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욕조를 타고 넘은 에녹은 가장 먼저 괘씸한 말만 내뱉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아-.”
불시에 여린 곳을 물어뜯긴 세라가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쳐들어간 에녹이 이제 겨우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숨을 우악스럽게 빨아먹었다.
서로가 내뱉는 숨결에 코끝이 금방 뜨거워졌다.
직접 온기를 불어넣어 주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몸이 그제야 녹기 시작했다. 욕실을 가득 메운 수증기가 폐를 가득 채우며 여태 바닥을 기고 있던 체온이 한 번에 훅 끓어올랐다.
“으음, 흐으…….”
에녹의 목에 팔을 두른 세라는 기꺼이 그가 제 숨을 앗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도리어 힘주어 그를 끌어당긴 그녀의 맨가슴이 물에 젖은 셔츠 위로 동그랗게 뭉개졌다.
욕조에 담겨 있던 것은 세라였고, 벌서듯 바깥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건 에녹이었음에도 맞닿은 남체가 불에 델 듯이 뜨거웠다. 예상 밖의 체온에 놀란 세라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뒤로 물렸다.
“왜 도망가.”
그러기가 무섭게 바닥을 타고 미끄러진 손에 둔부를 붙잡혀 다시 끌려갔다.
“안아 달라며?”
위험한 미소를 그린 에녹이 씨익, 입술을 찢자 그 사이로 새하얀 송곳니가 번들거렸다. 말투는 짓궂지만 제게 붙들린 여자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칠흑의 밤처럼 어둑했다. 그대로 세라의 양 발목을 쥔 에녹이 욕조 바깥으로 두 다리를 걸어 고정한 뒤 발갛게 물든 꽃잎을 보기 좋게 벌려 냈다.
“……!”
다리 사이로 뜨거운 물이 들이치는 느낌에 세라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벌어진 틈을 찰랑찰랑 간질이는 수면의 감촉이 생경했다. 자꾸만 침입하려는 낯선 것을 끊어 내고 싶었다. 절로 힘이 들어간 아랫배가 바짝 조여들 때마다 훤히 드러난 음부가 빠끔거리며 안에 든 것을 뱉어 내려 애를 썼다.
겨우 다리 사이를 걸어 잠그자마자 에녹이 그 틈을 비집고 손가락 하나를 쑤셔 박았다.
“흐으응……!”
고개를 뒤로 꺾은 세라가 허리를 높게 띄웠다. 뜨겁게 익어 손가락을 바짝 조여 오는 쫄깃한 내벽의 감촉에 에녹이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단번에 중지를 끝까지 밀어 넣은 그가 찰박이는 물소리를 내며 안쪽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아, 하으, 흐아아-.”
세라가 느끼는 부분만 정확하게 비벼 올리는 손길에 둥글게 띄운 허리가 박자에 맞춰 들썩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결합부를 간질이는 물결이 벌어진 틈을 타고 속절없이 흘러들었다.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들어차는 느낌에 몸에 자꾸만 바짝 힘이 들어갔다. 발끝까지 꾹꾹 힘을 준 그녀가 저도 모르게 다리 사이를 조여댈수록 그곳을 헤집는 손길에 점점 거침이 없어졌다.
“오늘따라 꼭꼭 잘도 무네.”
기특한 조임을 음미하던 에녹이 가감 없이 그것을 칭찬했다. 손가락도 짜부라뜨릴 기세로 조여대는 습한 동굴에 제 것을 끼워 넣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랫배가 다 따끔거렸다.
깊이 틀어박힌 손끝에서는 뜨거운 물기와 더불어 미끈거리는 감촉이 묻어나고 있었다. 교접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으흐, 시, 싫어. 하지 마-.”
급격히 올라붙은 성감이 괴로웠는지 세라가 몇 차례 참지 못하고 펄쩍 허리를 들썩였다.
헥, 헥, 세라의 호흡이 점차 급하게 오르내렸다. 뜨거운 증기를 하도 들이마신 바람에 안 그래도 축축하게 젖어 있던 자수정 빛 눈동자가 물 먹은 이끼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한 상태일 것이다.
“이런 거, 필요 없어, 그냥, 빨리-.”
세라는 기껏 해 주는 전희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칭얼거렸다.
에녹의 어깨에 이마를 붙인 그녀가 애처롭게 매달렸다. 매달리면서 에녹의 귓가에 자꾸만 뜨거운 숨을 불어 넣었다.
그냥 빨리 넣어줘. 이런 건 필요 없어. 아파도 괜찮아.
나 좀 어떻게 해 줘. 나 좀 제발 어떻게…….
자제하지 말라고 하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물어뜯긴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이라곤 하나같이 요망한 말뿐이었다. 이 되바라진 노예는 저딴 말을 남자에게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영원히 못 걷게 되어도 좋은 건가.
