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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계산기 때리지 마세요. ㅋ
뒷편에 나옵니다. 오늘 쉬는 날이라 연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둠 속의 눈동자
전문 심사위원 점수와 관객들이 투표한 숫자가 더해진 결과가 화면에 송출되었다.
두두두두…….
1위 핑크엔진 338점
2위 클로버즈 335점
3위 레몬캔디 227점
4위 G파워 220점
5위 퓨리틴 114점
6위 나인테일 100점
7위 라라걸즈 89점
8위 글로리아 76점
“자! 1차 경연 결과 1위는 핑크엔진입니다.”
“꺄아…….”
“우아…….”
“엄마야…….”
강전기 뒤에 앉아있던 핑크엔진, 클로버즈, 레몬캔디 멤버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껴안고 난리가 났다. 정말 딱 강전기 뒤쪽만 난리가 난 것이다. 강전기 뒤를 제외하고는 담담하게 박수만 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관객 점수를 기대하던 헨리 피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강전기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그룹들이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든 소음이 차단되고 그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뽕이 차올랐다.
‘크흐흐… 이것이 바로 독식이지. 혼자 먹는 건 언제나 짜릿해. 그게 음식이든 여자든. 아… 이건 좀 아닌가? 어쨌건, 총득표수의 60%를 내가 먹었네? 미국에서는 기업이 독점하면 해체당하기 일쑨데 케이팝 걸그룹은 상관없지. 뭐, 앞으로 걸그룹은 내가 독점 기업이 될 거다. 믿고 보는 강전기 사단이랄까?’
강전기가 쓰레기 같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MC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쯤에서 핑크엔진 여러분 소감을 안 들을 수가 없죠. 리더 김인하 씨,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부족한 저희에게 투표해 주신 관객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저희를 지원해 주신 회사의 모든 식구하고 가족들에게 감사드리고요…….”
강전기는 언제쯤 자신의 이름이 나오나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를 뽑아주시고 좋은 노래도 만들어주시고 많은 것들을 신경 써주신 일렉케이 프로듀서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그렇지. 역시 가정교육이 잘됐어.’
틀딱 강전기의 입꼬리가 씰룩쌜룩 움직이고 있는 찰나,
“잠시만요. 기분을 물어봤는데 무슨 연말 시상급 소감이 나오네요. 인하 씨, 거울 보고 연습했습니까? 아니면 앞에 계신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시켰나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그만…….”
“농담입니다. 첫 번째 경연에서 1등을 하신 핑크엔진 여러분, 정말 축하드립니다.”
역시 출연자들을 쥐락펴락하는 MC 정상균의 진행 솜씨는 아주 일품이었다.
“이쯤에서 1위를 한 핑크엔진의 일렉케이 프로듀서의 소감을 들어봐야 하는데 왠지 기분이 안 내킵니다.”
“해철 씨, 그게 무슨 소리죠?”
“키 크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노래까지 잘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1위를… 아… 1위 팀 말고 레몬캔디도 3위죠.”
“그러니까 너무 잘나서 질투 난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 뭐 꼭 그런 뜻은 아니고…….”
“우우우…….”
강전기 뒤에 앉은 팀에서 야유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우… 상균 씨, 빨리 물어보세요. 한마디 했다고 너무 무섭다. 에이… 레몬캔디까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하하하…….”
“알겠습니다.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일렉케이 프로듀서님. 소감 짧게 해보세요. 딱 30초 드립니다.”
강전기는 짧게 뜸을 들이더니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넘겼다. 마치 패왕색기가 카메라 렌즈를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게 끝인가요?”
“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 끝나고 음원 나오면 많이 들어주세요.”
“이야… 짧지만 실리를 챙기는 임팩트 있는 소감이었습니다.”
“사실 말보다는 아까 그 표정 보셨어요? 머리 쓱 넘길 때… 흐흐… 같은 남자인데 심쿵했어요.”
“저, 해철 씨.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맨날 오해받는 분이 왜 그러실까?”
“아니… 좋았던 건 좋았다고 해야죠.”
“해철 씨, 죄송합니다. 전 여자만…….”
“뭐래? 농담한 거 가지고… 나도 됐거든요?”
“바로 차여버렸죠? 흠흠… 어쨌든 일렉케이 프로듀서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관객들의 큰 지지를 받은 클로버즈입니다.”
클로버즈 멤버들은 기쁜 표정으로 인터뷰하고 프로듀서인 강 박사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저기요. 강 박사님. 아직 계신가요?”
