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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나라를 팔았습니다-97화 (97/131)

#97

눈을 떴다.

세라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이었다.

“……?”

잠기운이 묻어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빈 품을 바라보았다.

뭔가, 끌어안고 잔 것 같은데, 깨어나니 혼자였다.

세라는 간밤에 악몽을 꿨었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안고 달래 주던 손길을, 그녀는 분명 똑똑히 느꼈다.

그게 누구였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기억을 더듬던 세라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깨달음이 섞인 탄성과 함께 전날 밤의 일이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정신을 좀먹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난생처음 누군가를 유혹해 몸을 던졌다.

그 뒤로는 온통 물어뜯기고, 빨리고, 들이받힌 기억의 연속이었다. 원래도 에녹이 달려들면 밤새 잠도 못 자도록 해대긴 했지만, 말리는 사람도 없이 흘레붙자 말 그대로 발정 난 짐승처럼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했다.

‘좋, 좋아, 아흐, 좋아……!’

그 속엔 에녹의 다리 사이에 들러붙어서 신음하는 야해 빠진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버거워서 밀어내던 쾌감은 위기의 순간 가장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세라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육욕에 빠지는 사람들을 어제서야 이해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삼세번이라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계속 이어지는 행위가 문제였다.

‘아, 아흐, 잘못, 했어, 잘못……. 제발, 그만-.’

뒤로 갈수록 쾌락에 신음하는 것보다는 잘못했다고 빌어댄 기억이 선연했다.

고삐를 완전히 풀어헤친 에녹은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세라에게 달려들었다.

자제하기 힘들다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작정하고 달려든 그는 평소보다 거친 방법으로 그녀를 안았다.

그동안의 난잡하다고 생각했던 섹스는 모조리 얌전하고 건전한 행위였다고 생각할 만큼 동물적인 교접이었다.

담력이 제법 강한 그녀조차, 말없이 싸고 또 싸고, 또 싸면서도 재차 달려들 때에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특히나 마지막 기억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주인, 님. 제발, 그만, 이, 이젠 다리도 안 벌어져…….’

제 힘으로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힘들었던 세라는 제게 또다시 흉흉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들이미는 에녹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고개를 내저었다. 자존심도 잊고 엉엉 울면서 이제 그만 좀 봐달라고 싹싹 빌었다.

‘응. 아니야. 너 안 아파.’

그러나 돌아오는 건 매정한 확신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라며 매달리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힌 에녹이 가차없이 다리를 벌려 왔다.

‘하, 하지만, 배가, 흐읏, 배가 저린데-.’

‘계속 가서 그래.’

파드득 놀라 배를 움켜쥐며 낑낑대 보기도 했지만, 커다란 손으로 그 위를 콱 내리누르며 배꼽 위쪽을 아무렇게나 눌러댔다. 손가락의 압력이 내벽 안쪽에 퉁퉁 부어오른 극점을 압박하는 느낌에 몸이 작살에 꽂힌 뱀처럼 비비 꼬였다.

‘아, 흐, 아닌 것, 으응, 같은데.’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아.

헥헥, 힘겨운 숨을 내뿜은 세라가 일부러 보란 듯이 울상을 지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잘못된 것 같았다. 에녹이 좀 만져 줬기로서니 축축하다 못해 흥건한 다리 사이로 또다시 물이 터진 것이다.

온몸이 예리하게 벼려진 칼처럼 달아올라 어디를 만져도 지나치게 느껴졌다.

뇌수가 절절 끓을 정도로 몰아치는 쾌락에 이대로 계속 몸을 맡겼다간 신경을 담당하는 어딘가가 완전히 망가질 것 같은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어디 망가지면 고쳐 줄게.’

하지만 그것을 명분 삼기엔 상대가 좋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다리 벌려.

어떻게 망가져도 원래대로 돌려주겠다 장담한 에녹이 슬그머니 다리 사이에 제 허리를 끼워 맞추려 했다.

‘흐, 으응, 무서, 무서워-.’

무릎을 모아 다리를 딱 다문 세라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밀어냈다.

