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35화 (3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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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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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프로듀싱

“일렉케이 작곡가님, 유명 작사가님이 곡의 느낌대로 멜로디 라인에 가사를 붙여주셨어요. 물론 맘에 안 드시면 수정도 가능합니다.”

“아… 괜찮네요. 제목이 어그로성도 있는 거 같고…….”

셋째 김영주가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강혜진과 김영주는 뭔가 쉽게 기억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노래 실력이 아니라면 연예인이 되지 못했을 법한 외모였다.

‘이 둘은 그냥 관리받은 일반인 느낌이야. 그래도 폭탄은 아니니까 다행이지. 사실은 리더 누님이 더 못생기긴 했는데 뭐, 개성이 있으니까 훨씬 임팩트 있네.’

일반인치곤 괜찮은 편이었으나 요즘 하도 예쁜 애들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눈이 한껏 높아진 강전기였다.

이런 와중에도 그냥 악보만 뚫어져라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는 분이 바로 소울퀸즈의 막내이자 비주얼 센터 한여름이었다. 소울퀸즈의 비주얼 센터지만 2군 이상의 걸그룹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젠장! 아쉬운 대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간다.’

실물로 보면 훨씬 괜찮은데 화면발을 잘 받지 못하는 스타일 같았다.

‘흠… 이건 좀 안타까운데?’

몸매의 비율도 잘 잡혀있어서 그런지 나름 포스가 있었다.

“저기, 아직 악보만 보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네요.”

“아유… 저 화상. 야, 여름아. 작곡가님 오셨다. 한여름!!”

강혜진이 큰소리로 한여름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놀란 그녀가 어깨를 움찔 움츠렸다.

“어? 누구라고?”

“누구긴, 작곡가님 오셨다니까?”

“으잉? 저분이?”

“예… 접니다. 하하…….”

“배우 아니세요?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혹시 「왜 혼자 살고 있니?」라고 예능 프로 보신 적 있나요?”

“아앗! 그… 그 강소라 님 동생분!”

한여름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맞습니다. 잠깐 가족으로 나왔어요. 그걸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한여름, 너도 그거 봤냐?”

이정수가 한심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저 그 프로그램은 꼭 보거든요. 거기 작곡가님 나오신 거 봤어요.”

“나 때문에 본 거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대표 오빠가 덤으로 나오시는 거죠.”

“그래, 마! 알았다. 대표를 무슨 봉다리 핫바지로 아네. 다들 조용히 하고 가운데로 모여봐라.”

소울퀸즈 멤버들이 악보를 들고 소파 주위로 주섬주섬 모여들었다.

“작곡가님, 우리가 파트 배분을 했는데 한번 봐주세요.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작곡가님이 하시는 거니까요.”

“예… 같이 한번 훑어보시죠.”

“가사는 노래 분위기에 맞게 요즘 대세라는 걸크러시 스타일이네요. 예전에도 이런 거 안 한 건 아닌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좀 부담스럽긴 하네.”

소울퀸즈 리더 김수진이 악보를 펴놓고 강전기에게 가사의 내용과 파트 배분에 관해 설명했다. 약 3분간 리더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전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가사는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파트 배분은 예전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구나. 이대로 가면 100% 망한다. 내가 곡을 쓰면서 시뮬레이션했던 효과가 반도 안 나와.’

“어떠세요? 이 정도면 될 거 같은데요?”

스튜디오 엔지니어인 최민호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인 이정수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모양이었다. 타성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강전기가 리더의 물음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가사는 괜찮습니다만, 파트 배분은 제가 다시 하겠습니다.”

“네? 무슨 문제라도?”

“도입부는 한여름 씨부터 시작합니다. 옆에서 혜진 씨와 영주 씨가 코러스를 넣어주시고…….”

전기가 펜을 들어 악보에 파트를 다시 표시하기 시작했다. 표시를 마친 전기가 악보를 들어 소울퀸즈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파트는 이렇게 짤 겁니다.”

“…….”

“응? 진짜로?”

“내 개인 파트 어디 갔지?”

“전기야, 진짜 이렇게 갈 거야?”

