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너는 내가 나라는 걸 알았어도 살려 줬을까.
이제 와서 부질없는 의문이라는 것도 알고, 답을 안다 하더라도 별달리 바뀌는 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세라는 그 점이 못내 궁금했다.
모두에게 공평한 너는 과연 나에게도 그 헤픈 인심을 나눠 주었을지.
에녹은 예외 따윈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세라는 그런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을 믿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이 똑같이 받아 가야 할 몫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녀만은 예외였으므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노예야.”
재차 돌아오는 질문에 귀찮아진 걸까. 에녹이 차갑게 정색하며 세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답한다.
“너, 나쁜 놈이야.”
“…….”
그녀는 이미 나쁜 놈이라고.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는 사실을 말하듯 담담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내 등을 밀었잖아.”
그 이유는 결국 돌고 돌아 또 그 이야기였다. 하여튼 대단한 뒤끝이다.
“하하!”
하지만 세라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에녹은 제 길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놈은 그냥 귀찮은 놈이라고만 하면서, 그의 등을 떠밀긴 했어도 결국에는 사람들을 지켜 낸 세라에게는 서슴없이 나쁜 놈이라 지칭했다. 하지만 그가 구원한 건 귀찮은 놈이 아니라 나쁜 놈이었다.
“결국 주인님한테는 귀찮은 놈이 더 나쁜 거군요.”
에녹 소서를 신격화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말이겠으나, 세라는 간만에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사로운 잣대에 흔들리지 않은 게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깊숙이 꽂아 두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놈들만 조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날 귀찮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오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에녹이 세라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졸린 것처럼 지그시 눈을 감은 그가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근데 누군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더라.”
세라는 에녹이 미처 다 감추지 못한 지긋지긋한 권태를 느꼈다.
그가 지켜야 할 건 이 세상이지. 인간이 아니다.
세라는 언젠가 레니스에게 들었던 그 말을 상기했다.
그리고 에녹이 느끼는 권태가 어떤 종류의 것일지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 비슷한 감상을 세라도 언젠가 느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유지하는 것도, 부수는 것들도.
결국은 전부 인간이라는 사실을…….
300년이라고 했나. 지겨워질 만하지.
그가 살아온 세월을 가늠해 본 세라는 에녹이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놀라워했다.
내가 에녹 소서에게 공감하는 날이 오다니.
역시 인생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래서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는 건가.
남다른 깨달음을 얻은 세라가 소리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제법 감성이 충만해진 세라가 그때까지 잘도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멀거니 바라봤다.
“근데…….”
그러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걸 물었다.
“그 나쁜 놈 가슴은 왜 주물럭대고 계시죠?”
비난의 시선이 에녹에게로 향한다.
누구는 격조 있게 복잡한 영웅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는데, 정작 그 장본인은 이불 밑으로 노예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쁘니까 혼내 주려고.”
쿵, 앞으로 밀려난 세라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가 되었다.
그녀의 허리를 잡아 뒤로 쭉 빼낸 에녹이 빠끔 벌어진 둔덕 사이로 두툼한 좆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으응……!”
곧장 입구를 벌리고 들어오는 버거운 이물감에 세라의 등허리가 일자로 깊숙이 패이며 바짝 조여들었다.
“그새 빡빡해졌네.”
자는 동안 원래대로 돌아간 속 길은 아까처럼 기다란 살 기둥을 끝까지 품지 못했다.
밀려 나온 뿌리 부근을 아쉽다는 듯이 내려다본 에녹이 바로 다음 순간 페니스를 내벽에 거의 문지르다시피 얕게 허리를 비비적거렸다.
“아, 흐으으…….”
여지없이 약점을 자극당한 세라가 앓는 신음을 냈다.
쾌감을 받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쉬운 몸을 지닌 덕분에,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젖어 들어 한껏 휜 페니스를 쭉쭉 삼켜 나갔다.
에녹은 연신 페니스를 앞뒤로 넣어다 빼며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한 속살을 거스르며 조금씩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세라가 몇 번 어, 어. 하고 당황하는 사이. 엉덩이에 까슬한 음모가 닿을 정도로 깊이 연결되고 말았다.
