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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 좀 늦었네요.
개인전 출격!
첫 번째 주자로 나선 G파워의 메인 댄서는 대단했다. 역시나 오래된 생강은 매운 법일까? 초일류 회사에서 5년 이상 연습생으로 살아남아서 그런지 누가 봐도 탄탄한 개인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날씬했지만 파워풀했고 빨랐으며, 각 동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는 재능이 있었다. 거기다 카리스마까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여성스러운 와킹으로 시작하더니 비트가 빨라지면서 80~90년대 나이트에서 많이 보던 신나는 라킹 댄스를 선보였다.
그 변화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라킹은 말 그대로 몸을 잠그는 동작과 크게 움직이면서 몸을 업, 다운하는 동작이 많은 장르로 힘이 없으면 맛이 살지 않는 그런 댄스였는데 SSJ의 하니가 그 맛을 아주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강전기는 하니의 무대를 보며 케이팝의 저력을 실감했다. 한국은 정말로 이런 인재들이 수두룩하게 많은 무서운 나라였다.
예전 영국 젊은이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축구 선수 아니면 록스타라는 대답이 많았다고 하는데… 한국은 아이돌 아니면 미튜버라고 했으니 말 다 한 셈. 그야말로 100만 아이돌 시대인 것이다.
‘내가 알기엔 메인 댄서 말고도 리드 보컬이라고 하던데…….’
하니는 리더 이유진에 버금가는 보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진짜 무섭다. SSJ 엔터테인먼트! 과연 국내 최고라 할 수 있구나. 방심하면 안 되겠어.’
어떻게 보면 G파워가 재수가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일렉케이의 명성이 급격하게 부상하는 시기에 맞춰 데뷔하다니…….
“와… 진짜 SSJ 애들도 대단하네요. 거의 춤이 장인 수준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명불허전이네요.”
나인테일 프로듀서인 한수호도 무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큰일 났다. 우린 쟤보다 잘하는 애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방금 말한 사람은 강전기 옆에 앉은 김찬기 작곡가였다.
“그래도 해봐야 알죠. 열두 명 나왔는데 3등 안에 들면 상금도 주잖아요.”
“참, 나.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무슨 이런 걸 하면서 상금을 주냐?”
“왜요. 애들 입장에서는 짭짤하죠. 안 주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후배님, 그런데 궁금한 게 신디는 왜 찬 거야?”
강전기는 김찬기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차긴 누가 찹니까? 오해입니다. 작곡가님, 어디서 이상한 뉴스 같은 거 보셨어요?”
“아무리 봐도 찬 거 같던데? 내가 신디 쇼케이스 동영상까지 다 본 사람인데… 아, 그리고 곡 좋더라. 아주 요즘 터지네! 터져. 카… 나도 왕년에 진짜 미친 듯이 히트곡을 써냈는데 말이야. 그때는 발매하면 기본이 앨범 백만 장이었지.”
“그 돈 다 어디다 쓰셨어요?”
“뭐, 사기도 당하고… 친구도 빌려주고… 부모님도 드렸다가… 후… 말을 말자. 내가 그렇게 날린 돈만 50억이 넘는다.”
“허이고…….”
강전기는 김찬기의 넋두리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돈을 도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입이 떡 벌어졌다.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한수호도 놀라서 눈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아픈 이야기는 그만해야지. 후배님, 그런데 오늘 콘셉트는 뭐야? 오늘 인터뷰 같은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쫙 빼입고 왔어?”
“아… 제 코디가 한번 입혀준 건데요. 좀 과했나요?”
“허어… 완전히 무슨 연예인 다 됐네! 다 됐어. 블랙 슈트 그거 어디 거야? 엄청나게 고급스럽네. 깃에 무슨 왕가의 문양 같은 게 들어가 있잖아. 와, 멋지네. 어깨에 이거 뭐야. 무슨 공작 깃털 같은 자수 무늬인가? 어라? 흰색 와이셔츠에 카라에 금빛 문양 뭐야. 가지가지 한다, 진짜.”
“뭘 그렇게 디테일하게 보세요. 창피하게시리…….”
“부러워서 그러지.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싶다. 그렇게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 후배님아.”
“…….”
“피디님, 그런데 그 은빛 십자가 목걸이는 어디서 사셨어요? 탐나네요.”
