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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이 모든 개인전은 이것을 위해 쓴 빌드업에 지나지 않았다.
일렉케이 비공식 데뷔
심해철의 뜬금없는 노래 요구에 강전기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경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강전기는 조금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마이크를 들었다.
“죄송한데 다른 걸 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제가 해달라는 건 무조건 하나를 하셔야 해요.”
강전기가 살짝 뺐지만 심해철은 집요했다.
“잠시만요, 해철 씨! 왜 노래를 고집하시는 거죠?”
옆에 있던 MC 정상균이 대신 질문했다.
“아, 사실 제가 저희 멤버들이랑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일렉케이 프로듀서는 못 하는 게 뭘까 하고 말이죠. 지금 나온 것만 보세요. 작곡, 프로듀싱은 일단 본업이니 잘하는 게 당연하고 키도 크지, 얼굴도 잘생겼지, 몸도 좋지, 운동도 잘한다면서요? 축구는 거의 프로급으로 한다고 하던데요? 또 젊은데 돈도 많죠. 대학교도 좋은 데 다니니 머리도 좋은 것 같고…….”
“아니, 해철 씨.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 거죠?”
“끝까지 들어보세요. 그래서 저희끼리 그럼 이 사람은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 그러니까 일렉케이가 못 하는 걸 찾고 싶다는 탐구에서 나온 요청 사항이군요?”
“뭐, 그런 거죠.”
“제가 보기엔 그냥 약점을 찾아보자,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을 거 같은데요?”
“어허… 방송이라… 제가 좀 순화했지만 뭐, 비슷합니다. 사실 저희 회사 연습생 출신이었고 소문을 들어보니 그룹 내 센터 포지션이었다고 하던데 원래 센터들은 메인 댄서와 함께 춤을 좀 잘 춰야 합니다.”
“아하… 그렇겠네요. 중앙에 서서 춤을 못 추면 사람들이 눈치챌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다가 나온 게 노래입니다.”
“호오… 일리 있네요. 센터급 외모에 노래마저 잘하는 인재라면 웬만하면 솔로로 나오잖아요.”
두 MC는 서로 만담하듯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편, 강전기는 두 MC가 이야기하는 동안 3성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젠장… 어쩔 수 없군. 포인트는 아깝지만, 다시 모으면 된다. 하지만 무대 위의 흑역사가 될 영상은 영원히 남지. 어떻게 쌓아온 이미지인데 한순간에 웃음거리가 될 순 없다.’
[AI야! 3성 스킬 목록 좀 띄워줄래?]
강전기가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그의 망막으로 3성 스킬 목록이 떴다.
★★★ 빙의 (Possession) ▶ 세부 정보 열람
[현재 1슬롯에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추가할 다른 리스트를 보여드릴까요?]
‘보여줘!’
강전기가 생각을 마치자마자 망막으로 관련 정보가 주르륵 뜨기 시작했다.
‘옳지. 카테고리가 여기 있군.’
[가수]
그는 어렵지 않게 수백 개의 카테고리에서 가수를 찾아내었다. 가수 카테고리를 선택하자 아카식 레코드에서 데이터를 로드할 수 있는 엄청난 수의 이름들이 주르륵 로드됐다.
‘윽… 젠장, 못 찾겠다. 검색 기능 없어?’
[아카식 레코드는 인과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검색 기능 따위는 절대 따라올 수 없으며 인연이 있는 항목이 자동으로 눈에 띄게 됩니다. 선택하십시오.]
‘이…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 순간 강전기의 눈에 자신이 꼭 빙의했으면 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이, 이럴 수가… 형님… 큭…….’
갑자기 떠오른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두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방… 방금 그 이름을 선택한다.’
[알겠습니다. 선택으로 3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강전기는 아카식 레코드에서 30포인트를 들여 그 데이터를 구매했다. 그러자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두 번째 슬롯에 데이터가 100% 로드되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노래는 끝났다.’
두 MC가 만담을 끝내고 다시 무대 밖으로 고개를 돌려 강전기를 불렀다.
“프로듀서님! 피하실 건가요? 아니면 남자답게 공약을 지키실 건가요.”
강전기는 그 질문을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조정실에서 한정석 책임 피디가 카메라에 사인해서 그의 얼굴을 풀샷으로 잡게 했다.
