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139화 (13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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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극혐 듀오인 성기호와 레이카를 붙여놓고 오랫동안 쓴게 아닐까 걱정이 살짝 듭니다.

어찌됐거나 레이카의 이미지를 약간이나마 세탁을 해볼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과연 반등이 좀 있나 싶네요. 제일 힘을 준 보조 캐릭인데 이렇게 욕을 먹을지 몰랐어요. 다 부족한 제 탓이죠.

이제 걸그룹 4차 대전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기대 많이 해주시구요. 저에게 욕보다는 따뜻하고 자세한 충고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선작, 댓글, 추천은 사랑이라는거 알고 계시죠?

걸그룹 4차 대전의 서막

빅샷엔터테인먼트 사옥 앞.

.EXE를 보러 온 강전기는 소속사의 웅장한 건물을 올려다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돈을 그냥 갈퀴로 싹싹 긁어모으는 모양이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건물도 한 방에 사버리다니. 나도 얼른 돈 벌어서 사야겠다.’

1층으로 들어가자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가 강전기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하게 생긴 그녀는 전기를 보자 깜짝 놀라더니 어리바리하면서 45도 각도로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로 그를 안내했다.

“건물이 멋지네요. 내부도 좋고…….”

“네, 얼… 얼마 전 이전을 했습니다.”

“와, .EXE가 진짜 소문처럼 수익이 어마어마한가 보네요.”

“저희도 사실 얼떨떨해요. 세계적으로 히트한 지 2년 이상 지났는데도 이게 사실인지 실감이 안 날 때가 많아요.”

“그렇겠네요.”

강전기는 그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회색 라운드 니트에 그레이블랙의 살짝 타이트해 보이는 바지에 구찌 구두를 신고 어깨에 갈색 견장으로 포인트를 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앞, 옆머리는 귀를 덮을 정도의 길이었고 뒷머리는 목까지 내려왔다. 머리숱만 쳐내서 전체적으로 가볍게 만들었다. 묘한 색기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테리우스 스타일이다.’

너무 힘을 주고 왔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이내 날려버렸다. 엔터 비즈니스에서는 인기가 곧 힘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패션으로도 자기 어필을 하는 시대였다. 일렉케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10층입니다.”

여자를 따라가자 커다란 소파가 있는 휴게실 같은 분위기의 사무실이 보였다.

“형!”

소파 뒤에 서있던 에릭이 강전기를 보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오… 잘 있었어? 몸은 좀 괜찮아? 얼굴 보면 좋아진 것 같네?”

강전기가 주먹을 들어 에릭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에릭도 똑같이 주먹을 들어 터치했다. 그러자 다들 강전기를 반갑게 맞이했다.

“형님, 어째 날이 갈수록 멋져지십니다.”

레온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강전기와 악수했다.

“레온 씨도 오랜만입니다.”

주민등록상의 나이는 막내인 에릭을 빼곤 강전기와 같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건이 있어서 알아서 형님으로 모신다고는 하지만 에릭을 제외하고는 존댓말로 응대하고 있는 강전기였다.

사실 그들도 그 당시 놀란 가슴으로 반쯤 장난으로 하는 말이긴 했다. 굳이 정색하고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형, 진짜 농담이 아니고 왜 이렇게 멋져진 거예요?”

“에이… 왜 그래, 민망하게…….”

“캬… 형이 오니까 왜 이렇게 든든하죠? 그냥 마음이 놓이네요.”

에릭이 눈을 살짝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우리 막내가 요즘에도 잘 때 가끔 가위를 눌려요. 오늘 형님 봤으니 당분간은 잘 자겠는데요?”

팀의 메인 보컬인 민우가 웃으며 에릭을 놀렸다.

“어휴, 저도 가끔 생각나는데 당사자야 당연히 생각나겠죠.”

사실 생각은 안 났지만 그냥 분위기상 그렇게 대답해 줬다. 그런데 에릭이 그 말에 격하게 반응했다.

“거봐, 거봐. 일렉케이 형도 그렇다잖아. 심지어 때려잡은 사람도 그런데 나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에릭은 최근 많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약간의 무대 공포증이 남아있었다. 꼭 누가 자신을 해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 했다.

‘허… 그거 큰일이네.’

강전기는 한동안 .EXE와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이사 온 신사옥과 미국에서 있었던 일, 쉬면서 뭐 했는지를 물어보았다.

살짝 분위기를 보아하니, 한 달 이상을 쉬었으니 복귀해야 하겠는데 에릭의 정신 상태가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에릭만 빼고 활동하자니 모양도 이상하고 팬들도 원치 않는 것 같다는 모양이었다. 하루빨리 완전체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렵겠네요. 팬들이 엄청 기다리고 있잖아요.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요.”

“그러니까 제가 정말 미치겠어요, 형… 이번에 활동할 때 우리랑 같이 다니면 안 돼요?”

