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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비밀
강전기는 노답 3인방을 참교육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이화에 이어 오늘 디어엔젤 3인방까지 접수한 그는 점점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빙의 스킬로 포인트를 거의 다 소모했지만, 오늘 하루 만에 그 이상을 벌충했다. 요즘은 아주 스무스하게 스킬들이 추가되고 있었다.
게임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폭풍 레벨 업!
하루하루가 바빴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창작 활동으로 정신적 만족을 얻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섹스로 풀었다. 인생이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전생에선 진짜 알지 못했다.
새벽 네 시 삼십 분에 침대에 누워 파인트 차트를 슬쩍 봤더니 핑크엔진의 곡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다른 곡들도 꽤 괜찮은 순위였다. 아무래도 방송의 힘이 큰 것 같았다.
‘역시나 공을 들인 노래는 오래가는군.’
핑크엔진의 데뷔곡은 강전기가 온 힘을 기울인 역작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갔지만 레몬캔디와 클로버즈의 선전은 의외였다. 노래 자체야 잘 만들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을 많이 쓴 곡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자정을 기해 발표된 네임드로즈 신디의 솔로 싱글인 「Real me!」가 SNS를 타고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제 곧 차트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핑크엔진과 1위를 다툴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아 더블케이에 곡만 보냈더니 알아서 싱글을 발매한 것이다.
‘너무 내 곡만 나오는 거 아냐?’
대중들에게 자신의 노래가 연속으로 노출되어 혹시나 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써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내일은 3차 경연에 쓸 팝송을 골라야지. 음… 피곤하네.’
* * *
강전기는 느지막하게 사무실에 출근했다. 일요일이라 회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는 커피를 한 잔 내린 후 녹음실에 들러 스트리밍이나 미튜브를 뒤지며 곡을 검색하고 있었다.
「걸그룹 4차 대전」은 메인이 경연이긴 했지만 각 그룹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도록 색다른 볼거리가 기획되었다.
5화 방송은 2차 경연 비하인드 스토리와 릴레이 댄스 촬영 그리고 게임 대회가 방송될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카오스 그룹도 스폰서로 참여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6화 방송은 개인전이었다. 댄스, 랩, 보컬 세 가지 파트로 대회가 열리는데 아무나 하나의 분야를 선택해서 출전할 수 있었다.
개인전은 프로듀서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순수한 개인전의 성격으로 진행되며 꽤 큰 상금이 걸린 대회였다. 분야별로 1등이 천만 원, 2등이 5백만 원, 3등이 2백만 원이었다. 현역 아이돌과 가수 선배 패널 30명이 투표해서 수상자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애들이 잘해야 할 텐데…….’
계속해서 약 2주간은 3차 경연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느긋한 것도 사실이었다.
저녁때까지 계속해서 적당한 곡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여러 개의 후보만 추려냈을 뿐 딱하고 꽂히는 게 없었다. 경연하면서 처음 닥친 고비였다.
“하아…….”
강전기는 일단 클로버즈의 곡으로 신나는 업 비트의 곡을 찾고 있었는데 현재까지 확정적인 곡이 바로 「Uptown Funk」와 「Happy」였다.
‘둘 다 엄청나게 유명한 곡이긴 한데 뭐가 좋을까? 흐음…….’
사실 너무 유명한 곡을 고르면 자칫 다른 팀과 노래가 겹칠 가능성도 존재했다.
물론 제작진이 일주일 전 경연곡을 물어보고 중복되는지 체크하긴 했지만 만약에라도 겹치는 날에는 자강두천을 하거나 곡을 바꿔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일단 「Uptown Funk」는…….”
영국 출신 프로듀서 마크 롭슨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자 객원 가수로 브루노 마커가 참여한 곡으로 2010년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였다. 무려 14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곡이며 미튜브 34억 조회 수를 달성하고 있는 초인기 동영상이었다.
‘확실히 신나긴 해. 사람들이 익숙해서 거부감이 없지. 그런데 임팩트는 없다. 편곡만 잘하면 노래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반면에 「Happy」는…….”