한수호가 강전기의 목에 걸린 액세서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모, 몰라요. 패션에 대해서는 그만 물어보세요. 그냥 주는 대로 입고 나온 거니깐!”
정말이었다. 황아영이 급하게 코디해 준 옷이었다.
“약간 귀족풍 마에스트로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딱 그런 모습이야.”
‘아, 씨… 괜히 너무 화려하게 입고 왔어. 대충하고 올 걸 그랬나?’
두 번째 주자인 나인테일의 메인 댄서와 퓨리틴의 메인 댄서의 무대까지 모두 끝났다.
두 명은 동일하게 와킹을 베이스로 한 춤을 선보였고 역시나 꽤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 다 기럭지가 길고 몸매도 좋아서 와킹 특유의 팔을 쭉쭉 뻗는 동작들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섹시했다.
“어우… 난 댄스는 잘 몰라서 말이지. 그게 그거 같고…….”
역시 아재인 김찬기가 연달아 무대를 지켜보더니 진이 빠지는 듯 고개를 의자에 가져다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강전기도 비슷했다.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예쁘면 됐지… 뭘 그리 힘을 주고 춘단 말인가. 관심이 별로 없는 걸 보려니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지고 있었다.
“자! 다음은 레몬캔디의 언니 잡는 막내입니다. 공소연!”
갑자기 무대가 컴컴해지더니 날씬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공소연이 무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EXE의 「너는 나를 지킨다」였다. 그녀는 이 노래에 상당히 가벼우면서도 날렵한 뉴스타일 힙합 댄스를 췄다.
레몬캔디에서는 체력은 약해도 나름 댄싱머신인 모양! 솔직히 어리게만 보였던 공소연이 이런 춤을 추니 나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소연이가 키가 161cm였나? 팀에서 제일 작았는데… 지금은 키가 더 큰 것 같아. 여자 평균보다는 분명히 크고 말라서 확실히 스타일이 좋아. 오구, 오구 내 새끼… 언제 이리 컸누. 춤도 너무 맛나게 추잖아? 일단 선곡부터 먹고 들어가네.’
강전기는 일단 공소연이 자신의 노래를 선곡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 무대도 나름 전략을 잘 짠 것 같았다. 남자 아이돌들이 추는 뉴스타일 힙합이었는데 춤도 꽤 괜찮아 보였다.
‘흐흐… 나한테는 소연이가 무조건 1등!’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단 말인가. 현재 프로듀싱하는 그룹에서 자신의 노래를 선곡해서 나오니 그냥 무조건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여러 다른 참가자들이 특색 있는 댄스를 보여줬지만, 강전기의 눈에는 첫 번째 하니의 춤과 네 번째 공소연의 춤이 제일 좋았다. 역시나 올드스쿨 스타일을 선호하는 강전기였다.
여러 명의 무대가 지나가고 열한 번째 주자로 핑크엔진의 레이카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극…….”
“오우야…….”
레이카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강전기 주위의 남자 프로듀서들이 다들 숨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레이카는 허리가 살짝 드러나는 보라색의 하늘하늘한 점퍼를 입고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 레깅스 같은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힙합 스타일의 비트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그녀의 팝핀 댄스가 시작되었다.
“우와아!!”
심사위원석의 현역 아이돌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인형이 부르르 떠는 것 같은 팝핀 기술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같은 움직임이었다.
‘와, 미친! 내가 능력치를 최하로 바로잡아 놓았는데도 저 정도라니!’
비트가 강렬해지며 레이카가 몸을 부르르 떨다가 휙 돌면서 보라색 점퍼를 휙 하니 벗어 던졌다. 그녀는 허리가 훤히 보이는 흰색 탱크톱을 입고 있었는데 선명한 복근이 눈에 팍 들어왔다.
“와아!!”
중간중간 팝핀이 아니라 크럼프와 같은 동작들이 터져 나왔는데 사실상 팝핀이나 크럼프는 여자들이 하기 힘든 종류의 춤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동작들은 강한 근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는 있는데 뭔가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레이카는 달랐다. 그녀의 팝핀 동작에는 절도가 있었고 간간이 보이는 짧은 크럼프 동작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심사위원, 특히 남자 아이돌들은 휘파람을 불며 완전 난리 난 상황이었다. 거기다 몸매까지 건강한 느낌으로 완벽했으니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마지막으로 댄스 배틀에서나 나오는 바닥을 이용하는 비보잉 춤으로 마무리하는 그녀였다.