“뭐?”

강전기는 에릭의 뜬금포를 듣고 마음속으로 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자신을 무척 좋아해 주는 동생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건… 좀 곤란한데?”

“왜요?”

“왜긴… 나도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일요? 형이 무슨 일요? 그냥 대학생 겸 프리랜서 작곡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겨울방학 때 미국에서 노신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음악 공부하러 갔는데 놀긴 누가 놀아?”

“에? 그래요? 죄송요. 전 놀러 간 줄 알았죠.”

‘음, 사실 네 말이 틀렸다고 하긴 뭐하지. 여자들하고 실컷 놀았으니까.’

“암튼 놀러 간 거 아니야. 그리고 요즘 걸그룹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

“무슨 걸그룹요?”

“이번에 리부트 엔터에서 새로 걸그룹을 만들고 있거든.”

“엥? 저번에 소울퀸즈도 프로듀싱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걸그룹까지 만드신다고요? 형이 거기서 뭐라도 돼요? ”

“어, 등기 이사야.”

“예에?”

강전기는 어떻게 프로 작곡가가 되었는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줬다. 강전기가 그렇게 바쁜 걸 알게 되자 에릭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어떻게요?”

강전기는 이번 컴백 미니 앨범에 자신의 곡을 써보는 게 어떤지 넌지시 제의했다. 그러면 그때까지는 지속해서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빅샷의 사옥을 보니 돈이 약간 탐났다. 한 곡 정도 들이밀어서 차기 타이틀곡이라도 된다면 아마도 자신이 번 곡 중에서 가장 큰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EXE의 곡을 쓴 SSJ 연습생 출신의 프로듀서가 방송에 참전한다고 어그로를 확실히 끌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면 SSJ도 적극적으로 협상해 올지 모르지.’

만약 .EXE의 곡을 쓴 작곡가가 프로듀싱한 걸그룹이 실력도 좋을 때 뮤직넷의 빵빵한 서포트로 신인 걸그룹 판도가 자칫 혼돈의 카오스로 갈 수도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SSJ에서 6년 만에 내놓는 걸그룹이었다. 새롭게 론칭하는 애들 빼고는 SSJ의 여자 연습생 풀도 다 죽어서 사실상 더는 여력이 없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됐다.

분위기를 적절히 조성하고 있는데 누군가 초를 치는 발언을 했다.

“죄송한데요. 그건 곡을 들어봐야죠.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네?”

“저희를 구해주신 건 감사드리는데요. 이상한 곡은 앨범에 넣을 수 없어요.”

“에이… 주우 형, 왜 그래요. 일렉케이 형이 진짜 천재예요. 제가 저 형 노래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요.”

“아무리 톱 작곡가라도 연속해서 못 터트려. 실력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검증은 해야 한다는 거야.”

강전기는 .EXE에서 가끔 작곡하는 ‘주우마’라는 녀석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 이상한 곡이라니?’

나름 프로듀싱도 참여하고 그러는 멤버라 그런지 음악적 프라이드가 꽤 강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까부터 스마트폰만 보고 있던 녀석이라 살짝 정이 안 가기도 했다.

‘크흠… 이름이 마우주였던가? 왜 본명을 뒤집어서 예명으로 쓰는 거야. 멋대가리 없이…….’

강전기는 본명이 예명보다 더 좋은 주우마를 노려보며 씨익 웃었다.

“당연히 들어보시고 안 좋으면 빼든지 하세요.”

‘솔직히 방송만 아니면 나도 고추 녀석들에게 곡 주기 싫다.’

“혹시 만드신 곡 있으세요?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 보면 왠지 있을 것 같은데요?”

‘역시 곡을 쓰는 녀석답게 날카롭네. 오냐, 한번 들어봐라. 어제 거의 날을 세우면서 만든 곡이다. 상상할 수 없는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주지.’

“흐음, 여기 녹음실이 어디죠? 아… 우마 씨? 그전에 프린터에서 악보랑 가사지 좀 뽑아줘요.”

강전기는 곡이 있다, 없다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녹음실이 어디인지 넌지시 물어봤다.

“저 우마(牛馬) 아닙니다. 주우, 아니면 주우마라고 불러주세요.”

“예, 주마 씨…….”

강전기는 주우를 한번 쓱 보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쓰윽 쓸어 넘겼다. 그 순간 우수에 찬 눈빛이 드러나며 겨드랑이에서 패왕 색기가 뿜어져 나왔다.

“큭…….”

모두 흥미로운 눈을 하며 녹음실로 이동했다.

“곡명이 「너는 나를 지킨다」입니다. 악보에 가사가 나와있지만 네가 있어서 내가 있고 부족한 나를 지켜줘서 항상 고맙고 나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내용의 가사입니다. 노린 건 아닌데 약간 타이밍이 좀 그렇죠? .EXE도 팬들이 걱정하면서 기다리면서 지켜주고 있으니 이런 곡을 부르면 좋을 것 같네요.”

