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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연참 했는데 한 200분~300분은 또 안보겠지...
노답 3인방
과연 은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소질이 대단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두셋을 깨우쳤다. 요즘에 정식으로 작곡도 공부하는지 관련 지식도 많이 늘어난 것 같았다.
‘은하가 가창력, 언어능력, 연기력, 예능감까지 A 클래스였지, 아마?’
강전기는 뭔가를 결심한 듯 기타를 튕기고 있는 은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은하야, 오늘 네가 들려준 곡을 앨범에 넣고 가을쯤 가수로 데뷔하자.”
“예? 벌써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데뷔시켜 주신다고…….”
“아니, 네 능력을 보니 충분한 것 같아. 아이윤도 중학교 때 데뷔했잖아. 너도 충분해.”
“제가 어떻게 아이윤 선배님하고 비교되나요. 에이… 전 그 정도는 아니에요.”
“후후후…….”
강전기는 손사래를 치는 은하가 너무 귀여웠다.
“은하야, 넌 내가 옆에 있잖아. 내가 누구라고?”
“천재 작곡가 일렉케이 님요.”
강전기의 호칭이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딩동댕! 그렇지… 말이 필요할까?”
“…제가 1위를 할 수 있을까요?”
“뭐? 아하하하…….”
생각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1위라니…….
“우리 은하가 꿈이 크구나? 벌써 1위 할 생각을 하고 말야. 넌 그냥 점점 성장하면 돼. 너무 부담 갖지 마. 너 지금 중학교 3학년이야.”
“그… 그래도 시유 언니는 고등학생인데 벌써 음원 차트 1위 했잖아요.”
“걔가 무슨 고등학생이야. 학교도 안 다니는데… 그리고 막말로 그룹발에 방송발도 컸잖아.”
“그건 그렇지만…….”
“너무 다급하게 생각하지 마. 넌 결국 아이윤처럼 될 거니까.”
“알겠습니다, 피디님.”
“그래, 그렇게만 해. 성실하게…….”
그는 손을 들어 은하의 머리를 헝클었다. 갑자기 전생에 귀여워했던 직장 동료 현정 씨의 딸내미가 생각났다.
‘지금쯤 유산 받고 행복하게 크고 있으려나? 잠깐… 은하가 데뷔하면서 1위 못 할 건 또 뭐야? 내가 방법을 생각해 내면 되는 거지. 후후… 좋았어. 방송이 끝난 하반기에도 엄청 바쁘겠군.’
그렇게 은하의 곡을 봐준 후 은하의 부친도 보고 인사드린 후 서울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은하네 집에서 개와 놀았더니 옷이 더럽고 땀도 나서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앉아서 뉴스 기사를 살펴보았다.
요즘 강전기는 스마트폰을 잡으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는 검색 창에 일렉케이를 치고 뉴스 기사를 쭉 검색했다.
대부분 기사가 호의성이거나 클릭질을 높이려고 어그로를 끄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런 기사를 살피면서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일렉케이의 곡은 철저하게 상업성만을 추구한다? 과대평가 말아야 ― 팩트 투데이]
“응?”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강전기가 기사를 보고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고 떨리는 손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어떤 개새…….’
[요즘 그야말로 핫한 인물 일렉케이. 소울퀸즈를 시작으로 케이 라임, 블루비, .EXE, 에밀리 로버츠 그리고 최근 그가 방송에서 프로듀싱하는 레몬캔디와 핑크엔진까지 모두 다 성공시켰다. 또한 최근에는 더블케이의 네임드로즈의 리더 신디까지 그의 곡으로 솔로 데뷔를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야말로 일렉케이 전성시대가 아닌가 하는 요즘, 실제로 그의 음악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누구도 갖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익명의 평론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렉케이는 철저히 상업성만 따지고 곡을 씁니다.’
그렇다. 그는 정말 철저히 상업성 짙은 곡만 쓰는 걸까? ‘케이 라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곡이 머니코드 범벅이에요.’ 해당 평론가는 일렉케이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너무 추켜세우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가 빌보드 1, 2위 곡을 동시에 차트에 올린 첫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가수의 힘을 무시할 순 없죠.’ 냉정하게 말해서 그가 가수를 잘 만나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본 기자는 그의 역량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방송에서 입증한 그의 프로듀싱 능력은 꽤 훌륭했다. 성과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익명의 평론가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논평했다.
‘만약 방송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후략)]
기사를 읽는 강전기의 얼굴이 흉악하게 변해갔다. 마치 지옥에서 막 복귀한 야차의 표정처럼 말이다. 근래에 와서 이렇게 빡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 씨X……!! 어떤 평론가 새끼가…….”