[네, 여기 있습니다.]
“2위 하신 건 축하드리고요. 그런데 어쩌죠? 일렉케이 프로듀서한테 지셨는데요?”
[아닙니다. 지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기가 온라인까지 합산해서 말씀하시는 거였나요?”
[당연하지요. 분명 변화가 있을 겁니다. 저의 분석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일렉케이 작곡가님, 한 말씀 해주시죠.”
“뭐, 맘대로 하라고 하십시오. 별로 상관 안 합니다. 하든지 말든지.”
[왜 짜증을 내십니까?]
‘어우, 저 새끼가 가만히 대역이나 할 것이지. 감히 살살 약을 올려?’
“워워워… 진정들 하시고요. 경연만 치열한 게 아니고 프로듀서들의 신경전 또한 정말 대단한데요. 이런 기분 좋은 신경전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탈락의 위기에 빠진 두 팀이 있습니다.”
“어떤 팀이죠?”
“바로 김찬기 프로듀서의 라라걸즈와 헨리 프로듀서의 글로리아입니다. 두 팀이 최하위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데요. 이들의 운명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라인 투표 점수가 남아있기 때문인데요. 어느 정도 오늘 투표로 순위가 결정된 것 같지만, 민심의 향방에 따라 순위가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만약 온라인 투표 점수를 더하고도 최하위를 한 팀은 다음 경연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잔인하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역시 시청자분들의 호응이 중요하겠네요. 내 마음에 드는 신인 그룹이 있다면 이들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렇게 「걸그룹 4차 대전」 첫 번째 경연이 끝났습니다.”
“다음 경연 주제를 알려드려야죠?”
“지금 아무도 모르시는 거죠?”
“네, 아무도요. 오늘 프로듀서들은 경연 주제를 듣고 작업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2주 후 두 번째 경연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자, 두 번째 경연의 주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연의 주제는요. 바로!!”
[선배의 노래를 커버하라]
두 번째 경연의 주제는 ‘선배의 노래를 커버하라’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평범해 보이는 주제였다.
“단, 해당 소속사 선배의 곡은 부를 수 없습니다.”
“…….”
“다들 약간 당황하신 얼굴들이신데요?”
“사실 이 경연 주제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만한 겁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한 가지 제한을 둔 거죠. 이제 돌아가셔서 작업을 시작하셔야 할 겁니다.”
“시청자 여러분! 대박 신인 걸그룹들의 다음 공연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갑니다. 채널 고정!”
그렇게 첫 번째 경연이 끝났다. 정말 힘든 촬영이었다.
강전기는 레몬캔디와 핑크엔진을 돌아보며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내일 하루는 푹 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클로버즈와 무언의 눈인사를 나눴다. 클로버즈 멤버들은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면서 대기실로 들어갔다.
자신도 온종일 경험한 것들이 너무 많아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촬영이고 뭐고 눈을 좀 붙이고 싶은 강전기였다.
차를 타고 돌아가려고 하다가 성기호를 불러놓고 적당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적당히 대역만 하라고! 자꾸 사고 치지 말란 말이야.”
강전기가 피곤했는지 무심결에 진짜 짜증을 내자 바로 꼬리를 내리는 성기호였다.
“미, 미안해. 그냥 재미있어서 내가 좀 지나쳤다.”
성기호를 따끔하게 혼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두 번째 경연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흠. 피곤한데 잠이 안 오네. 다음 경연 때 뭘 하지? 아… 몰라. 자자, 그냥. 아침이면 생각나겠지.’
그는 전생에서도 종종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꿈에서 해답을 얻곤 했다. 그렇게 수마에 빠져들었다.
* * *
자정이 되지 않은 깊은 밤.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는 반포의 한 아파트.
가벼운 민소매 흰 티에 분홍색 레깅스를 입은 한 여인이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태는 실로 완벽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어깨, 짧은 상체와 잘록한 허리,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떨어지는 골반 라인, 그리고 쭉 뻗은 다리, 두 다리 사이의 허벅지 사이가 붙지도 않아 뭇 여성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남성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부동의 걸그룹 최강 몸매, 이화였다.
그녀는 베란다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수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이화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투명한 고층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음에도 커다란 흉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난 흉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흉터가 너무 커.’
