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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작, 댓글, 추천 감사드립니다.
어둠 속의 눈동자
이화는 강전기의 전 여친 신이나와 악연이 있었다.
거의 이화의 독주 체제였던 CF계에서 신이나는 홀연히 등장한 태풍의 눈이었다. 그녀는 이화의 CF를 하나둘씩 뺏어가며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블루비 이화의 팬들은 유사 걸그룹이 진짜 걸그룹인 이화의 지분을 넘본다면서 욕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런 사실이 그저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초대형 케이팝 드라마였던 「유어걸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신이나의 인기가 수직 상승을 했는데, 실제로 그녀가 SSJ의 여자 연습생 데뷔 조 센터라는 게 밝혀지며 단번에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다. 걸그룹 센터치고는 가창력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해서 세간에서는 이화보다 낫다는 평가도 종종 듣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화는 신이나를 마음속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화가 신이나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워낙 두 사람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보니 방송국에서도 두 명을 동시에 캐스팅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이화도 매번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한 번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신이나는 대기실에서 이화를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
“수아는 잘 있니? 흐음… 우리 데뷔 조만 엎어지지 않았으면, 너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건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게 블루비의 음악적인 면을 하드 캐리하는 멤버가 바로 리더 겸 메인 보컬인 수아였기 때문이다. 리더가 없었다면 인기 걸그룹의 센터 겸 연기돌이라는 애칭은 애초에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룹 내에서 수아의 포지션은 중량감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SSJ의 데뷔 조가 엎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수아가 블루비에 합류해서 음악적으로 그룹을 돋보이게 하지 않았다면?
이화는 다인기획에서 듣보잡 걸그룹으로 오랜 기간 무명 생활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낭중지추란 말이 있듯 이화는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재목이긴 했다.
신이나는 이화보다 한 살 많고 리더와 친구라는 사실을 앞세워 처음부터 반말했다. 이화도 당시에는 리더 언니를 봐서 꾹 참았는데 만약 데뷔도 늦게 한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폭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눈… 나를 분명히 싫어하는 눈빛이었어.’
이화는 본능적으로 그 눈빛의 감정을 알아챘다. 그녀는 그런 제스처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화의 춤은 더욱 섹시하고 그녀의 연기는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평가를 자주 듣곤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잠시 자신이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대기실에서 자신을 우습게 보면서 흉을 보는 장면을 직접 듣기까지 했다. 그 당시 대기실로 들어가서 엎을까 하다가 참은 적도 있었다.
연말에 얼굴을 심하게 다친 이후로는 이화의 CF를 신이나가 야금야금 하나둘씩 빼앗아 가고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내가 알아서 이렇게 주저앉아 버렸으니…….’
이화는 몰래 웃고 있을 신이나를 생각하자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앉아있는 강전기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전기 오빠가 잘생기긴 했어. 아이돌 했으면 진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을 거야. 물론 데뷔가 무산돼서 실망했겠지만, 지금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대박 났으니 오히려 더 잘된 거지. 그런데 오빠는 왜 그런 불여우하고 사귄 거지? 오빠가 그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이화야, 괜찮은 거지? 갑자기 왜 그래?”
강전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화의 상태를 물어봤다.
“아, 아냐. 그냥 갑자기 뭐가 좀 생각나서…….”
“너 신이나랑 무슨 일 있었구나?”
“흐음… 그냥 하도 주위에서 라이벌이라고 하고 나를 좀 안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서로 좀 그래.”
“하긴… 인터넷에서도 엄청 싸우잖아. 누가 최강이냐. 이런 거로…….”
“그건 그렇고 아주 좋으셨겠어요? 현 최강 CF퀸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이화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은 전기의 속내를 떠보는 말을 했다.
“좋기는… 힘들기만 했지. 그리고 그렇게 깊은 사이도 아니었어. 사귄 기간도 오래된 것도 아니고 말야.”
강전기는 주아라에게 들었던 말을 기초로 이화에게 설명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신이나가 CF퀸이래? 원조 퀸이 여기에 있는데…….”
강전기의 말에 다시금 이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전기의 아부는 뻔히 속내가 보였지만,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고대의 왕들이 왜 아첨하는 사람들을 옆에다 두었을까?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자고로 충신은 귀양 가서 뜨끈한 아메리카노 색깔의 사약을 받고, 간신은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법이었으니까.
“오빠, 나 비행기 좀 그만 태워. 지금 얼굴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이화는 자신의 엉망이 된 얼굴을 생각하자 자신감이 급격히 추락하고 말았다.
“아니야, 곧 회복될 건데 뭘…….”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럴 일은 없어. 안 되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게.”
“풋! 오빠가 무슨 재주로…….”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네 비밀을 말할 차례야.”
“뭐 알고 싶은데?”
“내가 궁금한 건 그거야. 왜 이런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게…….”
이화는 전기의 질문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가 생각해 보더라도 부끄러운 일이었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왜 자신은 이렇게 남이 하는 영상에 집착하게 됐을까? 사실 이화 본인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나, 나도 모르겠어.”
“잘 생각해 봐. 혹시 어렸을 때 충격적인 뭔가를 본 적이 있다거나…….”
“앗! 설마!”
이화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몸을 움찔하고 떨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상념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왜? 짐작이라도 가는 게 있어? 혹시 어렸을 때 특별한 걸 본 적이 있는 거야?”
