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오…….”
그에 스노우는 감격한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
“…….”
온도가 다른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헉, 평소 에녹의 성질머리를 아는 길드원들은 세라의 행동에 기함을 토했다.
소란스럽던 공간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조용해졌다.
조마조마한 시선이 에녹의 등으로 집중되었다. 숨죽여 사태를 바라보던 길드원들이 여차하면 대장과 세라의 사이를 갈라 둘 생각으로 슬쩍 의자에서 엉덩이를 띄웠다.
상황의 결정권을 쥔 에녹의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
“그럼 취소.”
그는 스노우를 들이밀던 손을 얼른 거두며 제 발언을 철회했다.
“……어?”
놀라울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에 정색하던 세라의 표정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두 제안을 모두 거절한다. 다른 대안을 제시해. 데니다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에녹이 공식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어엉?”
“엥?”
에녹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청중들이 앵무새처럼 엥. 엥. 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녹 소서! 지금 장난하나!”
쾅!
그에 참다못한 데니다스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버럭, 호통을 쳤다.
눈앞에서 원하는 것을 놓쳐 버린 그는 체통도 잊은 채 씩씩거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시선이 다 된 식사에 재를 뿌린 버릇없는 면역자에게 향했다.
“어딜 천박한 면역자 따위가 주제넘게 끼어들어!”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세라를 가리킨 그가 폭언을 쏟아 냈다.
“천박?”
그 말에 반응한 사람은 에녹이었다.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가 느릿하게 데니다스를 돌아보았다.
“다시 말해 봐.”
슬쩍 벗겨지는 친절한 가면 너머엔 맹수 같은 눈동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살기를 느낀 데니다스가 순간적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자존심에 지배당한 육체는 바르르 떨면서도 끝까지 고개만은 수그리지 않았다.
“그,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텐가! 누가 반역자 아니랄까 봐 천박하고 더러운 것들만 끼고도는 꼴하고는!”
“반역 되게 좋아하네.”
또다시 자신을 반역자라 칭하는 말에, 에녹이 같잖다는 듯이 낮게 혀를 찼다.
“진짜 왕도 아니면서.”
아, 이건 진심이 너무 새어 나왔다.
가면이 느슨해진 에녹은 다들 알지만 쉬쉬하던 정곡을 가차 없이 후벼 팠다.
“뭐라? 이, 이, 무례한……!”
그에 데니다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니었다.
“감히 폐하께 그 무슨 망발이냐!”
부들대는 그를 중심으로 양옆의 수하들이 벌떡 일어서 에녹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아퀼라뿐이었다.
“휴정! 잠깐 휴정하시죠!”
금방이라도 검을 빼 들고 맞붙을 기세에 마커스가 황급히 휴식을 요청했다. 도끼눈을 한 대리인이 잠시 쉬었다 재개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의사봉을 세 번 휘둘렀다.
세라는 제 옆얼굴에 와 닿는 열렬한 시선을 느끼곤 부담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뭘 그렇게 봐요?”
“너무, 낭만적이야. 자기야.”
아까부터 세라를 쳐다보고 있던 스노우는 자기편을 들어줄 줄 몰랐다며 초롱초롱하면서 가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배를 탔잖아요.”
이렇게까지 열렬한 반응을 얻을 줄 몰랐던 세라가 칭찬에 익숙지 않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노예님…….”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가 턱, 내려앉았다.
땅으로 쑥, 박혀 들어가는 감각에 세라의 입에서 헛숨이 샜다.
두툼하고 넓적한 손이 곰의 앞발을 떠올리게 해 절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와 동시에 마커스가 등 뒤에서 인내심을 잔뜩 눌러 담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와 마주 본 스노우가 히익, 하고 기겁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세라는 차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꾸우욱, 세라를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 아프진 않았지만, 참아 준 것뿐인지 마커스의 손등에 불룩 핏줄이 솟았다.
“미안하지만, 남은 회의 시간 동안은 밖에 나가 있을래?”
말은 권유였지만, 세라의 귀에는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 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들렸다. 그 순간 세라의 뇌리에 에녹을 쥐어 패던 마커스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는 더 이상의 분란이 지긋지긋하다는 어조로 상냥한 척 당부했다.
“나가서 얌전히 있어 줄 거지?”
“넵.”
얼른 고개를 끄덕인 세라는 스노우가 잡을 틈도 없이 도망치듯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중요 인원은 전부 회의장에 있고, 나머지는 잠이 들었기 때문에 건물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세라뿐이었다.
손님이 사용하는 공간을 지나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통로까지 멀어졌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사용 구역과는 달리 이곳에는 길드 재건을 하고 남은 자재들을 여기저기 쌓아 놓은 상태였다.
세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하마터면 곰에게 잡아 먹힐 뻔했다.
혼자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뒤에서 금방 인기척이 들렸다.
스노우가 따라온 건가? 그녀가 상대를 예측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이봐. 거기, 너.”