“네, 이렇게 가야 합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그의 가공할 만한 두뇌 회전으로 수백 번 시뮬레이션한 결과에서 뽑아낸 것임을 알 리 없었기 때문에 멤버들과 이 대표가 그의 결정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 제 파트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파트가 많은 게 아니라 완전 ‘한여름과 아이들’ 수준이었다. 전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저랑 영주는 개인 파트는 거의 없고 병풍 수준 고음 셔틀이잖아요. 언니도 말 좀 해봐요. 후렴구 지르는 거 빼면 언니도 우리랑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

강혜진이 전기의 결정에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데뷔 5년 차다 보니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는 것 같았다. 리더 김수진은 강혜진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파트 배분은 프로듀서, 작곡가의 입김이 세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소울퀸즈로 활동한 5년간 이런 배분은 처음이었다.

최민호는 안 그래도 심한 다크서클이 쭈욱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딸내미 밥 줘야 하는데…….’

“자자… 혜진아, 목소리 낮춰라. 오랜만에 좋은 곡 받았는데 왜 그러니. 작곡가님한테 한번 차분히 물어보자.”

보다 못한 이정수 대표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조차도 이런 배분에 깜짝 놀란 듯했다.

“말로 설명하긴 힘듭니다. 그냥 곡으로 증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결정한 1차 파트대로 한번 레코딩해 보고 다음 제가 분배한 대로 2차로 진행해서 두 곡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 좋아요.”

“그렇게 하시죠.”

강혜진과 영주가 그런 강전기의 결정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리더 누나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요. 해보죠, 뭐. 이런 곡이 우리한테까지 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게 맞는 거니까!”

사이에 낀 막내 한여름만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여름 씨는 본인의 잠재력을 모르나 본데 내가 정체된 어빌을 포텐까지 쭉 올려줄게요. 흐흐…….’

강전기가 화장기 없는 한여름의 청순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에 따라 많이 바뀌는 이른바 밋밋하지만 단아한 청순가련형 얼굴이었다. 쌍꺼풀도 없었지만 마치 순백의 도화지 같은 느낌이었고 평소에 몸매 관리도 잘하고 있는지 탄탄한 것 같았다.

“자, 1차분 먼저 가겠습니다. 한 명씩 들어갈게요.”

최민호와 강전기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았고 이정수 대표가 그 뒤에 섰다. 멤버들이 하나둘씩 들어가서 녹음을 시작했다.

약 두 시간을 들여 1차 녹음을 완료했다. 역시 5년 차 베테랑들이라 그런지 여러 번 녹음할 필요가 없었다. 녹음이 끝나자마자 최민호가 믹싱 작업을 시작했다. 마스터링 작업으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줬다.

“다 됐는데 한번 들어보시죠.”

스피커에서 1차 녹음분이 흘러나왔다. 강렬한 8비트 드럼과 베이스가 고막을 강타했다.

“와우…….”

“곡 진짜 잘 빠졌다. 그치?”

멤버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결과물에 대해 나름 만족하는 것 같았다.

“잠시 30분만 쉬었다가 2차 녹음 들어갈게요.”

“어우… 오줌보 터지겠다. 요 앞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오자.”

“언니, 저는 그냥 여기 있을게요.”

“그래, 여름아… 쉬고 있어.”

“민호야, 우린 담배나 한 대 태우러 나가자.”

결국 녹음실에 강전기와 한여름만 남게 되었다.

일행이 다 나가자 전기가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아있던 여름에게 말을 건넸다.

“여름 씨, 제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궁금하시죠?”

“네… 아까 좀 민망했어요. 언니들 얼굴 보기도 좀 그렇고요.”

저기요. 소울퀸즈에서 솔직히 여름 씨밖에 안 보여요. 당신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라 그렇다니까요, 라고 진실을 밝힐 순 없는 노릇. 적당한 스토리를 지어낼 필요가 있었다.

“흐음… 그랬겠죠. 소울퀸즈는 멤버들 사이도 좋은 것 같고 노래도 훌륭한 괜찮은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딱 그것뿐입니다. 특색이 없고 흐름에서 벗어나 있어요.”

“예?”

한여름의 표정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바로 앞에서 새파랗게 어린 작곡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보컬도 좀 구식입니다. 방금 녹음한 1차분을 들어보셨겠지만 100위권 차트에는 뭐 어떻게든 진입은 하겠죠. 그동안 깔아놓은 게 있으니……. 그런데 상위권은 힘들 거예요.”

