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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추코 감사합니다.
대학생이 된 리얼돌
“안녕하세요.”
그녀는 성의 없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선배들 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더니 곧바로 거울을 쳐다보며 몸을 풀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어휴. 저 싸가지…….”
박찬영이 강전기 귀에 손을 대고 작게 이야기했다.
“쟤 말야. 예쁘긴 한데 싸가지가 없어. 이름은 이다미라고 무용과 다니는 1학년 애인데 어디 연예 기획사에도 합격했는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했다고 콧대가 상당히 높아.”
‘어쩐지 얼굴도 예쁘고 진짜 늘씬하구만. 발레를 배운 모양이네. 오우. 유연한 것 봐라. 다리가 그냥 쭉쭉 늘어나네.’
강전기의 시선이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 부근에 고정되었다.
‘와우. 라인 보소! 저 정도면 뭐 어디 걸그룹에 끼어도 큰 무리 없는 수준인데? 키가 크니 섹시 계열로 데뷔하면 딱 맞을 듯한데. 얼굴이 약간 도도한 고양이상이기도 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강전기였다.
“다미야! 이리 좀 와봐.”
“예? 저요?”
“그래, 너 인마. 서로 인사 좀 해라. 이번에 복학한 동아리 선배야.”
그녀가 동작을 멈추더니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경영학과 강전기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다미가 무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 끼고 형식적으로 꾸벅 인사를 하려다 앉아있던 전기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다미야, 있잖아. 전기 오빠 SSJ 연습생 출신이었대…….”
옆에 있던 김지은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 그러세요.”
이다미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SSJ 출신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큰 감흥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가끔 동아리에서 보면 아는 척 좀 하자.”
“네…….”
시크하게 대답하더니 몸을 돌려 다시 스트레칭하는 그녀였다.
“냅둬라. 아주 지 잘난 맛에 사는 애야.”
찬영이가 다시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강전기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매는 무조건 1티어네. 웬만한 걸그룹 센터급이다.’
반면, 스트레칭하고 있던 이다미는 강전기를 떠올리고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뭐야? 우리 동아리에 이런 선배가 있었어? 완전 내 타입인데?’
최근 썸 타고 있는 체육교육학과 오빠 생각은 이미 저만치 날아간 상태였다.
* * *
끼이익―
동아리 문이 열리며 드디어 공대 여신 유하리가 등장했다.
“안녕, 얘들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유하리가 반갑게 동기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선배들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뭔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애였다. 역시나 인사하는 거 평가하는 꼰대 마인드의 강전기였다.
“왔니? 올… 우리 하리는 오늘도 예쁘구만.”
“아잉… 찬영 선배, 자꾸 그러시면 저 진짜인 줄 알아요.”
“왜 그래, 사실인걸? 하하.”
어떻게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인데 그냥 가볍게 웃어넘기는 그녀였다.
“전기 선배님 오셨네요? 동아리는 복학하고 처음이시죠?”
유하리가 반갑게 전기에게 아는 척했다. 친화력이 상당한 아이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클렌즈였지만.)
“어? 너희 어떻게 알아?”
“통계학 수업 같이 들어요. 거기서 뵀죠.”
“아… 그래? 그럼 따로 인사할 필요 없겠네.”
“쟤가 동아리 1학년 분위기 메이커야. 선배들도 다 좋아하고 성격이 엄청 좋아.”
다시 귓속말로 유용한 정보를 전해주는 착한 동기였다.
“자, 사람들 더 모이기 전에 이 정도 인원만 저녁 먹으러 가자.”
“와… 삼겹살 고고!”
“야… 한정우 너 또 소주 먹고 오바이트나 하지 마라.”
약 열두 명의 학생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학교 근처 맛집에 도착했다.
근처 고깃집은 가성비로 유명한 가게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테이블에 쭉 둘러앉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한돈을 상추에 싸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소주가 빠질 수 없는 노릇. 일행은 서로 건배하며 소주를 원샷으로 들이켰다.
‘이런 게 캠퍼스 낭만이지! 역시!’
“캬아… 맛 좋고!”
“찬영 선배, 진짜 아재 같다. 히히.”
유하리가 입에 손을 대고 조그맣게 웃고 있었다.
‘하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네. 콱 깨물어주고 싶구만?’
