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에 나라를 팔았습니다-108화 (118/131)

#108

에녹과 헤어진 세라는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황금의 도시를 거니는 중이었다.

해가 진 사막의 도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낮보다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순금으로 지어진 궁전만큼이나 에스텔라의 번화가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자꾸만 시선을 끄는 둥근 곡선과 양감이 눈에 띄는 건축물의 벽과 지붕에는 중간중간 황금으로 덧칠한 무늬나 장식들이 심심치 않게 붙어 있어 밤인데도 눈이 부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데도,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건지 황금이 섞인 건물들 사이로 오색찬란한 등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떠올라 밤을 비추었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보석들이 큼직하게 박혀 있는 등에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느껴졌다. 세라는 그곳에 얽힌 마법을 단숨에 읽어 냈다. 온 도시를 뒤덮은 보석 등은 영롱한 빛으로 뭇사람들의 밤길을 밝혀줌과 동시에 낮 동안 황금을 달군 열기가 쉬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밤이 되어도 에스텔라 길드는 저 밖의 사막과는 달리 훈훈한 공기에 휩싸인 채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겁던 낮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한 열기가 뺨에 들러붙었다. 발가벗고 바깥에서 잠을 잔다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가 너무 환해서, 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 위를 빼곡히 수놓은 보석 등이 굳이 멀리서 빛나는 별은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번화가의 건물들은 상당히 개방감 있는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묵직한 웅장함을 갖추고 있는 아름다운 황금 건물들에는 문이나 창문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는데 유리나 다른 무언가로 막혀 있지 않았다.

따라서 바깥에서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뭐 하는 가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지붕이 없는 곳도, 심한 경우에는 벽도 지붕도 없이 기둥만 세워 놓은 곳도 있었다.

“아, 내 말이 맞다니까? 그 큰 거구가 팽이처럼 돌았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무슨 뺨 한 대에 사람이 그렇게 돼?”

“아케이드 떨어진 핑계로 대기엔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 아니야?”

세라는 허물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중립 지대라는 말이 헛말은 아니었는지, 보라색 눈을 한 면역자들도 평범하게 무리에 섞여 들어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신비로운 선율이 흘러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복잡하게 이어진 거리에는 줄지어 앉은 악사들이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주변에 방석을 깔고 앉아 느긋하게 음악을 감상했고, 누군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했다.

그냥 모든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드러누운 그 광경은 산만해 보이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 있는 자유를 목격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지?”

그 활력이 넘치는 거리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세라뿐이었다.

그녀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도 저 그림에 같이 끼고 싶다는 생각보다 얼른 모든 볼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을 뿐.

강하게 솟아나는 귀소본능에 까닭 모를 조바심이 자꾸만 세라를 자극했다.

산만하게 주변을 훑던 시선이 머리 위 하늘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번화가에 들어온 이후 계속, 그녀는 이렇게 틈날 때마다 그곳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자신을 목적지에 데려다줄 안내자라도 있는 것처럼.

“황금 새. 황금 새.”

그곳에 안내자는 없었지만, 비슷한 건 있었다. 노란빛을 내뿜는 새 모양의 조명이.

투명한 크리스털로 깃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조명에는 예외적으로 마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예쁘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을 이토록 열렬하게 쫓아가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날이 지면 황금 새를 따라 날 찾아와.’

낮의 아케이드에서 마주친 니르샨.

그 능글맞은 남자가 그녀의 귀에 속삭인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비밀 암호를 전해 주듯 은밀하게 전언을 전한 그는 ‘내가 왜?’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라를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의뢰에 관해 이야기해야지?’

나와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의미심장하게 덧붙인 니르샨이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어 보였다.

그녀가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에스텔라에 왔다는 사실은 비제와 스노우가 고용한 제릴이 전부였다.

스스로 자신이 의뢰 때문에 왔다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으니, 세라가 다른 사람들과 퍽 다른 이유로 아케이드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뿐이었다.

스노우를 고용한 의뢰주.

“그러면 안 찾아갈 수가 없잖아.”

과거를 회상한 세라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 귀찮기만 한 의뢰를 그만둬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는 건지 몰라 그러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예를 들면, 이 의뢰와 에델을 찾는 일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 같은 것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남자라면 그저 에스텔라까지 이끄는 목적으로 의뢰를 이용한 것 같기도, 혹은 에델을 찾는 데 가장 완벽하고 오차가 없는 방법을 마련해 건네준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정말로 여기에 에델이 있기는 한가?’

안 그래도 긴가민가하던 마음이, 뜨거운 사막의 도시를 보자 의문으로 바뀌던 참이었다. 괴로울 정도로 뜨거운 더위는 아이가 가장 질색하던 것이었다. 그런 개인적인 기호를 차치하고서라도 사방이 모래로 뒤덮인 사막은 눈도 보이지 않는 어린 것이 흘러들기에는 너무나도 혹독한 환경이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생각을 거듭할수록 복잡하게 엉키는 실타래에 세라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냥 덮어놓고 열심히 해야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진 황금 새를 따라 걸어가던 세라는 그렇게 번화가를 한 바퀴 빙 돈 다음에서야 마침내 목적지에 이를 수 있었다.