퍽퍽퍽!!
강전기는 얼굴이 벌게져 애꿎은 소파만 강하게 두들기고 있었다. 앞에 샌드백이라도 있으면 원투펀치에 하이 킥까지 찰 기세였다. 그의 입에서 평소에 거의 쓰지 않는 쌍욕까지 튀어나왔다.
“으으으… 짜증 나……. 왜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알겠어.”
강전기는 심호흡해서 기분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후아, 후아…….”
‘레이카를 시켜서 『팩트 투데이』인가 뭔가 하는 사무실을 그냥 절단 내버릴까? 레이카라면 주변의 감시 카메라도 다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건데…….’
강전기의 머리가 나쁜 쪽으로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들어 그 기사에 대한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거의 열이면 아홉은 기사를 까는 댓글이었다. 비추가 거의 폭탄급으로 많았다.
‘으음…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말 이성적이구나. 역시 선진국!’
“어디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익명의 평론가를 들먹여서 나를 깔려고 해? 감히!”
강전기는 그 기사를 성기호에게 톡으로 공유했다.
[성기호 : 응? 뭐냐? 일렉케이 극딜이네? 그런데 댓글 보니까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사람들이 제정신이면 어그로성 기사라는 걸 알겠지.]
[강전기 : 그런데 『팩트 투데이』 뭐냐? 너 알고 있는 언론사야? 이 새끼들 삼류지?]
[성기호 : 워워… 진정해. 잠시만… 내가 애들 풀어서 정보 좀 알아볼게.]
[강전기 : 그래, 부탁한다.]
한 15분쯤 지나 성기호에게서 톡이 왔다.
[성기호 : 다행히 아는 홈마 중에 『팩트 투데이』를 잘 아는 애가 있더라. 『지존일보』를 그만둔 기자가 만든 삼류 인터넷 신문이래.]
[강전기 : 엑? 『지존일보』? 거기 대형 언론사잖아?]
[성기호 : 어… 이거 좀 더 알아봐야겠다. 약간 심상치 않은데? 아는 동생이 그러는데 『지존일보』가 직접 나서지 못하는 걸 대신해 주는 지라시 비슷한 신문인가 봐. 한마디로 『지존일보』의 위성 신문? 편집장은 그 퇴직한 기자인데 사장이 조폭이라는 소문도 있더라.]
[강전기 : 아… 욕 나오네.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성기호 : 전기야, 이건 내가 알아서 조사해 볼게. 일단 화 좀 가라앉혀 봐. 너 이런 모습 처음 본다.]
[강전기 : 너 같으면 열 안 받게 생겼냐? 와, 진짜 살인 충동 생긴다.]
[성기호 : 워워… 이지이지…….]
[강전기 : 기획 팀장아, 아무튼 부탁할게.]
[성기호 : 그래, 이런 건 나한테 맡기고 넌 프로듀싱이나 잘하고 경연 준비나 하셔.]
[강전기 : 그래. 고맙다, 이놈아. 역시 넌 내 오른팔이야.]
[성기호 : 쳇… 언제는 꼬봉이라며?]
[강전기 : 영원한 꼬봉인데 오른팔이지.]
[성기호 : 야, 이…….]
강전기는 그렇게 성기호와의 채팅을 마쳤다. 기호와 채팅을 하자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세상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순 없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는 신경 끄고 TV를 틀어 영화나 한 편 보기로 했다. 그가 어떤 영화를 볼까 고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주아라]
‘응? 아라가 왜 이 시간에 또…….’
“어… 아라야. 그래, 잘 있었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전기야, 너 지금 뭐 해?
전화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약간 취한 듯한 음성이었다.
“나 지금 씻고 영화나 한 편 보려고… 왜?”
―나 지금 강남인데 혹시 와줄 수 있어?
“지, 지금?”
―내가 너 저번에 옛날이야기 듣고 싶다는 부탁도 들어줬었잖아. 그걸로 퉁치면 안 되겠어?
생각해 보니 프로듀서 미팅을 앞두고 원판 녀석이 왜 SSJ를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주아라를 통해 정보를 얻어냈다는 게 기억났다.
“으음… 그래, 알았어. 지금 아홉 시니까 넉넉잡고 열 시쯤이나 그 전에 도착할 수 있겠네. 장소는 톡으로 찍어주고…….”
―그래. 고맙다, 전기야.
주아라와 통화를 끝낸 강전기는 TV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그가 메시지를 살펴보니 강남 인근의 가라오케였다.
내비게이션에 위치를 찍고 애마를 몰아 주아라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가 알려준 가라오케는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기는 연예인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가게 앞으로 가자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간단한 질문을 건넸다.
