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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나라를 팔았습니다-10화 (10/131)

#10

순조롭게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온 에녹이 늘 해 온 일을 해내듯 혀를 놀렸다.

타인의 젖은 점막이 단단한 입천장을 간지럽히는 기분이 이상했다.

“으으읍! 으음! 으으으음!”

어깨에 싸하게 내려앉는 그 생경한 감각에, 세라가 말에서 뛰어내릴 기세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는지, 고작 한 팔로 세라를 붙잡고 있을 뿐인데도 에녹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벗어나려던 세라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에녹은 세라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상체가 더 뒤로 넘어가도록 끌어당겼다. 허리가 꺾인 세라가 에녹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는 자세가 되었다.

“으응!”

우위를 점한 에녹이 방금 전보다 더 깊숙하게 세라의 입 안을 탐했다. 헐겁게 휘저어대는 혀 놀림이 언뜻 성의가 없어 보이기도 했으나 어디 한군데 허투루 빼놓지 않고 샅샅이 핥아 먹는 게 제법 집중하고 있는 듯도 했다.

그의 집중도는 모르지만, 알 수 있는 건 에녹이 아주 잘한다는 거였다. 세라는 인정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기를 머금은 살덩이는 세라의 여린 곳을 건드려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거나, 어쩔 줄 몰라 굳어 있는 혀를 휘감아 녹진하게 풀어내거나, 제 입 속으로 끌고 가 잘근잘근 씹어대며 장난질을 걸기도 했다.

간지럽고, 부드럽고, 단단한 감각이 교차하며 한데 뭉쳐 이지러졌다. 호흡을 제때 하지 못해서일까, 달리고 있는 건 말인데 세라의 입에서 가쁜 숨이 쏟아져 나온다.

쿵쿵 뛰는 제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 피를 내뿜고 있는지 똑똑히 느껴졌다. 에녹이 세라의 뺨 가장 깊숙한 곳. 연약한 점막을 쓸어 낼 때마다 배꼽 근처가 자꾸만 조여들었다.

에녹은 능수능란하게 세라의 혼을 쏙 빼놓았다. 입을 맞춘 그 순간부터 그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성검의 주인이 아니라, 세라의 영혼을 빨아먹기 위해 나타난 사악한 존재 같았다.

그 어지러운 교감에 갇힌 세라는 그저 딱딱하게 굳어 예민하게 돋아나는 감각을 낯설어할 뿐이었다.

태어나 입맞춤은커녕 이성의 손목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세라에게 있어서 그건 충분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혼미해지던 정신을 가까스로 차린 세라가 있는 힘껏 에녹의 혀를 깨물어 버렸다.

잘라 낼 기세로 물어뜯고 나서야, 에녹은 세라에게서 물러나 주었다.

“으웁! 퉤! 이, 이, 지독한 새끼…….”

가까스로 에녹을 뱉어 낸 세라가 거칠게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

그러다 문득, 차갑게 이는 바람에 아파서 욱신거리던 곳이 잠잠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조심스럽게 이마를 더듬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상처를 훑어 낸 손을 확인해 보아도 버석하게 마른 피딱지만 몇 개 붙어 있을 뿐이었다.

거울을 통해 확실히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세라는 본능적으로 제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상처가 아물었다.

흔적도 남지 않고 깔끔하게.

대체 언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돌이켜 보면 정답은 명확했다.

에녹과 입을 맞춘 직후부터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쟤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던가?

“…….”

혼란스러운 시선이 에녹에게로 향한다. 설명을 바라는 얼굴에도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을 머금고 있을 뿐이다.

“얍.”

대신 세라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앞으로 밀어 버렸다. 아, 씨발! 순간적으로 바뀌는 무게 중심에 적응하지 못한 세라가 손에 닥치는 대로 말갈기를 붙잡아 쥐었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에녹이 낮게 키득거렸다.

“제대로 앉아야지. 그러다 떨어질라.”

“누구 때문인데!”

그렇게, 겨우 에녹에게서 풀려난 줄 알고 있었는데. 눈에 이채를 띈 그가 별안간 말갈기를 꽉 쥐고 있던 그녀의 왼팔을 낚아챘다.

“이건 뭐야? 노예 낙인?”

그녀의 팔을 들어 올린 에녹이 엄지손가락으로 팔 안쪽을 스윽 훑어 내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내린 세라는 자신의 왼쪽 팔목의 안쪽부터 팔꿈치로 이어지는 부위에 새겨진 시커먼 문신을 발견했다.

큼직하게 새겨진 문신은 숫자였다. 정확히 564,932,781. 딱 그녀에게 남은 형량이었다. 제 몸에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안 세라가 덩달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네.”

에녹은 그 대문짝만한 숫자를 코앞에 두고도 읽어 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놔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 세라가 퉁명스럽게 그의 손길을 쳐 냈다. 그다지 크게 궁금한 사항은 아니었는지 에녹이 군말 없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없이 내달리던 말이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세라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가시를 보고서야 자신들의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대체 날 여기에 왜 데려온 거지? 세라가 의문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시야가 확 트이며 나무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 대장이다…!”