‘오오오! 그림 겁나 좋다. 역시 일렉케이 얼굴이 화면에 많이 나올수록 시청률이 올라가는 게 맞는 듯. 빅데이터가 거짓말을 할 리 없지.’
뭔가 우수에 찬 촉촉한 눈이었다. 가느다란 속눈썹, 새하얀 흰자위에 검은 눈동자가 서클렌즈를 낀 것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뮤직비디오 초반 등장 신 같은 분위기였다.
‘하윽… 존잘!’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현역 여자 아이돌들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일렉케이는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딱 한 곡만 하겠습니다.”
“자… 박수!”
“와아아아…….”
강전기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그의 모델같이 쫙 빠진 몸매가 이제야 드러났다.
황당한 것은 한수호와 앉은키가 비슷했다는 것이다. 키는 거의 10~15㎝가 차이 났으니 말 다 했다.
무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누가 먼저 외쳤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일렉케이!”
“일렉케이!”
“일렉케이!”
이 순간 강전기는 크리스티안 모드를 100% 활용하여 마음속의 떨림을 차분하게 제어한 상태였다. 그는 무대 뒤 라이브 밴드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기타리스트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무래도 강전기가 노래를 요청했는데 밴드의 리더가 가능하다고 대답한 것 같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드디어 MC들 옆에 섰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핑크엔진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기념 일렉케이 프로듀서의 마지막 특별 무대입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두 명은 황급히 무대 밖으로 내려갔다. 무대에는 곧 경연 때와 같은 조명이 켜지고 잔잔한 키보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1번 카메라! 일렉케이 얼굴 풀샷 잡아! 빨리!”
촬영 팀은 아주 난리 난 상황이었다.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리허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어쩔 수 없다.’
“모든 촬영 팀 전부 다 카메라 켜고 촬영을 시작하세요. 전신 샷, 얼굴 샷 나눠서! 그리고 심사위원들과 프로듀서, 경연 참여 걸그룹들까지 반응 다 찍으세요. 카메라가 모자라면 스마트폰으로라도 찍어요.”
한정석 피디가 차분하게 지시를 내리자 경연에는 이골이 난 스태프들이 알아서 척척 움직이기 시작했다.
걸그룹들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떨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현역 아이돌들은 어떻게 하나 보자는 호기심에 찬 눈빛이었으며 김찬기 작곡가와 간지 프로듀서는 드디어 일렉케이가 망신당할 것 같아 아주 재밌다는 듯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보드의 구슬픈 소리와 함께 강전기의 노래가 시작됐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조용해졌다. 설마 일렉케이가 이 어려운 곡을 하다니…….
일렉케이가 부른 곡은 록의 레전드 김강호의 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들도 버거워하는 고음이 가득한 곡이었다.
그는 아카식 레코드에서 8282 평행 차원의 가수 김강호를 선택했던 것이다. 강전기가 전생에 가장 좋아했던 가수였고 극심한 대인기피증이었음에도 실제 라이브 공연장에도 갔던 존경하는 가수였다.
일렉케이는 첫 소절을 아주 깨끗하게 불렀지만 아무래도 성대가 아주 완벽히 똑같지 않았기 때문에 김강호보다는 약간 더 파워풀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성기의 김강호와 거의 흡사한 수준이었다. 이른바 두꺼운 미성!
눈을 감고 ‘너의 단 한 사람’이라는 가사를 뱉을 때 그의 입과 성대 주변이 마치 악기처럼 정교하게 바이브레이션을 했다.
이어서 눈을 뜬 일렉케이의 눈에서 마치 눈물이 쏟아질 듯 슬픈 표정이 터져 나왔다.
일렉케이의 보컬은 점점 높아지고 강해지고 애절해졌다. 끝 음에서는 살짝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났다.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가 점점 강렬해지자 조정실의 한정석 피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있었다.
‘미… 미친… 이건 최고 시청률 감이다. 대박이야! 일렉케이의 가창력이 이 정도라니…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다. 충격이야.’
일렉케이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45도 각도로 몸을 틀어 로커들이 부르는 포즈로 노래를 불렀다.
걸그룹 멤버들은 완벽한 외모와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의상을 입고 엄청나게 어려운 노래를 그냥 쉽게 쭉쭉 뽑아내는 일렉케이를 보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아악…….”
