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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안어울리게 분위기 좀 내봤습니다.
항상 선작, 댓글, 추천 감사드립니다.
쿠폰 후원 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었다.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꼭 12월 31일인 것 같았다. 오늘이 아야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일본행 오전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공항으로 그녀를 마중 나온 강전기였다. 그는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케이 짱, 억지로 웃고 있을 필요 없어. 난 슬픈걸.”
“아야카, 한국하고 일본이 무슨 38선, 북한과 군사경계선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마지막 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
아야카는 케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톱스타라는 자신의 위치와 마치 벼르고 있는 듯한 살인적인 스케줄. 그리고 자신과 얽혀있는 거대한 이권. 그녀는 이곳을 떠나면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을지 전혀 가늠치 못하고 있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이곳에서의 추억은 소중하게 가슴속에 간직할 거야.”
“가슴속에?”
아아캬가 픽 웃으며 냥냥 펀치로 강전기의 가슴팍을 가볍게 때렸다.
“킥… 바보 같아. 지금 농담할 타이밍이 아닌데 왜 웃음이 나지?”
강전기는 씁쓸하게 웃고 있는 아야카를 보고 그녀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은 본인이 이야기하기 전까지 물어볼 필요가 없지.’
“곤란하면 말 안 해도 돼. 난 언제나 아야카 편이라고.”
“케이…….”
강전기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아야카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
“아야카, 내가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
“뭔데?”
“하루라도 진정한 사랑을 했다면 인생을 산 거라는 거야.”
“하루라도 진정한 사랑을 했다면 인생을 산 거다?”
“그래.”
“정말 그런 것 같아. 며칠간 내 인생을 산 것 같아. 후회 없을 정도로…….”
아야카는 강전기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사실 카사노바가 한 말인데… 정말 그는 대단한 현자였어. 닮고 싶은 정말 존경하는 분. 수많은 여자와 사랑했지만 모든 여자가 그를 사랑했었지. 하루를 사귀더라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거야.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엔 이르지 못했지만 노력해야지. 홍익미녀. 세상의 모든 미녀를 널리 이롭게 하라.’
강전기는 개똥철학에 심취하며 뇌이징을 하고 있었다.
“혹시 한국에 오면 연락해.”
“그래…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나 이제 가봐야 해. 사촌 언니가 기다리네.”
“자,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자.”
아아캬는 미소를 지으며 강전기의 품에 쏙 안겼다.
‘건강해. 그리고 고마워.’
“비행기에서 꿀잠 잘 것 같아.”
그녀는 어제 한숨도 자지 않고 관계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말없이 웃었다.
* * *
다음 날 강전기는 아야카를 떠나보낸 뒤 현자 타임과 같은 형태의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는 어디 피아노 앞에서 작곡이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지라 아침 일찍 리만 스쿨로 향했다. 그는 건물에 들어서며 수속 절차를 마쳤다.
리만 스쿨(BMI Leehman Engel Musical Theatre Workshop)은 뮤지컬에서 떠오르는 신인 작곡가와 작사가를 훈련시켜서 뮤지션을 양성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곡으로 계약까지 하는 상당히 효율적이고 실제적인 저작권 협회의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상당히 유명한 뮤지컬이나 영화 주제곡이 이 프로그램을 수행한 작곡가들에게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는 피아노가 있는 빈 강의실에 들어갔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공허함과 아쉬움, 헤어짐에 대한 감정을 멜로디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전기는 자리에 앉아 차분히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미 지하철에서부터 머리가 멜로디 선율로 꽉 차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연주하는 데 거칠 게 없었다. 듣는 이의 심장을 후벼 파는 장장 10여 분간의 피아노 연주곡이 빈 강의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연주를 마친 뒤 조용히 눈을 감고 여운을 느끼고 있었는데 뒤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브라보…….”
강전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멕시칸계로 보이는 푸근한 남자가 조용히 박수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푸근한 곰돌이 같은 얼굴에 심하게 내려온 다크서클… 흡사 한국의 최민호 엔지니어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자작곡인가요?”
“맞아요. 여기 오다가 만들었습니다.”
“대단하군요. 노래만 들어봐도 이미 완성된 프로 작곡가인 거 같은데 여긴 어쩐 일이죠?”
‘이 아저씨 듣는 귀가 좀 있구만? 내 실력을 바로 파악해 버리다니…….’