“……장난하나.”

어이없게도 그녀가 도착한 곳은 번화가 초입에 있던 커다란 건물이었다.

수십 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곳이기도 했다.

시간 낭비를 깨달은 세라가 어휴, 한숨을 내쉬며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창문 하나 없이 그저 네모나게만 생긴 건물은 흔치 않게 제대로 된 문이 달려 있었다.

그 문 옆으로 자그마한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붉은 실로 ‘황금 새’라고 수 놓여 있었다.

“…….”

하늘에 달려 있던 조명과 같은 모양의 문손잡이를 잡은 세라는 노크도 없이 곧장 그것을 열어젖혔다. 이것까지는 이야기되어 있는 게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덜컹.

그 예감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세라의 키를 훌쩍 넘는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화려한 밤거리와는 달리 칠흑같이 새카만 암흑의 저편에서 누군가 그녀를 맞이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오셨군요.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청년은 세라에게 누구냐 묻지도 않고 곧장 그녀를 안쪽으로 인도했다. 건물의 안쪽은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딱 좋을 정도로 시원했다.

아아, 슬슬 사막의 더위에 질릴 지경이던 세라의 입에서 신음 섞인 탄성이 샜다.

그녀가 머무는 숙소도 나름 시원한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 청량한 공기를 맞는 건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여깁니다.”

그사이 거대한 아치형의 문 앞에 도착한 청년이 한 번 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두꺼운 양탄자를 휘장처럼 사용해 가려 둔 너머에서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를 부른 이는 한 명뿐인데, 어째 휘장 너머로 굴러드는 목소리가 한둘이 아니다.

더 올 사람이 있나?

고개를 갸웃거린 세라가 호기롭게 무거운 휘장을 휙 걷어 안으로 들어섰다.

“어우, 콜록! 콜록!”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콧속 깊이 파고드는 매캐한 연기에 격한 기침을 쏟아 내야 했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연기는 보통 독한 것이 아니어서, 무심결에 그것을 들이켠 세라의 눈에 얼핏 눈물이 서릴 정도였다.

“이건, 쿨럭, 또 뭐야. 쿨럭.”

재빨리 손으로 연기를 흐트러뜨린 세라가 연신 쿨럭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개처럼 흐릿한 연기 저 끝에는 오렌지빛의 조명이 은은하게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연기 때문에 앞이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조명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실루엣이 얼핏 엿보였다.

그녀가 등장하자, 휘장 밖까지 까르르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가 일시에 멈추었다.

보지 않고도 여러 명의 시선이 제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나아갈 방향을 잡은 세라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선 순간.

“생각보다 늦었군.”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라는 자꾸만 눈과 코를 괴롭히는 연기를 흩어 내며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하여, 그녀가 제법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선 순간.

“해가 지자마자 바로 올 줄 알았더니?”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번뜩이는 황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니르샨이다.

그는 직사각형으로 길게 만들어진 방의 가장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푹신하고 커다란 쿠션을 여러 개 덧대어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앉은 니르샨의 곁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여자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옷이라곤 치골에 헐겁게 걸쳐져 있는 흰 천이 전부였다.

한 명은 시원한 온도에도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때맞춰 그의 입에 포도알을 집어넣어 주고 있었고, 또 하나는 그의 팔을 안마해 주고 있었고, 마지막 하나는 니르샨의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연신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어우, 내 눈…….

자연스럽게 그와 그 주변을 눈으로 훑던 세라가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얼굴을 굳혔다.

“……거리를 한 바퀴 돌았어.”

누구누구가 멀쩡한 가게 이름을 두고 이상한 수수께끼 같은 안내를 하는 바람에 말이지.

“하하! 내 배려가 부족했군.”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손에는 기다란 곰방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깊이 빨아들인 니르샨이 후우-. 하얀 연기를 한 움큼 뱉어 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연기가 조금 더 늘어났다.

“앉지. 찾아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뻑뻑 곰방대를 피워 댄 니르샨이 제 앞에 놓인 좌식 테이블을 턱짓하며 자리를 권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려는 모양이다. 귀찮다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비치는 얼굴로 다가간 세라가 털썩,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릴이 스노우 대신 다른 사람이 올 거라고 이야기해 줬을 때까지만 해도 아쉽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혼잣말처럼 중얼댄 그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른하게 풀려 있던 황금빛 눈동자에 일순 날카로운 이채가 서렸다.

“이런 미인이 올 줄 알았더라면 내가 직접 마중 나갈 것을 그랬어.”

