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그의 곁으로 달려간 세라가 다급하게 에스텔라의 상태를 살폈다.
핏기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꼭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이미 늦었나. 코 밑으로 손을 가져다 대어 보자 미약하게나마 숨결이 느껴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았다는 건 어린아이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손을…….”
에스텔라의 생존을 확인한 세라가 질린 눈으로 그의 머리맡에 나뒹굴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꼭 잡아서 그대로 뜯어낸 것처럼 절단면이 고르지 않았다. 부상을 당한 후 제대로 지혈할 시간조차 없었는지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건, 강력한 마법사인 에스텔라에게서 더 이상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에스텔라를 마주할 때면 꼭 살아 있는 태양을 만난 것처럼 강렬한 마력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곤 했었는데, 지금은 꼭 텅 빈 껍데기 같았다.
“설마……?”
에스텔라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세라가 그 아래 잠들어 있는 마력의 흐름을 좇았다.
마력을 탐색하던 그녀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회로가 망가졌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에스텔라의 마력 회로가 중간에 끊어져 있었다.
아니, 이건 끊어진 게 아니라 뜯겨 나간 거다. 처참히 찢어진 혼의 구멍으로부터 마력과 생명력이 질질 새고 있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잔인한 처사에 세라조차 얼굴을 찡그렸다.
“거기! 누구 없어? 이봐!”
우선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붙들어 지혈을 시작한 세라가 열린 문을 향해 소리 높여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여태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누군가 부산스럽게 문가로 다가왔다.
“예, 부르셨-, 아아악! 에, 에스텔라 님!”
평소처럼 친절한 미소를 품고 인사하던 사용인이 에스텔라를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소리를 내질렀다. 처참한 광경에 차마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굳어 있던 그는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는 어딘가에 있을 동료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비상! 비상사태다! 에스텔라 님이 습격당하셨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서 솟아났을지 모를 사람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에, 에스텔라 님!”
처참한 현장을 보고 경악을 내지른 이들은 곧 자신들의 길드장을 살리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선 상처부터 지혈을!”
“어이! 가서 의원을 불러와!”
“잘린 손은 얼음물에 담가! 당장!”
“경비병들 호출해서 주변 샅샅이 뒤져!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몇은 에스텔라에게 붙어서 상처를 지혈하고, 몇은 잘린 채 나뒹구는 손을 살피고, 몇은 필요한 도구를 가지러 바깥을 빠르게 오갔다.
“그냥 약물 말고 성수로 가져와!”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단연 세라였다. 에스텔라의 곁을 차지하고 앉은 그녀는 다른 길드원들이 그의 주변으로 올 수 없도록 끈임 없이 뭔가를 지시하고 명령했다. 일단 가장 이성적인 상태인 것도 그녀였고, 무엇보다 궁 안에서 사건이 발생한 만큼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동생을 보살펴 준 은인의 목숨을 지켜 주고 싶었다.
“서, 성수요……?”
뜬금없이 성수를 찾는 말에 지목당한 길드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말은 난생처음 듣는다는 얼굴이었다.
세라의 생전에는 신전과 마법이 성행하여 어디서든 성수를 구하기 쉬웠으나, 현재는 신화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시대이기에 성수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력이든 마법이든 뭔가 영험한 기운이 깃든 신비로운 물건 말이야! 뭐든 좋으니까 있는 대로 긁어 와! 너희 보물 창고 있다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끙끙대던 세라는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풀어 설명했다.
현재 에스텔라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는 건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도 회로가 뜯겨 나가면서 상처 입은 영혼이었다. 찢겨진 틈으로 의식이 흘러나가기라도 하면, 살아나더라도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신의 힘이 깃든 뭐라도 가져와서 영혼에 새겨진 상처를 한시라도 빨리 봉합해야 했다.
“아, 알겠습니다!”
처음에 어리둥절해하던 길드원도 구체적인 주문에 감을 잡았는지 비장하게 튀어 나갔다.
그러다, 입구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는지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거친 어조로 경고했다.
“입구 막지 말고 저리 비켜!”
소란에 이끌린 세라가 고개를 들었고, 분주한 사람들 사이 덩그러니 문가에 선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
에녹이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문가에 버티고 서 있는 그는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살풍경에 놀랐다거나 에스텔라가 걱정된다기보다는 어딘가 멍청한 얼굴이었다. 그는 멍청한 눈으로 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라는 직감적으로 그가 저렇게 자신을 본 지 꽤 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평소였다면 뭘 보느냐며 삐딱하게 대했을 테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가 물구나무를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더라도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영험한 인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 주었으니까.
“에녹!”
다행이라는 듯이 얼굴이 확 피어난 세라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
그에 에녹의 입술이 헤, 하고 벌어졌다.
어째서인지 한층 더 멍청해 보였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이리 와서 좀 도와!”
다급히 그를 부른 세라가 에스텔라를 눈짓하며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너의 그 대단한 치유력 좀 빌려달라는 뜻이었다.
“어, 어어, 으응.”
대답을 하는 건지 그냥 얼버무린 건지 어쨌든 고개를 주억거린 에녹이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했다.
오른발이 나갈 때 오른팔을 같이 뻗는 게 꼭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삐걱대면서 몇 걸음이면 올 거리를 세월아 네월아 영원히 걷고 있었다.