“이, 이런 분위기가, 흐, 아니었, 잖아. 으읏!”
거의 날벼락을 맞듯이 삽입을 당한 세라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계속 이런 분위기였는데?”
반면 에녹은 처음부터 쭉 이런 분위기였다며 세라의 볼기짝이 뭉개질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털어댔다.
짝, 짝. 방심한 벌을 받는 걸까. 단단한 샅에 받힌 엉덩이에서 차진 소리가 올라왔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인데도, 크기가 적응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처음보다 더 버겁게 느껴졌다.
세라는 아직도 제 두 눈으로 보았던 못생기고 흉측한 살덩이가 제 다리 사이 깊숙이 박혀 들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읏, 흐응, 아!”
그중 가장 믿어지지 않는 건 역시나 몸의 반응이다.
세라가 느끼고 있는 당황과는 별개로, 그녀의 아래는 벌써 능숙하게 징그럽도록 큰 페니스를 빨아당기고 있었다.
핏줄이 잔뜩 불거진 기둥이 입구 부근에 미끄러질 때나, 위협적으로 발달한 귀두가 자궁구 바로 앞쪽에 있는 극점을 찍어 올릴 때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다리에서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몸이, 벌써 한껏 젖어 들어서 쭐걱이는 물소리가 한가득이었다.
“아, 아흐, 싫어. 그, 그냥 아플 거야. 하지 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세라가 두 손을 뒤로 보내 불끈대는 허벅지를 밀어냈다.
“굳이? 내가 이렇게 병간호를 열심히 해 주고 있는데?”
그 행동에 자극을 받았는지, 에녹이 세라에게 더 바짝 아래를 들이밀었다.
“아아-.”
그러고는 뿌리 끝까지 바짝 조여지는 느낌에 감탄하며 낮게 신음했다.
“끄, 끝까지 넣지 마! 그거 싫다고!”
기겁을 한 세라가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띄우며 에녹의 성기를 조금이라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어허, 몸에 좋은 거니까 뱉지 말고 삼켜.”
짝, 그러자 근엄한 주인님이 도망치는 노예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박력 있게 허리를 휘어잡은 큰 손이 가차 없이 그녀를 주저앉혔다.
허억, 다시 없을 만큼 깊어진 삽입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라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에녹의 손등에 불끈 힘줄이 솟아올랐다.
자리에서 무릎걸음으로 일어선 에녹이 세라의 상체를 앞으로 밀어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는 한쪽 다리를 펴 발바닥으로 단단히 땅을 지지한 다음, 성난 황소처럼 턱, 턱, 허리를 쳐올렸다.
두 사람이 붙었다 떨어지는 공간 사이로, 자그마한 음부에 선단부터 뿌리 끝까지 박혀 드는 성기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처음부터 살벌하게 자궁구를 들이받는 추삽질에 민감하게 달아오른 내벽이 쩍쩍 달라붙었다.
깊이 쑤셔 박힐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애액 때문에, 에녹의 하복부에 부딪히는 말캉한 엉덩이가 온통 질척하게 젖어 들었다.
음심을 자극하기에 차고도 넘치는 절경을 내려다보며, 영웅이 마음껏 그의 노예를 약탈했다.
“아흐, 아아! 앙! 진짜, 짜증, 으응!”
허리를 봉긋하게 휜 세라가 커다란 가슴을 덜렁거리며 짜증을 냈다.
찌걱, 찌걱, 찌걱, 눈을 감고 들어도 알 정도로 음란한 교접 소리가 고요한 새벽녘을 울렸다.
타닥. 타닥. 장작이 뜨겁게 타오른다.
샛노란 불빛을 받은 나무 벽 위로 한 쌍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벽을 타고 늘어진 짐승의 그림자는 날이 새도록 접붙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
그 뒤로도 세라의 몸 상태는 들쭉날쭉했다.
그녀는 에녹이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몸이 닿아 있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끙끙 앓아댔다.
증상은 첫날과 비슷했다. 어떨 때는 고열이 치솟았다가, 어떨 때는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었다.
“신기하네. 대체 무슨 병에 걸린 거지?”
