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38화 (3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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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한여름을 프로듀스

강전기는 오전에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상당히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 조금 있으니 같은 과 동기인 성기호가 전기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쩐 일이야. 일찍 왔네?”

“그러게. 오늘따라 길이 뻥뻥 뚫리더라.”

“응? 너 자가용 몰고 다니냐?”

“어, 너 몰랐냐? 우리 애들 따라서 전국을 누비려면 애마는 필수지. 준중형 중고로 공익 끝나자마자 샀다.”

“너도 참 지극 정성이다. 걸그룹 따라다니는 게 진짜 재밌나 보다?”

“당연하지. 너도 같이 해볼래?”

“미쳤냐? 내가 그걸 왜 해?”

성기호가 안경을 손가락으로 쓱 들어 올리며 강전기의 와꾸를 스캔했다. 옷을 새로 샀는지 스타일이 아주 모델 귀싸대기를 날리는 수준이었다. 아영이가 코디해 준 옷을 무리해서 입고 온 전기였다. 기호가 그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가 그러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

‘뭐, 사실 나도 심심하면 따라가 보고 싶긴 한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바쁘단 말이야?’

“그나저나 저번에 내가 이야기한 거 어떻게 안 될까?”

“뭐, 네 미튜브? 안 된다니까 그러네. 이 새끼 이거 미튜브 민폐충이네.”

“알았어, 알았어. 그냥 해본 말이야. 그럼 너라도 ‘걸그룹 대담’이라는 코너에 좀 나올 수 있겠냐? 내가 일반인하고 이야기해 본 사람 중에는 네가 가장 식견이 뛰어나더라.”

“야, 안 그래도 누나 때문에 얼굴 팔려서 죽겠는데 거길 내가 왜 나가.”

“정 그렇다면 모자랑 마스크를 쓰든지 하면 되지.”

“마스크……?”

‘약간 솔깃한데, 이거?’

기호의 미튜브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은데 그중에서 걸그룹 대담이라는 코너에서 걸그룹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다 보면 뭔가 안 맞는 내용이 많아 항상 댓글로 패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까지 댓글로 참전한 경우도 있었다.

“흠… 약간 관심이 가긴 하는데 요즘 내가 좀 바빠서.”

“뭐 하는데? 너 수업 끝나면 동아리에서 죽치고 있다며?”

“아냐, 요즘 일이 생겨서 바빠.”

“뭔데 그래? 나 좀 알자.”

성기호가 흥미로운 눈으로 강전기를 보며 미소를 씩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괜스레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요즘 가수한테 곡을 줘서 녹음하고 있거든.”

“응? 그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성기호가 미소를 지우며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야. 내가 취미로 작곡하다가 우연히 기획사 전속 작곡가로 들어갔거든. 저번 주에 곡이 잘 뽑혀서 한 곡 녹음했지.”

“설마… 정말이야?”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아니… 속고만 살았나? 노래라도 들려줘?”

“그래! 한번 들어보자.”

강전기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에어팟을 기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스마트폰 플레이 리스트에서 따끈따끈하게 완성된 그의 신곡 「쿨한 여자」를 터치했다. 무선 이어폰으로 그의 곡이 흘러나오자 성기호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이게 네가 작곡한 곡이라고?”

“그래, 들어본 소감이 어떠냐?”

“이 사람들 소울퀸즈 맞지?”

“역시 성덕후 맞고만. 한 번에 딱 맞히네.”

“혹시 처음부터 계속 나오는 사람이 내가 아는 한여름 맞냐?”

“어, 그렇지. 하여간 너는 좀 얼굴이 예쁘다 싶으면 다 아는구나?”

“그렇구나. 그런데 곡이 미쳤는데? 소울퀸즈가 부르긴 진짜 아까운 노래다.”

“아니, 이 새끼 이거 어이없네. 소울퀸즈가 어때서? 내가 같이 녹음해 보니까 노래 실력 장난 없더라. 네임 밸류가 좀 딸려서 그렇지.”

“야! 내 말이 그 말이야. 네임드. 이 곡을 걸그룹 1티어인 네임드로즈가 부른다면 미튜브 1억 조회 수는 그냥 찍을 것 같은데…….”

“걔들은 거의 1억은 무조건 찍고 세계적으로 노는 애들이잖아. 그리고 소속사에 전속 팀까지 있을 건데 내 곡을 왜 부르겠어?”

“그런가? 아무튼, 진짜로 네가 작곡했다고? 대박이네.”

“의심 좀 그만해라. 어떠냐? 잘될 거 같으냐?”

“흠… 가수 디스카운트를 고려해도 차트 중위권은 노려볼 만하겠는데? 콘셉트나 무대 안무 좀 잘하면 상위권도 가능할 것 같고……. 소울퀸즈가 노래 실력으로는 차트 하위권에 자주 진입했었지 아마?”

