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비해 에녹은 급하지 않았다.
능숙하게 파고든 혀가 제 굴을 파고드는 뱀처럼 느긋하게 세라의 혀를 건드렸다.
질척한 살덩이가 비벼지는 감촉이 고열로 둔중해진 감각을 뚫을 정도로 선명했다.
“으으응…….”
세라는 혼몽한 와중에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려 주겠다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입이 틀어막혀 할 수 없었다. 아마 입이 자유로웠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위급한 환자였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작해야 괴롭히고 싶은 것처럼 깊이 파고드는 혀를 피해 고개를 뒤트는 것뿐이었다.
“안 돼.”
하지만 그 미약한 시도마저, 에녹에 의해 저지당했다.
두 손으로 세라의 어깨를 잡아 누른 그가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에다 대고 경고해 왔다.
“가만히 있어야지.”
속살대는 숨결이 스친 입술이 간지럽다.
에녹이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자신이 간지럽힌 입술을 약하게 깨물어 주었다.
그러고는 마저 속삭인다.
“살려 주고 있잖아.”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를 든 그가 다시 세라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끼이익.
침대가 한쪽으로 기운다.
무릎걸음으로 침대에 올라온 에녹이 자연스럽게 세라의 옆을 파고들었다.
세라의 등 뒤로 팔 하나를 끼워 넣은 그가 그녀의 상체를 반쯤 일으켜 품에 안았다.
힘없이 축 늘어진 고개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꺾였다.
세라의 턱이 들려진 각도만큼 에녹의 얼굴이 함께 기울었다. 끝까지 따라붙은 그는 한시도 그녀를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부가 제 입 안에서 살아 꿈틀대는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이게 살려 주는 거라고?
어디로 보아도 병간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행위에 세라가 의심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붕 뜬 머릿속에 현재를 닮은 기억 하나가 스쳤다.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에녹이 이런 식으로 그녀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이 행위도 치유에 필요한 일환이라고 생각하자, 의심이 사그라들었다.
몸소 경험했던 일이니 세라가 할 일은 그냥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그게, 참, 이렇게 말하면 쉬운 일이긴 한데…….
‘혀를 꼭 이렇게 쓸, 필요가….’
마냥 치료가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그녀를 헤집는 에녹의 혀 놀림이 너무 화려하다.
그래서 세라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일말의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에녹의 입맞춤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으…….”
버거울 정도로 달려드는 에녹에, 세라가 항의하듯 탄식을 내뱉었다.
에녹은 미약한 반항이 남아 있는 세라의 입술을 핥고 씹으며 그녀가 자의로 입을 벌려 줄 때까지 괴롭혔다. 그러다 힘이 빠진 세라가 마지못해 입술을 열어 주면, 짜증 날 정도로 정확하게 그녀가 약한 부분을 자극해 왔다.
예민한 혀끝, 움푹 팬 입천장, 말캉한 안쪽 뺨을 생크림이라도 핥아 먹듯 느리고 여유롭게. 참다못한 세라가 미약하게 짜증을 내면 자그마한 혀를 제 입 안에 끌어당겨 사탕처럼 쭉쭉 빨아 먹었다.
참으로 집요하고, 관능적인 입맞춤이었다.
꿈틀거리며 깨어난 성감이 세라를 괴롭히는 고통과 한데 뒤섞이기 시작한다.
대척점에 위치한 감각들이 서로 충돌한다.
나으라는 몸은 안 낫는데 정신은 더 혼미해지고, 감각만 자꾸 예민해졌다.
……이거 치료 아닌 것 같은데.
희미하게 돌아온 이성이 그를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하지만 겨우 윤곽을 드러내던 이성은 곧 해일처럼 밀려든 통증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흐으…….”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세라의 몸이 둥글게 말렸다. 온몸을 저밀 기세로 덮쳐 오는 고통은 시간에 걸쳐 서서히 흐릿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영혼에 새겨진 상처에서 극심한 작열감이 올라왔다.
꼭 그녀의 심장을 통째로 지옥 불에 던져 넣은 것 같은 고통이었다.
목 안쪽까지 바짝 익어 버릴 것 같은 감각에 세라가 순간적으로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끄윽…….”
목 졸린 신음을 낸 세라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두 다리를 연신 허우적거렸다.
“아파?”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에녹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내가 안 아프게 해 줄게.”
“흐, 시, 심장, 가스, 가슴이…….”
“여기?”
안 아프게 해 주겠다기에 무언가 생각이 있나 싶어 알려 줬더니, 에녹이 손가락으로 냅다 세라의 심장께를 꾸욱 눌러 왔다.
“하으으으……!”
그에 세라가 발작하듯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아픔은 육체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위치상 같은 곳에 자극이 가해지자 상처가 후벼 파인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비록 착각이기는 해도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으므로, 세라는 그만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프, 흐, 아프, 잖, 아……!”
패닉에 빠진 세라가 힉힉, 짧은 숨을 끊어 쉬며 소리쳤다.
“아아, 미안. 미안.”
얼른 손가락을 뗀 에녹이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어투로 사과해 왔다.
“사, 살려, 준다고, 했으, 면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세라가 원망하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모습이 꼭 칭얼대는 아이 같았지만, 열에 들뜬 머리로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쉬-.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그게 먹혔는지, 에녹이 이번에는 제법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짐승을 달래듯 몇 차례 더 그녀를 쓰다듬어 준 에녹이 장난기가 쏙 빠진 목소리로 확답했다.
