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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 엔터테인먼트
“시유야, 왜 그래? 어디 아프니?”
“아, 아니요. 그냥 살짝 걱정돼서요.”
최시유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킥킥… 우리 막내, 이 언니가 특강 좀 해줄까? 이런 건 어른인 내가 가르쳐야 해. 아앙…….”
김인하가 윙크를 날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자 주위의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렸다.
“…인하야, 넌 누굴 가르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무표정하게 있으면 돼. 괜히 오버하지 말고…….”
패션모델 분위기가 나는 인하는 무대에서 그냥 시크한 표정만 지어도 충분한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기세였다.
“피디님! 왜요. 저 이래 봬도 팬들한테 섹시 계열이라는 소리 듣고 있거든요!”
“떼기! 섹시는 무슨! 앞으로 나한테 그런 소리 하면 혼난다.”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인하야, 그만 좀 해. 시끄러워.”
“야! 이다미, 넌 나랑 같은 계열이잖아.”
“…피디님, 리더 말은 무시하세요. 이번 곡은 제가 캐리할 테니 걱정 놓으시고요.”
이다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만 믿으면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 다미야!’
다미의 저 든든한 모습. 이화와 쌍벽을 이루는 몸매에 얼굴에서부터 야릇한 느낌이 드는 저 가공할 섹시함이라니……. 그야말로 고양이상의 표본. 핑크엔진에서 섹시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스다운 모습이었다.
중단발의 그녀는 눈매를 치켜올리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피디님, 제가 안무 좀 손봐도 될까요?”
“응? 안무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많이는 아니고 포인트 부분만 좀 바꿔볼 생각이에요. 어제 고민 많이 했거든요.”
“오케이! 그래, 그럼 다미가 한번 바꿔봐.”
“감사합니다!”
이다미는 신난 모양인지 강전기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그리고 시유야, 넌 괜히 억지로 연기할 필요 없어. 그냥 원래 너답게 표현해도 충분해. 예전에 유명했던 ‘미스 S’ 알지? 그 그룹에서도 가장 인기 많았던 하니가 섹시 큐티 콘셉트로 나온 적이 있었거든.”
“아! 하니 선배님이 그때 미성년자였어요?”
“그래, 그때 노래가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중 3인가? 고 1인가였을걸?”
“와, 그렇게 어렸었나요? 몰랐어요.”
“그래, 그러니까 괜히 어른 흉내 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 알겠니?”
“네!! 알겠습니다. 헤헤… 피디님 덕분에 걱정이 좀 줄었어요.”
“좋아. 자, 그럼 우리 이제 노래 연습 좀 해볼까? 어제 원곡으로 연습 좀 해봤지?”
“네!!”
“좋아. 그럼 우리 리더부터 시작해 볼까? 일단 돌아가면서 다 불러보고 파트 배분하자.”
강전기의 지시에 따라 김인하가 녹음 부스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그다음 레이카, 이다미, 시유까지 차례로 녹음이 이어졌다.
‘음… 이건 뭐, 게임 끝났는데?’
강전기는 멤버들의 노래를 듣고 얼굴이 평온해졌다. 이 압도적인 안도감. 1티어급 외모에 미친 가창력 거기에 자신의 끝내주는 편곡까지…….
거기다 마지막 표정 연기까지 더해지면 거의 무대를 찢어버릴 것 같은 포스였다.
‘아니… 이거 괜히 나인테일한테 미안해지는데? 이 정도로 해버리면 원곡 가수가 무안하지. 허, 참… 이 녀석들이 ‘적당히’가 없네. ‘적당히’가…….
아빠 미소를 한 강전기가 멤버마다 보컬 특성에 맞게 파트를 적절히 배분하고 있었다.
‘좋아! 레전드 한번 찍어보지, 뭐.’
* * *
드디어 마지막 생방송 무대가 있는 토요일 오후였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고양체육관에 모여 생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스태프와 PD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책임 PD는 어느 때보다 깐깐하게 카메라 워크와 출연자 동선을 파악했다.
“자자! 긴장들 해. 마지막 생방송이야. 야! 조연출! 저거 뭐야. 아까 치우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바로 치우겠습니다.”
리허설을 진행하는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얼이 빠져있는 이곳에서 유독 한 사람만 평온한 얼굴로 라테를 홀짝이고 있었다.
“역시 생방송은 힘든가 보네요.”
브라이언 정이 정신없어 보이는 제작진들을 지켜보며 강전기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 정 피디님은 이런 거 처음이시죠? 저는 「걸즈 스쿨」 마지막 생방송 할 때 여기 왔었거든요. 그때도 똑같이 이런 분위기였죠.”