강전기가 하리의 봉긋한 가슴을 무의식적으로 훔쳐보았다. 이다미와는 타입이 다르지만 유하리도 꽤 괜찮은 스타일이 분명했다. 걸그룹에서도 괜스레 시선을 스틸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하리였다.
“그런데 다미야,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너 항상 일찍 갔잖아.”
“왜? 나는 이런 데 오면 안 돼?”
상당히 감정이 실린 대답이었지만 유하리는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너도 좀 자주 참석해. 나 너랑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래.”
“…….”
블루윙스의 1학년 더블 에이스 간의 모종의 기 싸움이었다. 웃는 얼굴로 시종일관 좋은 말만 하는 유하리에 비해서 얼굴에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고 있는 이다미였다.
‘어휴, 이 구미호 같은 년. 말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어. 사람들이 저 가식적인 면을 알아야 하는데. 잘생긴 사람들한테만 친절한 것 봐.’
남자가 다섯 명이었는데 주로 강전기, 박찬영, 한정우에게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나머지 두 명에게는 형식적으로만 대답하고 있는 게 그녀의 눈에 보였다.
‘남자들은 왜 저 구미호에게 홀딱 넘어가지? 진짜 짜증 나네.’
성질이 난 이다미가 앞에 있던 소주를 그대로 원샷했다.
“다미야, 천천히 먹어라. 술 고팠니?”
‘아이 씨…….’
테이블 위의 삼겹살이 어느새 위장 속으로 다 사라졌다. 다들 소주를 마셔서 그런지 얼굴이 붉었다.
“아우, 배부르다. 선배님, 2차 가셔야죠?”
한정우가 배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2차는 전기가 쏠 거야. 그렇지?”
“어, 그래. 뭐 2차 정도야.”
“오오오! 강전기! 강전기!”
오늘은 돈을 좀 써야 하는 날이라고 판단했다.
“아니, 이것들이 내가 고기 사줄 때는 이런 반응 없었는데? 너무 많이 사줬더니 이놈들이 익숙해졌나? 이제 너희가 나 밥 좀 사줘라.”
박찬영이 쉴 새 없이 농담했다. 이 녀석은 원래 이런 캐릭터인 듯했다. 인간관계가 넓고 술 좋아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그들은 장소를 이동해서 2차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이미 소주로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온 일행은 강전기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붐비는 고깃집에서는 시끄러워서 제대로 된 대화를 못 했기 때문이었다.
“오빠, SSJ에서 누구랑 같이 연습했어요?”
“와아… SSJ 엔터? 전기 오빠가 SSJ 출신이셨어요?”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유하리를 보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강전기였다.
“응, 딥블랙 데뷔 조였는데 사정상 관두게 됐어.”
“진짜요? 와… 아깝다. 딥블랙 개네들 SSJ 차기 보이그룹이잖아요. 요즘 슬슬 반응 오던데.”
“하리야, 자세히 물어보지 마라. 예전에 전기한테 그거 물어보면 엄청 짜증 냈어. 지금은 좀 괜찮아진 거 같긴 한데…….”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군대도 다녀오…….”
“근데 전 오빠가 딥블랙 게네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아하하… 그러니? 빈말이라도 고맙다, 하리야.”
“데뷔 조에서 왜 탈락하신 거예요?”
이다미가 맥주를 들이켜더니 술잔을 놓고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오니 둘만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게 짜증 난 것 같았다.
“다마야! 탈락이라니 실례잖아.”
강전기는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유하리가 정색하며 소리쳤다.
“참나, 왜 네가 열을 내? 어이없다, 정말… 선배,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예요?”
‘흠. 얘가 왜 이러지? 술이 들어가니 스타일이 상당히 공격적인데?’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멤버들하고 좀 안 맞아서 나온 거야.”
전기가 이쯤에서 얼버무리려고 하는데 그녀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SSJ가 그렇게 계약을 느슨하게 했을 리도 없고요. 그냥 사장님, 저 얘네들이랑 안 맞아요, 하고 그냥 나올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가 잠깐 있었던 곳은 안 그렇던데…….”
그녀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연예 기획사가 애들처럼 소꿉장난이나 하는 곳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고 아무도 말 못 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어릴 때 정신 못 차리고 주변에 너무 못되게 굴었어. 사실상 쫓겨난 거야. 물론 지금은 깊이 반성 중이야. 후회 중이고…….”