“대장이 왔다!”

에녹의 등장에 가시 주변에 몰려 있던 이들이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를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이 꼭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찾은 것처럼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스노우도 함께였다.

‘또…….’

세라는 그들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존재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그들에게는 아까 노예상의 막사에서 보았던 남자와 똑같은 검은 덩어리들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덩어리가 달려 있지 않은 사람은 스노우와 에녹이 유일했다. 에녹의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스노우는 아까랑 똑같이 검은 연기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

그녀가 그 현상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에녹은 순조롭게 그들을 지나쳐 버렸다. 같이 있는 세라가 무안할 정도로 차디찬 무관심이었다.

숲 가까이 말을 몰아간 그는 가시와 조금 떨어진 나무에 말을 세웠다. 훌쩍 뛰어내린 그가 세라를 내려 줄 즈음이었다.

“에녹! 세이옌이 가시에 들어간 지 벌써 6시간이 지났어. 근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다니 분명….”

무리를 대표해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미처 세라를 보지 못하고 말을 쏟아 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도 못했다. 무언가 좋지 못한 상상을 하는지 예쁜 곡선을 이루는 콧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그래. 길을 잃었거나 문제가 생겼겠지.”

그에 나무 둥치에 말을 묶어 둔 에녹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남자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이어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가서 데리고 나오든가 해야지.”

“그건 안 돼. 마커스.”

자신이 들어가 봐야겠다는 남자, 마커스를 제지한 에녹이 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넌 오늘 아침에야 가시에서 나왔잖아. 지금 또 가시에 들어가면 독기에 중독될 거야.”

“지금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 세이옌, 그 녀석 교육 담당은 나였어. 내가 잘못 가르쳐서 혼자 멋대로 행동한 거니까 내가 가는 게 맞아!”

흐음, 오가는 대화를 경청하던 세라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세이옌이라는 길드원이 혼자서 가시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구하러 가고 싶어도 구하러 갈 수 없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안 맞아. 시끄러우니까 저기 구석 가서 울고 있어. 구출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희게 질린 마커스와는 달리 에녹은 여전히 심드렁하기만 했다. 쌀쌀맞게 대꾸한 에녹이 멀리서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들을 턱짓했다.

“설마, 대장이 직접 가게…?”

그 말을 에녹이 직접 가겠다는 말로 해석한 마커스가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아니.”

에녹은 이번에도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그에 희망에 차올라 있던 마커스의 얼굴이 빠르게 시들어 갔다. 부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 에녹이 아까부터 조용히 없는 사람인 척하는 세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

뜬금없는 지목에 당사자인 세라가 가장 먼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눈으로 에녹을 쳐다봤다.

그제야 세라의 존재를 인지한 마커스가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세라는 뭘 보냐는 얼굴로 그를 똑바로 주시했다.

아직, 노예상과의 일 때문에 면역자인 걸 티 내도 되는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스노우의 말에 따르면 귀한 존재라고 했으니 설마 해코지야 하겠느냐는 배짱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하듯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데-.

“……!”

달빛에 비친 자수정색 눈동자를 발견한 마커스가 별안간 꺄아악. 하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며, 면역자다! 면역자가 나타났다!”

그의 외침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길드원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

“……!”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튀어나온 사람들이 한달음에 세라를 둘러쌌다.

그러고는 금속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무기가 그녀를 향해 겨눠졌다.

“면역자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대체 무슨 낯짝으로 기어들어 온 거야.”

세라를 노려본 길드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비난의 말을 내뱉었다. 여럿이서 무기 하나 없는 세라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인데도, 날카롭게 벼려진 시선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

살벌한 기세에 놀란 세라가 혼란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왜 저래. 면역자는 좋은 거라고 하지 않았어?

예상치 못한 격렬한 반응에 그녀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스노우를 쳐다보았다. 무기를 겨눈 사람들 속,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남자를 찾아내는 일은 쉬웠다.

“안녕~.”

그녀와 눈이 마주친 스노우가 아까처럼 산뜻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겉으로는 호의로 가득 차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번뜩이는 푸른 눈 사이에 자리 잡은 짓궂은 악의가 멀리서도 잘 보였다.

그와 동시에 아, 세라는 깨달았다.

“하씨, 저 새끼 나한테 사기 쳤네.”

자신이 깜빡 속아 버렸다는 사실을.

지옥에 처박혀 있느라 감을 잃었나.

스스로를 꾸짖은 세라가 자신을 노려보는 수십 개의 면면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세라에게 익숙한 건 에녹과 함께 있을 때 받았던 환대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맞기는 했다.

그럼 그렇지.

그녀가 예나 지금이나, 환영받을 만한 존재가 될 리 없었다. 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달은 세라가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거둔 세라가 이 상황을 그저 방치하고 있는 에녹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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