에녹은 이토록 지독하게 앓는 사람은 처음 만나 봤다며 연신 신기해했다.
이쯤에서 세라는 자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마력 회로가 과열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무리하게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마법을 써 버리는 바람에, 망가진 회로가 쉬이 진정하지 못하고 날뛰고 있었다.
게다가 그 한가운데에는 성검에 의해 새겨진 상흔까지 있으니 죽을 만큼 아픈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쩔 수 없네.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그렇게 회귀를 거듭하는 세라의 상태를 이틀 정도 지켜본 에녹이 심각한 얼굴로 결단을 내렸다.
***
“이게 맞나요?”
세라는 떨떠름한 눈으로 제 입 앞에 들이밀어진 음식을 바라보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테이크였다. 대체 누가 환자에게 이렇게 무거운 음식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맞아. 확실해.”
그것을 굳이, 에녹 소서의 무릎 위에 앉아서, 그가 먹여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도 받아 본 적 없는 닭살스러운 시중에 세라가 속이 울렁거리는 눈으로 표정을 굳혔다.
“가리지 말고 어서 먹어. 자, 아-.”
그것을 음식 투정쯤으로 여긴 에녹이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먹여 주었다.
“아…….”
세라는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먹었다.
에녹이 기껏 생각해 낸 비장의 방법이란 세라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거였다.
아직까지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 건 에녹이 주는 치유의 힘이 병을 이길 만큼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
맛있어….
으적대며 씹어 삼킨 고깃덩이는 의외로 맛이 좋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 없이 놀라고 있자, 에녹이 냅킨을 들어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 내 주었다.
그리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물 한잔을 먹여 주고…. 또 닦아 주고….
에녹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지 모를 정도로 섬세하게 식사 시중을 들었다.
유능한 영웅은 이런 쪽에서도 효율이 좋았다.
‘나쁘지 않을지도…….’
알아서 살아지는 쾌적한 느낌에 세라는 무심결에 현실과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세라가 얌전해지니 그 뒤부터는 아주 순조로웠다.
에녹 소서는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로, 세라를 돌봐 주는 며칠간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그녀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세라는 잠을 자다 깨어나도, 목욕을 할 때에도, 그가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볼 때에도 늘 에녹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안에는 당연하게도 섹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애인을 여럿 둘 정도로 정력이 넘치는 에녹 소서는 틈만 나면 제 노예의 음부에 흉흉하게 발기한 살덩이를 들이밀었다.
세라가 내키지 않아 난색을 표하면, 빨리 나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뤄 냈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에녹과의 섹스는 정말로 몸에 좋았다.
세라는 그를 받아들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영 지진 부진하던 몸 상태가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다만, 우리의 영웅께서 지나치게 밤 생활에 능숙한 나머지 한번 시작하면 끝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일단 한번 흘레붙고 나면, 세라가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멈추질 않았다.
겨우 끝났다 싶으면 또 금방 아래를 곧추세워 세라를 덮쳐댔다.
덕분에 이제 겨우 쾌락을 알게 된 세라는 시작과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황홀경에 오르며 속성으로 경험을 쌓았다.
“흐, 앗, 아, 아아, 방금, 일어났는, 데에……!”
에녹은 남녀의 교접이 낮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려 주었다.
시간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어디에서나 섹스를 했다.
세라는 침대는 물론이고 욕조, 계단, 그녀의 작은 다락방, 부엌, 2층 복도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그를 받았다.
어떨 때는 세라의 상태가 별로 나쁘지 않았음에도 순전히 에녹이 하고 싶어서 할 때도 있었다.
정말이지, 지독하게 문란하고 원초적인 간병이었다.
어떻게 된 게 사람이 이 정도로 관계를 많이 가졌으면 지쳐서 조금 뜸해질 만도 한데, 에녹은 뒤로 갈수록 더 자주 세라와 뒹굴었다.
그 때문에 그와 몸을 섞지 않을 때엔 옷을 챙겨입던 세라도 나흘째부터는 아예 알몸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정 난 종마처럼 밀어붙이다가도, 에녹은 간혹 연약한 척 어리광을 부렸다.
“무릎베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