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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호작, 추천 감사드립니다.
작곡가가 된 리얼돌
햇볕이 잘 드는 고급형 빌라에서 한 여인이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넓은 방 안은 모던한 가구들로 깔끔하게 인테리어되어 있었고 창가 옆에는 컴퓨터와 각종 음악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라임.
개인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상위권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음악 커버 미튜버였다.
그녀는 따뜻한 모과차를 마시면서 목을 풀고 있었다. 다음으로 혀 운동과 입술 풀기를 이용해서 예열했다.
“부르르르르프르르르…….”
예열이 끝나자 가볍게 소리를 내어 성대의 긴장을 풀었다. 내일은 며칠간 연습했던 팝송을 녹음해서 올리는 날이라 오늘은 몇 번만 연습하고 최대한 목을 쉬면서 관리해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음악을 틀어놓고 몇 번을 불러보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연습은 충분한 것 같네.”
조금 이따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쉬기로 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본 체력이었다. 체력이 좋고 근력이 있어야 탄탄하고 안정적인 보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케이 라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채널로 들어가 분석 탭을 눌러 여러 가지 분석 내용을 읽어보았다. 이번 달 정산 금액은 약 2억 원이었다. 2년 전까지는 보컬 트레이닝이 주 수입원이었으나 2년 전 유명 가수의 커버 곡이 초대박을 치면서 구독자가 급증한 후 매달 엄청난 수익이 통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저작권 관련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외국 엔터테인먼트 대행업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는 탄탄대로였다. 그로 인해 넓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게 되었다.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숨겨진 그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커버 가수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남의 곡이 아닌 오로지 케이 라임 자신의 곡으로 노래를 히트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최근에 곡을 내자는 제의도 받긴 했지만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 시절 가창력을 믿고 자신감에 차서 데뷔했지만 혹독한 실패를 맛봤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저 그런 곡으로 컴백해서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는 날엔 지금까지 미튜브에 쌓아놨던 커리어에 손상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럴 순 없지.’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채널로 온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개설 초기에는 꼬박꼬박 확인했었지만 구독자가 천만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전부를 읽는다는 게 불가능해졌다. 어쩌다 생각날 때 몇 개만 읽곤 했다.
메시지함이 999+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메시지가 각종 광고에 협찬 요청이나 섭외 요청 메시지였다. 리스트를 쭉 훑어보다가 특이한 메시지를 발견했다. 제목이 ‘당신에게 어울리는 곡을 보내드립니다.’였다.
“이건 또 뭐람? 이제는 곡까지 보내네.”
그냥 지울까 하다가 무심결에 플레이를 누르게 되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고성능 스피커로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깔끔한 비트가 돋보이는 미드 템포의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음악이었다.
조금만 들어보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3분 40초가 흘러갔다. 노래가 끝나자 정신이 번쩍 든 케이 라임이 자세를 고쳐 잡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다시 한번 감상했다.
뭔가 경쾌하면서도 우울한 감성이 묻어있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곡이었다. 아직은 가사가 없지만 기본적인 멜로디 라인을 일렉 기타로 믹싱해 놓은 버전까지 있었다.
“이거 누가 보낸 거야? 아마추어 작곡가의 솜씨가 아닌데? 일렉케이? 이게 진짜 아마추어가 만든 곡이라고??”
케이 라임은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곡을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쭈욱 그려지고 있었다. 그만큼 영감을 주는 굉장한 곡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그 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소속사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운동을 하러 나가야 하지만 그 사실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네… Ksteam 미디어 한철중입니다.
“사장님! 저 라임이요.”
―그래요. 오랜만에 통화하는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네, 제 채널 메시지로 아마추어 작곡가한테 곡을 받았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얼마나 좋기에 라임 씨가 손수 전화까지 주시고…….
“제가 링크 보내드릴 테니 꼭 들어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노래를 들은 한철중 사장이 얼마 후 곧바로 차를 몰아 케이 라임 집에 도착했다.
“라임 씨, 이거 라임 씨가 부르면 진짜 잘 어울릴 거 같습니다. 진짜 듣는 순간 이게 바로 케이 라임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아… 다행이다.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사장님도 그렇게 느끼셨구나.”