“일행이 계신가요?”
“네, 7번 룸요.”
“아! 7번 룸 손님요.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상당히 깔끔하게 생긴 직원이 강전기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16층에 있는 이 스카이라운지는 여러 개의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직 열 시도 안 된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죠.”
그 직원은 강전기를 돌아보며 어디서 봤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강전기는 모자를 벗으면서 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주아라 외에 다른 세 명의 여자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중앙에 앉아있던 주아라가 손을 들었다.
“오! 일렉케이…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어, 어… 그래…….”
그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주아라에게 인사했다. 설마 방 안에 다른 여자가 세 명이나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쪽으로 와.”
주아가 손짓하니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강전기였다. 그는 자리에 앉고 마스크를 벗었다. 그의 뽀얀 얼굴이 드러났다.
“와… 넌 어쩜 갈수록 피부가 좋아져어? 혹시 관리받니? 딸꾹…….”
주아라는 이미 술을 많이 마셨는지 혀가 꼬부라지기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관리는 무슨… 그런데 여기 전망 좋다?”
“어, 스카이라운지라 뷰가 좀 괜찮지. 야경 어때에?”
“좋은데?”
“아라야, 우리도 좀 소개해 주라.”
그제야 강전기의 눈에 다른 여자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룸 안이 그리 밝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어느 정도 적응되자 그녀들이 누구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개하실 필요 없으실 것 같네요. 다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녀들은 주아라와 같은 디어엔젤 멤버였다. 창문을 등지고 있는 두 명, 그러니까 왼쪽은 정미래였고, 오른쪽은 백장미였다. 그리고 창문을 보고 있는 쪽에 앉은 사람이 지원희였다.
“네, 이쪽이 미래 씨, 장미 씨, 그리고 원희 씨죠?”
“와… 저희 이름도 아셨어요? 대박!”
정미래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요즘 핫한 인물인 일렉케이가 자신들의 이름을 아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제 친구가 있는 그룹인데 제가 멤버들 이름을 모르면 쓰나요?”
“호호호… 술 한잔 받으세요.”
잘 모르는 셋 중 그나마 붙임성이 있는 정미래가 강전기의 잔에 양주를 따라 주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니 역시나 비주얼 청순 그룹이라는 디어엔젤 멤버다운 외모였다.
그녀는 키스마이걸 세린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청순한 편으로 세린의 열화판이라고 불리는 멤버였다. 항상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하는지라 그냥 멤버 수를 채우는 요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진짜 예쁘긴 예쁘네. 역시 연예인이야.’
강전기는 아까 자신을 깎아내리는 기사를 읽고 다운됐던 기분이 약간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네 명의 여자 사이에서 혼자 있다 보니 청일점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한 분이 안 계시네요? 메인 보컬 한소진 씨가 없는 거 같은데요?”
“우리 팀 메인 보컬 이름도 아시네요?”
“그 정도는 기본이죠. 소진 씨 노래 잘하시잖아요.”
“네, 음… 소진이는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같이 못 왔네요.”
정미래가 말하는데 옆에 있는 주아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양주를 홀로 원샷했다.
“왜 그래? 지금 너 많이 마신 거 아니야?”
“괜찮아. 나 요즘 이 정도는 끄떡없어. 끅…….”
“참, 나… 얘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쯧…….”
강전기는 그녀를 부축하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술을 진탕 마시더니 아예 버릇이 된 것 같았다. 눈을 딱 봐도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멀쩡하게 생겨서 술은 무슨 주정뱅이처럼 마시고 있냐?’
드디어 주아라의 고개가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했다.
‘얼씨구…….’
“아… 죄송합니다. 얘 좀 눕혀야겠네요. 왜 이렇게 취했지?”
강전기는 주아라의 머리와 어깨를 손으로 받치고 소파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녀의 옷으로 상체를 덮어주니 옆에서 차가운 말투가 들려왔다.
“되게 잘 챙기시고 자상하시네요. 혹시 아라하고 사귀는 사이예요?”
강전기가 주아라를 눕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디어엔젤에서 제일 화려하게 생겼다는 지원희가 팔짱을 끼고 도도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원희는 기본적으로 청순하게 생기긴 했지만,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편이라 디어엔젤에서는 가장 화려한 미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멤버였다. 방송으로 봐서는 몰랐는데 지금 옆에서 보니 약간 시술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그게 무슨…….”
강전기는 지원희가 갑자기 황당한 소리를 해서 어이없었다.
‘얘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사귀는 사이냐고? 주아라는 멤버들한테 이런 소리를 전혀 안 하나?’
주아라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