강전기는 슬픈 척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기서 그냥 정공법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차라리 이런 약한 모습을 보여 동정표를 얻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오빠,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죠. 사람들은 원래 실수하면서 크는 거래요.”
‘하리야, 난 이미 너무 커서 더 커지면 큰일 난단다.’
그가 자신의 아랫도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다미야, 너도 이제 그만해. 괜히 아픈 과거 건들지 말고.”
강전기의 진심이 담긴 말과 유하리의 충고에 이다미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에이 씨… 괜히 안 해도 되는 말을 해가지고…….’
“하리야, 너 오늘 방송하는 날 아니었어?”
“응? 방송? 하리 어디 출연하니?”
“형… TV 같은 게 아니라 인터넷 방송요. 하리가 게임 스트리머거든요. 트위스터TV요. 시청자가 500…1,000명 정도 돼요.”
“오… 하리가 스트리머였구나. 거기서 뭐로 검색해야 나와?”
“오빠, 트위스터에서 하링하링으로 검색하면 나와요. 근데 일부러 오시지는 마시구요. 저 창피하니깐.”
유하리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정도 시청자 수면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
“그렇죠. 천 명 가까이 되는 스트리머 몇 명 안 되거든요.”
“아냐… 난 대기업 아냐. 남들이 들으면 웃어.”
그녀가 사실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강전기는 의외로 인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들이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찐따 시절 인터넷 방송 여캠을 가끔 봤기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아메리카TV 여캠에 수백만 원 별풍을 쏘고 자괴감에 빠진 일도 있었다.
“에이… 내가 잠깐 들어가 봤더니 후원 엄청나게 터지던데? 형, 얘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많이 벌걸요? 그것도 일주일 세 번밖에 방송 안 하는데…….”
“유하리, 대단하네. 진로를 아예 그쪽으로 굳힌 거야?”
“아뇨. 아뇨… 첨엔 돈 벌 생각 없이 재미로 하다가 우연히 대기업 스트리머하고 합방했는데, 그 후로 팔로우가 엄청나게 늘더니 이렇게 됐어요.”
“아니, 그래도 뭐 재미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볼 거 아냐? 괜히 천 명이 그걸 보고 있겠어?”
“그렇죠, 형. 요즘엔 인기를 끌려면 딱 세 가지예요. 게임을 천상계처럼 잘하거나 말을 잘해서 겁나게 웃기거나 아니면 엄청 외모가 뛰어나거나. 그런데 제 생각에 하리는 말발이 좋아요. 목소리도 들어보면 약간 일본 성우 느낌이잖아요?”
“그러네. 약간 그런 느낌이다.”
“그쵸. 그쵸. 약간 씹덕들 취향 저격 방송이랄까? 캠도 안 켜고 하는데 천 명 정도면 진짜 많은 거예요.”
“야! 한정우! 너 언제 내 방송 들어왔어. 내가 오지 말랬잖아. 창피하게시리…….”
“근데 얘는 웃긴 게 씹덕류 방송이면서 게임도 좀 하는 편이더라구요. 게임 관련해서 아는 것도 많고요. 컴퓨터과학과라 그런가?”
“유하리, 대단하다. 너 엄청나구나? 주로 어떤 게임을 하는데?”
“주로 FPS랑 AOS 게임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게임하면서 놀아서 그래요.”
“FPS면 총싸움이지? AOS는 롤링인가 뭐 그런 거고.”
“맞아요. 오빠, 오빠는 게임 안 하시나 봐요?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응, 나는 게임 잘 못 해. 잘 알지도 못하고…….”
“헤헤… 그럼 제가 좀 알려드려야겠다. 저랑 언제 한번 게임방 가요.”
“나야, 하리가 알려주면 언제나 땡큐지.”
“형, 롤은 저한테 배우세요. 저 다이아 찍었어요.”
“그래, 알았어.”
한정우라는 남자 후배도 강전기에게 호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비록 남자 후배였지만 싹싹해서 특별히 예뻐해 주기로 했다.
강전기가 옆 테이블을 보니 이미 박찬영은 거의 술에 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사를 부리고 있었다. 현역 2학년생 애들하고 1학년 몇 명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역시 동기 사랑 박찬영! 잘하고 있다. 내가 에이스들을 책임질 테니 옆에서 좀 더 분발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뭔가 뿔이 난 것 같은 표정의 이다미가 강전기의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