“맞, 맞아. 그런 게 분명히 있긴 있었어.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때쯤인데 그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줬을까?”
“글쎄… 어떤 경험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거니까.”
강전기는 무슨 자기가 심리학 박사라도 되는 양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었다. 사실 전생에 여러 가지 콤플렉스 때문에 이런 심리학 책들을 많이 읽기는 했으니까.
“이야기 좀 해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야.”
“음. 그게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이화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이화는 어릴 적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동네에 살았다고 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창문만 열면 다른 집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쉽게 엿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 당시 옆집으로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었는데 평소에 인사도 잘하고 사이가 좋은 이웃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얼굴은 꽤 남자답게 괜찮게 생기고 허우대는 멀쩡했는데 백수였고, 부인은 간호사를 했던 거로 기억했다.
남편은 항상 비디오 같은 걸 빌려서 낮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믹스 커피를 큰 잔에 타서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화와 시답지 않은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백수인 남편에 대해 수군대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산을 프리랜서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물론 이화가 보기엔 그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화도 동네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계속 들어서 그런지 진짜 백수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만약 백수였다면 부인이 화내고 바가지라도 긁었을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깨가 쏟아졌다. 남편은 부인이 퇴근하면 기다렸다가 밥을 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학원 선생님이 아프다며 수업을 펑크 낸 그 날. 이화는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옆집 부인은 야간 조였는지 낮에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옆집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창문을 열어놓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화는 그 모습을 구멍 난 모기장을 통해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옆집 아저씨는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있었고, 아내는 무릎을 꿇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빨아!”
짧지만 묵직한 한마디.
그 장면을 본 이화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흐읍…….’
이제 막 성에 눈을 떠가기 시작하던 이화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당시 그 장면은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잠을 잘 때 계속해서 떠오르곤 했다.
어쩌다 옆집 아저씨를 마주치는 날에는 그 장면이 생각나 엄청 어색하기까지 했다. 물론 얼마 안 있어서 젊은 부부는 이사하였지만 그날의 충격적인 장면은 한동안 이화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흐음… 그때가 시발점이었을지도 몰라.”
“시발? 점?”
“그래, 너 지그문트 프로이트라고 알아?”
“아니…….”
“프로이트라고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된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데, 어릴 적 성적 외상 그러니까 트라우마(Trauma)에서 히스테리가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신경증을 앓는 요인은 성 요소 안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펼쳤지.”
“트라우마? 히스테리? 나 히스테리 없는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지금이야 프로이트 씨가 욕도 많이 먹고 있긴 한데, 커서의 행동은 어렸을 적 그런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꽤 일리가 있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
“아… 그러니까 내가 이런 동영상에 집착하는 건 그런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구나?”
“맞아, 이화 너 꽤 똑똑하네?”
“헤헤… 그런데 진짜일 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해. 솔직히 그때부터 남자의 그…….”
“성기?”
“아이참, 오빠… 너무 노골적으로 그러지 마.”
“성기는 남성의 외부 생식기라는 학술적인 용어야. 다른 말로는 음경이라고도 하고… 그다지 음란한 단어는…….”
강전기가 정색하며 사전적 의미의 뜻을 이야기하자, 이화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저지했다.
“난 그런 이야기를 오빠한테 듣고 싶지 않아. 아, 아무튼 그것에 집착한 것 같기도… 에…….”
이화는 자신의 고백이 부끄러운지 말끝을 흐리기 시작했다.
“작은 건 아니겠지? 혹시 큰 그런 것만?”
이화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미미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부끄러워하는 이화를 보니 강전기는 하체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 미치겠군. 내가 걸그룹 최강이라는 이화와 이런 음란한 말들을 하고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아.’
“오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혹시 그거 알아?”
이화는 정말 부끄러운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자꾸 자신의 마스크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뭐 말인데?”
“오빠가 처음 우리 숙소에 왔던 그 날… 우리 게임을 하면서 재밌게 놀았잖아. 술도 많이 마시고.”
“그, 그랬지. 뭐, 나름 흑역사라면 흑역사가 된 날이었지. 나에게는…….”
“그래, 그날. 오빠가 마지막으로 소주를 글라스로 마시고 쓰러졌을 때, 리나가 장난친다고 오빠 팬, 팬티를 내렸어.”
“뭐어? 그, 그게 정말이야?”
강전기는 이화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이화뿐만 아니라 리나, 정진, 수아까지 네 명이나 있었었다. 흥분해서 위로 우뚝 솟은 그의 대물을 모두가 똑똑히 봤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는 강전기였다.
“응, 미안해. 리나도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오빠 팬티를 잡기만 했는데 그, 그게 커져있어 가지구… 그냥 막 툭 하고…….”
이화가 설명하는 손발이 어지러워지는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허어…….”
이화는 부끄러워서 말을 흐렸고, 강전기는 황당함에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해줬어?”
“수, 수아 언니가 다들 입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하라고 해서 그랬을 거야.”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건 이화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전기의 눈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오빠… 그날 새벽에… 말야. 혹시 인기척 같은 거 못 느꼈어?”
“인기척?”
이화는 강전기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자,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어? 설마… 새벽에… 누군가 내 거시기를 손으로 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럼 그게?’
피곤하고 몽롱해서 그냥 꿈인 줄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으헉!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