 용케 확인한 모양이다.
“어떻게 꼬셨어?”
“…….”
꼬시다니 어감이 좋지 않은데. 세라는 당연히 이쪽에서 유혹했다고 단정 짓는 스노우의 태도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쪽이 노예이고 저쪽이 주인님인데, 어째서 저쪽이 냅다 납치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거지? 차마 따져 물을 수 없는 의문을 삼킨 세라는 딱히 설명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있는 그대로 사연을 읊어 주었다.
“몸으로요.”
“몸…?!”
그에 스노우가 필요 이상으로 놀랐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그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인이 그렇게 많은데 참, 정력도 좋아.”
“정력…?”
못 들은 척하기엔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세라는 왜 갑자기 그런 주제가 튀어나왔는지 의아해하다가.
“미, 윽, 지금 무슨 큰일 날 소릴 하는 거예요?!”
곧 자신이 놓쳤던 야릇한 뉘앙스를 깨닫고는 버럭 역정을 내었다. 자신과 에녹 소서를 그렇고 그런 선상에 두고 생각하다니 미친놈이 분명했다.
“쉿. 잠깐.”
다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스노우가 세라의 목덜미를 잡고 아래로 깊이 숙이도록 만들었다. 야! 사람이 말을 하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제대로 열받은 세라가 반항하듯 몸을 뒤틀던 찰나 마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세라가 그대로 앉아 있었더라면, 정수리가 마차 천장에 찧었을 정도로 크게.
그 뒤로는 내내 난리였다. 한 번 크게 흔들린 마차는 그 뒤로도 한동안 덜거덕거렸다. 꼭 마차로는 결코 지날 수 없는 길을 지나듯 요란한 소리가 났다.
골이 다 울릴 정도로 심각하던 흔들림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멎어 버렸다.
정체불명의 구간을 지난 마차가 다시 평탄한 길로 돌아온 것 같았다. 방금의 소란으로 숲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인지, 마차 안은 환히 들이치는 달빛으로 대낮처럼 훤했다.
“놀랐어? 로우드 입구가 원래 좀 험하거든.”
세라를 놓아준 스노우가 쾌활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로우드.
아는 지명의 등장에 세라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로우드라면 소서 제국 남단에 위치해 있던 초원 지대였다.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인 덕에 언제나 푸릇푸릇한 초목과 탁 트인 드넓은 초원, 그 위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아주 장관인 관광 명소였다. 로우드 지역에는 도시가 딱 하나뿐이었는데, 자연 경관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지어져 외국의 건축업자들이 종종 유학을 오곤 했었다.
세라도 소싯적에는 꽤, 자주 갔었다.
“…….”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고 나자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난 300년간 한 번도 그리워한 적 없는 장소였는데도 말이다.
“길은 험해도 경치는 좋아. 너도 구경할래?”
창가에 붙어 앉은 스노우가 쾌활한 어조로 제안했다. 세라는 살아 있을 적에도 경치를 보며 마음의 안식을 찾은 적은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죠. 뭐.”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 세라가 못 이기는 척 창가에 바짝 붙어 앉았다.
내심 기대감이 섞인 두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기억 속의 로우드를 떠올린 그녀는 지평선에 닿을 때까지 탁 트인 초원과 웅장한 산맥, 곳곳에 흐드러지게 핀 꽃밭 따위를 상상하며 시선을 돌렸다.
“……?!”
낭만적인 야경을 상상하던 세라는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고 대경실색을 했다.
달빛 아래 드러난 로우드는 그녀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엔 탁 트인 초원도, 웅장한 산맥도, 흐드러지게 핀 꽃밭도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는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저게, 뭐예요…?”
유리창 위를 덧그린 세라는 제 시야를 시커멓게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콕 집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