“……?”
우악스러운 손길에 의해 몸이 돌아갔다.
그리고.
쫘악!
찢어질 듯한 파공음과 함께 뺨이 화끈해졌다.
그대로 나가떨어진 세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얼굴 뼈가 다 얼얼했다. 새하얀 뺨에 금방 불긋불긋한 손자국이 남았다. 얻어맞은 곳을 더듬어 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입술이 찢어진 모양이다.
“버릇없이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다. 면역자.”
세라의 머리 위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
세라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올라갔다.
데니다스의 아들이라던 못생긴 감자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혐오가 명확히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당해 보는 경멸이었다.
시그너스 길드에는 더 이상 면역자라는 이유로 세라를 구박하는 사람이 없어서, 잠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까먹고 있었다.
시그너스, 진짜 살기 좋은 곳이었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세라가 웃으니 더 못생겨진 감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번 건 큰맘 먹고 참아 주기로 했다.
스노우의 애인 노릇 한다고 맞은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뺨 한 대 맞거나 푸지게 욕을 들어 먹는 것 정도는 예상했던 범위 내였다.
물론 봐주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고, 언젠가 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 줄 생각이었다.
세라는 원한을 결코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새끼야.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나대고 있어.”
자신이 어디에 이름을 올린 줄도 모르고, 절망적으로 못생긴 감자가 세라를 향해 퉷, 침을 뱉었다. 더러운 거품이 잔뜩 낀 액체가 그녀의 무릎 바로 앞에 철썩,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뭘 꼴아봐?”
세라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코락스가 그녀를 향해 위협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잡종이면 잡종답게, 가만히 엎드려 있으란 말이야. 어?”
자세를 낮춘 코락스가 엉망진창인 얼굴을 들이밀며 세라의 이마를 툭, 툭, 손끝으로 밀어댔다.
“으음.”
세라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런 건 예상한 범위 내에 없었는데. 어떡하지?
고민하자마자 마커스의 목소리가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불쑥 뇌리를 스쳤다.
‘나가서 얌전히 있어 줄 거지?’
그와 함께 어깨에 내려앉았던 두툼한 앞발이 떠올랐다.
회의장에 둘러앉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길드원들. 그리고 이번만큼은 열심히 성질을 죽이고 있는 에녹. 어떻게든 이 일을 잘 넘겨 보려는 스노우의 얼굴도 차례로 지나갔다.
그들이 세라를 받아들여 준 건, 그녀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쳐 사람들을 구해 낸 행위에 대한 보상 같은 거. 만약 여기서 그녀의 행동으로 길드에 큰 피해를 입힌다면, 다시 예전처럼 어딜 가든 물세례를 받게 될지도 몰랐다.
미움을 받는 일은 세라에게 가장 익숙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싫은 기분이 들었다.
“…….”
고민을 마친 세라가 반항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코락스를 쳐다보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흥! 면역자의 굴복을 확인한 코락스가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대로 쭉 갔더라면, 코락스는 무사히 회의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기어코 마지막에 한마디를 더 덧붙이고 말았다.
“얼굴도 못생긴 게.”
아, 그건 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코락스에게 저런 말을 듣다니.
그 사실이 평소 외모에 관심이 없던 세라마저 분노하게 만들었다. 눈앞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인내의 끈이 뚝, 하고 끊어져 나갔다.
“……선 넘네?”
싸늘하게 읊조린 세라가 눈앞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었다.
***
그리하여 지금이었다.
억!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코락스는 쓰러져 있었고, 그녀는 피가 묻은 벽돌을 쥐고 서 있었다.
우발적인, 몹시나 우발적인 범행이었다.
먼저 건드린 건 저쪽이니 참작의 사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면 다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시비를 걸었기에 벽돌을 휘둘렀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세라는 대답하겠지.
나한테 못생겼다고 했어…….
잘도 참작 사유가 되겠다.
세라는 시그너스 광장 앞에서 높이 매달려 불에 타는 제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의 죽음으로 화합을 다질 시그너스와 알타이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왜 그랬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세라가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평소엔 결코 참지 않을 행동은 잘 참아 놓고서, 누가 했어도 흘려들었을 말에 회까닥 돌아 버리다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심각하게 얼굴을 굳힌 세라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투둑. 조용하던 복도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
화들짝 놀란 세라가 얼른 소리가 난 곳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쳤다.
“…….”
아퀼라와.
입을 반쯤 벌린 채 경악한 은발의 소녀가 황망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제 혈육과 세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찬가지로 당혹스럽게 아퀼라와 쓰러진 감자를 번갈아 보던 세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봤니? 하고 물어보려던 순간.
“꺄아아악!”
복도에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퀼라나 세라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소녀의 뒤를 따르던 시녀가 내지른 비명이었다.
“며, 면역자가 왕자님을 죽였다!”
“아니야, 아직 안 죽였어!”
