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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호작, 추천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프로듀싱
강전기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회사로 출근한 뒤 녹음실에서 이정수 대표나 녹음실 엔지니어에게서 디렉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워낙 기억력과 머리 회전이 좋아지다 보니 관련 지식을 거의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이정수와 스튜디오 엔지니어는 입을 쩍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기야! 넌 무슨 음악 공부를 한 10년 이상 한 베테랑 같다? 고급 화성악까지 다 알고 있네? 코드나 악보도 완벽하게 볼 줄 알고 말이야. 독학한 아마추어들은 솔직히 그런 거 제대로 모르는 사람도 많거든.”
“그러게. 귀는 또 얼마나 예민한지. 들리는 음을 그냥 다 따버리네. 무슨 요즘 유행하는 소리만 듣고 악보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같다니까? 내가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건 그냥 장비 운영하는 테크닉뿐이었어.”
옆에서 기계를 만지고 있던 최민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최민호는 프리랜서 기사로 이정수 대표와 같은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친구였다. 일이 없으면 주로 리부트 엔터로 출근하며 녹음실 관리를 맡고 있었다.
“허어… 진정한 음악 천재가 여기 있었구만.”
“저 좀 그만 좀 띄우세요. 낯부끄럽습니다.”
“전기야, 민호 저놈 학창 시절에 나 같은 천재를 보고서도 인정하지 않던 놈이야. 그런 놈이 이런 말을 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난 맞다고 본다.”
“야… 넌 그냥 우연히 얻어걸린 거지. 그것도 1세대 보이그룹의 전설이었던 볼케이노로… 전기는 진짜 천재 맞아.”
“또또 질투한다. 넌 이제 질리지도 않냐? 마치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던 살리에리 딱 그 꼴 아니냐?”
“푸훗… 모차르트는 무슨? 야쿠르트라도 되면 다행이지.”
“내가 대한민국 K-POP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레전드야, 인마. 너만 인정 안 하겠지만…….”
“그런데 SSJ에서 독립하고 만든 아이돌 그룹들이 왜 줄줄이 망했을까?”
“그… 그건 내가 너무 애들을 편하게 해주는 바람에 사건이 연달아 터져서 그런 거고…….”
“어휴, 내가 너 아니었으면 벌써 집을 사고도 남았다. 내가 미쳤지. 괜히 투자해서…….”
둘은 무슨 원수라도 되는 듯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물론 뉘앙스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이제 대충 어떤 식으로 녹음이 진행되는지 알 것 같아요.”
“오우… 이제 우리 비밀 무기가 준비 완료되셨구만.”
“잠시만… 민호야, 우리 어떤 애들 음반 내주면 좋겠니? 전기의 첫 디렉팅으로 말이야.”
“지금 하던 방송 하나 빼곤 집에서 대기 중인 소울퀸즈 애들이 딱 적당하겠네.”
“게네들 지금 방송 딱 하나에 행사 위주로 돌고 있지?”
“맞아. 격주 정도로 레전드 명곡에 출연해서 경연 중인 거 말고는 가끔 들어오는 행사 뛰고 있지.”
“오케이. 그러면 1번 타자는 소울퀸즈다. 전기야, 너 소울퀸즈 알지?”
“…알긴 알죠.”
소울퀸즈.
리부트 엔터 소속 중견 5년 차 R&B 보컬 그룹이다. 보컬 실력은 명실상부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걸 알긴 아는데 정작 히트곡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그저 그런 불운한 그룹이었다.
중간에 소속사가 사기당해서 망하는 바람에 리부트 엔터가 중간에 영입했다. 그룹의 리더가 이정수 대표와 친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젠장! 회사에 걸그룹이 없다니…….’
거듭된 아이돌 제작 실패로 심지어 회사의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도 붕괴된 상태였다. 현재 회사의 주력은 발라드 솔로 가수나 요즘에는 한물간 정통 R&B 보컬 그룹 위주였고 그나마 기획사가 많이 가져가는 지분을 아끼려는 조연 배우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어 그쪽으로 이익이 나면서 회사가 근근이 굴러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배우 쪽에서 벌어서 가수 쪽의 손해를 메꾸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맘에 안 드냐? 표정이 안 좋네?”
“아니에요, 형. 처음 맡은 아티스트가 잘 모르는 그룹이라서 그랬어요.”
솔직히 말해서 전혀 관심 없던 그룹이었다. 평소에도 최근 음악 시장 트렌드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거의 안 듣고 패스해 버리곤 했다. 주로 빌보드 위주 팝송과 케이팝, 특히 걸그룹 위주로만 음악을 들었으니까.
심지어 소울퀸즈 멤버는 얼굴조차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줄 만한 곡이 있는지 집에 가서 한번 연구해 봐.”
“네, 형!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전기가 형이라고 부르니까 기분 좋다. 한 십 년은 젊어진 것 같네.”