“아하… 일렉케이 프로듀서님은 경험이 있으시군요.”
“뭐, 그렇다기보단 혹시 흘린 멤버라도 스카우트할 수 있을지 기웃거린 거죠. 마치 하이에나처럼요.”
“하하… 그거참 잘생긴 하이에나네요.”
브라이언 정과 강전기가 프로듀서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후우…….”
카오스 ENT의 브라이언 정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왜요. 많이 걱정되십니까?”
“네, 저번 공연에서 꼴찌 했으니 암울하죠. 오늘 정말 여기 오기 싫었습니다.”
만약 시청자 평가까지 최하위를 하게 된다면 브라이언 정이 프로듀싱한 ‘퓨리틴’은 오늘 무대에 서지 못한다.
그는 왠지 파국을 직감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도 최종까지 온 게 어딥니까? 솔직히 신인이 이 정도 인지도를 쌓은 것도 엄청난 이득이죠.”
“그렇긴 한데… 휴…….”
브라이언 정은 그래도 답답한지 계속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제가 사람 보는 능력은 있는데요. 정 피디님은 앞으로 쭉쭉 히트곡을 써내실 겁니다.”
“제가요?”
“그럼요. 솔직히 대단하십니다. 최근 퓨리틴 데뷔곡을 들어보면 역시 브라이언 정이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마이하트 때보다 더 좋아지셨어요.”
“과, 과찬이십니다.”
강전기는 따뜻한 눈빛으로 정 피디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작업하시죠.”
강전기가 입가에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정 피디와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회사가 커지면 자기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작곡가를 영입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인맥이라도 넓혀놔야 했다.
“당연히 저는 대환영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정 피디님.”
“강 피디, 나는?”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유앤아이 ENT의 김찬기 프로듀서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김 피디님도 환영이죠. 피디님이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시잖아요.”
“그럼, 아직 안 죽었지. 암! 그리고 내가 히트곡이 좀 많잖아. 하하하…….”
그는 강전기의 칭찬에 기분 좋은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탈락 1, 2위 후보들이지만 김찬기 프로듀서도 괜찮지. 나이가 들었어도 수준 높은 결과물을 뽑아내잖아. 저런 건 진짜 본받을 만하지. 그리고 예전 곡들을 가져다가 리메이크로 발매해도 좋고… 사람도 유쾌하고…….’
사실 가장 탐나는 사람은 간지(Gan-Zi) 피디였지만 그녀는 SSJ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후배들이나 외국 작곡가와 함께 최신 스타일의 히트곡을 뽑아내고 있는 괴물 중의 괴물!
아직도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간지 피디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뭐?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간지 프로듀서도 강전기의 시선을 느꼈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닙니다, 피디님. 오늘이 마지막이라 아쉬워서요.”
“아, 아쉽긴 개, 개뿔…….”
강전기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페로몬을 뿜어대자, 말까지 더듬는 간지 피디였다.
갑자기 김찬기 프로듀서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지영 씨가 말까지 더듬으시네. 이제 잘생긴 일렉케이 프로듀서 못 봐서 어떡하나.”
“선배님, 헛소리도 정도가 있습니다. 더 그러시면 저 못 참아요.”
“아이고… 농담도 못 하나. 진짜 너무하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몇 년째인데…….”
“김 피디님, 죄송한데요. 그 농담 저도 좀 불편하네요.”
“아… 쏘리, 쏘리…….”
강전기까지 언짢아하는 표정을 짓자 김찬기 프로듀서가 손을 들어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리 내가 풍요 속의 빈곤이라지만… 간지 피디는 너무 나갔지.’
무대 리허설이 다 끝나고 드디어 생방송 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밤 드디어 「걸그룹 4차 대전」의 우승자가 가려집니다. 저는 MC 정상균, 심해철입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
고양체육관에 모인 수천 명의 관객은 신호에 맞춰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랜만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관심도가 높았고 참가 그룹들의 뛰어난 실력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빌보드 1위 작곡가 일렉케이의 영향도 상당히 컸다. 초반 어그로와 이슈를 많이 양산해서 오디션 시리즈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자! 오늘이 바로 마지막 무대입니다. 서로의 데뷔곡 바꿔 부르기 미션인데요. 준비를 잘했는지 궁금합니다. 해철 씨, 대국민 문자 투표는 어떻게 참여하죠?”
“네, 여기 화면 아래로 나가고 있죠? 각 팀명이나 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시면 실시간으로 집계됩니다.”
“자, 이제 경연을 앞두고 있는데요. 저희가 또 빠트릴 수 없는 게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탈락자 선정인데요. 현재는 5위가 라라걸즈, 6위가 퓨리틴으로 두 팀 중 한 팀이 탈락 위기입니다.”
