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아, 이러다, 뒤, 지겠네…….’
그것이 의식이 깨어난 세라가 한 첫 번째 생각이었다.
피를 울컥 토해 낸 바로 다음 순간, 세라는 심장을 익혀 버릴 것처럼 강렬한 작열감을 느꼈다.
성검이 그녀의 영혼에 상처를 새겨 놓은 자리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변을 감지했을 때에는 이미 몸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쿵, 쓰러지는 충격에 의해 시야가 흔들렸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조차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그대로 의식이 끊어졌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었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녀는 깨어났고. 지금 딱, 죽을 맛이었다.
‘안 아픈, 곳이…. 없, 네.’
태어나 한 번도 온몸을 두들겨 맞아 본 적은 없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만약 흠씬 두들겨 맞는다면 딱 이만큼 괴로울 것 같으니까.
거짓말 안 하고, 얼굴 아래로 존재하는 온몸이 다 아팠다.
목부터, 어깨, 팔, 허리, 다리, 하다못해 손가락 발가락까지. 날카롭게 날이 선 바늘이 그녀를 이루는 모든 관절에 들어가 인정사정없이 찔러대는 고통이었다.
거기에 체온은 또 왜 이렇게 높아졌는지, 호흡을 아무리 몰아쉬어도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열 때문에 먹먹해진 귀로는 소리 대신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계속해서 귓구멍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몸 이곳저곳에서 앞다퉈 고통을 호소해 왔다. 뜨겁고, 따갑고, 지끈거리고, 저릿하고, 시리고, 답답하고……. 그 모든 것들이 한 번씩 세라를 찌르고 지나가면 마지막으로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불에 지진 듯이 아파 왔다.
그저 아프고, 아프고, 아프고, 아팠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아플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지옥 불도 그냥 뜨겁기만 했지, 이렇게 다양한 고통을 선사하지는 못했는데 말이다.
“할 수 있는 조치는…. 지나치게 위독….”
언뜻 먹먹해진 귓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정황상 의사 같았다.
아, 다행이야. 살았다. 세라는 의사가 왔으니 제 몸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 우선… 경과를 지켜봐야….”
또 잠시 끊어졌다 돌아온 의식 너머로 또다시 의사의 말이 끼어들었다.
그에게 걸었던 희망이 무색하게도, 의사는 세라가 왜 이렇게 아픈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눈치였다.
뭐 저런 돌팔이가 다 있어.
세라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쓰러진 이유는 평범한 의사가 밝혀내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결코 알 수 없는 흑마법이 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마법을 알고 있는 세라 또한 제 몸 상태가 어쩌다 작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가 흑마법을 썼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니스와 에녹의 집에 돌아갔을 때. 그때 이미 세라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었다.
다만 급박하게 변하는 외부 상황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여력이 없었을 뿐.
그녀는 감형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널렸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흑마법을 써 버린 것이다.
세라 로젠바움에게 있어서 흑마법은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마법을 써 왔다. 한창 그녀의 악명이 자자했을 때에는 생각만 해도 마법이 이루어진 적도 있을 정도다. 그때의 습관으로 인해, 이번에도 세라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눈치 없는 마력이 움직여 주인이 원하는 바를 이뤄 준 것이다.
흑마법은 빼앗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부족한 힘을 불어넣어 주는 정상적인 마법이 가능할 리 없다.
세라에게 걸린 마법은 그녀가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고통이나 피로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마법이었다.
그러니까, 백여 명의 사람을 구조하면서도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기분 탓이 아니라 그저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라 할 수 있겠다.
무리하게 마력을 쓴 회로가 고통스러워했지만, 이미 걸린 마법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중간중간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쓰기까지 했다. 그런 악순환이 돌고 돌아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그동안의 과부하가 한꺼번에 세라를 덮친 것이다.
그 덕에 세라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가 한층 더 심각하게 벌어졌다.
의사는 세라의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결과만큼은 확실하게 예견했다.
무언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앓느라 바쁜 세라는 이 모든 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줄 꿈에도 모르는 상태였다.
