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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호작, 추천 감사합니다.
작곡가가 된 리얼돌
며칠 후 터진 초대형 연예계 성 상납 스캔들로 인해 강소라 가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황아영이 한 얘기가 맞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흥미는 많지만 그다지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강전기의 삶도 평소 때와 비슷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유하리와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정도 관계를 가졌다. 그랬더니 차근차근 포인트가 모이기 시작했다.
하리는 방송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섹스도 상당히 잘하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항상 순진한 척하고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연기가 몸에 배어있을 뿐 강전기도 어렴풋이 그런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런 상관없이 하리와 주말 맛집을 탐방했고 평일에도 관계를 즐겼다. 솔직히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 내심 두려운 강전기였다.
그에 반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강소라 동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찬 것과 아이돌 덕후 성기호에 의한 시달림이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수아나 블루비 섭외가 가능한지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안 된다니까! 나도 제대하고 딱 한 번 봤는데 무슨 낯으로 그런 걸 해달라고 해?”
“너도 미튜브 무시하냐? 한 번만 나오게 해줘 봐. 내가 아주 떡상을 시켜준다니까?”
“네가 뭔 재주로 떡상을 시켜? 주야장천 걸그룹 직캠이나 올리는 놈이?”
“콘텐츠야 엄청 많지. 아직 못 한 것도 많고 구상 중인 것도 있고…….”
“한마디로 아직까지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거 아냐?”
“그걸 블루비가 스타트를 끊어주면 되지.”
“어우… 답답해. 그런 건 제안서를 만들어서 다인기획에 보내야지. 나한테 그러면 무슨 소용인데?”
“안 되니까 너한테 그러는 거지.”
“이 뻔뻔한 놈. 네가 아주 미쳤구나?”
역시 골수 아이돌 덕후라 그런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노빠꾸였다. 어떤 걸 하려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물어는 봤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솔깃하고 참신한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기획력이 있는 놈이었다.
“흐음… 괜찮긴 한데…….”
“그치, 그치?”
조금 칭찬해 줬더니 좋다고 표정이 헤벌쭉해졌다.
“그런 거 하고 싶으면 방송국에 입사해서 예능국 PD가 되든지 해라.”
“졸업하려면 3년 넘게 남았는데 어느 세월에 그러냐?”
“아니면 기획사에서 그런 알바나 하든지…….”
“그런 알바가 어디 있냐?”
“그럼 그냥 조용히 하던 거나 계속해라.”
“진짜 아이템은 좋잖아?”
강전기는 성기호에게 며칠간 시달리고 있었다. 과에 있는 유일한 친구라 버리지도 못하고 한숨만 나왔다.
부우우― 부우우―
“야, 잠시만. 막내 누나 전화 왔다. 여보세요?”
―전기야, 내일 뭐 하니?
“왜? 나 위로라도 해주게?”
―야! 위로는 내가 받아야지. 방송 나가고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더라. 흑역사 짤만 영원히 남았잖아!
“그건 누나가 자초한 거고…….”
―휴… 젠장……. 야, 그건 그렇고 너 내일 별일 없으면 누나랑 누구 좀 만나자.
“누구?”
―왜, 나랑 같이 방송 나오는 정수 오빠 알지?
“응, 알지. 리부트 엔터 사장님… 겁나 웃기잖아.”
―야… 그건 그냥 방송용이고 사실 괜찮은 회사 사장님이야.
“그분이 왜 나를 보자고 하는데?”
―글쎄? 나도 모르지……. 아무튼 내일 저녁 일곱 시에 시간 비워놔. 내가 장소를 문자로 찍어줄게.
“흠… 뭐, 별일 없긴 한데.”
―나 바쁘다. 끊는다. 그럼…….
뚜뚜뚜…….
“아이… 지 할 말만 하고 끊고 그래? 어우, 깜짝이야!!”
성기호가 바로 옆에서 귀를 기울이며 통화를 감청 중이었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무슨 간첩도 아니고.”
“내일 소라 누나 만나는 거냐? 수아가 안 된다면 대신 소라 누나라도 좀 안 되겠니?”
뿔테안경 속 기호의 두 눈에 광기가 감돌았다.