MC 심해철이 그룹명을 언급하자 화면에 두 팀 대기실 영상이 송출되었다. 라라걸즈는 한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고 퓨리틴은 각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제 최종 탈락자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탈락자는!!”
두두두두두…….
카메라가 관객석, 대기실, 무대 앞의 프로듀서 자리를 번갈아 가며 비추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아… 왜 내 얼굴을 이렇게 오래 잡고 있는 거야?’
와아!!
강전기기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 탈락자는… 카오스 ENT의 퓨리틴입니다.”
“까악!!”
라라걸즈는 환호성을 질렀고 퓨리틴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흑흑…….”
퓨리틴 멤버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한참 동안 울던 멤버들이 그래도 그동안 수고했다며 서로를 껴안아 주었다.
하지만 탈락의 빌미를 제공했던 수준 미달의 메인 보컬 손미연은 신경질이 나는지 다른 멤버의 손을 쳐내며 짜증을 부렸다. 현장에 나가있는 카메라맨이 황급히 카메라를 돌렸지만, 그 장면이 생생하게 방송을 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브라이언 정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내 저럴 줄 알았다. 하여간 인성질 오지네. 아빠가 고위층이면 다야? 다른 멤버들이 아깝다, 아까워.’
강전기는 속으로 혀를 찼다.
메인 보컬보다 리드 보컬의 능력이 더 뛰어난 이상한 그룹. 손미연을 잘라내지 못하면 그룹의 장래는 어두울 것 같았다.
‘비주얼이 좋으면 뭐 해. 팀의 케미스트리를 해치는 암 적인 존재지. 이를테면 예전 강전기 같은 녀석이군.’
강전기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MC들이 매끄럽게 생방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퓨리틴은 탈락입니다. 아쉽지만 이번 무대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저번 주부터 글로리아의 「시공을 넘어」라는 곡을 열심히 연습했을 텐데요.”
“네, 안타깝지만 이게 바로 연예계입니다. 이런 경쟁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죠.”
“선배로서의 조언인가요? 해철 씨?”
“그렇습니다. 이제 방송이 끝나면 같은 수준의 1년 차 걸그룹이 아니라 쟁쟁한 아이돌 선배들 그리고 음원 강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자만해도 안 됩니다.”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다 보니 맘에 와닿는군요. 데뷔한 지 한 20년 넘으셨죠?”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두 MC는 생방송인데도 불구하고 능청스럽게 방송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자! 오늘 첫 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네, 그 주인공은 바로 탈락할 뻔했던 유앤아이의 라라걸즈입니다. 라라걸즈가 준비한 곡은 바로 ‘레몬캔디’의 「마지막 여름」이네요.”
“와… 이거 어떤 의미로 기대되는데요? 과연 라라걸즈는 어떤 무대를 펼칠지… 채널 고정하시죠.”
화면이 고양체육관에서 회사 연습실로 이동하며 그간 공연을 준비했던 자료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라라걸즈는 「마지막 여름」을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몬캔디의 청순큐티한 콘셉트는 성숙한 분위기를 가진 라라걸즈와 맞지 않았다. 여고생들이 여행을 떠나 꽁냥꽁냥해야 하는 청량한 곡이었지만 그녀들로서는 도저히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결국, 라라걸즈는 강전기가 만든 원곡으로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에는 그냥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걸로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으음… 그래도 억지로 만든 청량함보다는 자신들의 색깔을 보여주니 나름 괜찮네. 물론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강전기가 만든 「마지막 여름」은 레몬캔디에게 완벽하게 맞춰진 곡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곡을 다른 팀이 커버했을 때 그 느낌이 살지 않았던 것이다.
라라걸즈는 재수 없게도 극상성의 곡을 만났을 뿐 그럭저럭 괜찮은 무대를 펼쳤다. 경연을 마치고 소감을 이야기한 라라걸즈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며 무대를 내려갔다.
“자… 두 번째 무대입니다. 어떤 팀이죠?”
“네, 바로 SSJ 엔터테인먼트의 G파워입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칼을 갈았다고 하는데요. 맞습니까? 해철 씨? 소속사 후배들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서순자 회장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차세대 걸그룹입니다. 오랜 시간 연습생 생활을 한 멤버들이다 보니 누구보다 잘할 거라고 믿습니다.”
“네, 그럼 G파워가 핑크엔진의 「루저 혁명」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살펴볼까요?”
화면이 바뀌었다. 강전기는 팔짱을 낀 채로 무표정하게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후… 어차피 우리 애들 미만 잡이다.’