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하아, 하아-.”
팔로 짚은 채 상체를 일으킨 여자가 숨을 고르는 사이 달칵, 방 안의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빛이 돌아오자 여자의 탐스러운 군청색 머리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윽, 한껏 눈가를 찡그렸던 여자, 세라가 황급히 남자를 좇아 시선을 옮겼다.
영원히 입 맞출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들 땐 언제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린 에녹의 발걸음이 욕실을 향하고 있었다.
밭은 숨을 몰아쉬던 세라는 얼른 그를 따라 들어갔다.
“너, 왜 여기 있어?”
우뚝, 세면대에서 막 손을 씻을 준비를 하던 에녹이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전, 세라의 손목을 잡고 황금 새를 빠져나온 에녹은, 세라를 둘러메고 거의 달리듯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그와 세라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간혹 세라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따위를 물었지만 전부 무시했다.
그래서 세라는 지금 딱 궁금해서 팔짝 뛸 것 같았다.
얼마나 궁금하냐면, 에녹의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그녀의 심장도 더없이 빠른 속도로 팔짝 뛰고 있었다.
“……안 갔어?”
세라가 재차 질문했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라면 알아들을 터였다.
그녀의 고운 눈썹이 곤란하다는 듯이 가운데로 모였다.
결론이 다 났다고 생각했던 질문의 답안지가 갑자기 완전히 뒤바뀌었다.
에녹이 환락가에 발 한번 들이지 않고, 자신을 뒤쫓아 이렇게 손목을 끌고 돌아가는 건 계산에 없던 행동이었다.
이건 그럼 뭐라고 결론을 지어야 돼……?
섣불리 답을 내지 못하고 헤매는 시선이 간절하게 에녹의 옆얼굴에 들러붙었다.
하지만 에녹은 멍하니 거울에 비친 제 모습만 들여다볼 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은 눈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깊이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고, 단순하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새삼스럽게 반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탁, 세면대의 수전을 켠 뒤에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동문서답이었다.
뭔가, 들어야 할 말이 있다는 식의 뉘앙스다.
“으응……. 그러면 안 돼?”
그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픽, 에녹이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아냐. 딱히 생각나는 거 없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녹아내릴 듯이 다정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술이 깰 정도로 화를 내더니, 그새 화가 다 풀린 눈치였다.
그럼 화가 풀렸으니 이제는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니까?”
“이것 좀 풀어 줘. 불편해.”
그런데 또 동문서답이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세라가 얼른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잘그락. 에녹의 상체를 아름답게 휘감고 있던 가느다란 실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 됐지? 그러니까 이제 묻는 말에 대답 좀-.”
“아까 그놈이랑 정말 자려고 했어?”
“어. 그랬어. 너 어떻게 된 거야? 내 뒤를 쫓아왔어? 그럼 환락가엔 아예 들어가질 않은 거야?”
“그런 놈이 취향이었을 줄은 몰랐네.”
“아니-.”
두 사람은 서로 묻고 싶은 것만 묻느라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세라는 에녹이 묻는 말에 짧게라도 답변을 해주지만, 에녹은 상도덕도 없이 답변도 안해주고, 지나간 주제인 침실 노예 이야기를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
“지금, 그게 중요해?”
아, 젠장. 술기운 때문에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세라는 자신이 술에 취해 쓰러지기 전에 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일어나서 맑은 정신에 하자고 미루면 흐름을 놓쳐 영원히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안 중요해?”
탁, 세면대의 수전을 끈 그가 수건으로 얼굴과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 냈다.
“난 계속 신경 쓰였는데. 내가 괜히 눈치 없이 방해한 건 아닌가 하고.”
거울을 보며 대꾸하던 에녹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고 싶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내가 자리 비켜 줄게.”
그러고는 그새 마음이 바뀌었는지 세라와 그 청년의 잠자리를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이제 와서?
니르샨 앞에서는 다 물어 죽일 듯이 으르렁대더니, 더없이 담백한 태도다.
어쩐지 등이 떠밀리는 느낌에, 감정이 울컥 복받쳐 올랐다.
“됐어.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있는데. 신경 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서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에게 딱 잘라 선을 그어버린 건.
이건 결코, 제게 다른 남자를 가져다 붙이는 에녹에게 마음이 상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저 깃털 같은 줏대 때문에 짜증이 나서 이러는 거다.
“아, 그래. 내일 바로?”