“꺼져, 이 후안무치한 미친놈아. 평소처럼 키스마이걸이나 쫓아다녀…….”
“제발요… 형님…….”
* * *
다음 날 저녁 강전기는 누나에게 톡으로 받은 가게 주소를 찾아갔다. 위치는 강남의 고급 중식당이었다. 따로 룸이 있는 비싼 식당인 것 같았다.
전기가 안내를 받아 예약된 룸으로 들어섰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일행은 벌써 와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 어서 와요, 전기 씨… 처음 뵙겠습니다. 이정수입니다.”
MC 겸 작곡가 이정수가 강전기에게 손을 내밀었고 둘은 악수를 나누었다.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잘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대표님도 진짜 실물이 훨씬 잘 생기셨네요.”
이정수는 40대를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피부도 곱고 패션 센스도 대단했다. 멋으로 알 없는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그는 키가 170대 후반쯤으로 보였고 호리호리하게 마른 몸이었다.
“야… 너는 누나한테 인사도 안 하냐?”
“어, 오랜만…….”
“엎드려 절 받기냐? 여기로 앉아.”
시답지 않은 날씨 이야기, 차 막히는 이야기를 하다가 종업원에게 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지난주 방송되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소라야… 방송 후 큰누님은 반응이 어떠시니?”
“나도 궁금하다. 혹시 큰누나랑 이야기해 봤어?”
“말도 마라. 동료 선생님들하고 환자들한테 엄청 시달릴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던데 아주 난리도 아니었나 봐. 갑자기 환자들이 엄청 늘어나고 거기다 기자들도 따라다니고 기획사에서도 병원으로 찾아왔나 보더라고…….”
“그 정도야? 그런데 누나가 연예인이 될 리가 없잖아? 연기도 못 할 거고…….”
“그니까… 그 얼음 마녀가 연기라니? 웃기지 않니? 그래서 거절했더니 그냥 CF 모델만 하자고 제의하더래.”
“옛날 무슨 커피믹스 선전하던 사람 생각난다. 직업이 그 제품만 선전하는 CF 모델이었잖아. 다른 건 하나도 안 하고……. 그런데 당연히 그것도 안 한다고 했겠네.”
“그렇지, 뭐…….”
큰누나의 외모는 진짜 그 정도 후폭풍을 일으켰을 거라고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강전기였다.
“실은 하도 시끄러워서 며칠 휴가를 냈나 봐. 무작정 자기 돈 많다고 자랑하면서 사귀자고 하는 놈도 있었고 미튜버들도 무작정 와서 콘텐츠 만든다고 아주 지랄을 했나 보더라고…….”
“어휴… 생각 없는 놈들. 내 옆에도 그런 놈들이 두 명이나 있는데… 힘들었겠네.”
“덕분에 나도 큰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지. 한 번만 더 그러면 호적에서 파버린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데 무서워서 그냥 끊었다.”
“누나는 혼 좀 나야 돼. 그렇게 말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찍으면 어떡하냐.”
“이제 그 소리 그만 좀 해라. 짜증 난다. 방송 한 번 더했다가는 집안에서 매장당하겠네.”
“소라야, 나는 소개팅 좀 어떻게 안 되겠니? 이 시점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정수가 매를 벌었다.
“으이구… 이 인간아!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지금 분위기 파악 못 하니?”
쫙!
“으악…….”
강소라의 손바닥 스매싱이 이정수의 팔뚝을 강타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우… 무슨 배구 선수냐? 손이 왜 이렇게 매워?”
“그러니까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방송에서 오빠 콘셉트가 그런데 어떡하냐? 네가 이해해야지.”
“방송하고 현실 좀 구분하시지?”
“크흠… 내가 너랑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데 너무하는 거 아니냐? 아… 아무튼 소개팅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강소라가 이정수를 상대로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둘째 누나는?”
“강소영은 좋다고 하지. 원래 관종인데 뭐…….”
강전기 머릿속에 댕댕이 두 마리가 떠올랐다.
“안 봐도 비디오겠네.”
“그러는 너는 어때? 너도 비슷하니?”
“처음에는 좀 귀찮긴 했는데 지금은 뭐 그냥 적응되더라고… 관심이 금방 수그러든 것도 있고…….”
“하긴 요즘에 좀 큰 이슈가 있었지.”
