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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알고보니 쓰레기?
선호작, 댓글, 추천 감사드립니다~
대학생이 된 리얼돌
“소문이 좀 지저분하긴 하지?”
“……….”
“지금 너랑 이야기해 보니 솔직히 네가 그랬다는 게 믿기지는 않는데…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기호가 우물쭈물하면서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너 정도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성질내지 말고 들어봐. 생각해 보니 내가 너였다면 당연히 그랬을 거 같다 이거야.”
“뭘? 여자 다 따먹고 다니는 거?”
“내가 만약 너였다면 나도 그랬을 거라는 거야. 어쩌면 그게 남자들의 판타지 아니겠냐? 생물학적으로 유전자인 본인의 씨를 퍼트리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거지. 물론 여자도 좋은 씨를 받기 위해 남자를 가려서 만나는 거고…….”
“야… 씨라니… 여기 식당이다. 말 좀 가려서 하자. 크흠.”
순진하게 봤는데 이거 영 머리가 어떻게 된 놈이 아닐지 의심이 들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혹시 소문이 사실이더라도 어쩌겠어. 그게 사회의 현실인데 말이야. 넌 이런 얘기도 못 들어봤냐? 미국에서 성공한 남자는 다 발정 난 돼지가 된다고 어떤 여작가가 쓴 기사인데?”
“…….”
“성공한 남자는 호르몬 수치가 높다고 하거든. 그걸로 사람도 매료시키기도 하고 성욕도 왕성하다네?”
“쉿! 조용……. 학생 식당에서는 할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강전기가 황급히 성기호의 입을 틀어막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 같은데 나름 솔깃했다. 아무래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게 사람의 심리인 모양이었다.
분명히 그 더러운 소문은 거짓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평소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을 쉽게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자주 클럽을 전전하면서 원나잇을 해댔으니 학과에서도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알았어.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야.”
“다 먹었으면 커피나 한잔하러 가자. 내가 살게.”
전기와 기호는 학교 내 카페에서 라테와 레몬티를 한 잔 시켜놓고 자리를 잡았다. 강전기가 소문에 관한 내용을 더 자세히 물어봤지만, 더는 새로운 내용은 듣지 못했다.
“기호야, 혹시 이런 얘기를 아는 사람이 학과에 얼마나 될까?”
“글쎄? 아무래도 여자 동기들은 졸업했거나 취업 준비 중인 4학년이 되었을 테니 크게 영향이 없을 테고 우리 같은 복학생들이 그런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겠어? 다들 이제 학점 따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할 건데…….”
‘크… 이런 젠장. 좀 불안한데 이거?’
* * *
강전기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개강 총회 후 개강 파티에서 누군가가 술에 취해 강전기의 과거를 폭로한 모양이었다. 개강 파티에서 예쁜 애들 스캔 좀 하려고 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참석한 그에게 쏟아지는 많은 관심이 부담스러워 일찍 자리를 뜨고 말았다. 전생에 지하실 밑 하수구 근방에 처박혀있던 자존감이 아직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리를 일찍 뜬 게 화근이 될 줄이야. 개강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던 성기호가 어디선가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전기야… 진짜 재수도 없다. 하필이면 입이 가볍기로 소문난 김선영이 아직 2학년일 줄이야. 걔가 술 취해서 네 얘기를 엄청나게 해버렸다네.”
“뭐… 뭐라고 했다는데?”
“그게……….”
요약하면 이랬다. 강전기는 평소에 과에서 예쁜 애들에게 호감을 보이며 집적대고 다녔고 본인이 그의 여친이라고 믿고 있었던 순진했던 한 여학생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몰래 그를 스토킹하며 따라다녔다고 한다.
여러 여자를 만나고 심지어 모텔까지 들락거리는 모습에 심한 충격을 느끼고 미친년처럼 죽니 사니 하며 자살 쇼를 벌이다가 학교를 관두고 유학 갔다고 했다. 심지어 모텔 옆방까지 미행해서 섹스하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아니, 무슨 악취미야? 옆방에서 소리를 듣다니? 그냥 난입해서 머리채를 잡던가?’
모텔에 같이 투숙했던 여학생도 소문이 크게 나면서 휴학했다고 했다. 어이가 없지만, 지금은 홍대에서 음악을 하면서 지내는데 나름 홍대 여신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원나잇만 하고 입 닦은 여자들도 꽤 된다고 하니 참 난 놈은 난 놈이었다.
“물론 분위기는 안 좋았겠지?”
