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
“…….”
벼락같은 물음을 기점으로 둘 사이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난스레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칫,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던가.
에녹은 답지 않게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예쁘게 접혀 있던 눈매가 동그랗게 커진다. 방금 제가 들은 말이 현실인지 가늠하는 눈치였다.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제멋대로 튀어 나간 세라의 이성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나 혹시, 방금 쟤한테 날 좋아하냐고 물어봤나?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 처음, 뒤늦게 뇌리를 한 바퀴 돈 제 목소리가 기억나는 게 다음, 현실을 자각한 게 마지막이었다.
“헉.”
실책을 깨달음과 동시에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뒤늦게나마 멋대로 움직인 입술을 단속하는 모양새였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너 나 좋아하지.
끝은 의문형으로 끝났지만 그 속에 든 건 형태가 분명한 확신이었다.
그걸 에녹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얼굴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그랬지.
자괴감에 가까운 질책이 뒤따른다.
낭패감에 젖은 세라는 사람이 단어 하나에 꽂히면 어디까지 이성이 흐려지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놈의 ‘특별 취급’이 쏘아 올린 작은 공에 격추당한 건 에녹이 아니라 세라였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그렇지. 쟤한테 그런 걸 물어봐!’
세라는 할 수만 있다면 불과 몇 초 전의 자신을 붙잡고 짤짤 흔들어 버리고만 싶었다.
대체 너는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그딴 낯 뜨거운 질문을 입에 담았느냐고 말이다.
저 인간이.
저 자존심에, 저 성격에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하겠냐고.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그냥 아니라고만 하고 넘어가면 다행이었다.
자기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혹시 설레기라도 했느냐 물고 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놀리겠지. 어쩌면 저번처럼 길드에 소문을 내 버릴지도 몰랐다.
그는 결코, 세라를 놀릴 수 있는 기회를 허투루 내버리는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끝마다 ‘어이쿠, 이러다 네가 또 착각하면 어떡하지?’라고 깝죽거리는 모습을 상상하자 자신감이 급격히 하락했다.
세라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 꼴을 보고도 에녹을 살려 둘 자신이…….
벌써부터 밀려드는 피로감과 수치심에 세라의 얼굴이 혼자 벌게졌다 퍼레졌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대답하려나?’
힐끗, 테이블을 바라보던 세라가 시선을 올려 에녹을 살폈다.
“…….”
그즈음 에녹도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는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술이 대답하려는 것처럼 움찔대다가, 돌연 술잔을 붙잡아 황급히 제 입에 갖다 댔다.
시원하게 뻗은 목이 꿀꺽, 꿀꺽. 맛있게도 술을 삼켰다.
탁, 술잔을 내려놓는다.
이제 이야기하려나?
세라는 술에 젖은 예쁜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
하지만 꾹 닫힌 입술은 단번에 속에 든 걸 내뱉는 법이 없었다.
술에 젖은 입술은 해야 할 말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뻐끔거렸다.
장난기로 반짝이던 두 눈이 진지하게 가라앉고, 입가에 서린 웃음이 사그라든 채 뻐끔거린다. 가볍게 흘려 버릴 거라는 세라의 예상과는 달리 미간을 옅게 찌푸린 에녹은 제법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뭔 말을 하려고 저래?
세라는 자꾸만 뜸을 들이는 에녹의 행동에 감질이 났다.
그냥 그러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 한마디면 될 것을 자꾸만 질질 끌어대는 바람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고조되니, 세라도 덩달아 긴장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렇게, 주변의 모든 공기가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해 집중된 순간.
“우-.”
“우?”
에녹이 마침내 그 무거운 입을 열어서.
“우웁!”
헛구역질을 했다.
“……?!”
크게 몸을 들썩인 그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세라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쌩, 바람이 불 정도로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이 그렇게 급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달려가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우욱, 우욱 거리는 게 어디서 속을 게워 내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단숨에 복도 끝까지 달려 나간 에녹이 코너를 꺾어 사라졌다.
원하던 곳에 도달했는지 곧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우웨엑. 토하는 소리 참 시원하기도 하지.
“……아니.”
황당함이 밀려온 건 그즈음이었다.
별안간 구역질이라니. 이런 건 그녀의 머릿속에서 돌려 봤던 수많은 예상 답변 중 어디에도 없었는데…….
어쩐지 영 찝찝한 결말이었다.
돌아온 게 저토록 격렬한 구역질이라니.
이건 뭐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들은 것도 아니고.
“저렇게 많이 마셨다고?”