어떤 멤버는 가슴이 미어지는지 자신의 멱살을 꽉 잡고 상체를 웅크리고 있었다.
일렉케이가 온 힘을 다해 열창하며 김강호의 트레이드마크인 헤드뱅잉을 했다. 마치 전성기 김강호의 무대 매너를 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잠시 쉬어가는 브리지 부분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코러스 없이 애드리브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정석은 설마 이 곡을 원키로 부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서… 설마… 여기서 혹시 그것을 할 작정인가?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한정석의 걱정과는 반대로 일렉케이의 성대에서는 날카로운 고음이 엄청난 성량을 동반하여 폭풍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큭… 레전드 3단 고음!’
아이윤의 3단 고음이 아니라 김강호의 원조 3단 고음이 폭발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은 일렉케이의 노래를 들고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아나고 있었다.
3옥타브 도# ― 3옥타브 파 ― 3옥타브 솔#로 이어지는 스피커를 찢어버릴 듯 때리는 초고음이었다. 이 키는 웬만한 여자 가수들에게도 아주 힘든 고음이었는데 일렉케이는 김강호의 전성기를 무색하게 하는 파워풀한 고음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찢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곡이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성 가수들조차 버거워하는 3단 고음 뒤에 쭉 이어지는 3옥타브 레와 미의 향연 때문이었다. 하이 피치를 강하게 올리고 또다시 질러야 하는 힘든 마의 구간!
피겨 스케이트로 따지자면 트리플 악셀을 하고 다시 트리플 러츠, 트리플 토룹 점프를 연속으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강전기는 그것도 무리 없이 부르고 있었다.
김강호 특유의 45도 자세에 두 손 모아 마이크 포즈였는데 경연장의 모든 사람이 뭐에라도 홀린 듯 멍하니 일렉케이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실 원곡 가수인 김강호조차 원키로 생방송에서 전부를 부른 적이 전무했다. 3단 고음 부분을 하면 뒤는 AR을 쓰거나 뒤를 하면 앞은 1단 고음, 혹은 바로 3옥타브 솔#까지 바로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전기는 최강의 육체를 바탕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노래를 라이브로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나자 일렉케이는 눈을 감고 마이크를 잡은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엄청난 여운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자신이 강호 형님의 노래를 이렇게 부르다니… 꿈만 같았다.
‘흑흑… 형님…….’
강전기는 세월이 서글펐다. 가혹한 스케줄로 인해 세 번의 성대 결절을 겪은 한국의 록 레전드를 생각하니 눈가에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린 것이다.
“야! 1번 카메라 금방 그 장면 잘 잡았지?”
“피디님! 잘 잡았습니다. 걱정 마세요……. 대박입니다.”
“오케이! 오늘 레전드 찍었다. 스태프들 전부 보너스다. 내가 약속한다.”
“와아아!!”
책임 피디가 보너스를 공언하니 인이어로 스태프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렉케이의 노래가 끝났지만 스태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무대가 강렬했고 가창력이 엄청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완벽한 외모에 패션까지……..
“하아아…….”
누군가 여운을 느끼며 한숨을 쉬는 게 들려왔다.
노래를 들은 여자들은 노래 가사처럼 자기만을 몰래 사랑하는 남사친을 떠올렸다.
‘영원히 나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에 모인 여자들이 모두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강전기는 홍익미녀가 모토인 사람이었다.
오는 여자, 아니… 오는 미녀 안 막고 가는 미녀 안 잡는 스타일!
그는 북유럽의 귀족 크리스티안 모드로 좌중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눈이 하트가 돼버린 걸그룹 멤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후… 아주 맛이 갔구만. 나 이런 사람이야.’
자신감이 가득 찬 일렉케이의 눈이 번뜩이고 그의 몸에서는 페로몬이 마구마구 뿌려지고 있었다.
‘세상의 미녀들아, 미안. 내 사전에 히로인은 없어. 이건 그냥 노래 가사일 뿐이야.’
조정실에서 한정석 피디와 같이 모니터링을 하던 김지영 작가는 일렉케이의 페로몬이 화면을 뚫고 몸으로 침투하는 느낌을 받았다.
“뭐…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