그에 반가이 그를 맞아 주던 세라마저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입매를 찡그렸다.
“왜 이렇게 꾸물대? 다 죽으면 올 거야?”
참다못한 세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에녹의 손을 낚아챘다.
그를 이끌고 원래 자리로 돌아온 세라는 에녹의 손을 에스텔라의 가슴 위, 정확히는 마력 회로가 있던 자리에 올렸다.
몇 번 에녹의 손을 움직여 정확한 위치를 잡아 준 그녀가 그의 귓바퀴에 바짝 입술을 갖다 댄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몸 말고 다른 곳도 다친 것 같아. 상처는 지혈만 살짝 하고 다른 곳에는 아끼지 말고 기운 팍팍 불어넣어.”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치고는 수상할 정도로 정확한 지식이었지만, 둘 중 누구 하나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
세라의 요구를 들은 에녹은 그녀가 잡아 준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턱에 바짝 힘을 준 그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세라는 곧 그의 곤란함의 원천을 알아차렸다.
“아, 여기선 좀 민망한가? 다들 나가라고 해?”
뒤늦게 그가 누군가를 치유하려면 신체 접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그녀가 마지막 물음을 끝으로 에녹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정말로 다른 이들을 전부 내쫓을 기세로 몸을 돌리던 그때.
“아니……!”
발작하듯 소리를 높인 에녹이 다급히 그녀를 붙잡아 다시 제 곁에 주저앉혔다.
“그런 거 안 해도 돼.”
그냥도 할 수 있어. 하면 돼.
실제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은 에스텔라인데, 에녹은 자기가 죽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 간절한 목소리로 연신 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그냥 여기 앉아 있어.”
재차 당부한 그가 언뜻 제발, 이라고까지 한 것 같았다.
“……안 해도 치유가 된다고?”
늦게라도 치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게 갸륵했으나, 세라는 도리어 혼란스러운 눈으로 의문을 표했다.
“나한테는 그런 걸 해야지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
그에 공교로운 타이밍에 두 눈을 스르륵 감아 버린 에녹이 뭔가에 정신을 집중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치료 다 됐어.”
지금 자연스럽게 대답을 회피한 것 같은데……. 합리적인 의심이 고개를 들려던 찰나, 또다시 공교로운 타이밍에 눈을 뜬 에녹이 치료가 끝났음을 알려 왔다. 치료의 시작부터 끝까지 몇 초 되지도 않았다.
“벌써……?”
의심스럽게 눈을 흘긴 세라가 에녹의 손 위로 제 손을 얹어 에스텔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치료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찢겼던 마력 회로가 엉성하게나마 이어져 구멍을 막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가 철철 흘러나오던 팔목 쪽도 어느 정도 지혈이 된 것 같았다.
오늘따라 좀 이상하게 굴기는 해도, 성능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정말이네. 수고했어.”
칭찬하듯 에녹의 등을 두드려 준 세라가 다른 길드원들에게도 희소식을 알렸다.
“지혈은 끝났어! 일단 눕기 편한 곳으로 옮기게 들것을 가져와!”
“네, 넵!”
안도 섞인 탄성을 내지른 길드원 몇이 헐레벌떡 들것을 가지러 달려 나갔다.
가장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남은 건 이 난장판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당장에 처리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생겨서일까.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던 길드원들이 각자 해야 할 일을 깨닫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바깥으로 달려 나가 에스텔라가 머물 수 있는 방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들것이 들어오기 편하도록 가구를 옮겼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중에서, 일하지 않고 꾸물대는 이는 에녹뿐이었다.
그는 세라가 잡아 준 자세 그대로 홀린 사람처럼 세라의 옆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급하게 지나가던 사용인들의 발에 몇 번 차이기까지 했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아주, 명백하게 혼자서만 딴 세상이었다.
그러다 뭔가 걸리는 게 떠올랐는지 흠칫, 표정을 굳힌다.
“저기-.”
다시 삽시간에 창백해진 에녹이 다소 애매한 호칭으로 세라를 불렀다.
“어. 왜? 아, 여긴 치우지 마. 혹시 모르니까.”
용케 그 소리를 들은 세라가 건성으로 대꾸해 주었다.
에녹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반응한 그녀는 주변을 청소하려는 이들을 뒤로 물렸다.
주변을 통솔하는 그녀는 몹시 바빠 보였지만, 에녹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나한테 물어봤던 거 말인데-.”
“들것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들것을 가지러 간 이들이 돌아와 주변이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덕분에 세라는 이번에는 에녹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
“어? 뭐라고? 좀 빨리, 크게 말해 줄래?”
길드원들을 도와 에스텔라를 들것 위로 옮긴 그녀가 볼일 있으면 빨리 말하라며 그를 재촉했다.
“너 좋아햐냐고 물어봤던 거, 지금 대답해도 돼……?”
응급 상황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말에 여태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있던 길드원들마저 뭐 저런 놈이 다 있냐는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일제히 한곳으로 모인 시선들이 인류애 따위는 없는 정신 이상자를 비난하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세라라고 크게 반응이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 보듯 에녹을 바라본 그녀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연녹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대꾸했다.
“너는 지금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그게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