“참… 뭣도 모르는 게 소울퀸즈 무시하네. 다른 건 몰라도 한여름 씨는 진짜 장난 아냐, 인마.”

“그… 그건 나도 조금 놀랐다. 그런데 요즘 노래 잘하는 건 기본 아니냐? 가수들이 노래 못해서 못 뜨는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전문가 선생.”

“뭐, 심지어 좋은 곡을 들고도 차트에서 광탈하는 경우도 많지.”

“바로 그거야. 뭐가 관건이겠냐?”

“야! 설명충이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그냥 말해. 너 혹시 소속사라고 말하고 싶냐?”

“딩동댕…….”

“그건 알긴 아는데 별수 있냐. 리부트 엔터가 3대 기획사도 아니고…….”

“잘 알면서 그래. 3대 기획사는 신인들이 나와도 사람들이 알아서 주의 깊게 보잖아. 그게 바로 소속사의 기존 가수들이 거느리고 있는 팬덤의 힘이다, 이 말이야. 그런데 듣보잡들은?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없어. 솔직히 소울퀸즈도 이정수 대표 인맥으로 큰 가수잖아. 여기저기 방송 출연하면서 말이야. 안 그래?”

“그렇긴 하지.”

“그럼 끝난 거네. 위로 가기는 진짜 힘들다고. 요즘은 음원 조작까지 횡행해서 더 힘들고…….”

“아까는 콘셉트랑 안무 같은 기획을 잘하면 가능성 있다며?”

“리부트 엔터에 그런 거 하는 부서라도 있냐?”

성기호가 강전기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받은 강전기가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냥 다들 알아서 하는 거 같던데. 대표님이랑 가수들이…….”

“거봐. 그쯤 되면 그냥 운에 맡기는 거지. 그런 거 안 하고도 순전히 노래만 좋아서 터지는 거면 하늘이 도왔다고 봐야지.”

“아… 뼈 때리니까 겁나게 아프네. 교수님 오셨다. 이따가 밥 먹으면서 더 이야기해 보자.”

강전기는 성기호의 말을 듣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말이 전적으로 맞기보다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난 후 기호와 함께 조용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점심은 내가 산다. 먹고 싶은 거 먹어라.”

“남자끼리 오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네가 사준다고 하니 잘 먹을게.”

“아까 소울퀸즈 이야기한 거 말이야. 그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성기호가 스파게티를 입에 넣다가 왜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전기를 쳐다봤다.

“내가 오늘 오후에 커플링 곡을 추가로 녹음하러 가거든? 시간 좀 되냐?”

“내가 가서 뭐 하게. 아까 해준 말 다시 하라고?”

“아니, 그건 아니고 한번 분위기 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말 좀 해달라고. 혹시 아냐? 대표님이나 소울퀸즈 멤버 인터뷰 딸 수 있을지?”

그는 뭔가 탐탁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소울퀸즈는 걸그룹이라고 부르기 모호한데… 그냥 보컬 그룹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채널 구독자들이 별 관심이 없을 거란 말이야.”

“야… 멤버들이 20대 여자고 그룹인데 걸그룹이라고 해도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세세히 따지고 그래.”

“한 명은 30대 아니냐? 연예인은 만 나이니까 실제는 서른한 살이고…….”

“어찌 됐든 간에! 너 오늘 잔말 말고 따라와. 혹시 아냐? 리부트에서 대박 칠 걸그룹이 나올지?”

“풋… 아… 쏘리. 비웃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나도 모르게 그만… 일단 알았어.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긴 해.”

“그래, 좋았어. 어디 도망가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라.”

“알았어. 그런데 전기야, 진짜 그 곡을 네가 만든 게 맞는 거니?”

“아직도 그 얘기야? 못 믿겠으면 조금 이따가 보면 될 거 아냐?”

강전기는 오후 수업이 끝나고 성기호 차를 타고 강남으로 넘어가 리부트 엔터 빌딩에 도착했다. 성기호는 중고차를 주차하고 자신의 촬영 장비를 들었다.

“오우… 여기가 리부트 엔터냐? 의외로 강남 한복판에 있는 빌딩이네?”

‘차가 있으니 진짜 편하네. 이동하는 데 시간이 팍 주는데?’

“그런데 너 무슨 운전병 출신이냐? 운전 진짜 잘한다. 안 막히는 길도 잘 알고…….”

“무슨 운전병씩이나? 나 공익이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걸그룹을 쫓아다닌 지 몇 년째냐? 이 정도는 해야 남들보다 좋은 영상이랑 A급 사진을 찍는다.”

“쯧쯧… 결국 그거였구만. 잔말 말고 조용히 따라와.”

“안녕하세요, 형님들…….”

“어… 전기 왔니? 근데 뒤에는 누구시니?”