미국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티렐 윌리엄스의 메가 히트곡이었다. 「Uptown Funk」와 비슷하게 신나는 곡이었다. 듣자마자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그런 곡이랄까? 신나는 분위기는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약간 문제가 있었다. 먼저 흥겹긴 한데 약간 잔잔하다. 지금까지 강렬하고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였던 클로버즈의 이미지와 약간 달랐다.
또한 노래가 강한 곡이 아니라 가사의 영어 발음이 상당히 중요했다. 강전기가 파악하기엔 클로버즈에 영어를 좀 하는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가 그 곡을 제대로 불렀을 때 키가 은근히 높았다. 곡의 특성상 얇은 목소리로 불러야 해서 춤추면서 하면 난도가 상당히 높았다.
물론 키를 낮추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강렬한 맛이 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맛을 살리려면 곡의 난이도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아마 호흡하다가 숨이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전기는 미튜브에 들어가 여성들이 커버한 곡을 들어보고 고개를 휘휘 가로 저었다.
‘아… 안 되겠어. 「Happy」로 했다가는 애들 잡겠어. 그냥 「Uptown Funk」로 가자.’
강전기는 일단 클로버즈의 노래로 「Uptown Funk」를 낙점했다. 제발 다른 팀들이 하질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클로버즈가 이 곡을 한다고 했을 때 상대방이 더 급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경연 팀 중 이 곡에 가장 잘 맞는 그룹이 바로 클로버즈였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은 핑크엔진의 선곡이었다.
‘2차 경연의 곡이 너무 강했으니 이번에는 좀 느린 곡으로 가볼까?’
그는 핑크엔진의 곡으로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 상당한 가창력이 필요한 그런 곡을 검색했다.
‘「Open Arms」!’
눈에 번쩍 띄는 곡을 발견했다. 미국의 록밴드 저니의 히트곡이었다. 자신도 많이 들어본 적 있는 곡이었다. 보이즈 투 맨, 머라이어 캐리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더욱 유명한 곡이었다.
‘오케이! 이거다. 핑크엔진의 가창력을 최대한 돋보이게 만드는 곡이야.’
강전기는 원곡보다는 R&B 보컬 그룹인 보이즈 투 맨 스타일의 편곡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곡을 생각하다가 뭔가 특별한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흐음… 그걸 가져오면 꽤 괜찮겠는데?’
마지막으로 레몬캔디가 부를 곡이었다. 몇 시간 동안 고민했지만 뭔가 애매했다.
사실 레몬캔디 같은 힐링 그룹은 한국과 일본을 빼면 전무한 콘셉트의 가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다. 이것저것 많은 곡을 듣고 영상을 봤지만 뭔가 꼭 하나씩 문제가 있었다.
미튜브와 웹 브라우저에 계속해서 레몬캔디와 팝송을 검색해서 그랬을까? 미튜브 알고리즘이 강전기에게 하나의 동영상을 추천해 줬다.
그것은 예전 「걸즈 스쿨」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비하인드 영상 같았다. 몇 명이 모여서 편하게 노래를 부르는 짧은 영상이었다. 뭔가 방송국 카메라가 찍었다고는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인듯했다.
장소는 악기가 비치된 노래 연습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이보경이 기타를 잡더니 뮤직 스탠드(악보 받침대)에 있던 악보를 보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었다. 주변 동료들이 모두 다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라? 이보경… 과학고 출신이라 그런가? 별의별 특기가 다 있구나. 피아노랑 바이올린도 연주할 수 있다고 했지?’
그러자 그 곡을 아는 정우리가 노래를 가볍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김초희와 다른 친구들도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유리는 덩달아 키보드 위에 있는 악보를 보고 코드를 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차은성이 자신의 자리에서 잼베처럼 탁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연주한 곡은 잘한다고 하기엔 뭐한 그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전기는 너무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오케이! 그래. 이거다! 됐다!”
‘아니? 그런데 왜 이런 게 방송에 안 나온 거지? 나왔다면 꽤 화제가 됐을 텐데…….’
사실 해당 영상은 「걸즈 스쿨」에서 탈락한 연습생이 미튜브를 시작하면서 조회 수를 위해서 자신이 찍었던 영상을 푼 것이었다.
