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냉소적으로 픽, 입매를 비튼 그가 세라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넣은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아, 맞아. 나 얘 밀었지.
그제야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과오를 떠올린 세라가 설핏 표정을 굳혔다.
너무나 정신이 없던 나머지 그 중요한 사실을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웠기에, 세라는 말도 잊고서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주, 주인님. 그게 사실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변명하지 마.”
어설픈 변명이라도 해서 그를 달래 보려 했지만, 제대로 운도 떼 보기 전에 실패했다.
“그래도 사죄는-.”
“사과도 하지 마.”
사과도 마찬가지다.
빠져나갈 모든 구멍이 틀어막힌 세라가 최대한 미안하고 불쌍한 표정을 하고서 그에게 간청했다.
“그럼 무엇을 해야 용서를…….”
“하하!”
에녹이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농담을 들은 양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큭큭 대며 웃음을 참다가 곧, 싸늘한 무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 용서 같은 건 없어.”
“…….”
“그냥, 각자 주어진 결과를 견디는 거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영웅은 심오한 말로 제 노예를 다그쳤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 주인님이 다시 한번 더 자신이 깨우친 진리를 강조하며 쐐기를 박았다.
“견뎌.”
세라가 그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주어진 결과를 견디는 것뿐…….
그렇게 주어진 결과는 에녹 소서와 침대를 뒹구는 일이었다.
양옆에 벌어진 두 다리를 제 양어깨에 짊어진 에녹이 세라의 위로 완전히 올라탔다. 세라의 몸이 반으로 접히면서, 안 그래도 좁은 내벽이 바짝 에녹의 페니스를 압박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히는 살 기둥은 무게가 더해져서인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에녹이 위치를 가늠하듯 허리를 살살 비벼댄다. 닿는 순간 세라의 허리가 움찔 튀어 오른 곳에 선단을 겨눈 그가 말뚝을 때려 박듯 사정없이 구멍을 쑤셔 박았다.
“아아!”
무게가 실린 선단이 세라가 결코 괜찮은 척할 수가 없는 약한 극점을 직각으로 들이받았다. 하도 받혀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그곳은 그것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조차 완전히 벗겨져 나간 것처럼 날 것 그대로의 쾌감을 온몸에 흩뿌려댔다.
그렇게 뿌려진 쾌감은 결국 다시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 타닥타닥 불꽃이 되어 튀어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 세라의 내벽이 와들와들 경련해댔다. 배 속이 술렁이며 응축하는 이유는 폭발을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걸 세라는 이제 알고 있었다.
“아, 잠깐, 하으, 살살, 이거, 너무, 세……!”
아플 정도로 느껴지는 쾌감에 세라가 저도 모르게 제발 살살 박아 달라 애원했다. 에녹은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너는 내 등 살살 밀었어?”
할 말 없게 만드는 질문과 함께 에녹이 오히려 더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서열을 정리하는 짐승이 마운팅을 하듯 거침없는 허리 짓이었다.
“아니, 뒤끝, 으응, 왜 이렇게 길어! 하읏!”
모든 대화를 차단하는 치졸함에 세라가 기함을 토해 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내벽이 미친 듯이 자신을 찍어누르는 믿음직한 성기에 미친 듯이 달라붙었다. 세라의 음부는 제 길을 뚫어 준 첫 정복자에게 항복을 고하듯 자지러지며 애액을 뿜어댔다.
자궁구가 숨어 있는 깊숙한 곳에서부터 인 가벼운 경련이 입구까지 번져 나갔다. 와들와들 떨며 수축하는 내벽은 민감해진 극점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에녹의 페니스를 밀어냈다.
에녹은 이번엔 봐주지 않았다. 어림도 없다는 듯 억지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그가 기어코 한계에 다다른 내벽을 무자비하게 찍어눌렀다.
쩍, 쩍, 쩍, 쩍.
젖은 살을 가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툭 불거져 발달한 귀두 갓이 안쪽을 퍼낼 때마다 바깥으로 투명한 애액이 흘러넘쳤다.
이제 세라와 에녹을 잇는 결합부는 온통 질척거려 어디를 닿아도 미끈거렸다.
“흐아아아!”
무력하게 에녹을 받은 세라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발끝이 오그라들었다가 바깥으로 쫙 펼쳐지며, 뜨거운 전류가 온몸에 있는 감각점을 훑어 내렸다.
처음인데도 가차 없이 들쑤셔진 배 속이 욱신거리며 아래로 질금, 뭔가가 샌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을 것 같은 쾌감에 허우적대는 세라는 그저 입을 크게 벌린 채 컥, 컥, 막힌 소리만 낼 뿐이었다.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숨이 들어오지 않는다. 크게 벌어진 동공이 벌벌 떨리며 눈앞이 새카맣게 죽어 들었다.
에녹은 벌어져 뻐끔대는 입술 사이로 서슴없이 제 혀를 쑤셔 넣었다. 음부와 똑같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혀를 잡아다 마음껏 희롱한 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앞으로 일주일은 네 곁에 꼭 붙어 있을게.”
그러고는 아직도 쾌감에 진저리 치는 세라를 붙잡아 폭력적으로 쾌락을 쑤셔 넣었다.
“제발, 조금만, 쉬었다, 쉬었다. 해. 아으으으!”