하여튼 겁도 없지.
듣는 사람 이성을 요절내기로 작정을 한 발언에 차라리 어이가 없어진 사람은 에녹이었다.
그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일이었음에도, 당사자가 기꺼이 그래 달라며 등을 떠밀자 심사가 뒤틀렸다.
언제는 살려 달라며 제 품에 기어들어 왔던 주제에, 오늘은 아파도 상관없으니 전희도 하지 않고 쑤셔 달라니 아주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내가 그동안, 너한테 잘해 주긴 한 모양이지.”
하, 사납게 입술을 찢은 에녹이 자신의 높이에 맞춰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상반신을 욕조에 기댄 채 하반신이 들어 올려진 세라의 몸이 어렵지 않게 둥실 떠오른다.
“어디서 명령질이야.”
오만하게 그녀를 내려다본 에녹이 앞섶을 열어 갇혀 있던 성기를 밖으로 꺼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단단히 성이 나 있던 시뻘건 살덩이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퉁, 하고 튕겨 올랐다. 만져 준 적도 없이 완벽하게 발기한 페니스의 끝에는 이미 찐득한 선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건성으로 몇 번 훑어 낸 에녹이 제 페니스로 벌어진 다리 사이, 갈라진 계곡을 역으로 비벼 올렸다. 물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온 두툼한 귀두가 수면 위로 퐁당퐁당 머리를 내밀었다 사라졌다.
“필요가 있고 없고를 왜 네가 정하지?”
너 좋으라고 한 거 아닌데.
차갑게 이죽거린 에녹이 어디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 보라는 듯 그녀를 턱짓했다.
번들거리는 안광을 내뿜는 눈빛이 척 보기에도 여간 심사가 뒤틀린 게 아니었지만, 공황에 가까운 상태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세라에게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아아……. 빨리.”
소음순이 아무렇게나 뭉개지는 감각에 세라가 허리를 떨며 고개를 젖혔다. 묵직한 귀두가 구멍에 걸릴 때마다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곳에 버거운 이물감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저 버거운 무게감이 자신을 꿰뚫어 주기를 바랐다. 뒷덜미에 달라붙는 질척한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부서질 때까지 자신을 뒤흔들어 줄 뜨거운 열락이 절실했다.
“사, 상관없어. 뭐든 상관없으니까-.”
“상관이 없기는.”
소음순이 갈라질 정도로 세차게 샅을 비벼대던 에녹이 자꾸 겁도 없이 발름대는 꽃잎에 예고도 없이 삽입했다.
“……!”
헉, 숨을 들이켠 세라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준비되지 않은 자그마한 입구가 찢어질 것처럼 벌어지며 빠듯한 둔통이 척추를 파고들었다. 처음 그를 받았을 때보다 통증이 더 선연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몸이 본능적으로 아래를 꾹 조여, 제 속으로 파고드는 불끈대는 살덩이가 더는 진입하지 못하도록 길을 좁혔다.
씨발.
그에 에녹이 거칠게 욕설을 짓씹었다.
괴로운 것처럼 한쪽 눈을 찡그린 그가 못마땅한 눈으로 세라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빨리 넣어 달라며 대담하게 유혹하던 것과는 달리, 새빨간 꽃잎은 그의 페니스를 겨우 절반밖에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쯧, 이럴 줄 알았지.”
세라는 모르겠지만, 그로서는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놀랍지도 않은 시행착오였다.
유난히 작고 좁은 노예의 안쪽은 정성 들여 풀어 주지 않으면 주인의 것을 절반도 품지 못하고 밀어내는 앙큼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도 끊어 먹을 듯이 조여대는 곳인데 어린아이 팔뚝만 한 그의 페니스라면 말 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냉정하게 결단을 내린 에녹이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준 채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때 배려한답시고 어설프게 살살 밀어 넣으려고 하면, 여지없이 밀려나기 때문에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단번에 쑤셔 박듯이 들이닥쳐야 했다.
다행히 풀리지만 않았을 뿐, 평소보다 더 미끈대는 내벽이 억지로나마 밀려드는 살덩이를 꾸역꾸역 받아먹었다.
“윽.”
비좁은 길에 억지로 가랑이를 끼워 넣은 에녹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 냈다. 성기가 뭉개진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조여대는 압착감이 어마어마했다.
“아아!”
배 속이 꽉 들어찬 세라가 비명과 닮은 신음을 터뜨렸다.
죽은 생선의 배처럼 새하얀 배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경련하고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컥컥대는 모습이 가여워 벌어진 입 속에 손가락을 길게 쑤셔 박아 휘저어 주었다.
“웃기지도 않아서.”