강전기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곡을 만지던 그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헉… 열 시… 미친…….”
아직 시간이 충분한데도 너무 달린 것 같았다. 최근 밤일로 연달아 무리한 상황인데 오늘도 이렇게 엄청나게 심력을 소모하다니…….
갑자기 온몸에 피로가 엄습했다.
“어우우우…….”
그는 기지개를 쭉 한번 켜고 가방을 챙긴 뒤 녹음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팝송 때문에 약간 고비가 오긴 했는데 그럭저럭 일이 잘 풀린 것 같았다.
내일까지 곡을 완성하고 그다음 날인 화요일에 세 팀을 부르기로 했다.
그는 녹음실의 불을 끄고 컴컴한 사무실 통로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까 인터넷에서 봤던 사람이 생각났다.
「Happy」를 작곡한 티렐 윌리엄스.
솔직히 노래만 알지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사람이었다.
수많은 유명 가수에게 곡을 주고 제작하면서 밴드를 하기도 하고 솔로 가수로도 활동한 사람이었다. 프로듀서로 20년간 최정상이었고 가수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룬 그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였다.
‘현재까지는 진짜 나보다 더한 천재잖아?’
역시 천외천이었다. 그의 이력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프로듀서에 솔로 가수라… 미쳤네.”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문득 자신도 가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강전기였다.
‘아… 본판이 노래는 그리 썩 잘하지 못했지.’
그는 액셀을 밟으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어라?’
자신에게는 우주의 아카식 레코드에 대한 접근 권한 및 다운로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허… 그게 있었군. 하하하…….”
* * *
집에 도착한 강전기는 피곤이 몰려오는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무리했는지 몸이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으으으… 식빵 위에 녹아버린 치즈 같은 느낌이다. 온몸이 노곤해.’
체력이 인간계 끝판왕이었지만 최근 들어서 약간 무리를 한 그였다.
피곤했지만 자정이 안 된 이른 시간이라 누운 상태로 매일 읽던 웹 소설을 몇 편 읽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잠들었다.
고오… 고오…….
방에는 강전기가 곤하게 자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한 15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강전기의 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 진동 소리와 깨톡이 동시에 터지는 소리였다.
“으으으으…….”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어 죽겠는데 전화기가 계속 울리는지라 신경질적으로 눈을 뜬 강전기였다.
“아니, 이 씨!! 오밤중에 누구야. 안 받으면 그만해야 할 거 아냐! 진짜 매너 똥이네. 어떤 새끼야?”
강전기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스마트폰을 잡아 들었다. 깨톡은 이미 수십 통의 메시지가 도착한 상태였고 발신자명에 성기호의 이름이 떠있었다.
“내 성기호 이놈의 자식을 그냥!”
강전기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인마! 오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 어?”
―전기야, 미안한데 화내지 말고 들어봐. 너 지금 실시간 검색어 좀 봐라. 빨리! 그리고 얼른 전화 줘.
뚜루룽…….
성기호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뭐 이런…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 줬나? 쩝…….”
진짜 꿀잠 모드에 진입한 상태였는데 전화를 받고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그는 설정에 들어가 방해 금지 모드를 켰다.
“짜증 나네. 에이…….”
전기가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탁자에 던져놓았다.
침대에 다시 누워 잠을 청하려 했지만, 성기호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었다.
‘무슨 일이 있길래 성기호 놈이 저러지? 북한이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야?’
포털 사이트를 눌러 실시간 검색어를 찾아봤다.
“크헉……!!”
강전기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 실시간 검색어 순위 #
1. .EXE 일렉케이
2. 일렉케이 뉴욕 영상
3. 일렉케이 신디
4. 일렉케이 여자 친구
5. 일렉케이 하이 킥
6. 에릭, 일렉케이 미튜브
7. 「걸그룹 4차 대전」 일렉케이
베일에 싸여있었던 뉴욕의 그 날 밤 영상이 모자이크 없이 미튜브에 업로드되었다. 그것도 서구권 최대 KPOP 사이트인 OurKpop 채널에 올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