배가 뜨겁다 못해 시릴 정도로 느껴 버린 세라가 고개를 내저으며 처절하게 절규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절정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자극이 오자 배꼽 아래에서 강한 요의가 느껴졌다.
“쉴 틈이 어딨어.”
단호한 주인님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눈치 없이 그녀를 채근했다.
“얼른 건강해져야지. 내 노예.”
쪽, 다정하게 속삭인 에녹이 세라의 뺨에 입을 맞췄다. 입 안 가득 말캉한 살을 흡입한 그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을 양껏 씹어댔다.
“으아아, 안……!”
세라는 에녹의 허리 짓이 열 번을 채 넘기기도 전에 비명을 내질렀다. 새로이 덧입혀진 절정은 예상외로 처음보다 부드러웠다.
날카로운 전류에 떨어대던 여체는 자궁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부드러운 절정에 경계를 풀고 사르르 녹아내렸다.
찌익, 그와 동시에 바짝 조여 참고 있던 요의가 막을 새도 없이 터져 나갔다. 한번 터져 나온 물은 곧장 쏘아져 나가 에녹의 배를 더럽히고, 얼마간은 세라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투명하고 맑은 액체가 에녹이 들쑤시는 움직임에 맞춰 밖으로 쭉쭉 쏘아져 나왔다.
“내, 내가, 내가아……!”
자신이 실금을 했다고 생각한 세라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아, 보람차.”
괴로워하는 세라를 바라보는 에녹의 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저 표정을 계속 볼 생각을 하니 절로 허리가 뻐근해졌다.
“큿……!”
낮게 신음한 에녹이 비로소 사정했다.
돌처럼 단단한 엉덩이 양옆이 쏙 패여 들어가며 오랜 시간 응축해 둔 정액을 쥐어짰다.
크게 박동한 페니스가 녹진하다 못해 흐물흐물하게 풀린 내벽 안쪽을 온통 제 것으로 채워 넣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쏘아져 나오는 정액은 마치 노린 것처럼 여태 괴롭혀대던 세라의 극점을 쭉쭉 쏘아 맞혔다.
예민한 내벽에 점성 높은 정액이 찰싹 들러붙었다. 너무 깊숙이 싸 갈기는 바람에, 세라는 배가 묵직해지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다.
두 팔로 세라를 완전히 끌어안은 에녹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안쪽 깊숙한 곳에 정액을 쏟아부었다.
“후우-.”
저릿저릿한 쾌감이 허리를 타고 올라와 에녹의 뒷덜미를 긁어내렸다. 만족스러운 포식을 한 맹수처럼 뜨거운 숨을 내쉰 그는 길었던 사정이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성기를 뽑아냈다.
그 길을 따라 안쪽에 있던 것이 와르르 바깥으로 쏟아져 내렸다. 에녹의 성기는 세라가 내뿜은 애액과 자신이 싸지른 정액으로 온통 범벅이었다.
잠든 뱀처럼 대가리를 아래로 축 늘어드린 그것은 발기하지 않아도 길고 묵직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다 삼켜야지. 몸에 좋은 건데.”
에녹이 벌름대며 음부에 도로 정액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입구와 가까이에 있는 극점을 찾아 문질러댔다.
“흐아, 흐으으……!”
그에 세라가 또 한차례 쭉쭉 물줄기를 쏘아 냈다.
에녹은 본인이 유도한 주제에 설마 또 이럴 줄 몰랐다는 목소리로 느물거렸다.
“그렇다고 싸지는 말고.”
“으으!”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에 세라가 또 한 번 자괴감에 휩싸였다.
에녹은 입가를 쭉 찢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세라가 지린 게 소변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알려 줘 그녀의 정신 건강을 지켜 주지 않았다.
“한숨 자. 이젠 아프지 않을 거야.”
어느 정도 마음을 달랜 그가 불편한 세라의 자세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수면을 권유했다.
“아, 아니…….”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이러고 나서 태평하게 잠을 자라고?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맘 편히 잠들지 못하도록 정신을 헤집어 놓은 작자가 말이다.
세라는 자신이 결코 잠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언제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믿고 왔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지나치게 강렬한 과정 때문에 무슨 결과가 나오더라도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세라는 이 침대 위에 있었던 일이 제 뇌리와 몸에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기억 때문에 사는 동안 문득문득 수치심에 몸서리치는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내 인생은 끝났어. 원래도 끝났지만, 이번엔 진짜로…….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들은 에녹이 짓궂게 웃으며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 끝났으니까 그냥 자.”
저놈 앞에서 못 배운 짐승처럼 실례를 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차라리 진짜 죽여 줘.
스스로를 저주한 세라가 두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다.
절대 잠들 수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신기하게도 포근하고 안락한 기운이 세라를 감쌌다. 진짜 에녹의 말처럼 그가 싸지른 게 몸에 좋은 거였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수치심이 밀려왔다.
“…….”
의도적으로 생각을 잘라 버리자, 의식이 빠르게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통도, 고열도, 고뇌도 없는 어둠이 세라의 정신을 감싸 안았다. 세라는 고요한 허무 속에 기꺼이 몸을 내맡겼다.
눈을 떴을 때, 차라리 다시 지옥 불 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