“이거 보낸 사람 연락처 있어요? 빨리 연락해 봅시다.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기 전에…….”
“아… 그럼 안 되는데…….”
케이 라임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가 허겁지겁 모니터를 보면서 일렉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일렉케이 님 되시나요? 저 케이 라임이라고 합니다. 아뇨. 케. 이. 라. 임요. 미튜버요. 네네… 저한테 곡을 보내주셨던데 제가 그 곡을 써도 될까요? 네, 쓰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네… 제가 문자로 주소 남겨드릴 테니 얼굴 뵙고 이야기하시죠? 혹시 오늘 가능하실까요? 아… 약속 때문에 오늘은 곤란하시다고요. 그럼 내일은 가능하신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케이 라임은 내일 오후에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한편, 강전기는 저녁 식사를 하다 케이 라임의 전화를 받고 흥분했다. 옆에 이정수 사장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전기 씨, 무슨 전화길래 기분이 그리 업됐어요? 얼핏 들어보니 케이 어쩌고 하던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혼자 떠들었네요. 사실은 제가 취미로 작곡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케이 라임 씨에게 곡을 하나 보냈는데 그걸 들어보시고 자기가 불러보고 싶다고 내일 만나자고 하네요. 하핫…….”
“혹시 그 천만 미튜버 케이 라임?”
“네!”
“전기 씨가 작곡도 해요? 이거 깜짝 놀랐네요. 어떤 곡을 보냈길래 그 케이 라임이 직접 전화를 다 줬을까 궁금하네.”
“한번 들려드릴까요?”
강전기가 케이 라임에게 보냈던 음악을 이정수 대표에게도 들려주었다. 이정수는 이어폰으로 곡을 다 듣고 나서 강전기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이거 본인이 작곡한 거 맞아요?”
“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작곡을 하고 있구요. 이 곡은 제가 가장 최근에 만든 곡입니다.”
“곡 좋은데요? 엄청 트렌디하면서도 케이 라임이 딱 부르기 좋게 만들어진 곡이네요.”
‘아, 참! 그렇지 이 대표님도 나름 천재 작곡가 출신이신데…….’
이정수도 1세대 보이그룹 볼케이노의 히트곡 다수를 제작한 유명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다. 나이 먹고 한물갔다고 하지만 연륜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맞습니다. 제가 케이 라임을 떠올리면서 만든 곡이에요.”
“흐음… 그런데 노래의 난이도가 엄청나네.”
“케이 라임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정수 대표가 노래의 강렬한 여운에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노래가 진짜 엄청 좋아. 이건 아마추어 수준의 곡이 아냐. 진짜 실력자다. 혹시 포트폴리오가 있으면 들어보고 싶군. 이 곡이 뽀록인지 아니면 진짜 실력인지…….’
“전기 씨, 혹시 다른 곡 작곡한 것도 있나요? 제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넵, 제 사운드 클라우드에 꽤 많은 곡들이 있죠. 제가 최근에 만든 노래들을 들려드릴게요…….”
강전기는 이정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신이 나서 다른 곡들도 들려주었다. 케이 라임 노래를 만든 후 필받아서 만든 걸그룹 노래들이었다. 사실 그 곡들이 가장 자신 있기도 했다.
“우리 회사에는 걸그룹이 없는데…….”
그 곡들을 다 들어본 이정수 대표가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예? 그게 무슨…….”
“이거 걸그룹들 주려고 만든 노래 아니에요? 어떤 그룹인지 대충 이미지가 그려지네요.”
프로 방송인이 다 된 이정수였지만 역시 프로듀서는 프로듀서였다. 노래를 한 번만 듣고도 누구에게 어울리는지 바로 짚어냈다.
“와! 맞습니다, 대표님. 진짜 안목이 있으시네요.”
오랜 기간 혼자만 음악을 만들어오던 전기는 음악적인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하고 이야기하자 아주 신이 났다.
“지금 보니까 전기 씨는 배우가 아니라 작곡 쪽에 훨씬 더 큰 재능이 있는 것 같네요.”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런 말 듣는 거 처음이에요.”