‘죽, 죽여… 줘….’
그저 다시 한번 기절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한 번 깨어난 의식은 순순히 끊어지지 않았고 자꾸만 치즈처럼 늘어났다 붙었다를 반복했다.
확실하게 끊어지지 않고 애매하게 멀어졌다 돌아오는 바람에 그때마다 온몸의 통각이 살아나 지끈거렸다.
“노예야.”
가물가물한 귓가에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에녹 소서.
그저 그녀를 아프게만 하는 다른 모든 소음과는 달리, 에녹의 목소리는 변형되지 않고 부드럽게 세라에게 흘러들었다.
그는 세라의 의식이 깨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별다른 확인 과정 없이 곧장 본론부터 꽂아 넣었다.
“너 죽는대.”
전혀 안타깝지 않은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온다.
“흐……?”
통보에 가까운 죽음에 세라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갔다.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죽여 달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네 생각은 어때?”
그때, 에녹이 뜬금없이 그녀의 생각을 물어 왔다.
“으……?”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세라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침대에 턱을 괸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에녹이 보였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라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선이 곧장 마주쳤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수정 빛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에녹이 묻는다.
“살고 싶어?”
“므…스…….”
그에 세라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진다.
지금 아파서 숨넘어가기 직전의 사람을 앞에 두고 뭘 물어보는 건가.
“당… 연, 흐…. 뭘, 그런….”
세라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의미로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말을 웅얼거렸다.
의지대로 움직이는 곳이 없어서, 그 짧은 말을 하는데도 자꾸만 발음이 샜다.
그녀에게 있어서, 저 질문은 물어보나 마나 한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누구보다, 살아남고 싶은 사람이었다.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고 나서도, 그 이전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쭉…….
“네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아.”
반면, 에녹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왜 그러느냐는 태도였다.
악의라곤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말투였으나, 세라의 입장에서는 혹시 일부러 이러나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었다.
아파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참에 죽고 싶을 수도 있으니 한번 물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다니. 심지어 그걸 실행에 옮기기까지 하다니.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개, 소….”
개소리하지 마라. 진짜.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린 세라가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무엇보다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한 그녀는 애써 뜨고 있던 눈을 다시 꽈악 감아 버렸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에녹이 별 시답잖은 걸로 자꾸 정신력을 갉아먹는 게 성가셨기 때문이다.
잠깐 대화한 게 몸에 큰 부담을 가져다준 것일까?
세라는 눈을 감기가 무섭게 정신이 새카만 어둠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듯한 혼몽함을 느꼈다.
의식이 순식간에 흐릿해진다. 고통의 감각이 서서히 멀어져 간다.
아, 드디어 기절할 수 있어.
물에 잠기는 것처럼 편안한 감각에 세라가 스르륵 그 흐름에 의식을 맡겼다.
“그럼-.”
하지만, 뒤이어 흘러든 에녹의 말을 들었을 때.
“살려 줄까?”
세라는 그토록 바라는 것을 제 손으로 내팽개쳐야만 했다.
“으……?”
절로 솔깃해지는 제안에 세라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의식을 붙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린 그녀가 지그시 에녹을 바라봤다.
“살려 줘?”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에녹이 한 번 더 묻는다.
그 문장이 지니고 있는 무게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말투였다.
꼭 동네 꼬마에게 ‘사탕 줄까?’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그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양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으, 으응….”
그 자신감에 이끌린 세라가 좀 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 때문에 촉촉하고 흐리멍덩해진 눈가에 일말의 이채가 깃들었다.
저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에녹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발바닥을 핥아서라도 받아 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남은 형량은 4억 년.
아직 갈 길이 먼데, 이대로 지옥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세라는 간절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간절함은 그녀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세라는 마지막 물음 속에 숨겨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읽어 내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래.”
에녹이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모두 이끌어 낸 사람처럼 개운한 얼굴이다.
“너도 분명히, 동의한 거다?”
기분 좋아 보이는 에녹의 표정에, 세라가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 그 순간.
“……?”
에녹이 세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