그녀의 반항을 손쉽게 흘려보낸 에녹은 자연스럽게 다물린 틈 사이로 좆머리를 들이밀었다.

‘벌리, 라고, 억지로, 쑤셔, 박히고, 싶어? 응?’

‘시, 싫어, 아으, 아앙! 하윽!’

그러고는 퉁퉁 부어오른 속살을 무자비하게 찧어댔다.

세라가 순순히 다리를 벌려 줄 때까지. 계속. 계속…….

‘흐아앙! 아아! 벌렸, 어. 벌렸어요! 그러니까 제발, 살살…….’

배가 아플 정도로 깊이 찔린 세라가 성화에 못 이겨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한계에 다다른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경련해 댔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살살해 달라 비는 것뿐이었다.

완전한 굴복을 선언한 세라를 에녹은 야무지게도 발라 먹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을 요구들을 군말 없이 따랐다. 개처럼 엎드리라고 하면 엎드리고, 위로 올라타 방아를 찧어 보라고 하면 허리를 흔들었으며, 입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 페니스를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대체 그동안 이런 걸 어떻게 다 참았나 싶을 정도로 더럽고 난잡한 섹스였다.

덕분에 나중에는 안에 싸 달라고 조르거나, 그가 보기 편하도록 음부를 잡고 벌리거나, 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물을 싸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사납고, 조금 더 절륜해진 에녹은 세라가 바라는 것보다 철저하게 그녀를 부수고 다시 재조립했다. 그는 감히 주인님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노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며 세라에게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주지시켰다.

‘이런 건 나하고만 하는 거야. 알았지?’

‘응, 으응…….’

‘다음부터 감당 못 할 건 건드리지 말자?’

‘흐윽……. 응, 흐윽…….’

효과는 확실했다.

완전히 망가진 머리로도 다시는 에녹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깊이 새겨졌으니까.

내가 미쳤었지.

뇌가 지끈거릴 정도로 자극적인 회상을 끊어 낸 세라가 순순히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어제의 자신이 딱 그랬다.

오죽하면 악몽을 꿨겠나.

그녀가 간밤에 꾼 악몽은 스노우가 불러온 과거 때문이 아니라 무섭도록 달려든 에녹 소서 때문이었다.

아무리 간절했어도 찬물 더운물은 가렸어야 했다는 걸, 그녀는 아주 많은 것들을 잃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섹스에 대한 건전한 관념, 그녀의 존엄성, 자존심, 정숙함 같은 것들.

그나마 다행인 건 잃은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들이고 제 몸은 무사하다는 사실이었다. 망가져도 다 고쳐 주겠다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악몽에 시달릴 때까지만 해도 무겁고 힘에 부치던 몸이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뿐했다.

퉁퉁 부은 것처럼 불편하던 다리 사이도 멀쩡했고, 물리고 빨린 피부에는 어떠한 흔적도 없이 깨끗했으며, 경련이 멈추지 않던 뱃가죽도 평온했다. 참으로 황송하게도, 보송하게 씻겨진 채 얌전히 옷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

회로가 새겨진 가슴께를 더듬어 보던 세라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어 밖으로 손을 뻗은 그녀가 가까운 나무에 비를 피하고 있는 새를 향해 속삭였다.

이리 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가 포르르 날아와 세라의 손에 올라앉았다.

간단한 마법이기는 하지만, 마력이 막힘없이 순환하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세라의 회로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에녹이 불어넣어 준 치유의 힘 덕분이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으로 또 언제 상처가 벌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이걸, 희소식이라고 해야 할지. 비보라고 해야 할지…….”

결국 주기적으로 에녹과 몸을 섞어야 한다는 사실에 세라의 낯이 핼쑥해졌다.

먼저 자자고 했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다음 날 아침에 맞닥뜨리기엔 썩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아니야. 좋게 생각해.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야 낫지.”

낫……겠지? 나을……걸? 아마도…….

확신이 들지 않는 행복회로를 억지로 돌리며 세라가 에비, 손 위의 새를 도로 날려 보냈다.

쫙!

그와 동시에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비 오는 거리에 메아리가 칠 정도로 차진 소리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 맞은 거다.