“김선영이 술김에 심하게 말했는지 여자들 사이에선 좀 그런 거 같더라.”
‘아, 씨바. X 됐네. 보기보다 좀 지저분하게 놀았구나. 원판 이놈도 좀 적당히 했어야지.’
‘물은 이미 엎질러졌지만 자숙하면서 조용히 소문이 가라앉기를 바라야지. 이미지 완전히 망쳤는데?’
‘전공 수업 쪽에서는 진짜 공부만 해야겠는데 이거? 공대 쪽에서 받는 통계학하고 교양 수업인 수영에서 승부를 봐야 하나?’
아직도 그에게는 낭만 캠퍼스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원판의 전철을 답습하려고 하는 모순을 애써 외면하는 처절한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데이트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고 싶은데… 다시 주말마다 민성이랑 클럽을 돌아야 하는 건가?’
상황은 다행히 좋은 쪽으로 풀리는 듯했다. 통계학 수업에서 엄청나게 귀여운 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과학과 1학년 유하리.”
“네…….”
그녀는 160cm 초반에 얼굴은 소녀 소녀하게 귀여운 강아지상이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에 상체가 상당히 타이트한 하트 문양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봉긋한 가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이즈는 꽉 찬 A컵 정도?
목과 반소매는 흰색으로 밴딩 처리된 듯하게 디자인된 옷이라 그런지 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치마는 팔랑거리는 부챗살 모양의 짧은 흰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형태가 걸그룹들이 속바지를 입고 위에다 가볍게 입는 치마 같은 모양이었다.
전체적으로 머리가 작고 비율이 좋은 슬렌더형 체형으로 허리 부근이 잘록해서 몸매의 굴곡이 잘 드러나는 차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내놈들이 그녀의 몸매를 훔쳐보기 바빴다.
‘오우야… 겁나 귀엽네. 경영학부에서는 쟤한테 비빌 수 있는 애가 없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인원이 많은 경영학부에 미녀가 없을 리가 만무했지만, 셀프 정신 승리 중인 강전기였다. 약간은 취향이 반영된 것일지도 몰랐다. 찐따 시절 걸그룹 덕질 시 얼굴이 좀 처져도 저런 씹덕류에게 빠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녀가 공대 여신이라는 것이었다. 시커먼 놈들이 그녀 주위에서 겹겹이 인의 장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휴우… 이거 쉽지 않겠는걸?’
그녀는 공주 취급받는 것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은근히 야시시한 옷차림으로 수컷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어떻게 저 장막을 뚫지? 골치 아프겠구나.’
여자를 사귀어본 경험이 없으니 막상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클럽에서 그냥 외모발로 여자들을 끌어모으던 상황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그냥 잘생긴 학생일 뿐. 뭔가 접점을 만들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자 책상 위의 노트와 필기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공대라 그런지 노트북을 쓰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강전기는 일단 감성이 아재였다.
그런데 중간에 남자 사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유하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전기 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응? 뭐지?’
“저기요.”
“네?”
“혹시 블루윙스 22기 강전기 선배님 아니세요?”
“블… 블루윙스요?”
“네, 댄스 동아리요.”
“아아…….”
“맞으시구나. 저 동아리방에서 선배님 동영상 본 적 있어요. 동아리 레전드 무대라고 선배님들이 가끔 틀어놓으시거든요.”
‘강전기 이 새끼, 동아리 활동을 했었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좀 쉬워지겠는데?’
“선배님, 제가 얼굴이랑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복학하셨나 보네요. 시간 되시면 동아리 좀 놀러 오시구요.”
“그… 그래.”
그녀와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유하리는 손을 흔들고 다시 인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주위의 시커먼 수컷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주적이 생겼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모양. 특히 측근처럼 주위를 지키고 있던 꽤 덩치가 있던 남학생 한 명의 표정이 야수처럼 험악해졌다.
‘어우… 저놈 면상 좀 봐라. 살벌하네. 쩝… 그런데 원판이 댄스 동아리였다고? 바로 방문 간다.’
* *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후에 블루윙스를 방문했다. 동아리방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그에 맞춰 댄스 연습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어라? 전기야, 오랜만이다. 너도 복학했니?”
벌써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신입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남자였다. 너도 복학했냐라고 물어보는 거로 봐서는 본인도 복학생인 모양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들은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신변잡기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연히 동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의 이름은 박찬영이라고 했다. 전기가 들은 바로는 2학년까지 동아리에 자주 나오다가 군대나 취업 때문에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가 자주 오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난 2학년 1학기 때 복학해서 아직도 동방에 자주 나오거든. 이따가 애들 오면 내가 소개해 줄게.”