이정수 대표가 껄껄 웃으며 녹음실을 나갔다. 그는 밤부터 새벽까지 녹화가 있다고 했다.
전기가 옆을 보니 피곤해 보이는 최민호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딱 봐도 하기 싫은 얼굴이네. 내가 너라도 그랬겠다. 사실 소울퀸즈가 하는 음악이 요즘 잘 안 듣는 장르잖아? 뭐, 그래도 게네들이 노래 하나는 끝내줘. 연습한다 생각하고 잘 좀 해봐. 인성도 그렇고 진짜 괜찮은 애들이야.”
“예… 알았어요, 형…….”
‘트렌드에 좀 안 맞으면 어떠냐. 예전을 생각해 봐. 혼자 벽보고 딸 치는 거랑 뭐가 달라?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곡도 수십 곡을 썼는데, 뭐. 이런 상황이면 감지덕지해도 모자라지.’
강전기는 마음을 추스르며 집에 돌아와 목욕재계하고 소울퀸즈의 대표곡을 데뷔곡부터 최근 곡까지 쭉 들어봤다.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R&B 곡들이 대표곡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스타일 알겠네.”
‘흠. 지금 듣기엔 고역이긴 한데 멤버들 하나하나가 다 성량이나 가창력은 끝내주네. 특히 메인 보컬인 리더 누나는 가창력이 최종 보스급이고 무늬만 래퍼인 멤버가 의외로 목소리가 좋은데?’
멤버들의 보컬과 얼굴을 매치시키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그래, 이분이 리더 겸 메인 보컬이시네. 이름은 김수진이고 재미 교포 출신에 나이가 30세, 어우… 얼굴 진짜 세 보인다. 리드 보컬 둘은 토종 한국인으로 강혜진 28세, 김영주 27세고… 막내는 스물다섯 살 한여름… 응?”
화면에는 막내인 한여름의 클로즈업 샷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면서 담담한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포지션이었는데 소울퀸즈에서는 나름 비주얼을 담당하는 멤버였다.
“오, 예쁘다. 겁나 시크하게 생겼어. 아! 눈에 화장을 일부러 빡세게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청순한 것 같기도 하고……. 크흠… 뜨겁고 메마른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는 법이구나. 내가 왜 이런 애를 몰랐지? 오케이… 됐다, 됐어. 촉이 온다, 촉이 와… 여름이 언니로 집중해서 곡 한번 만들어보자!”
꿩 대신 닭이라고, 걸그룹이 없다면 그 비슷한 인물을 생각하며 영감을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밤 한 시가 돼서야 곡의 비트와 멜로디 라인이 대략 나왔다. 의식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곡이었다. 미디엄 락 장르의 곡으로 강렬한 8비트 드럼 사운드와 신스 전자음을 절묘하게 섞었으면서 소울퀸즈의 소울풀하고 가창력 있는 보컬을 살릴 수 있는 곡이었다.
그런데 사심이 섞여서 그런지 몰라도 막내 파트에 분량의 40% 이상이 몰빵되어 있었다. 드럼이 고조되기 전까지 박수 소리와 함께 나직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과 랩 파트는 전부 여름의 몫이었고 리드 보컬들은 여름이 옆에서 중간중간 코러스를 넣어야 했다.
그 후 드럼 비트가 더 커지면서 폭발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재미 교포 출신 리더의 터지는 고음 부분이 있었다. (물론 리드 보컬 둘은 여전히 리더 옆에서 코러스를 넣어야 했지만…….)
더구나 2절 시작하자마자 쏟아지는 시크한 스타일의 랩이 곡의 분위기를 다시금 바꿔버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브리지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금 하이라이트 후렴구를 적절하게 배치했다. 이 곡의 킬링 파트는 팡팡 터지는 후렴구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초반부의 내레이션과 에지 있는 랩 파트도 한몫했다.
“으음… 케이 라임에게 준 곡에는 못 미치는 것 같지만 나름 괜찮은데?”
그가 생각하기에 꽤 만족할 만한 수준의 곡이 나온 것 같았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곡 자체가 ‘여름이와 아이들’ 수준으로 파트가 분배된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필대로 하는 거지. 그렇게 해야 임팩트가 있는 걸 어떻게 해.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다 평등할 순 없잖아. 될 놈 될이지. 아으으… 피곤해.”
강전기는 작업하던 파일을 회사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컴퓨터를 종료했다. 그리고 이정수 대표에게 소울퀸즈의 곡 데모를 만들어 클라우드에 저장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삼십 분쯤 후 이정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곡 잘 빠졌다. 바로 작사가 알아본다. 넌 좀 쉬어. 다 준비되면 연락할게.]
* * *
강의가 끝나고 학교 정문을 지나가다 동아리 동기인 찬영을 만났다.
“전기야, 오랜만이네? 요즘 동아리에 왜 안 나오는 거냐?”