의심스러운 시선이 테이블로 떨어졌다.
떨떠름한 표정을 한 세라가 술병을 흔들어 보았다.
찰랑찰랑. 아직도 묵직한 병 입구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얼마 먹지도 않았구만.”
에녹이 거의 몇 잔 마시지도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의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약을 타서 해롱댈 정도가 되어서도 구역질 한번 안 하던 사람이 에녹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마신 것도 아닌데 여기서 구역질을……?
타이밍이 너무나 공교로워 해석의 여지가 자꾸만 뻗어 나갔다.
우웨엑!
그때, 저 멀리 에녹이 또 구역질을 해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러다 내장도 나오겠다. 라는 감상이 절로 들 정도로 격렬했다.
아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쪼르르 달려가 다정히 등을 두드려 줄 정도의 의리는 없었다.
……지금 이 찝찝한 기분으로는 등을 두드려 주다가도 그래서 좋아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하고 재차 물어볼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모른 척하고 싶어도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애써 사고라고 포장하기는 했어도. 은근히 그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자신의 진심 같은 것.
“내가 왜?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러자 누가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며 변명을 한 세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심신이 미약해져 해선 안 될 말을 입에 담았지만, 신이 도와 어물쩍 넘어가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잠이나 자자.”
어쩐지 김이 빠진 세라가 남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자리를 피했다.
달빛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대리석 바닥 위로 미끄러졌다.
에녹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
아플 정도로 속을 게워 낸 에녹이 진정한 건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후였다.
세라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가 요란하기는 했지만, 안주 없이 술만 들이켠 바람에 나오는 건 시큼한 위액뿐이었다.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른 구역감을 겨우 해소한 그가 비틀대며 세면대로 향했다.
수전을 열자 솨아아, 하고 시원한 물이 쏟아졌다.
그것으로 입을 헹궈 낸 에녹이 그 속에 머리를 담글 기세로 얼굴을 씻어 낸다. 같은 행동을 병적으로 반복하는 모습이 굉장히 불안정해 보였다.
그래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탓에 정신만은 말짱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을 지워 내고 싶은 것처럼 미친 듯이 물을 끼얹던 에녹이 멈췄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얼굴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시야 너머에 거울에 비친 자신이 언뜻 보였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은 제 얼굴을 쳐다도 보기 싫었다.
“하아-.”
세면대를 내려다보던 에녹이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토해 냈다.
고개를 거칠게 털어 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귓가에 들러붙은 목소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까닭이다.
에녹.
너 나 좋아하지?
친근하게 다가와 독사의 송곳니처럼 파고든 그 말은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내면을 깊이도 꿰뚫었다.
상대가 그 말을 입에 담은 그 순간, 에녹은 생각할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려던 대답을 막느라 급급했다. 다시 마주한 노예를 보고도 감정적인 동요가 크지 않아서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그나마 술에 취하지 않아 맨정신이었던 게 천운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대답할 뻔했지?’
덜컥거리며 이어지던 생각의 결론은 맞은편에서 들려왔다.
“……!”
허를 찔린 에녹의 큰 몸이 움찔 떨린다.
거칠게 들썩이던 등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
고집스럽게 아래를 향하던 고개가 느리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이대로 고개를 들어 마주하게 될 무언가가 두려운 것처럼.
하지만 에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외면하지 않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정면을 향했다.
‘괴로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그리하여, 내내 외면하고 있던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사는 게 재밌나 봐.’
머리가 온통 젖을 정도로 물을 뒤집어썼는데도, 거울 속의 남자는 물기 하나 없이 버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행복해 보여.’
붉은 머리의 남자는 꼭 죽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넌 평생 불행해야지.’
저주와도 같은 말을 하는 남자에게서는 어떠한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시커멓게 죽은 눈은 그저 상을 비추는 기능만을 이행할 뿐 어떠한 감정도 담아내지 못했다. 창백하게 질린 뺨에는 생기라고 할 만한 게 없었고,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말라서 턱선이 고스란히 보이는 얼굴은 제 눈에도 날카롭고 예민해 보였다.
‘네가 죽였잖아.’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꼴을 하고 있는 남자는 누군가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너 때문에 그 사람은 죽어 버렸는데.’
뒤집어쓴 지 꽤 오래되었는지, 남자의 얼굴에 튄 핏자국은 벌써 짙게 말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닮은 여자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어?’
네가 감히. 무슨 염치로.
역겨워. 역겨워.
남자는 에녹을 빤히 바라보며 경멸했다.
여전히 피를 뒤집어쓴 채로.