“그래, 고맙다.”
동기 한 명이 있다는 게 왜 이렇게 든든한지.
“애들아, 이리 와봐. 복학한 내 동기다. 경영학과 강전기야.”
“안녕하세요, 형. 1학년 한정우입니다.”
“와…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1학년 김지은입니다.”
“그래, 반갑다. 강전기라고 해. 가끔 놀러 올게.”
“가끔? 왜? 너도 공부하게? 자주 좀 나와라. 나 심심하다. 선배들은 바빠서 그렇다고 해도 동기 애들도 거의 안 나오네. 1학기에 복학한 애들도 좀 있는데 말이야.”
“요즘 취직도 안 되는 불경기라 그런가 보지. 다들 1학년 때 학점 개판 쳤을 건데 복구하려면 힘들걸?”
“그러는 너는 학점 좋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난 1학기만 다녀서…….”
“아, 그랬나? 너 1학년 때는 동아리에 살다시피 해서 난 네가 2학기까지 다닌 줄 알았다.”
춤을 추고 있던 두 명의 후배들은 잘생긴 새로운 선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지은이라고 했던 여학생이 손바닥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아… 찬영이 오빠가 자주 틀어놓았던 영상에 나오시는 분이구나.”
“맞아. 그때 얘가 멱살 캐리했지. 우리야 다 아마추어였는데 얘만 기획사에서 정식으로 배운 연습생 출신이었거든.”
“와… 진짜요? 대단하다. 전 오디션에서 다 떨어졌었는데…….”
1학년 후배인 정우가 부럽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정우는 170cm 후반에 얼굴도 깔끔하게 생긴 후배였다. 딱 기획사 오디션 커트라인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의 애매한 외모랄까? 이런 외모면 특출하게 잘하는 어떤 특기가 있어야 했다.
‘유하리는 언제 오는 거지?’
“오빠, 어디 연습생이셨어요?”
“놀라지 마라. 얘 SSJ 출신이다.”
옆에서 불쑥 찬영이 끼어들었다.
“예? 진짜요?”
다들 엄청나게 놀란 표정이었다. 하긴 SSJ가 어디인가! 비록 지금은 2대 기획사의 추격에 힘들어하고 있지만,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원톱 회사 아니던가.
“딱 봐도 SSJ 얼굴상이긴 하다. 진짜 신기하다. 우리 동아리에 이런 선배가 있으셨다니…….”
강전기는 사실 춤을 춰본 적이 없었다. 걸그룹 안무를 어설프게 따라 하거나 공무원 연수 중에 율동 정도 해본 게 다였다. 동아리에서 혹시 춤을 추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찬영아, 혹시 선배들도 행사에서 춤추거나 그런 건 없지?”
“응? 행사? 2학년 현역 애들 위주로 하고 게네들이 1학년도 가르치고 그러지. 물론 동방에 와서 혼자 춤을 추거나 애들 가르치는 건 상관없는 거고.”
“그렇구나.”
“나는 학과에 친구들이 없어서 애들 눈치 보면서 동아리방에서 죽치고 있거든.”
“진짜예요. 찬영이 오빠 1학기 때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얘들아! 내가 이렇게 동아리에 애정이 깊다는 거 아니겠니? 조금 있다가 애들 오면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쏜다.”
“와… 찬영 오빠 상남자다! 얼른 애들 모이라고 해야겠다.”
‘뭐야, 이 녀석. 금수저인가?’
“오빠… 또 1인분씩만 사시는 거죠?”
“당연하지. 인마. 내가 무슨 재벌 집 막내아들인 줄 아니?”
“전기야, 너 오늘 돈 좀 써라. 각출 좀 하자.”
“그래, 알았어. 나도 좀 낼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후배들이 하나둘씩 동아리방에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2학년이 1학년의 춤을 봐주기도 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네. 젊음이 좋구나!’
하지만 우려스럽게도 아직 예쁜 애가 한 명도 없었다. 약간 뺀질뺀질하게 생긴 찬영의 인물이 그나마 출중했다.
그때, 동아리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학생이 들어왔다. 쫙 달라붙은 스키니 진 청바지에 연노랑 시스루 셔츠를 입은 미녀였다. 시스루 안의 검은 민소매가 섹시해 보였다. 언뜻 보니 키가 거의 160대 후반 정도 되는 늘씬한 처자였다.
그 순간 강전기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