추진력이 돋보이는 그녀의 답변에 에녹이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면대에서 조금 떨어진 그가 자신과 세면대 사이를 가리키며 세라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오라는 듯이.
뭐, 나도 지금 손 씻으라고?
세라는 황당했으나 순순히 그와 세면대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도 얼큰하게 취해 휘청대는 걸음걸이가 불안정했지만 어쨌든 성공은 했다.
등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그럼 연습해볼래?”
세라의 손을 덧잡은 에녹이 친절하게도 그녀의 손을 흐르는 물 아래로 가져다 댄다.
거기까지 하니 나머지는 세라가 알아서 했다.
“뭘?”
“섹스.”
“……?”
그걸 대체 왜?
손을 씻다 말고 이상한 제안을 받게 된 세라가 미묘하게 표정을 굳혔다.
“처음이잖아. 나 말고 다른 남자랑 하는 건.”
“그래서?”
“상황 대처 능력을 길러야지. 명색에 주인님인데, 노예한테 전부 다 맡길 거야?”
주도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주도를.
에녹이 세라의 골반에 붙어 있는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반짝반짝 예쁘게도 빛나는 두 눈에 깃든 건 분명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한 흥미였다.
“…….”
“내가 그 남자 역할. 너는 그냥 네 역할.”
어때?
세라가 말이 없자 좀 더 구체적인 설정을 붙이며 싱긋 웃는다.
뭐, 역할극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하여튼 이런 쪽으로는 한없이 진지한 놈이었다.
궤변이었지만 일리는 있다는 게 웃기긴 했다.
“그러던가.”
퉁명스럽게 수락한 그녀가 세수하기 위해 상체를 굽히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바로 시작하는 모양인지. 등 뒤의 에녹이 정말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투둑. 그와 동시에 에녹이 만지작거리고 있던 장식이 뜯겨져 나갔다.
어,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에는 아래쪽이 허전했다.
“저는 변태 새끼예요.”
그 뒤에 이어진 인사가 쎄하다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
푸욱, 아래가 꿰뚫렸다.
아! 준비되지 않은 곳이 꿰뚫리는 둔통에 세라의 입에서 높은 신음이 터졌다.
놀라서 파들대는 그녀의 귓가에, 에녹의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제 소개를 덧붙였다.
“예고도 안 하고 그냥 넣어 버리는, 개새끼죠.”
“어윽……?”
역할극치고는 너무나 극단적인 설정이었다.
말문이 막힌 세라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뻐끔거렸다.
아래를 묵직하게 채우는 이물감에, 세라는 순간적으로 헉, 하고 숨이 막혔다.
거울을 통해 에녹과 시선을 마주친 세라가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홉떴다.
거울 속의 그녀는 아래가 벗겨진 채 에녹에게 꿰뚫려 있었다. 입으나 마나 한 상의 사이로 골이 깊게 팬 가슴이 가쁘게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기습적으로 맹수에게 목을 물린 가녀린 사슴처럼.
“갑자기 뭐 하는-.”
“왜?”
그 당황한 얼굴을 여유롭게 감상한 에녹이 뜨거운 혀로 세라의 귓가를 핥으며 느릿하게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좁은 속살을 벌리고 들어간 기둥의 절반 정도가 앙증맞은 엉덩이 사이로 먹혀들었다.
잠시 연기에서 빠져나온 에녹이 능글맞게 빙글거렸다.
“이런 성격일 수도 있잖아. 이런 건 예상 못 했어?”
“으, 다, 당연히……!”
예상 못 했다.
세면대를 붙잡은 세라의 등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술에 취해 감각이 멀어졌는데도, 입구가 얼마나 버거운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헉, 허억,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벌써 명치까지 성기가 차오른 것 같았다.
“이런 걸 누가-.”
“아아, 그럼 우리 주인님은 이 세상 모든 남자가 다 까망이 같은 줄 알았나 보다.”
“…….”
“예쁘게 씻기고, 신사적으로 손가락부터 넣어 주고, 응?”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세라와는 달리, 상대역에 완벽하게 빙의한 에녹이 청년의 말투를 흉내 내며 진짜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기함을 토해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분명 말투는 비슷한데 어쩐지 그 안에 든 인성이 영 다른 놈의 것인 것 같았다.
진지하게 연기에 임한 에녹이 그녀의 허리를 딱 붙잡고는 미처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절반을 뿌리까지 욱여넣었다.
“으읏…….”