아아, 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에녹이 낮게 신음했다.
쿵, 쿵, 쿵, 쿵. 불규칙한 박자로 뛰기 시작한 박동이 귀까지 울렸다.
저 뜨거운 피가 몸을 타고 흐르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또다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 거 아니야.”
속에서 올라오는 걸 꾹 참아 낸 에녹이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변명했다.
그건 차라리 흐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누가 들어도 정말 아닌가 보다 할 정도로 간절한 어조였다.
‘아니긴.’
하지만 거울 속의 에녹은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비난했다.
거울 속의 남자는 이런 순간조차도 에녹을 비웃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웃을 힘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네 꼴을 좀 봐.’
대신 에녹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 스스로 답을 얻도록 하였다.
텅 비어 죽은 창백한 시선이 제 몸을 타고 오르는 게 느껴졌다.
남자가 서서히 사라졌다.
피에 젖은 사내가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지금의 에녹이 비쳤다.
“…….”
에녹은 숨 쉬는 법을 잊은 눈으로 그곳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에스텔라에 들어오기 위해 검게 물들인 머리.
목에는 가죽 목걸이와 온몸에는 금사로 만들어진 구속구를 두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은 혼란스러워할지언정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으며, 반쯤 벌어진 입술은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매끈했다. 숙면을 취하는 날이 많아져 눈 밑이 환했고, 웃을 일이 잦아져 날카롭던 인상이 묘하게 무딘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적당히 살이 붙은 얼굴 때문일지도 몰랐다.
“…….”
에녹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울을 볼 일이 없어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에녹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제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에게서는 한창때의 청년처럼 싱그러운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거울 속 남자의 말처럼, 그는 조금도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사람 같았다.
“……!”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홉떠진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제.
어느 틈에 이렇게 됐지?
시발점을 헤아려 보려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지점은 없었다.
그냥, 어느 틈엔가,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게 이렇게 되었다.
다만 누구 때문에 살 만해졌는지만큼은 명확했다.
그 얼굴을 떠올린 순간, 불안정하게 두방망이질 치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헉, 에녹이 숨을 삼켰다.
‘병신 새끼.’
귓가에 이제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버석하게 부서지는 환청 너머로, 끝끝내 떨쳐 내지지 않는 달콤한 질문이 마땅히 받아야 할 빚을 받으러 온 것처럼 기어코 그를 잡아챘다.
에녹.
너 나 좋아하지?
의문형으로 끝났지만 명확한 확신이 담긴 말.
상대는 이미 자신에 대한 에녹의 감정을 어느 정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에녹이 손 놓고 멍청하게 굴 동안에, 제 노예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착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병신 새끼.’
남자가 한 번 더 그를 비난한다.
‘넌 평생 괴로워해야 돼.’
그리고 지워지지 않을 저주를 퍼붓는다.
저주 위로 사랑스러운 음성이 덧씌워진다.
좋아하지?
그 상반된 간극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괴로워해. 좋아하지? 괴로워해. 좋아하지?
저주와 유혹이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숨 막히게 에녹을 추격해 왔다.
사냥감이 되는 일에 익숙지 않은 남자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을 쫓는 삿된 것들로부터 도망친다.
하지만 기어코 둘 중 하나에 콱, 목덜미를 물어뜯겼다.
쿵, 쿵, 쿵, 쿵. 뇌까지 울린 박동이 두개골을 깨부술 듯이 거세어졌다.
죽은 듯이 잠잠하던 호흡이 가빠진다.
결국 패배하게 된 영웅이 쓰디쓴 항복의 말을 읊조렸다.
……응. 좋아해.
풋풋해야 할 고백의 말에는 어떠한 행복도 스며 있지 않았다.
스르륵, 자리에 주저앉은 에녹이 온기 따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나는 그러면 안 돼.
나 따위가.
감히.
“…….”
표정이 사라진 에녹이 손으로 제 코와 입을 한꺼번에 틀어막았다.
속이 참을 수 없이 메스꺼워졌다.
역겹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역겨워서, 죽여 버리고 싶어진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우욱.”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또다시 토악질이 올라왔다.
변기로 달려간 에녹이 상체를 숙였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격렬한 구역질이었으나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에녹은 연신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려 애썼다.
지금의 저를 만든 무엇이라도 뱉어 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렇게 에녹은 밤새도록 무언가를 제 몸 밖으로 빼내었다.
온몸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죄책감이 그를 끝이 보이지 않는 늪으로 끌어당겼다.
익숙한 우울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