“우와아아아…….”
관객석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려 퍼졌다. 심사위원이 많지도 않은데 아주 난리가 났다.
“피디님, 레이카 미쳤네요. 무슨 남자 춤을 저리 잘 추죠? 저 정도면 세계적으로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저도 저 정도일 줄 몰랐어요.”
“저번에도 엄청난 점프를 보여줬잖아요. 대박이네요, 진짜. 레이카는 노래도 잘하던데…….”
“흐음…….”
‘글쎄다. 그래도 나는 소연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핑크엔진은 이미지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걸크는 내 취향이 아니야. 예쁘고 섹시하고 귀여운 춤이 있는데 왜 하필 남자 같은 춤을 추는 거야. 쩝.’
의외로 춤에 있어서 호불호가 심한 강전기였다.
“자… 댄스 부문의 마지막 주자입니다. 클로버즈를 거의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멤버죠? 춤의 신동 이태리!”
피아노 선율이 섞인 EDM풍의 빠른 하우스 음악이 울려 퍼졌다. 무대 위로 걸어 나온 이태리는 올블랙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댄스 동작을 취하자 심사위원들이 놀란 눈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추는 춤은 하우스였는데 이 하우스란 춤이 경쾌하고 가볍게 추지만 동작들이 상당히 빠르고 비보잉이나 라킹 등 댄스 동작들이 총망라된 포괄적인 댄스 장르였다.
이태리의 동작은 확실히 다른 참가자와 달랐다. 일종의 예기 같은 게 느껴졌다.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완급 조절이 음악에 완전히 동화되어 보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이카와 같은 팝핀, 크럼프 스킬들은 없었지만 정말로 동작 하나하나가 거의 대가와 같은 수준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어… 이태리, 역시 S급 댄스 포텐답구나. 그야말로 사기적이네. 딱 봐도 댄스가 몸에 체화돼 있다는 게 느껴진다.’
경쾌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강렬한 하우스 비트와 함께라서 더욱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후우… 소름… 미치겠네.’
강전기는 팔에 돋아난 소름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려왔다.
[띠링… 개체의 어빌이 MAX 포텐을 달성하였습니다. 드디어 댄스 능력 S급에 올랐습니다.]
이태리의 몸에 있던 나노 머신이 강전기에게 정보를 알려왔다.
“컥… 미친…….”
하이라이트로 치닫는 춤을 보고 다들 얼이 빠지고 말았다. 정식 연예기획사도 아니고 전대물을 찍기 위해 걸그룹 트레이닝을 받았을 뿐인데 그 어떤 참가자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재능이구나. 이태리… 재능충이면서 성실하기까지 하다니! 이러면 절대 못 이기지, 못 이겨.’
마지막으로 한 손으로 추는 추억의 나이키 춤을 끝으로 무대가 마무리되었고 그야말로 폭풍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후배님, 이거 레이카 위험한 거 아닌가?”
김찬기 작곡가가 이태리의 무대를 보고 한마디 했다.
“그러게요. 진짜 미친 듯 잘 추네요. 뭔가 클래스가 다른 느낌이에요.”
강전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누가 이기든 집안싸움이었다.
“와, 레전드네. 우리나라에 춤 잘 추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클로버즈 이태리 씨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댄스 부문에 개인전이 모두 끝났습니다. 참가자분들 전부 무대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실력이 대단하네요. 해철 씨, 어떻게 보셨나요?”
“전반적으로 정말 너무 잘했고 특히 몇몇 친구들은 너무 잘 춰서 진짜 농담이 아니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도 춤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범상치 않은 건 알겠더군요.”
“판단은 모두 저 앞에 계신 현역 아이돌과 가수 선배님들이 하시기 때문에 아주 공정한 심사가 내려질 것 같습니다.”
“자, 지금 제작진이 결과가 다 집계되었다고 하네요.”
“뭘 어떻게 하길래 이렇게 빨리 끝나나요? 사기 아닙니까?”
“어허… 그런 망측한 말을… 스마트폰 앱으로 점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집계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해 주시고요.”
“네, 지금 발표하라고요. 알겠습니다. 「걸그룹 4차 대전」 개인전입니다. 댄스 부문 1, 2, 3위를 보여주세요!”
무대 뒤 전광판에 3위부터 1위까지 이름이 번쩍하며 나타났다.
결과가 나온 순간!
강전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들어 천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