“아… 저는 정식 참가자는 아니고 초대돼서 한국에서 오게 된 일렉케이라고 합니다.”
“오… 반가워요. 조지 로페즈입니다.”
‘조지? 이름이 좀 거시기하군.’
“당신이 브랜든이 초청했다는 한국의 젊은 작곡가군요.”
“어? 브랜든요?”
“그래요. 안 그래도 브랜든이 하도 칭찬하길래 당신이 만든 곡을 들어봤어요. 비록 한 곡이긴 하지만요. 케이 라임의 노래였는데 정말로 뮤지컬적인 요소가 곳곳에 있는 곡이더군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겼어요. 노래만 들었을 때는 작곡가가 나이를 꽤 먹었을 것 같았는데 이거 어떤 의미로 충격이군요.”
‘내가 충격이다. 노래만 들어도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당신의 생각이 맞아. 원래 나이는 해가 지났으니 서른일곱 살이라고…….’
“칭찬 고맙습니다.”
“여기에서는 뭘 배울 생각은 하지 말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인맥을 쌓도록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솔직히 긴가민가했지만 아까 연주곡을 들으니까 감이 왔어요. 당신은 제가 가르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흠… 그건 맞지만… 너무 건방지면 보기 안 좋지.’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가르침을 주세요.”
친구는 없었지만, 공무원으로 20년간을 구른 강전기였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주는 발언을 했다.
“당신이 연주한 곡을 조금 다듬으면 바로 영화 사운드 트랙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아… 최근에 제가 영화 OST를 총감독하고 있는데 이별에 대한 노래가 마땅치 않아서 고민 중이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이곳에 와서 딱 맞는 곡을 들은 것 같네요. 혹시 저랑 계약하실까요?”
“으음… 갑자기 이런 제안을 들으니 조금 정신이 없네요. 댁이 누군지도 모르고… 물론 여기 강사로 계신 거 같긴 한데…….”
“크흠… 뭐 제 자랑이라 쑥스럽긴 한데 업계에서 나름 꽤 유명한 사람입니다만?”
강전기는 나중에 그 사람 이름을 검색하고 그가 엄청난 히트곡 메이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 학생들을 가르칠 프로 작곡가인 그가 멘토로 워크숍에 참석한 유명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카데미상(영화 부문)과 토니상(뮤지컬 부문)을 모두 수상했으며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써머 캐슬」의 슈퍼 메가 히트곡을 작곡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살짝 건방을 떨고 있는 강전기였다.
“아… 그래요? 그럼 그러죠, 뭐… 어차피 정식으로 만든 곡도 아닌데요. 그냥 제 머릿속에만 존재할 뻔한 곡입니다. 가져다 쓰세요.”
강전기는 무슨 거지 적선하는 것처럼 가져다 쓰라고 말했다.
“후후… 일렉케이 씨는 저작권 개념이 좀 희박한 것 같군요. 이렇게 덜컥 가져다 쓰라고 말하다니… 작곡은 됐고 저작권 교육이나 좀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넘긴 곡의 저작권료가 100억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자유의 여신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거예요. 하핫…….”
“흐흐… 100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저작권 사기라… 저한테 사기 치다가 맞아 죽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실수 같은 거겠죠?”
강전기는 어깨를 쫙 펴고 조지를 보며 손가락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재비츠 센터에서 범인을 두드려 팰 때 나오는 야수의 향기가 그의 겨드랑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크윽… 뭐지, 이 위압감은… 마치 내가 먹잇감이 된 그런…….’
“긴장 푸시고… 자… 진지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강전기는 조지의 어깨에서 먼지를 툭툭 터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들은 사무실로 들어가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아까 그 곡이 연주곡이라 보컬이 가능한 곡으로 바꿀 겁니다. 연주곡에 노래를 입히면 의외로 안 좋은 경우가 많죠.”
“맞아요. 아까 제가 연주한 것도 비슷합니다. 약간 바꿔야죠. 멜로디를 보컬로 바꿔야 하니까요.”
“잘 아시는군요. 제가 가사를 보내드릴 테니 그거에 맞춰 보컬 곡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여성이 이별할 때 느끼는 절절함을 표현한 곡이죠.”
“아…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요. 제가 어제 겪은 일이거든요.”
“오우… 그거 잘됐군요. 아니, 케이 씨한테는 안된 일인가요? 뭐, 어쨌건 케이 씨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조지가 위로의 눈빛을 보내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가사는 제 메일이나 폰으로 보내주세요. 변환하는 것은 하루면 될 겁니다.”