느른하게 중얼댄 에녹이 세라의 아래에 해 주었던 것처럼 손끝으로 입천장을 야릇하게 문질러댔다. 성감을 찾아 입 속을 희롱하던 그는 이제야 네 죄를 알겠느냐는 말투로 퍽, 퍽, 처음부터 일부러 거칠게 허리 짓을 해댔다.
“일일이, 늘려 주지, 않으면, 끝까지, 받아먹지도, 못 하는 게.”
“아, 흐으, 아파아-!”
그때가 되어서야 세라의 입에서 드디어 아프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기다리던 말이었기에 에녹이 비죽, 성격 나빠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축하해.”
소원 성취했네.
무미건조하게 축하의 말을 건넨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어린 눅눅한 물기를 보고서도 가차 없이 허리를 찧어댔다.
아, 우윽, 흐으, 으윽.
에녹이 만들어 낸 파도가 요란하게 튀며 세라를 덮쳤다. 첨벙이는 물소리 사이로 세라의 억눌린 신음이 섞여 들었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이나 입술을 연신 짓씹는 것으로 보아서는 여전히 아픈 모양인데도, 세라는 용케 그를 향해 다리를 훤히 벌려 주었다.
그 순종적인 태도가 잔뜩 성이 난 아랫배를 후려쳤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물결에 해초처럼 넘실대는 군청색 머리칼이 나풀나풀 에녹의 하반신을 간질였다.
그 감질나는 촉감이 꼭 그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행위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에녹이었음에도, 이상하게 눈앞의 여자에게 홀리고 있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얌전히 몸을 내맡기고 있는데도 괘씸했다.
자꾸만 거슬리게 구는 머리칼을 한데 끌어모아 틀어쥔 채로,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뒤에서 처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조금 되바라지게 구는 것 말고는 노예가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난데없이 몰아세우고, 매도하여 목이 쉬도록 울리고 아래가 헐도록 박아대고 싶었다.
씨발. 이러다 진짜 일 치겠는데.
배 속을 진탕으로 만드는 시커먼 욕망을 내리누른 에녹이 짐승처럼 씨근덕거렸다.
이미 충분히 충동에 몸을 맡긴 그는 마지막 선만은 넘지 말자며 억세게 의식을 다잡았다.
찰싹! 찰싹! 찰싹!
그러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는 추삽질이 묵직하게 세라를 들이받는 중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삽입 덕에 무식하게 들이받힌 둔덕에 새빨갛게 피가 몰려 있었다. 골반을 딱 틀어쥔 에녹이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제 일부가 그 사이를 어떻게 들락거리는지 지켜보았다.
“에, 에녹, 제발…….”
그때, 새하얀 팔이 그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밭은 숨을 내쉰 세라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처연하게 입술을 뻐끔거렸다.
물 위에 누워 에녹이 들이박는 대로 흐느적거리는 그녀는 더럽혀진 바다 요정만큼이나 음란한 꼴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야한 얼굴로 부탁을 해 오면 뭐라도 들어주고 싶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에녹을 강타했다.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해도 늦었-.”
그리하여 바로 다음 순간, 세라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지레짐작한 에녹이 매정하게 그 손길을 쳐 냈다가.
“…….”
소리 없이 뻐끔대는 입 모양을 알아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행여 그가 못 알아들었을까 염려한 노예가 밭은 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입술을 달싹였다.
더.
세게.
해 줘.
남아 있던 선마저 송두리째 뜯어내는 문장이 완성된 순간.
그가 쳐 낸 새하얀 팔이 에녹의 발목을 붙잡아 어두운 심해로 끌어당겼다.
에녹의 의식이 불길한 바다 요정을 따라 끝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었다. 컴컴하기만 한 밑바닥은 그의 뱃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색과 닮아 있었다.
빛도 뭣도 들지 않는 곳까지 떨어지자 에녹이 끝끝내 넘지 않겠다고 그어 두었던 선이 어둠에 먹혀 사라졌다.
축축한 어둠 속으로 그를 이끈 노예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쭙잖은 이성 따윈 필요 없다고.
그냥 나와 함께 진창이나 뒹굴자고.
그 날연한 시선을 샅샅이 파헤쳐 해석해 낸 순간.
에녹의 이마에 불룩, 굵다란 핏줄이 솟아올랐다.
자꾸만 겁도 없이 충동질을 해대는 행동에 제대로 자극받은 영웅이 살기마저 느껴지는 낯으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게 진짜-.”
미쳤나.
그와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간 에녹이 먹잇감을 물어뜯는 맹수처럼 세라를 덮쳤다.
서로가 서로를 물귀신처럼 옭아맨 두 사람이 욕조 아래로 깊이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추락하여 부서지는 결말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