느끼하지만 사심 따윈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은 담백한 칭찬이었다.

기분이 좋은지 킬킬대며 웃어댄 그가 제 앞에 놓인 황금 잔을 들어 올렸다.

“미인과 한잔하는 영광을 주겠나?”

그의 입에서 연신 튀어나오는 낯부끄러운 표현에 세라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줄 건데.

하지만 똑 부러지게 거절했음에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니르샨이 세라의 어깨 뒤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안 마실 거라도 일단은 받아 둬. 이곳에서는 권하는 술은 받는 게 예의거든.”

그러자 아까 전 입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듯 등장한 청년이 사뿐사뿐 걸어와 세라의 앞에 잔을 놓았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물어봤지?

세라는 딱 그렇게 생각하는 낯으로 마지못해 그 잔을 집어 들었다.

“아름다운 분을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기쁜 듯이 미소를 지은 청년이 그녀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청년은 세라가 신기한지 연신 그녀를 힐끔대며 술을 따랐다. 면역자를 처음 보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녀는 잔에 가득 차오르는 포도주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질 좋은 포도로 빚었는지 향기로운 냄새가 훅, 하고 퍼졌다.

적보랏빛의 포도주가 굉장히 시원해 보였다.

꿀꺽, 세라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려서 그런가. 갑자기 엄청난 갈증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술자리는 오랜만이다.

딱 한 모금만 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이미 술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맛있네.’

오랜 갈증 끝에 들이켠 포도주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달았다.

한 모금만 하겠다던 소기의 목적을 잊고 한잔을 통째로 들이켜고 말았다.

탁, 시원하게 원샷한 세라가 잔을 내려놓았다.

도수가 꽤 높았는지 마신 것과 동시에 식도가 탈 듯이 훅, 뜨거워졌다.

“술은 입에 맞으신가요?”

그녀에게 술을 따라 주었던 청년이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그가 다시 쪼르륵,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맛있네. 세라가 중얼거렸다.

마시면 갈증이 좀 가실 줄 알았는데, 목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져 더 심한 갈증이 일었다.

하지만 방 안은 적당히 시원하고, 술 냄새가 향기로워서 기분이 슬쩍 좋아지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혼자 왔나? 내심 아까의 그 엄청난 노예와 함께 올 줄 알고 기대했더니-.”

먼저 잔을 홀짝이던 니르샨의 입에서, 제 노예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

멈칫, 두 번째 잔을 들던 세라가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니르샨이 콕 집어 소환한 덕분에 애써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올라 버렸다.

환락가 입구에서 헤어진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갔다.

“……자유 시간을 줬어. 오늘 고생했으니까.”

잠깐의 뜸을 들인 후 대답한 세라가 한 번 더 술잔을 들이켰다.

“아, 하긴. 밤이니까. 전투 노예는 쉴 때지.”

흔히 있는 일인지, 니르샨이 그럴 만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탁, 세라가 두 잔째를 비워 내자 청년이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채웠다.

이번에는 첫 잔을 넣었을 때보다 확연하게 술기운이 올라왔다.

“그럼 숙소에 두고 왔겠군?”

남의 노예에 뭐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니르샨이 에녹의 근황을 캐물었다.

짭짭, 입맛을 다신 세라가 세 번째 잔을 들이켜며 불퉁하게 대꾸했다.

“아니. 환락가에 풀어 줬는데.”

“하……? 풀어 준다고 정말 가던가?”

탁! 빈 잔을 내려 둔 세라가 입술에 묻은 포도주를 스윽, 닦아 냈다.

“어. 잘만 가던데.”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의 눈매가 설핏 사나웠다.

환락가 앞에서, 감격하여 쳐다보던 한심한 낯짝이 떠오른 탓이다.

그렇게만 드시면 속이 상하실 텐데.

빈 잔을 채워 준 청년이 살갑게 속삭이며 세라에게 실한 포도알 하나를 건넸다.

입 앞에 곧장 대령한 것을 손으로 받아먹은 그녀가 와그작, 와그작 전투적으로 과실을 씹어 삼켰다.

단것을 먹으니 다시 술이 당겼다.

표면에 차가운 습기가 어린 잔을 들어 올린 세라가 네 번째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의외인걸. 질투가 심하기에 특별한 사이인 줄 알았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니르샨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냥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말이었는데, 하필 단어 선택이 좋지 못했다.

누가 ‘특별’ 소리를 내었는가?

안 그래도 그놈의 ‘특별’ 때문에 오는 내내 골머리가 아팠는데, 여기서도 듣게 되니 귀를 거슬리게 하는 말에 세라의 두 눈에서 화르륵 불똥이 튀었다.

쾅!!! 술잔을 테이블에 못 박을 기세로 내려놓은 그녀가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쌀쌀맞게 소리쳤다.

“……특별은 개뿔!”

그런 놈이 가란다고 진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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