세라는 황급히 변명을 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왕자님이 돌아가셨다! 시그너스가 왕자님을 죽였어!”
새파랗게 질린 시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달려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한 문장 안에서도 멀어지는 소리가 똑똑히 느껴졌다. 시녀가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우르르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왔다.
“헉!”
“지, 진짜잖아!”
처참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헛숨을 내쉬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이냐! 내 장자가 죽었다니!”
가장 늦게 도착한 데니다스가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 와중에도 그는 시종들이 발밑에 붉은 융단을 깔아 주어야만 걸음을 옮겼다.
“코, 코락스…!”
마침내 코락스를 발견한 데니다스가 두 눈을 홉뜬 채 경악했다.
고작 몇 분 만에 멀쩡했던 아들이 머리가 깨져 누워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느릿하게 군중을 헤치고 나타난 스노우가 뒤늦게 세라를 보고 놀란 것이다. 그의 곁에는 에녹도 함께였다.
“…….”
그는 세라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에녹이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했다.
“코락스를 의무실로 옮겨.”
“알았어. 대장!”
빠르게 반응한 몇이 코락스를 들것에 실어 옮겨 갔다.
“저, 저, 저, 저……!”
아들이 사라지자 데니다스의 시선이 세라와, 그녀가 들고 있는 벽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제 딸에게 닿았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아들을 해친 면역자가 이번에는 귀하디귀한 딸아이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퀼라를 보호해라!”
왕의 명령에 알타이르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금속이 검집을 긁으며 튀어나오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진다. 서슬 퍼런 칼날이 언제든지 세라를 베어 버릴 기세로 겨누어졌다.
“이봐, 잠깐!”
“어디다 대고 함부로 검을 올려?”
그에 시그너스 길드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세라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를 보호하는 장벽을 만들 듯 제 몸으로 겹겹이 벽을 친 길드원들이 데니다스의 시야에서 빠르게 세라를 걷어 냈다.
“어어……!”
세라는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뒤로,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맨 뒤까지 휩쓸려 간 그녀의 어깨를 두툼한 곰의 앞발이 탁, 채어 갔다.
“세라! 어, 어떻게 된 거야!”
빙글빙글 돌아가던 시야에 사색이 된 마커스의 얼굴이 들어찼다.
어찌나 놀랐는지 이번에는 웬일로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었다.
“얼굴은 또 왜 이래? 맞았니? 맞았어? 저놈이 널 때려서 반격한 거야? 응?”
그는 극성맞은 부모처럼 벌써부터 퍼렇게 멍이 올라오는 세라의 뺨을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맞, 맞은 거긴 한데…….”
세라는 그 모습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마커스는 오히려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안부를 물어 왔다.
“뭐?! 저놈이 널 때렸다고?”
“그냥 때린 정도가 아닌데, 너 지금 얼굴 장난 아니야.”
비단 세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마커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호위처럼 그녀를 둥글게 둘러싼 길드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 왔다. 흥분해서 그런가, 매번 노예님. 노예님. 하며 깍듯하던 호칭이 사라지고 말투에 거리감이 싹둑 잘려 나갔다.
그 속에는 세라가 예상했던 분노나 짜증 같은 감정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성가신 느낌이 들어 그곳을 벅벅 긁어대던 세라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나, 나한테.”
이걸, 말해도 될까.
막상 첫마디를 뱉고 나니 뒤늦게 걱정이 밀려왔지만, 세라의 생각보다도 먼저 입술이 움직였다.
“못, 생겼다고 했어…….”
그리고 후회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찾아왔다.
역시, 제 귀로 들어도 명분이 너무 개인적이었다.
“뭐어-?!”
“못생……?”
이유를 전해 들은 길드원들이 제가 제대로 들었냐는 눈으로 세라를 돌아보았다가.
“미친 거 아니야?”
“빻은 감자같이 생긴 게 뒤지려고!”
격분하여 검을 뽑아 들었다.
우우웅, 주인의 분노를 읽은 검이 스산하게 울었다.
좁은 복도에 모여든 알타이르와 시그너스는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게 되었다.
“음~. 그건 벽돌로 까 버릴 만했네~. 잘했어~.”
그 대치 상황의 가운데로 걸어온 스노우가 세라를 옹호해 주었다.
길드원들이 세라와 그의 사이에 길을 터 준 덕분에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스노우! 지금 누굴 감싸고 도는 게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니다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노발대발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알타이르 소속인 그가 제 아들이 아닌 면역자의 편을 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아퀼라를 발견한 데니다스가 으득, 이를 사리물며 시그너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세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깟 면역자 따위가 뭐라고……!”
“아, 이쪽은-.”
그에 반색을 한 스노우가 세라와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가느다란 허리에 다정히 손을 감아 에스코트한 그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얼굴로 세라를 소개했다.
“제, 애인입니다.”
“무, 슨…….”
그 한마디에 데니다스가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스노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살갑게 세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쐐기를 박았다.
“저희 사랑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