‘사실은 철저히 노린 거지만…….’

강전기가 곡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노래를 재생시켰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템포가 빠른 신나는 느낌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모든 멤버들이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곡의 코드 진행은 상당히 단순했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코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강약을 줄 때 일렉기타로 신나는 느낌을 잠깐씩 줬다.

‘어때? 자연스럽게 쭉쭉 달려가지?’

그는 곡 자체를 신나지만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펜타토닉 스케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펜타토닉이란 각국의 민요나 록 음악에 많이 쓰이는 ‘시’와 ‘파’가 빠진 음계였다. 그만큼 단순하여 듣기가 편하다는 말이고 멜로디만 잘 입힌다면 언제, 누가 들어도 귀에 쏙쏙 박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좋은 곡이 될 확률이 높았다.

강전기가 그들의 초반부터 최근 곡까지 쭉 들어보니 .EXE가 세계적으로 히트해서 그런지 최근 곡에 너무 쓸데없는 힘을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불필요한 것들을 다 들어내 버리고 최대한 단순한 코드에 최대한 맛깔스러운 중독적인 멜로디를 입혀 약간은 한국적인 가요 느낌을 살린 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녹음실은 신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고개만 끄덕이며 곡을 신중하게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주우는 아예 눈을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3분 40초가량의 곡이 끝났다. 음악이 꺼지자 녹음실이 아주 조용해졌다. 누군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분위기는?’

그런데 갑자기 에릭이 일어나서 벌게진 얼굴로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와… 케이 형, 미쳤어요. 이번에 우리가 원하던 곡이 딱 이런 느낌의 곡이었어요. 형 혹시 신들렸어요? 계속 더 듣고 싶다. 진짜 깔끔해. 와…….”

주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전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랩 파트까지 힘을 쫙 빼버릴 줄 몰랐네. 그런데 왜 난 가사로 쓰고 싶은 말이 많을까?”

랩을 담당하고 있는 티렉스가 비어있는 16마디의 빈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와우… 곡 죽이네. 편안한데 신난다. 가사도 좋고…….”

“형, 난 이 부분이 제일 좋았어요. ‘하루만 살더라도 후회 없이 너를 위해 살 거야. 그 과분한 사랑 고마워. 넌 날 지켰어. 넌 날 구했어.’ 이 부분요. 아… 저 눈물 나요. 아… 어떡하지? 진짜 그렇게 살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거죠. 인생 뭐 있나요?”

에릭은 벌써 무대 공포증을 다 날려버린 얼굴이었다. 어서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주우야, 넌 어떠냐?”

리더 레온이 강전기와 주우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레온의 질문에 주우가 고개를 들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렉케이 씨, 가사는 그렇다 치고 이거 일부러 이렇게 편안한 코드로 자연스럽게 쓴 건가요? 이런 스케일까지 쓰면서?”

그 말을 들은 강전기가 뒷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점점 음악에 힘을 주는 거 같던데 좀 내려놓으세요. 안 힘들어요?”

주우가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허, 이거야 원. 약간 기분 나쁜데? 이 타이밍에 낼 수 있는 최고의 곡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앗싸… 주우 형도 인정했다! 이 곡으로 타이틀곡 가즈아! 호우…….”

에릭이 오랜만에 흥분한 말투로 주먹을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주우는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자기보다 어린 작곡가가 손수 찾아서 친절하게 짚어주자 당황스럽기도 하고 해서 기분이 살짝 이상했다. 그렇다고 말처럼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약간 츤데레 성향이 있는지라 예전에 멤버들하고도 이런 문제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케이 형, 주우 형이 원래 츤데레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얼굴 보니까 곡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한 것 같아요.’

‘그러냐? 알았다. 난 별로 걱정 안 했다.’

에릭의 귓속말을 들은 강전기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귀여운 놈들. 내가 너희 머리 꼭대기에 있다. 어쩔 수 없이 고추 녀석들에게 곡을 줬지만 다신 없는 기회라는 걸 좀 알라고! 그걸 좀 미리 깨달았으면 좋겠고만. 수틀리면 마지막이니까…….’

강전기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녹음실을 쓰윽 둘러보았다. 리부트에 있는 녹음실 장비들보다 월등히 비싸 보였다. 그리고 벽에는 국내에서 받은 각종 상패와 빌보드에서 받은 트로피 그리고 미튜브 10억 뷰 달성 감사패도 있었다.

‘빌보드 1위. 미튜브 10억. 쓰읍, 하아… 뭐… .EXE는 예외로 해줄까? 그래도 애들이 싹수는 있잖아? 음… 사람은 때때로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

고추돌에게는 곡을 절대 주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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