흉터 부위가 깔끔하지 않고 광범위해서 회복이 얼마 걸릴지 의사들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략 2~3년 정도 걸린다고 앵무새처럼 되뇔 뿐… 두 번째 복원 수술을 받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방송은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두려워 모든 생필품은 매니저가 사다 주고 가끔 멤버들이 찾아와서 놀다 가거나 하룻밤 정도 자고 갔다.
다른 멤버들도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지 자주 놀러 왔다. 회사에서 스케줄을 안 잡아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헨리 피디 말처럼 수요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신곡을 내고 진짜 분위기 좋았는데…….’
이화는 음원 순위 1위 곡 활동을 못 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자신이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멤버들과 음방도 나가고 방송도 나가고, 행사도 나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얼굴이 이 지경이 된 지금은 꼼짝없이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소 2년은 활동을 못 할 거라는 의사의 말도 충격이었고, 완벽하게 회복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후로 그녀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썸을 타고 있던 재벌 3세와도 헤어지고, 자신의 아파트나 별장만 왔다 갔다 하면서 거의 반칩거 생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서는 게 너무 그리워졌다.
그녀는 사실 연기하거나 CF를 찍는 것도 좋았지만 언니, 동생들하고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가장 즐거웠다. 그래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도 계속 걸그룹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데뷔하고 나서부터 혼자 승승장구하며 블루비를 하드 캐리했다. CF도 수십 개를 찍고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자신이 번 돈이 백억 단위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도 많이 가져가긴 했지만 스물세 살의 나이에 30~40억대의 자산가면 남부럽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명의로 반포에 20억짜리 아파트를 샀는데, 최근 많이 올라 자산 가치가 27억 정도가 되었고 경기도 인근에 매물로 나온 저렴한 별장 하나를 3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자신 명의의 외제 차도 있었고 통장에 현금이 5억 정도로 아직은 충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돈은 그냥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무대를 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잠도 잘 자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화는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지갑과 차 키를 챙기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고급 아파트다 보니 주차장에는 온통 고급 외제 차들이 즐비했다.
그녀는 자신의 애마인 흰색 아우뒤를 발견하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자신의 별장으로 내비를 찍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무선 충전기 거치대에 올려놓고 갤러리를 클릭했다. 그녀의 갤러리엔 비밀번호가 걸려있었고 지문을 찍어 폴더를 풀었다. 거기에는 여러 개의 동영상들이 숨겨져 있었다.
곧바로 손가락을 들어 영상 하나를 실행시켰다. 아우뒤의 최고급 스피커로 한 쌍의 남녀가 관계를 맺고 있는 영상의 소리가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그 남녀는 방 안에서 섹스하다가 거실로 나와서 거나하게 관계를 즐기더니 다시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질펀한 정사를 나누었다. 그 후 다시 거실과 방에서까지 그런 짐승과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됐다.
이화는 그 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뛰는지 액셀을 강하게 밟기 시작했다.
부아앙―
끼이익―
경기도 인근의 한적한 별장. 시간은 열두 시가 약간 넘은 상황이었다. 이화는 자신의 애마를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셔터를 내려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 앞에서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눌러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의 불을 켜니 깔끔한 실내가 나타났다. 마치 신혼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는 집 안을 거닐며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스쳐 간 곳에는 카메라 같은 게 설치돼 있었다. 아니, 분명 카메라였다. 이화는 냉장고에서 물을 한 병 꺼내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텅 빈 지하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화는 책상 위에 차 키를 던져놓았다. 그리고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위이잉―
컴퓨터가 부팅되며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커다란 모니터들이 여러 대 설치돼 있었다. 흡사 빌딩 경비실 CCTV가 잔뜩 있는 그런 방범 시스템 같아 보였다.
그녀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의자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서랍을 뒤져 구형 샘숭 핸드폰을 꺼냈다. 이화는 흉터가 간지러운 듯 손으로 계속 긁적이고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러서 폰을 켠 그녀는 갤러리를 열어보았다. 갤러리에는 아까 자신이 차에서 계속 플레이를 시켜놓았던 동영상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문자 앱을 열고 그 동영상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숨이 가빠오는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띠링―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빠져드는 찰나, 수면을 방해하는 문자 소리에 잠이 다시 달아난 강전기가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면서 침대 옆 간이 탁자 위에 둔 자신의 사과폰을 낚아챘다.
“아씨! 오밤중에 도대체 누구야?”
그는 알림창을 열어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보낸 사람은 알 수 없었는데 거기에는 짧은 동영상이 도착해 있었다.
“으응? 뭐야, 이거?”
별생각 없이 동영상을 터치한 강전기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일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