“그… 그래도 혹시 잘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게 5년째 계속하신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잖아요? 스케줄도 별로 없으시다고.”

한여름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전기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쯤 해서 칭찬도 들어가 줘야겠지.’

“안 좋은 말만 해서 죄송합니다.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여름 씨의 잠재력을 믿고 있습니다. 5년간은 언니들에게 이끌려 왔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여름 씨가 소울퀸즈를 이끌어야 할 겁니다.”

“그… 그게 무슨…….”

그녀가 전기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이 자신감 없는 아가씨를 변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세뇌도 좀 필요하겠네. 그런데 이 어설픈 연기가 먹힐까나?’

강전기는 의도적으로 두 손을 깍지를 끼고 아래턱을 괴었다. 마치 「에반게리온」 주인공 신지의 아버지인 네르프 총사령관 이카리 겐도처럼 말이다.

“단언할 수 있어요. 여름 씨는 솔로로 나온다고 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언니들 멱살을 잡고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녀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싶었지만 이런 멋진 곡을 쓴 작곡가가 완전히 확신에 차서 자신을 칭찬하자 가슴이 심하게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제… 제가 진짜로 그 정도란 말인가요?”

‘넘어오고 있구만. 후후후… 살짝 양념을 더 쳐볼까나?’

“여름 씨 목소리는 진짜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이상적인 소리입니다. 몇 년 전에 부른 「우리 지금」이라는 노래에서 했던 스타일로 제가 표시한 부분을 해보세요. 한 가지 더 팁을 드린다면 정박이 아니라 엇박자입니다. 지금 톤으로 박자를 조금씩 밀어서 해보세요.”

“네…….”

‘뭐, 구라를 좀 많이 섞었지만 여름 씨 목소리는 진짜다. 톤도 좋고 딕션도 진짜 깔끔해서 귀에 팍팍 꽂히고 소울풍의 노래를 오래 해서 그런지 랩 하는 스타일조차 개성이 강해. 잘하면 독보적인 래퍼 겸 보컬이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재능을 썩히다니 답답해서 내가 아예 판을 다시 짠다. 다른 멤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살길이 보이는데 괜히 무덤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없지. 그룹이 잘되면 돈도 잘 벌리고 방송도 더 나올 수 있어서 계속 선순환이 나올 거야.’

20년 차 걸그룹 좆문가 강전기의 냉철한 진단이었다.

맞은편에서는 한여름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강전기의 칭찬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타고나기를 약간 내성적이어서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강전기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기와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강전기는 추가로 노래 부를 때의 주의 사항을 한여름에게 조목조목 말해주었다.

이윽고 일행이 전부 휴식을 마치고 녹음실로 들어왔다.

“2차로 부르는 순서는 나이 순서대로입니다. 파트는 제가 표시한 대로고요.”

“아이참… 작곡가님, 나 나이 많다고 괄시하는 거야?”

“장유유서라고 모르십니까?”

“하하… 나 사자성어 약한 거 알고 놀리는 거지?”

곡이 잘 뽑혀서 그런지 재미 교포 출신 김수진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자자, 얼른 녹음하고 끝냅시다.”

엔지니어 최민호가 진한 다크서클을 비비며 소울퀸즈 멤버들을 독촉했다.

리더를 포함한 세 명의 녹음은 기존보다 분량이 짧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끝났다.

“여름 씨, 준비되셨나요?”

녹음 부스 안에 있던 한여름에게 OK 사인이 나왔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강전기가 짚어줬던 부분을 곰곰이 생각했다.

“자, 들어갑니다. 긴장 푸시고…….”

심장을 울리는 듯한 드럼 소리와 박수 소리가 녹음실에 울려 퍼졌다.

눈을 감고 있던 한여름의 입에서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시작됐다.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누가 들어도 귀에 팍팍 꽂히는 보컬이었다.

여덟 마디가 흐르자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소울퀸즈 멤버들이 일제히 소파에서 등을 떼고 자세를 고쳐 잡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이정수 대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됐다. 이거야! 와… 대박이다. 이거 생각보다 완벽하게 각성 상태로 들어갔는걸? 어떻게 이런 잠재력을 숨기고 있었지? 진짜 셀프 억제기의 봉인이 풀렸구나.’

리부트 엔터 녹음실에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한여름의 진정한 포텐이 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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