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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나라를 팔았습니다-7화 (7/131)

#7

“왜? 뭐 신기한 거라도 있어?”

스노우가 흥미로운 눈으로 세라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하지만 별다른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는 못했는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헛걸 본 게 아닐까?”

코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모습에 답답해진 세라가 열정적으로 창문을 두드려댔다.

“저거요! 저거! 온 땅바닥에 있는 저 시커먼 거!”

세라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휘영청 밝은 달과는 어울리지 않게 기이할 정도로 새카만 밤하늘. 그것과 맞닿은 지평선 위로, 정체 모를 새카만 기둥들이 넓은 범위에 걸쳐 세워져……. 아니, 꽂혀 있었다.

그래. 꽂혀 있었다. 그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새파란 잔디가 춤을 추는 들판 위에도, 화사한 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밭 위에도, 은은한 달빛을 반사하는 호수 위에도….

“아, 설마, 가시 말하는 거야?”

스노우는 그제야 세라가 말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듣곤 곧바로 새카만 기둥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가, 시…?”

세라는 그 이름이 실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새카만 기둥에 무차별적으로 꿰뚫린 대지는 처참했다. 그녀가 알던 로우드는 적어도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생동감이 넘치던 곳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초원을 뛰노는 희귀한 동물들을 심심찮게 보던 그런 곳.

하지만 지금 창밖을 스치는 풍경은 로우드가 자랑하던 생동감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새카만 하늘, 새카만 기둥, 그 위를 비추는 흰 달빛.

색도 소리도 모두 잃은 세상이 그저 지나가고만 있었다. 그 광경은 방금 막 지옥에서 올라온 세라가 보기에도 종말을 눈앞에 둔 것처럼 섬찟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러니까, 세상을 꿰뚫고 있는 저건 결코 가시 같은 연약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은 창이면 몰라도….

“가시 몰라? 안타레스교의 검은 가시.”

마치 가시를 처음 보는 것처럼 반응하는 세라를 두고, 스노우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모르겠는데요.”

세라는 솔직하게 이실직고했다. 스노우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너 어디 산골에서 왔어? 아닌데, 그래도 봤을 텐데. 왜, 한 15년 전에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었잖아.”

15년 전의 세라는 지옥 불에 불타느라 지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는 검은 가시도 전혀 목격한 바가 없었다.

“그 난리가 났는데도 몰랐다니 신기하네.”

“죄송해요. 아는 게 없어서….”

“아니야. 됐어.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안타레스교가 뭔지는 알지? 아무리 시골이어도 그건 들어 봤을 거 아니야.”

“아니요. 전혀…. 그건, 또 뭔가요?”

순진한 시골 아가씨 흉내를 내 보기로 한 세라가 두 눈을 슴벅이며 되물었다. 스노우는 정말 모르냐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대답했다.

“있어. 흑마법에 미친놈들.”

흑마법? 낯선 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익숙한 이름에 세라가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반응을 보일 뻔했다. 가까스로 얼굴 근육을 잡아낸 세라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양 흥미롭다는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300년도 더 전에 죽은 위대한 현자를 부활시킬 거라나 뭐라나.”

“예…? 300년?”

흑마법. 300년.

모른 척하기엔 너무나도 공교로운 단서에 세라의 미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은데….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싸한 예감에 도르륵 눈알을 굴려 시선을 발치로 떨어뜨렸다.

“완전 웃기지?”

창밖을 바라보느라 세라의 상태를 보지 못한 스노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부활 같은 게 어디 있다고.”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는 적들을 비웃는 목소리는 제법 싸늘했다.

신에 의해 방금 부활한 사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렇죠. 부활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죠.”

그런데도 세라는 스노우의 확신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영혼은 신의 것이었다. 그것을 지옥에 처박아 둘지, 환생하여 다시 지상에 돌려보내 줄지는 오로지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 죽은 영혼을 신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제멋대로 이곳에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세라가 알고 있는 한은.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안타레스교의 이뤄질 리 없는 소망 따위가 아니라, 그들의 거지 같은 선전 문구에 적혀 있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세라는 아까부터 안타레스교가 부활시키려 한다는 300년 전의 인물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근데, 부활시키려는 여자 이름이 뭐예요…?”

“뭐라더라? 그….”

세라의 물음에 기억을 쥐어짜던 스노우가 곧 무릎을 ‘탁’ 치며 그 이름을 외쳤다.

“아, 기억났다. 세라 로젠바움…!”

스노우의 입에서 기어코 제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

입술을 말아 문 세라가 최대한 흘려듣는 척 고개를 주억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빛이 비치는 유리창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동공이 고스란히 비쳤다. 그저 그뿐이었음에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검은 가시들이 퍽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세상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는 저 흉측한 가시들은 그녀의 부활을 위해 꽂힌 재앙이라는 뜻이었다.

눈앞이 암담해진 세라가 스노우 몰래 이를 악물었다.

이 개 같은 안타레스 새끼들.