코스 요리가 하나둘씩 나오고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쯤 이정수가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강소라는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전기 씨, 혹시 연예인 해볼 생각 없어요? 의향이 있으면 우리 회사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아… 그 이야기 하시려고 부르신 거예요?”
“왜요? 별로 생각이 없어요?”
“네, 딱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죄송합니다.”
“의외네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섹스 라이프에 지장이 있어서라고 솔직히 이야기할 순 없고 얼굴 팔려서 싫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적당히 변명해야 하나?’
지난주 강전기는 방송의 위력을 절실히 깨달았다. 특히나 원판이 이전에 어떤 이상한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로 괜히 방송에 얼굴을 비추다가 악플만 오지게 받고 인생 골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스물세 살인데 아이돌 하기엔 나이가 늦은 거 같고 그렇다고 연기하는 것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거야 배우면 되지요. 이십 대 후반에 데뷔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막내 누나가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예전에 SSJ에서 연습생으로 꽤 오래 있었고 같이 있었던 애들은 지금 보이그룹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 팀을 나오게 된 계기가 팀 내 불화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다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요.”
“혹시 팀 이름이……?”
“딥블랙입니다.”
“아아아…….”
“대표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게 조심스러운데요. 제가 사실 어렸을 때 잘난 얼굴 믿고 개차반으로 살았습니다. 못된 짓도 많이 하고요.”
“음… 잠깐만요. 혹시 못된 짓이라면 폭력이나…….”
“아뇨. 그런 거 아니고 여자관계가 좀 복잡했습니다.”
“에이… 난 뭔가 했네. 깜짝 놀랐잖아요. 그 정도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남녀 관계가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 무슨 중범죄라도 저지른 줄 알았네.”
“제가 좀 그렇습니다. 학교에서도 여자한테 흘리고 다닌다고 소문도 많이 났고요. 심지어 저번 방송 관련 커뮤니티 게시물 댓글에 이런 글도 올라오더군요.”
강전기가 스마트폰을 꺼내 댓글 캡처 사진을 이정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언니 연제대 다니는데 이 오빠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하다고 함.]
“으음…….”
“제가 군대 다녀와서 많이 변했습니다. 그 당시에 잘못했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물론 지금은 반성하고 있지만 아직 학교에서조차 이미지를 개선하지 못했어요. 그냥 제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학업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많이 아쉽네요. 제가 보기엔 중대한 결격 사유가 아닌 거 같은데요. 본인이 괜히 과민 반응을 하는 것 같아요.”
‘이 형 끈질기시네. 내가 안 한다는데 왜 그래…….’
“어쨌거나 좋게 봐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그… 그래요.”
말하는 이정수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가득했다.
‘내가 봤을 땐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데 본인의 의지가 별로 없구나. 그나저나 큰일인걸. 아버지의 명령만 아니면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참 아버지는 곧 나한테 물려줄 건물인데 왜 그러시는지 원…….’
현재 이정수의 리부트 엔터는 강남의 아버지 소유의 빌딩에 입주해 있는 상태였고 몇 년간 임대료를 내지 않고 공짜로 쓰고 있었는데 방만한 경영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임대료를 받아내겠다고 경고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정수가 수익성 강화를 위해 이것저것 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회사는 방송에 나온 것처럼 약간 어설프게 굴러가고 있었는데 이정수의 경영 철학이 ‘가족 같은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한 가수들 몇 명과 정산 비율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합류한 배우 몇 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실 인기 있는 스타를 보유한 것도 아니고 다들 고만고만한 연예인들이라 매출이 그리 크지가 않았다. (사실상 친구들과 놀기 위해 만든 회사였다.)
물론 그의 경영 철학에 따라 이윤은 최소한으로 적자만 안 날 정도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아버지 빌딩이라 임대료를 안 낸 걸 계산에 포함시킬 경우 사실상 적자 운영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강전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잠시만요. 전화 좀 받겠습니다. 여보세요? 예? 일렉케이요? 아니… 아… 저 맞습니다. 누구시라고요? 케이 라임 씨요? 예? 진짜요? 제 곡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혹시나 하고 곡을 보냈던 천만 미튜버 케이 라임에게서 드디어 응답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