우거진 수풀이 모조리 사라진 매끈한 샅이 말캉한 엉덩이에 맞닿았다. 예민하고 깊은 곳까지 맨살이 닿는 느낌이 낯설었다.
아랫도리를 바짝 붙인 그가 부러 허리를 둥글게 돌려 안쪽에 든 기둥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다가 철썩! 거세게 추삽질을 했다.
“아!”
반동을 이기지 못한 세라의 무릎이 순간적으로 꺾였다.
세면대를 잡은 채 비틀거리자, 커다란 손이 올가미처럼 그녀의 몸을 붙잡아 바로 세워 주었다.
“이렇게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했으면서.”
그 와중에도 나불대는 주둥이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를 선택해주시다니 너무 기뻐요. 이름도 모르는 주인님.”
‘이름도 모르는’이라는 대목을 강조하는 의도가 빤했다.
딱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정도만 부축해 준 그가 세라의 목덜미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상체가 내려가자 엉덩이가 더 위로 떠올랐다.
박아 넣기에 알맞은 높이까지 올라온 둔부를 단단히 붙잡은 노예가 샅이 빨개지도록 허리를 퍽퍽 내려 찧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박아도 되죠?”
살과 살이 맞붙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연신 접합부를 때렸다.
아직도 숨 막힐 정도로 좁은 내벽 때문에 새빨갛게 부푼 성기가 들이치거나 물러나는 움직임이 수월치 않았지만, 에녹은 개의치 않고 힘껏 허리를 놀렸다.
쫘악! 커다란 손바닥이 새하얀 엉덩이를 내려쳤다.
살갗에서부터 안쪽까지 깊이 울리는 둔중한 충격이었다.
꺄읏, 세라의 입에서 경악과 쾌락이 섞인 비명이 터졌다.
“으윽, 뭐 하는 짓이야?! 엉덩이는 왜…….”
어쩐지 배 안쪽이 간지러워져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니 엉덩이를 때렸던 손이 비호처럼 탐스러운 머리채를 틀어쥐어 꺾었다.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도록 만든 에녹이 또 잠깐 연기에서 빠져나와 설명했다.
“그놈이 네 엉덩이나 때리면서 즐기는 놈일 수도 있잖아?”
다른 손을 높이 들어 올린 그가 쫘악! 쫘악!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후려쳤다.
탄력적인 두 개의 살덩이가 그의 손길 아래 흔들렸다. 쫘악! 쫘악!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은 것처럼 쉴 새 없이 체벌이 가해졌지만, 그 와중에도 힘 조절은 하는지 맞은 부위에서는 딱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알싸한 통증만이 올라왔다.
“이 예쁜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틀어쥐고, 네가 느끼든 말든 그냥 저 좋을 대로 널 굴렸을지도 모르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실제마냥 읊어대던 에녹이 다시금 연기에 몰입했다.
머리채를 틀어쥐는 손아귀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씨근덕거리는 숨을 내쉰 그는 말한 대로 요령 따위 없이 무식하게 허리를 박아댔다.
으아, 흐아, 안쪽을 깊이 찔릴 때마다 입에서 한숨 같은 신음이 턱, 턱, 새어 나왔다. 술에 취해 몽롱해진 머리로는 자신이 갑자기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 세면대를 잡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들이받는 힘에 밀린 몸 때문에 발뒤꿈치가 힘껏 들렸다.
저 좋을 대로 내벽을 휘젓는 살 기둥이 예민한 곳을 스칠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덜덜 떨리고 무릎이 자꾸만 꺾이려 들었다.
“똑바로 서세요. 주인님.”
찰싹!
그때마다 어김없이 에녹에게 엉덩이를 맞았다.
다정하게 세라를 채근한 에녹은 그녀가 갓 태어난 사슴처럼 휘청대든 말든 괘념치 않고 부드럽고 말캉한 속살에 제 기다란 페니스를 쑥쑥 쑤셔 넣었다.
퍽! 퍽! 시뻘게진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박아대는 움직임에는 정작 그곳을 직접 때렸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분명한 분노가 엿보였다.
입술을 짓씹은 채 신음을 죽이고 있던 세라는 본능적으로 에녹의 화를 풀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착해 보였는데…….”
고르고 골라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였다.
자신과 침대 위를 뒹굴 예정이었던 그 예쁘장한 청년의 인성을 두둔하는 것.
“하하! 착해?”
안타깝게도 그건 세라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