어쩐지 불타도 불타도 형량이 줄어들질 않더라니.

지상에서 남의 이름을 팔아서 이딴 일을 벌여?!

“으음. 왜, 부활시키려고 한데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세라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물어보나 마나 사악한 이유에서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음모를 꾸미려고 300년 전에 땅속에 묻힌 자신을 깨우려는 것일까.

“…….”

그에 스노우가 신기한 눈으로 세라를 쳐다보았다. 꼭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는 듯이.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던 스노우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세라 로젠바움에 관심이 많은가 봐?”

“……!”

그건, 세라가 듣기에 다분히 의도적인 사상 검증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아니요. 전혀.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별로, 좋은 주제도 아니었는데…….”

본능적으로 맞는 답을 고른 세라가 이제부터 닥치고 가겠다는 듯이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하지만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고.

스노우는 격렬하게 관심 없다고 부르짖는 세라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근데 여자인 건 어떻게 알았어?”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순간 밝혀졌다.

“내가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전이었는데~.”

세라를 바라보는 두 눈이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반짝였다.

노래하듯 흥얼대는 말투 때문에 한없이 가벼워 보였지만, 세라는 찰나에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날카로운 의심을 놓치지 않았다.

이놈의 무의식이 개짓거리를…….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세라가 퍼뜩 변명을 떠올렸다.

“제,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하아, 세상에…….”

과장스럽게 눈을 홉뜬 그녀가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눈에 띄게 당황한 티를 낸 그녀가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죄, 죄송해요…. 흐, 흐흑!”

그러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돌연 울음을 터뜨렸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감정의 변화였다.

잉? 역시나 맞은편에 앉은 스노우가 의아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흑. 흑. 제 무릎에 고개를 묻은 세라는 제 감정을 추스르려는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거렸다.

그리하여 분위기가 제법 무르익었을 무렵. 구슬픈 목소리로 힘겹게 고백했다.

“제가 사실은, 기억을 잃어서요….”

자신은 기억을 잃었노라고. 저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

눈을 떠 보니 철창 안이었다. 노예상들이 자신을 해코지하려고 했고, 너무 무서워서 떨고 있었는데 에녹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는데, 그렇게 고마우면 몸으로 갚으라고 하더라. 그리하여 지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 이런 일을 당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순식간에 불어나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누가 들어도 딱한 사정이었지만 세라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만약 세라가 누군가를 수상하다 여기는 중인데, 그 상대가 기억을 잃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그 말이 정말일까 의심부터 할-.

“그래? 불쌍해라. 정말 기억나는 게 전혀 없어?”

-것 같은데….

놀랍게도 스노우는 세라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예에…. 전혀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세라가 처연하게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너, 그럼….”

딱하다는 눈으로 세라를 바라보던 스노우가 뭔가 대단한 사실을 발견한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떴다.

“면역자가 뭔지도 모르겠네?”

그에 슬픈 척 연기를 하고 있던 세라의 두 귀가 쫑긋 섰다.

“네. 부디 알려 주세요. 대체 면역자가 뭐죠?”

어서 말해. 어서.

멱살을 잡고 어서 말하라 흔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세라가 가련한 눈으로 스노우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게 뭐냐면….”

열렬한 호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스노우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길게 끌었다. 세라는 스노우와 대화한 이후 처음으로 그의 대답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굉장히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야. 귀하기 때문에 어딜 가도 환영받지.”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춘 스노우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그의 말을 경청하던 세라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귀하고 환영받는 존재라기엔 그녀를 처음 본 노예상이나, 에녹, 에녹의 부하, 심지어 스노우 본인에 이르기까지 반응이 영 걸쩍지근했기 때문이다.

“근데 왜-.”

더 큰 의문에 휩싸인 세라가 근데 왜 아까는 자신을 보고 그런 반응이었느냐며 캐물으려던 찰나였다.

“어? 도착했다.”

창밖을 바라본 스노우가 얼른 마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뭐 해? 너도 얼른 내려.”

그리고 문밖에서 세라를 기다렸다. 아쉬움을 삼킨 세라가 절그럭거리는 족쇄를 질질 끌며 겨우 마차에서 내렸다. 여태 친한 척 대화를 나눌 때는 언제고, 스노우는 그녀가 낑낑대고 있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면역자 노예는 이름이 뭐야?”

대신 그녀가 땅에 내려서자마자 냉큼 이름을 물어 왔다.

“…저는-.”

세라가 순간적으로 대답할 이름을 찾던 그때.

“세라.”

어둠을 가르고,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낮고 반듯한 음성은 잘 벼린 검으로 밤을 베어 내는 것처럼 서늘했다.

그리고, 세라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딱 하나 알고 있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세라는, 어스름한 빛이 새어든 가로등. 그 아래 기대어 선 남자와 곧장 눈이 마주쳤다.

어째선지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에녹이 세라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한 번 더 강조했다.

“걔 이름. 세라야.”

헉,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세라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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