“……?”

소리를 따라 시선을 내리니 집 앞에 우산을 쓴 남녀가 서 있었다.

남자가 맞은 쪽인지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앞에 선 여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표정으로 씩씩대다 휙,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남자는 맞은 쪽 뺨을 한 손으로 쓸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떠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일랑 일절 쳐다보지도 않았다. 참으로 매정한 자다. 어쩌다 대낮에 뺨을 후려 맞았는지 알 수 있는 태도였다.

그렇다. 에녹의 이야기다.

저런, 또 차였네.

본의 아니게 이별의 장면을 목격해 버린 세라가 쯧쯧 혀를 차며 창가에서 몸을 물렸다.

이번 달만 벌써 여섯 번째였다.

다른 애인을 거느려도 좋다고 뒹굴 땐 언제고, 세라가 집을 비운 사이 벌써 여섯 명의 애인이 에녹을 떠났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함께 살지도 않는데, 애인들이 에녹을 떠나는 광경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잘도 보이더랬다. 대놓고 바람을 피워도 웃어 주던 여인들은 언제나 에녹의 뺨을 올려붙이고는 휙 가 버렸다.

다른 연인들 사이에 흔히 할 법한,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식의 공방 따윈 없었다.

깔끔하게 한 방 후려갈기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면 그의 어느 밤을 즐겁게 해 주던 애인은 사라지고, 에녹은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이번에도 혼자 남겨졌다. 우산을 쓴 애인이 사라지자 에녹이 세찬 빗줄기를 그대로 맞게 되었다.

일방적인 이별의 현장이지만 딱히 의아하지는 않았다.

문란한 애인 에녹 소서는 언제 어떻게 차여도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남자였으니까.

“쯧쯧, 그러게 좀 정숙하게 살지.”

세라는 자신도 그의 정숙함을 더럽히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한심한 눈으로 에녹을 내려다보았다.

어이고, 얼른 들어오지 저 비를 그냥 다 맞고 서 있네.

그러다 불쑥 고개를 드는 충동에 손끝을 꾹 말아 쥐었다.

……내려가 볼까?

마중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가까운 거리지만, 우산도 없이 서 있는 게 여간 처량 맞아서 꼴 보기가 싫었다.

……쟤도 나한테 우산 씌워 줬잖아.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계단을 내려간 세라가 응접실에 놓인 우산을 들고 힘차게 현관문을 박찼다.

쾅! 멋지게 등장한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가 에녹의 머리 위로 우산을 드리웠다.

키가 큰 에녹에게 우산을 씌워 주려면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주인님.”

기특한 짓을 한 세라가 나름 유쾌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에녹에게 우산을 씌워 주느라, 그녀의 어깨 한쪽에 빗줄기가 들이쳤다.

“아침부터 바쁘시네요.”

네가 애인한테 차이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보태지 않았다.

그렇게 걸레처럼 몸을 굴리더니 꼴좋다 비웃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꾹 참았다.

쟤는 나한테 우산을 씌워 줬으니까.

“응. 바빴지.”

그녀를 발견한 에녹이 고개를 숙여 우산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세라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우산을 건네 든 그가 얼굴에 떨어지는 물기를 훔쳐 냈다.

그러면서 우산을 슬그머니 세라 쪽으로 기울여 주었다.

그래서 다시 세라는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게 되고, 에녹의 등은 다시 빗속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

그 미묘하게 다정한 배려를 눈치챈 세라가 조용히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별하는 애인은 쳐다도 안 보던 사람이, 제 어깨가 젖고 있다는 건 봤다는 게 어쩐지 간지럽게 느껴졌다.

오늘은 좀 잘해 줄까.

제법 귀여운 짓을 하는 에녹이 기특해서, 세라는 그가 뭐라고 깝죽거리든 오늘만큼은 오냐오냐해 줘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뭐 하느라 우산도 안 챙겨 나갔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아마 그대로 사이좋게 집으로 들어갔다면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 갔을 것이다.

“네가 나 따먹었다고 소문내느라.”

그러니까, 그 직후에 에녹이 개소리만 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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