“좋습니다. 빠르군요. 계약은 이 정도로 하면 됐고… 혹시 아침 식사 하셨나요? 혹시 드실?”
“좋죠. 안 그래도 아침이 땡기네요.”
“제가 잘 아는 근처 식당이 있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내주죠…….”
‘개꿀이야… 나중에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한번 찾아봐야겠어.’
그렇게 강전기는 리만 스쿨 첫날부터 든든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덤으로 급조한 노래를 영화 OST에 한 곡 슬쩍 밀어 넣고 말이다.
‘뭐,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할리우드 영화 OST에도 한 곡 넣었다고 이력서에 딱 들어가면 진짜 보기 좋잖아.’
졸지에 영화에 곡을 넣게 된 강전기였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 여긴 이런 곳이었다. 결과물만 좋다면 상업적으로 바로 연결되는 곳이었으니까.
조지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는 참석한 젊은 작곡가들을 보고 이게 현실인지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이 젊은 작곡가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강전기가 제일 어린 축에 속했고 외모만 보면 아줌마와 아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패션도 참으로 소소했다. 대부분 남자는 청바지에 폴로 티셔츠를 무슨 교복처럼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아주 몸매가 푸짐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뭐 시골 교회에 예배 보러 온 것 같은 분위기네. 뉴욕 맞아?’
강전기는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고 기본적인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코털이 삐죽 튀어나온 백인 아재 한 명과 짝이 되어 협업하기 시작했다.
“반갑네. 휴이라고 하지. 난 뮤지컬 작사가라네. 특히 어린이 뮤지컬을 주로 하고 있지.”
“일렉케이입니다. 작곡가 겸 작사가입니다. 하지만 영어가 좀 부족해서 작곡만 하려고 합니다.”
“이번 워크숍 마지막에 10분짜리 파이널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어린이 뮤지컬을 하는 게 어떤가?”
“네… 뭐… 마음대로…….”
강전기는 솔직히 말해서 이미 강의나 워크숍 같은 것에 흥미가 싹 없어지고 말았다. 뭔가 뉴욕의 세련된 젊은이들과 술도 먹고 음악에 관해 토론도 하고 교류하는 상상을 했는데 졸지에 동네 성인 가요 반 수강생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고 말았다.
‘큭… 이 휴이라는 아저씨 콧구멍에서 삐져나온 털 때문에 신경 쓰여 미치겠어.’
그가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쪽 귀로 그대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강전기의 시선은 계속 휴이의 코에 고정되어 있었다.
“혹시 BMI에 제출한 곡이 있나? 자네의 스타일을 알아야 가사 붙이는 것도 수월하거든.”
강전기는 고개를 파파박 흔들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자신이 제출한 세 곡인 업템포, 코미디송, 발라드를 연달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만 보자. 그만 보자. 콧구멍 털 그만 보자.’
그렇게 노래 세 곡이 끝나자 그야말로 벙찐 표정이 된 휴이가 강전기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와우… 이… 이건…….”
휴이는 강전기의 곡에 감동하였는지 눈가가 촉촉해져 큰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어… 아재요! 감동 먹지 마쇼. 콧구멍 벌렁거리잖아요.’
하지만 전기는 같이 협업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외모만 그럴 뿐 뮤지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심드렁했던 강전기조차 그의 열정에 전염돼서 꽤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다.
“세 번째 곡은 너무 축축 처져서 어린이용 뮤지컬에 안 어울려. 첫 번째 업템포와 코미디송을 활용해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 좋겠는데?”
“그럼 뮤지컬은 어떤 내용으로 하려고요?”
“흐흐… 자세히는 생각 안 했는데 어린이와 개의 우정에 대해 곡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야. 뭐, 오래된 클리셰 같은 거지.”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어요. 다 돈이 되니까 그러는 거죠.”
“와우, 그렇지… 자네 나랑 잘 통하겠어. 대부분 이런 이야기 하면 속물이라고 욕먹는데…….”
휴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책상을 신나게 두드렸다.
‘이 양반아, 내가 대중가요로 1위를 한 작곡가야. 그것도 최첨단을 달리는 케이팝 신에서 말이지. 흥행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 이런 스토리 어때요?”
강전기가 휴이의 얼굴을 보며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