“제 학교 친구입니다. 녹음하는 거 구경하러 왔어요. 야! 인사드려. 대표님은 당연히 알겠지? 그리고 여기 앉아계시는 분은 녹음실 엔지니어셔.”

“안녕하십니까? 성기호입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 구경 잘하고… 우리 작곡가님의 특별한 부탁이 아니면 절대 못 들어오는 곳이거든. 무슨 얘기인지 알지?”

“넵, 알겠습니다!”

“그래… 목소리만 큰 게 아니라 에너지가 넘치는구만.”

“저기 구석 의자에 앉아있어.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있어.”

“전기야, 나 이거 영상으로 좀 남겨도 되니?”

“정수 형, 제 친구가 이거 좀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는데요? 얘가 보기엔 이래 보여도 나름 12만 구독자 미튜버거든요.”

“아… 그래라. 근데 곡 발표되기 전에 영상 풀면 안 된다.”

이정수가 조건을 걸며 쿨하게 촬영을 허락했다.

이윽고 소울퀸즈가 녹음실에 도착했다. 성기호가 녹음실로 걸어 들어오는 한여름의 실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실물 깡패네. 웬만한 걸그룹에 들어가도 될 거 같은데? 화면발 지지리 못 받는 스타일이구나.’

그는 나머지 소울퀸즈 멤버들과 인사까지 나누었다.

“오빠, 우리도 이제 제작할 때부터 마케팅하는 거예요? 미튜브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응?”

“와, 우리 대표님 이제 좀 마케팅에 눈을 뜨셨네요? 요즘은 다들 이렇게 홍보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디 컨설팅이라도 받고 오셨어요?”

“맞아,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구식으로 홍보했던 거 같아. 회사에 다 옛날 사람들만 있어서 그래.”

“끄응… 자자… 오늘 우리 일렉케이 작곡가님께서 컴백 싱글에 들어갈 커플링 곡을 하나 더 만들어왔으니까 얼른 녹음하고 고기나 먹으러 갑시다.”

“아싸… 안 그래도 소고기가 당기더라니…….”

“다들 새로운 곡은 다 들어봤겠지? 토요일 날 문자로 넣어줬는데…….”

“들어봤는데요. 이번 곡도 거의 여름이 파트 위주던 데요?”

“커플링 곡인데 그냥 적당히 나눠서 하면 안 되나? 타이틀곡도 아니고…….”

강혜진과 김영주가 곧바로 불만을 표출했다. 지난주에 한여름이 우는 모습을 보고 껴안아주긴 했지만, 커플링 곡까지 막내 위주로 편성되자 다시 한번 불만이 생긴 모양이었다.

“얘들아… 커플링 곡인데 이거 방송에서 얼마나 부르겠냐? 그냥 후딱 녹음하고 나가자.”

뜻밖에 리더 수진이 동생들을 달래면서 강전기에게 윙크를 살짝 날렸다. 그 모습을 본 전기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 누나 역시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드디어 녹음이 시작되었고 소울퀸즈 멤버들은 각자 파트를 몇 번씩 불러서 금세 마칠 수 있었다.

반면 곡의 60~70%를 차지하는 한여름은 계속 다시 부르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금방 끝날 거로 생각하던 최민호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왜? 별로야?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계속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요. 이게 상처를 입은 남자를 받아들이면서 힐링해 주겠다는 곡이라 약간 슬프면서 애처롭고 마지막에는 희망적인 느낌으로 담아야 하는데 노래에 감정이 실리질 않아요.”

“끙… 복잡하구만.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좀 쉬었다 하지? 물도 뺄 겸…….”

“그러시죠. 조금 쉬었다 합시다. 그리고 여름 씨, 옆방에서 저 좀 보시죠.”

‘오우! 강전기… 진짜 프로 같은데? 녹음하는 거 보니까 진짜 프로듀서 같네.’

성기호는 무슨 대기업 부장님이 신입 사원을 따로 불러 야단치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 둘은 옆방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여름 씨, 잘하고 있는데요. 이 곡은 이 부분에서는 조금 슬픈 감정을 넣어야 해요. 그리고…….”

“그… 그게 무슨…….”

강전기가 동그라미 친 부분을 강조하며 설명할수록 머리가 새하얘지는 여름이었다. 압박감으로 정신이 멍해지자 한여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잘 모르겠어요, 작곡가님.”

“예?”

“그 미묘한 느낌을 잘 모르겠다고요.”

“…….”

텅 빈 회의실에 적막감이 맴돌았다. 한여름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느낌이요?”

“네…….”

강전기는 뭔지 모를 위화감에 빠진 것 같았다. 그가 이마를 짚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여름 씨, 상당히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는데요.”

“……?”

“혹시 남자 사귀어본 적 없으세요?”

그 순간, 한여름의 얼굴이 마치 홍당무처럼 빨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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