“내가 요즘 바쁜 일이 좀 있었지. 한가해지면 다시 나갈 거야.”
“다미가 너 은근히 찾던 눈치던데 혹시 둘이 뭐 있냐?”
강전기가 뜨끔했지만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시치미를 뗐다.
“그런 거 아냐, 인마. 저번에 다쳤을 때 다리 마사지해 줬다고 고마운가 보지.”
“흐흐, 이 엉큼한 놈. 그래, 그렇다 치자. 왜 이렇게 바쁜 건데? 너 혹시 여친 생겼냐?”
“아냐, 인마. 미안하지만 아직 솔로다.”
“이상하네? 너 군대 가서 고자 됐냐? 예전엔 여자 겁나게 밝히더구만…….”
“어허…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나 이제 회개한 거 모르냐?”
“크크크… 넌 그냥 숨만 쉬어도 여자가 꼬이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내가 판타지물 마법사냐? 무슨 숨만 쉬어도 여자가 꼬여?”
“와꾸로 보면 마법사랑 동급이지, 뭐. 생긴 게 반칙이잖아. 내 여자 친구는 절대 너한테 안 보여준다. 알았냐?”
“미친놈, 나를 완전 쓰레기로 보네.”
“야… 내가 너랑 클럽에 가서 얼마나 놀았는데? 말을 말자. 이거야 원…….”
“그러는 너는 이제 여자 친구한테 정착했잖아. 너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돼?”
“야, 골프장 운영하는 집안 외동딸이다. 스크린 골프 말고 진짜 골프장.”
“호오… 예쁘냐?”
“알아서 뭐 하게? 너한테는 안 알려줌.”
“…….”
“조만간 동아리 총회 할 거니까 그때는 빠지면 안 된다. 알았지?”
“그래, 그때 보자. 나 이제 간다.”
동아리 동기인 찬영이와는 그동안 깊은 이야기를 안 했었는데 알고 보니 군대 가기 전 클럽을 자주 같이 다닌 사이였던 것이다. 둘은 모종의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친밀한 사이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다미가 나를 찾는 것 같다고? 하긴 요즘 정신없어서 좀 소원하긴 했다. 갑자기 강전기는 그녀와 보냈던 밤이 생각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땐 정말 죽을힘을 다해 참았었지. 타고난 것도 모자라 오랜 시간 발레로 단련된 가공함. 그녀를 당해내려면 강화를 좀 더 해야 한다.’
남자의 강함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는 강전기였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하나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조루’였다.
* * *
며칠 후, 지하철을 타고 강남 리부트 엔터 빌딩에 도착했다. 녹음실에 들어가 보니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형님들, 안녕하세요?”
“어이구야, 우리 비밀 병기님 오셨는가. 안 그래도 오전에 네가 만든 곡을 듣고 집에서 놀고 있던 소울퀸즈 애들 다 집합시켰다.”
이정수 대표와 최민호 엔지니어 말고 녹음실에 와있던 사람들이 바로 소울퀸즈 멤버들이었다.
“이분이 우리한테 곡을 주신 작곡가님 맞으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포스 있어 보이는 누님이 들어오는 강전기를 보고 말했다.
“수진이 누님, 안녕하세요. 일렉케이 강전기라고 합니다.”
“안녕… 반가워요!”
리더 김수진은 짧게 인사하더니 이정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건들며 귓속말했다.
“억…….”
“오빠, 작곡가를 데려오랬더니 무슨 배우 지망생을 데려왔어.”
“야, 힘이 무슨… 갈빗대 나갈 뻔했다. 진짜 쟤가 작곡한 거 맞다니까.”
“호호호… 그래? 어려 보여서 깜짝 놀랐네. 솔직히 그냥 EDM이면 이해하려고 했는데 진짜 미스터리네, 이거? 이렇게 굉장하고 복잡한 곡을 어떻게 만들었지? 최소한 음악 공부 엄청 오래 한 스타일인데?”
“거봐. 내가 천재랬잖아. 나랑 같은 과야.”
“천재는 개뿔… 오빠는 진즉에 한물갔지. 이제 작곡은 그만하시고 그냥 방송이나 꾸준히 하셔. 나이 잡수시고 입이 가벼워지니 점점 더 잘 터시던데…….”
“이게!! 어디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 길거리에 나앉을 뻔한 것들 데려다 씻기고 멕여줬더니…….”
“아, 시끄러 죽겠네. 그만 좀 해요. 둘은 왜 맨날 그러는 거야…….”
“작곡가님, 안녕하세요. 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어요. 저는 강혜진이고 얘는 김영주라고 해요. 저기 심각하게 앉아있는 애는 한여름이구요.”
“아… 다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울퀸즈는 녹음실에 진즉에 도착해서 아까부터 악보를 뽑고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뭔가 다들 들뜬 것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