“아니! 취미로 할 게 따로 있지. 이 정도 실력이면 프로로 데뷔해도 손색없을 지경입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뭐 하다가 나타난 거예요?”
이정수 대표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의 눈에는 이 젊은 작곡가가 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저렇게 번뜩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크흠……. 잠깐! 내 정신 좀 봐. 이럴 게 아니라 전기 씨를 우리 전속 작곡가로 계약하는 게 어떨까? 천재긴 한데 아직 실무적인 거나 테크닉들이 부족하니 내가 조금 알려줄 수도 있고…….’
“전기 씨, 혹시 리부트 엔터와 전속 작곡가 계약할래요?”
“네?! 전속 작곡가요? 제가요?”
“말만 전속 작곡가죠. 자유롭다고 보시면 돼요. 아무래도 작곡이나 프로듀싱은 내가 많이 해보기도 했고 나도 나름 우리나라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자니 쑥스럽네요.”
“아닙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 볼케이노 노래를 얼마나 불렀었는데요.”
‘어릴 때는 아니고 이십 대 중반쯤이었지. 강전기 나이로는 어렸을 때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요즘엔 저를 개그맨인 줄 아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말이죠.”
“제가 작곡가로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약하고 싶습니다, 대표님.”
솔직히 이런 계약은 함부로 섣불리 하면 안 되는 거지만 막내 누나의 지인이다 보니 그냥 믿고 계약할 마음을 굳혔다.
“고맙습니다, 전기 씨. 일단 우리 회사에서 전기 씨 곡을 받을 가수를 좀 골라봐야겠네요. 젊은 가수가 별로 없긴 한데… 나중에 아이돌도 만들고 해야 하니…….”
“써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리고 혹시 다른 회사 가수라도 곡을 주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건 알아서 해요. 그냥 나한테는 말만 하면 되고……. 방송 보면 알겠지만 우리 회사가 좀 자유롭습니다.”
“네!”
강전기와 이정수는 서로 기분 좋게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네… 대표님, 그런데 말을 놓으시는 게 어떠신가요. 제가 한참 어린데요.”
“음… 그럴까? 소라하고는 뭐 거의 오누이지간이라 계속 말을 높이려니 좀 이상하긴 하더라고. 하하하…….”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말을 놓는 걸 보니 은근히 말 높이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이런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이 이정수 대표의 매력이었다. 그러니 회사를 만들어서 친구와 동료들을 위해 거의 무료 봉사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전기야, 이런 좋은 곡들을 가지고 아무한테도 안 들려준 거야?”
“아뇨, 기획사 홈페이지에 메일로 몇 번 보내긴 했는데 연락 오는 곳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으잉?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식으로 홍보하니? 내가 있던 시절에도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안 들어줬을 거야. 운이 좋아도 앞에 한 10초 정도 듣다가 바로 휴지통 직행이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요즘에는 작곡가들을 위한 플랫폼도 있고 기획사와 연결해 주는 퍼블리셔들도 많이 생겨서 그런 걸 이용하지.”
“제가 아무런 생각이 없었네요. 하하…….”
사실 강전기가 음원을 기획사에 돌린 건 벌써 10년도 더 된 오래된 일이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뭐, 네가 그렇게 삽질해서 결국 우리 회사 품으로 오게 된 거지만 말이야…….”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나저나 내일 케이 라임 만나러 간다고?”
“네, 오후에 보기로 했어요.”
“아… 그 곡 너무 탐나긴 한데 어쩔 수 없겠네. 일단 내일 우리랑 계약 먼저 하고 여러 가지 사항을 좀 알려줄게. 케이 라임하고 이야기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대표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내일 오전에 사무실로 찾아와.”
막내 누나가 소개해 준 자리에서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겼다. 갑자기 케이 라임 전화를 받질 않나, 기획사 전속 작곡가 제의를 받질 않나. 오늘은 뭔가 일진이 좋은 날이었다. 강전기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나도 정식으로 데뷔하고 싶다!’
“그런데 배우는 진짜 관심 없고?”
“…….”
이정수 대표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직도 배우를 시켜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