“진짜 살려 줄게.”
“……?”
역시, 아까 그거 치료 아니었던 거지!
한 박자 늦게 말의 의미를 이해한 세라가 확신범을 바라보는 눈으로 에녹을 노려보았다.
에녹은 그녀의 잇새로 터져 나오는 욕설을 기꺼이 집어삼켰다.
노예와 입술을 맞댄 주인님이 뭐가 그리 좋은지 낮게 킥킥거렸다.
화 풀라는 것처럼 쪽, 쪽, 쪼는 입맞춤을 한 에녹이 세라의 입술을 벌려 공간을 만든 다음.
훅-. 하고 길게 숨을 불어넣었다.
“……!”
그의 숨을 타고 청량한 기운이 세라에게로 밀려들었다.
입 안 가득 들어차는 상쾌함에 그녀가 반사적으로 꿀꺽, 그것을 삼켰다.
세라의 목을 타고 넘어간 기운이 사르르 녹아내려 곧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하아-.”
그 상쾌한 감각에 세라가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탄성을 쏟아 냈다.
에녹이 넘겨준 기운을 삼키자, 세라를 괴롭혀대던 고통이 사그라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끊어졌던 고통이 다시금 그녀를 찾아왔다.
세라로서는, 에녹을 다시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 먼저 입을 맞춘 사람은 세라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에녹의 얼굴을 감싸 쥔 그녀는 저돌적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세라는 그가 제게 했던 것처럼 입술을 벌리고, 그 사이로 작은 혀를 쏙 집어넣었다.
“…….”
일단 냅다 혀부터 넣긴 했지만, 세라에게 에녹처럼 화려한 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몇 번 흉내 내듯 에녹의 입 안을 휘저어도 봤지만, 너무 어설퍼서 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짓궂은 미소를 지은 에녹이 일부러 호응을 하지 않아 더더욱 모양새도 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낑낑대던 그녀는 의욕이 없어 보이는 에녹의 혀를 겨우 끌어내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관능적이라기보다는 어미 젖을 찾는 새끼를 연상케 하는 입맞춤이었다.
“하아-. 진짜.”
너무 열심히 한다.
그가 선사한 입맞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엉망이었는데도, 에녹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턱을 한껏 꺾어 깊숙이 혀를 쑤셔 넣어 주었다.
그러자, 아까의 청량한 기운이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울컥, 밀려들었다.
“으으움, 으음-.”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구원에 세라가 꿀떡, 꿀떡, 열심히도 빨아 삼켰다.
에녹은 계속해서 세라가 원하는 것을 넘겨주었고, 세라는 그가 주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먹었다. 양쪽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나오니, 두 육체의 거리가 금세 좁아졌다.
이제 에녹은 세라의 몸을 완전히 타고 오른 채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데 뒤엉킨 남녀가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했다.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세라를 괴롭히던 통증이 조금씩 걷혀 나갔다.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기분 좋은 청량감이 파고들었다.
마치 포근한 구름에 싸여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고양감에 매료된 세라는 먹어도, 먹어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에녹을 쥐어짰다.
“안 돼. 이제 그만.”
하지만 그때, 에녹이 단호하게 세라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의 목에 둘러져 있던 팔이 멀어지는 거리를 이기지 못하고 툭, 아래로 떨어졌다.
이즈음 세라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아직 고열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를 지옥 입구까지 데려갔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도 세라는 여전히 에녹을 찾았다.
그녀를 기분 좋게 해 주었던 그 기운을 또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더어…….”
더 줘. 더. 더 해 줘.
연신 더 달라고 칭얼대는 그녀의 두 눈은 이미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더듬거리며 팔을 타고 올라간 손이 그의 옷소매를 꼬옥 붙잡아 당겨댔다.
다시 방금처럼 입 맞춰 달라는 뜻이었다.
언뜻 애교스러워 보이기도 한 그 행동에, 에녹이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더 해 줘?”
“으, 응…….”
세라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난생처음 맛보는 황홀한 구원의 맛에 완전히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그래-.”
에녹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그 얼굴을 쓸어내렸다.
비록….
“우리 대-단하신 은인께서 해 달라는 건 다 해 줘야지.”
세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영-. 곱지 않았지만 말이다.
빙긋, 입만 찢어 웃은 에녹이 두 손을 아래로 향했다.
부드럽게 무릎을 감싸 쥔 두 손이 허벅지를 타고 역으로 미끄러졌다.
뜨거운 그녀의 체온에 비해 에녹의 두 손은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늘한 편이었다.
하아, 커다란 손이 전해 주는 체온이 기꺼워 세라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샜다.
거침없이 올라붙는 손길에 정숙하게 정돈되어 있던 치마가 걷혀 올라갔다.
다리를 따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간 두 손이 한곳에서 만난다.
속옷 사이에 손가락을 건 에녹이 그것을 망설임 없이 아래로 끌어 내렸다.
갑자기 아래가 허전해지는 느낌에 세라가 본능적으로 두 다리를 오므렸다.
쉬, 괜찮아. 그녀를 품에 끌어들인 에녹이 나쁜 게 아니라며 세라를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더 좋은 걸 줄게.”
뜨거운 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댄 영웅이 인간을 홀리는 악마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
자신을 고통에서 구원해 준 목소리.
그가 주었던 안식을 기억해 낸 세라가 경계심을 풀고 원하는 대로 슬쩍, 오므렸던 다리를 열어 주었을 때-.
찌걱, 손가락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